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벗었던 옷을 챙겨 입은 나는 곧장 방을 나섰다. 그러자 앗! 하는 소리와 함께 종종 걸음으로 달려오는 운피레아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에 나는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입니다.”
“에? 아직이에요?”
아직이란 내 말에 우뚝 발걸음을 멈춘 운피레아는 날 향해 잔뜩 실망한 기색을 내비쳐보였다. 어지간히도 내게 안기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가면을 건네주었다.
“금방 끝낼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이리 말하며 2번 방 쪽으로 몸을 돌리자, 뒤에서 ‘기다릴게요!’라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간절하게 들려와서, 이왕에 이렇게 된 거 한번 안아줄까도 싶었지만 이윽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순서대로 하자.’
물론 여기서 운피레아를 먼저 안아준다고 해서 현주가 내게 실망하거나 삐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일이란 게 항상 모르는 법이었다. 게다가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은근히 사소한 것에서 쉽게 상하는 법이었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해줄 필요가 있었다.
더욱이 현주는 내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현주가 내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당시에 마물 사냥꾼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운피레아를 뒤로 하고서 2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잔뜩 안달이 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 현주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아, 주인님!”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사무쳐 있었다. 누가 보면 내가 현주의 서방님이라고 오해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는 애틋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녀 쪽으로 다가간 뒤에 팔다리를 억압하고 있는 구속을 풀어주었다.
“……주인님!”
이처럼 자유롭게 풀려난 그녀는 대뜸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는 그대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내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허겁지겁 양 손을 놀리며 내 바지를 벗기려 들었다.
“이 현주 씨?”
“아아, 얼른……. 하아, 하아. 주인님, 얼른 벗어주세요!”
가쁘게 숨까지 몰아쉬며 나를 보채는 이 현주다.
‘이게?’
안 본 사이에 성욕이 한층 더 강해진 듯이 싶었다. 이에 나는 와락 눈살을 찌푸리며 현주의 손길을 뿌리쳤다.
“주, 주인님?”
그 때, 당혹감에 가득찬 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하니 내가 자신의 손길을 뿌리칠 줄은 전혀 예상지 못 했다는 어투였다.
“누가 자기 멋대로 행동해도 좋다고 했습니까?”
“하, 하지만…….”
내 물음에 기가 팍 죽은 듯이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한동안 입술을 어물거리다가 이윽고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할 거잖아요? 아닌가요?”
그 동안 내가 너무 오냐오냐 해줬던 모양인지, 이제는 말대꾸까지 하는 이 현주였다. 아무래도 다시 조교할 필요성이 있어보였다.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나는 이 현주의 손목을 꽉 붙잡은 뒤에 도로 의자에 앉혔다.
“팔걸이에 팔을 올려놓으세요.”
“주인님?”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죄, 죄송해요! 제가 잘 못 했어요! 네? 이러지 말아주세요!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이러지 말아주세요!”
“이 현주 씨!”
“힉! 저, 저……. 다리 벌릴까요? 아니면 막 돼지처럼 꿀꿀 거릴까요? 꿀꿀! 아, 그래! 납작 엎드릴까요?”
자신을 다시 구속시키려 한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내 팔을 꽉 붙잡고서 애원하는 이 현주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현주가 내 말대로 고분이 팔걸이에 팔을 올려두었다면 조금은 봐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얌전히 내 말에 따르는 것 대신에 입만 열심히 나불대고 있었다.
‘내가 노예 교육을 잘 못 시켰구나!’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여자한테 회사를 맡겼다는 말인가? 차라리 마물 사냥꾼을 통해서 사람을 하나 구할 걸 그랬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기엔 늦었다. 이미 일은 엎질러진 뒤였고, 현주는 참을성이 없었다.
물론 그것이 성욕 한정이긴 했지만, 그녀를 성욕으로 통제하고 있는 만큼 이것은 아주 큰 문제였다.
‘……이렇게 된 이상, 재교육을 시키는 수밖에.’
나는 내 팔을 끈덕지게 붙잡고 있는 그녀를 차갑게 한번 쏘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당장 이 손 놓으세요.”
“주, 주인님…….”
이런 내 경고에 눈썹을 파르르 떨며 나를 올려다보는 현주다. 이에 나는 와락 눈살을 찌푸리고는 내 팔을 붙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었다. 그리고는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자 일순 그녀의 얼굴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주, 주인님! 죄송해요! 제가 잘 못 했어요! 돌려보내지 말아주세요!”
방 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무시하며 곧바로 현주의 조교를 끝마쳤다. 그러자 일순 그녀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나는 살짝 심호흡을 하고는 현주를 조교의 방으로 불러내었다.
“아!”
그 순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탄성을 터트리고 있는 현주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응?’
동시에 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주를 다시 부른 만큼 그녀가 2번 방이 아닌 1번 방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녀는 1번 방이 아닌 2번 방으로 소환되었다.
‘……내가 있는 방을 기준으로 소환이 되는 건가.’
꽤나 유용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내심 감탄하며 의자에 구속되어 있는 현주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이런 내 시선을 느낀 듯이 그녀가 몸 전체를 크게 들썩이며 크게 소리쳤다.
“주, 주인님! 절 다시 불러주셨군요! 저 정말로 잘 할게요! 네? 저 주인님 말씀이라면 뭐든지 다 들을게요. 이렇게 맹세할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것 좀 풀어주세요!”
이리 소리쳐 말한 그녀는 자신의 팔과 다리를 구속하고 있는 의자를 한번 흘겨보며 내게 호소했다.
‘이건 뭐, 오랑우탄도 아니고.’
이번 기회에 암돼지처럼 꿀꿀 거리게 만드는 게 아니라 원숭이처럼 우끽끼 거리게 만드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이 현주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일부터 합시다.”
“이, 일이요?”
“네, 일이요.”
나직이 말한 나는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정신 사납게 들썩이고 있던 어깨가 조금은 잠잠해졌다. 대신에 꿀꺽꿀꺽 하염없이 군침을 삼키는 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정말이지, 이 현주의 성욕은 한창 혈기 넘치는 내가 봐도 오소소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십 대에 성욕이 절정에 달하는 남성과는 다르게 여성은 삼십 대에 절정에 달한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실제로 서른한 살로 한창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이 현주였으니 말이다. 고개를 절래절래, 가로저은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회사를 설립했다고 들었습니다. 대한 에너지라고요.”
“아, 네! 주인님의 말씀대로 녹색 보석을 에너지로 활용하기 위해서 회사를 설립했어요!”
마치 칭찬을 바라는 어린 아이처럼 크고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 현주다. 이에 나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계속 물었다.
“그럼 언제쯤부터 녹색 보석을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안 그래도 지금 그것에 관해서 정부와 협의하고 있는 중이에요. 게다가 안전성 문제로 이것저것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고요. 그리고 공장을 설립할 부지를 선정하는데 시기가 조금……. 아! 그래도 정부에서 친환경 에너지라는 측면을 강조해줘서 그렇게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어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겠군요.”
이런 내 말에 현주의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크게 소리쳐 말했다.
“1년! 아니, 반년 안에 해결해볼게요!”
“그렇게 빨리요?”
“네, 네! 저만 믿어주세요!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이리 소리쳐 말한 그녀는 마치 충성심 강한 강아지마냥 날 빤히 올려다보며 온갖 아양을 떨었다. 물론 내 눈에는 발정난 암퇘지라던가, 우끽끼 꺼리는 우랑우탄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뭐……. 나쁘진 않네.’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현주를 내려다보던 나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한번 믿어보죠.”
“아! 그, 그럼……!”
순간 현주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자신을 풀어줄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손톱만큼도 그녀를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이대로 묶어둔 채로 잔뜩 괴롭힐 생각이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심 웃음을 터트린 나는 재차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마물 사냥꾼 지원자는 몇 명이나 모였습니까?”
“지금 오억 사천만 명 정도가 지원을 했고, 현재 계속 늘어나고 있는 중이에요.”
“…….”
억이라는 소리에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혹시 내가 잘 못 들은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오억 사천만 명이요?”
“네! 아, 그런데 남성 지원자들도 있어서, 그걸 빼면 삼, 사억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어요.”
“으음.”
나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아무리 전세계를 대상으로 공개 채용을 했다고는 하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로 많은 숫자가 모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전세계 인구가 73억이라는 걸 감안해보면 그렇게 많은 숫자라고도 볼 수 없었다.
물론 73억 중에 41억 명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납득이 가는 숫자이기는 했다.
실제로 마물 사냥꾼은 전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소원도 이뤄주지.’
한 가지 뿐이란 게 흠이긴 했지만, 덤으로 예뻐지기까지 하니 전세계 모든 여성들이 탐이 낼 법도 했다.
“많긴 많군요.”
“그렇죠? 그래서 제가 추려왔어요!”
“추렸다고요?”
“네! 제가 딱 봐서 뽑아 놓았어요!”
마치 저 잘 했죠? 라고 소리치며 우끽끼 거리는 우랑우탄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에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잘 했습니다. 그럼 일단 현실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리 말하며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자, 현주가 큰 소리로 날 향해 소리쳤다.
“아,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제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거든요!”
크게 소리쳐 말한 현주는 ‘지금 제 주머니 안에 들어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이에 나는 곧바로 허리를 숙여서 그녀의 주머니 안쪽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스마트폰이 내 손에 잡혔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현주의 입술 사이로 애달픈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하으, 아……. 주인님, 좀 더…….”
주머니 안으로 손을 찔러넣어준 것만으로도 느끼는 모양인지, 가쁘게 숨을 토해내며 몸을 베베 꼬는 현주다.
‘이거 참…….’
혀가 절로 내둘러질 정도였다. 고개를 살짝 가로저은 나는 구속되어 있는 현주의 오른손 쪽으로 스마트폰을 가져다댄 뒤에 잠근 패턴을 풀도록 했다. 그 다음에 그녀가 추려왔다는 명단을 살펴보았다.
‘하…….’
명단을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명단에 올라와 있는 여성 모두가 하나 같이 어마어마한 경력을 가지고 있거나 대단한 집안의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대한 그룹의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평범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건 외국인 지원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전부 다 학력 혹은 경력에 어마어마한 것들이 적혀있었다. 어느 회사의 대표 이사라는 건 기본이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가 다 아는 그런 유명 대학교에 재학 중인 여성들도 보였다.
“…….”
물론 이게 문제라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이들 모두 정말로 마물 사냥꾼이 되고 싶기에 지원한 것일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아무에게도 말 못 할 병을 앓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분명 모르긴 몰라도 전부 다 하나 같이 녹색 보석이 탐나서 지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면 유명세를 얻고 싶다거나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시꺼먼 속셈보다도 더 화가 나는 것은 이따위 명단을 뽑아놓고서 칭찬을 바라는 이 현주였다.
‘……아니, 침착하자.’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쩌면 정말로 이 현주가 나름 심사숙고해서 뽑아온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꾹 참고서 명단을 마저 살펴보았다. 그러나 지금 있는 마물 사냥꾼들처럼 절박한 사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작품 후기 ==========
상류층 인사 : 이 현주 사장님, 저희 딸 좀 뽑아주세요.
이 현주 : 맨입으로?
상류층 인사 : 설마요. 허허.
김 유현 :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