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68화 (368/599)

<--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어이가 없군.’

이 현주가 대체 무슨 생각에서 이따위 명단을 뽑아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에 내가 절대로 뽑아주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뽑아온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녀를 칭찬해줄 용의가 있었다.

아니, 칭찬뿐일까? 당장에 구속을 풀어준 뒤에 허리가 나갈 때까지 잔뜩 안아줄 수도 있었다.

“이 현주 씨.”

마음을 가다듬고서 이 현주를 부르자, 단박에 그녀의 고개가 내 쪽으로 들어 올려졌다.

“네, 주인님!”

생기 넘치는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마치 내가 자신을 칭찬해줄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치 않고 있는 태도였다. 그 모습을 보니, 다소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작게 한숨을 내뱉은 나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내리누르며 입을 열었다.

“이 명단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사람들의 기준이 대체 뭡니까?”

“주인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로 올려놓은 거에요.”

“제게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묻자, 현주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네, 금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만약에 주인님께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고 싶으시다면 서 경석 의원의 딸을 마물 사냥꾼으로 뽑아놓으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거든요.”

“…….”

순간 머리가 띵 해졌다. 설마하니 여기서 정치권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이 현주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조작해서 서 경석 의원을 딸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페이지에서 그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물 사냥꾼을 이런 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가.’

헛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나는 입술을 비틀며 명단 위에 올라가 있는 이름들을 엄지로 툭툭 건드렸다. 그리고 이런 내 태도에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현주가 조심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뭔가 마음에 안 드세요? 아! 그럼 중국 쪽은 어떠세요? 이번에 중국 정부에서 마물 사냥꾼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거든요. 사실 이번에 공장부지 건만 하더라도 한국 정부보다 중국 정부가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있거든요. 주인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좀 더 싼 값에 중국에 공장 부지를 마련할 수 있어요. 물론 기간도 대폭 줄이고요.”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니, 현주가 왜 이런 식으로 명단을 뽑아왔는지 자연스럽게 이해 할 수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녀는 철저한 기업가의 입장에서 사장인 내게 최대한의 이익을 건네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보다 더 호화스런 밥상도 없었다.

“…….”

하지만 이건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마물과 싸워줄 마물 사냥꾼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앞선 마물 사냥꾼들과 마찬가지로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을 뽑았으면 했다. 그래야지 좀 더 적극적으로 마물과 싸울 것이 아닌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이윽고 이 현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현주 씨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아, 그럼…….”

“하지만 이건 제가 원한 게 아닙니다.”

“네? 아, 아니에요?”

아니라는 내 말에 현주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에 나는 그녀를 잠자코 바라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로 마물 사냥꾼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뽑고자 합니다.”

“하, 하지만 이 사람들도 마물 사냥꾼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건데요?”

“그게 과연 진심일까요? 막말로 이 사람들이 오우거 같은 마물들 앞에 서게 된다면 제대로 싸우기나 할 수 있을까요?”

“훈련을 한다면…….”

“훈련은 없습니다. 오로지 실전뿐입니다.”

“네?”

“설마 지금 있는 마물 사냥꾼들이 따로 훈련을 거친 뒤에 마물 사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틀리다고 말하고 싶군요. 지금 있는 마물 사냥꾼들은 오로지 실전으로만 다져진 알짜배기들입니다.”

물론 훈련을 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일단 내게는 고블린 소환과 같은 각종 소환 스킬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혹시 모를 오해를 염두에 두어두고서 따로 훈련을 시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무모한 행동이었다.

만약에 그 때, 이 소현과 유 지아가 변변찮은 활약을 하지 못 했다면 오크 한 마리를 상대로 누군가 죽거나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최악의 결과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마물 사냥꾼들은 그 날 멋지게 첫 사냥에 성공했고, 이어진 마물 사냥에서도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나 마물을 상대로 잘 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각자 절박한 사정을 가지고 있는 만큼 마물과 싸워야 되는 이유가 명확하게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가? 다들 하나 같이 무엇 하나 아쉽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단언하건데 십중팔구는 오우거와 마주하자마자 뒤돌아 도망칠 것이 틀림없었다.

‘안 봐도 비디오지.’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현주의 어깨에서 손을 떼어내며 입을 열었다.

“특별한 사정을 가지고 있거나, 장애를 가진 여성들로 명단을 다시 뽑아오세요.”

“자, 장애요?”

순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현주다. 이에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그녀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되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런 내 물음에 잠시 우물 쭈물대던 현주는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그……. 장애인은 좀 그렇지 않나요?”

“좀 그렇다니요?”

“그게 그러니까……. 마물 사냥꾼은 마물을 상대로 싸우는 직업이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장애인 보고 마물하고 싸우라고 하는 건, 좀…….”

잠시 말끝을 늘리던 현주는 이내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미덥잖아요.”

“미덥잖다고요?”

“네, 게다가 굳이 장애인을 뽑을 필요도 없잖아요. 법으로 강제하는 것도 아니고요. 솔직히 말해서 장애인을 마물 사냥꾼으로 뽑는 건……. 득보단 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위험 부담도 있고요.”

“위험이라고 하면 무슨 위험을 말하는 겁니까?”

“네? 아, 예를 들어서 마물 사냥꾼으로 뽑은 그 장애인이 무언가 결정적인 실수를 해서 마물 사냥에 실패하게 된다면 분명 그 마물 사냥꾼에게로 비난 여론이 형성될 거예요. 게다가 어쩌면 장애인을 뽑으라고 지시한 주인님에게도 비난 여론이 쏟아질지도 몰라요.”

현주는 그럴 듯한 이유를 구변 좋게 늘여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내 마음은 삐딱하기만 했다.

“그래서요?”

“멀쩡한 사람도 많은데, 구태여 장애인을 뽑을 필요는 없잖아요.”

딱 잘라 말한 현주는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문을 열었다.

“그럼 반대로 묻겠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장애를 가진 사람보다 나은 게 뭡니까?”

“네? 그, 그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문제가 없다는 거죠.”

“좋습니다. 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이 멀쩡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쳐진다면 어떻습니까?”

“네? 고칠 수 있나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내게 되묻는 현주의 태도에 나는 살짝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어깨를 꾹 눌렀다.

“대답부터 하시죠.”

“힉! 죄, 죄송합니다!”

새된 비명성을 터트리며 다급히 내게 사과한 현주는 이윽고 슬그머니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고, 고친다고 해도 역시……. 장애인은 좀…….”

“장애인은 장애인이라는 겁니까?”

“네, 네! 역시 이런 일은 멀쩡한 사람들이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큰 소리로 대답하는 현주의 태도에 나는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오른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흠, 이거 참 이상한 일로군요.”

“네? 뭐가요?”

“국회의원 중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참 많은데, 어떻게 그 사람들이 사지 멀쩡한 사람들을 제치고서 정치를 할 수 있는 걸까요? 이 현주 씨의 말대로라면 역시 못 미덥지 않습니까? 하물며 대한민국의 앞길을 정하는 국회의원인데 말이죠.”

“그, 그건…….”

가볍게 던진 농담인데, 현주는 마치 큰 죄를 지은 사람마냥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몰라해했다. 이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농담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속삭였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람을 가려 뽑는 것은 옳지 못 합니다.”

이리 속삭인 나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서 말을 이었다.

“……아시겠습니까, 이 현주 씨?”

========== 작품 후기 ==========

미안해, 현주야. 그냥 널 괴롭히고 싶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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