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62화 (362/599)

<--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

[마물 사냥꾼이 할 수 있는 것]

아침이 가까워지는 시간, 곤히 자고 있던 김 예지는 거실 쪽에서 들려오는 어수선한 발소리에 잠에서 깼다. 간밤에 푹 잔 덕택에 온 몸에는 활기가 넘쳤지만, 이상하게도 침대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잠만 자고 싶었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일어나지 않으면 아침밥을 다 차린 그녀의 어머니가 어서 일어나라며 그녀에게 타박을 줄 것이 틀림없었다.

한동안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던 김 예지는 자그맣게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다음에 평소처럼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며 방 안을 둘러보는데, 문득 책상에 기대어져 있는 지팡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성자의 지팡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지팡이는 언제나처럼 고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헤실헤실 웃은 예지는 종종 걸음으로 지팡이 쪽으로 다가간 뒤에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잘 잤어?”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답이 돌아올 리가 만무했지만, 예지는 마치 오래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살갑게 인사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렇게 몇 마디 더한 예지는 구부정하게 숙였던 허리를 똑바로 펴며 방을 나갔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버지와 분주하게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일어났니?”

김 예지의 인사에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어머니가 다정하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녀의 아버지 또한 조용히 미소 지어보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예지는 그런 부모님을 한번 돌아보고는 세안을 하기 위해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에 세수를 하는데, 문득 자기 얼굴이 보였다.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네.’

놀랄 만큼 예뻐진 자기 얼굴에 때때로 적응이 되지 않았다. 분명 자기 얼굴인데, 자기 얼굴처럼 느껴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예지는 그 때마다 자기 볼을 살짝 꼬집어보며 실감했다. 자신이 예뻐졌다는 것을 말이다.

‘……로또네, 로또.’

친구들이 그녀를 부를 때마다 가끔씩 장난스럽게 로또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로또라고 불릴 만 했다.

‘아니, 로또보다 더 하려나.’

그도 그럴 것이 전세계에서 단 다섯 명 밖에 없는 마물 사냥꾼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중에 한 명이었다.

로또보다 더한 확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예지가 이제까지 가장 신경 쓰고 있었던 골칫덩어리를 아주 깔끔하게 해결하기도 했고 말이다.

실제로 그것에 비한다면 외모가 예뻐진 것은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예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검은색 머리카락이 자신의 손가락에 얽히며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심지어 뿌리가 튼튼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세게 잡아당겨도 단 한 가닥도 빠지지 않았다.

“후후.”

그것을 확인한 예지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젠 더 이상 옛날의 자신이 아니었다. 머리카락 하나하나에 마음 아파하던 자신은 단지 과거에 불과했다. 지금 자신의 머리카락은 튼튼하고 풍성했으며 아름다웠다. 심지어 숱도 많았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지경이었다.

가능하다면 이렇게 계속 쭉 자기 머리카락만 만지고 살고 싶을 정도였다.

“예지야, 밥 먹어!”

그 때, 예지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그녀는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는 세안을 마무리했다. 그런 다음에 어머니가 차려주신 따끈한 아침밥을 다 먹은 예지는 마저 씻은 뒤에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예지야, 아저씨들이 기다리신다!”

“다 입었어요!”

어머니의 목소리에 예지는 크게 대답하며 교복 단추를 서둘러 잠갔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아저씨들은 너무 성실했다. 조금은 늦게 와도 될 텐데 말이다. 사실 이전에도 몇 번씩이나 늦게 나와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하지만 아저씨들은 마치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처럼 매번 일찍 나오곤 했다.

물론 그게 아저씨들의 일이란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성실하지 않은가? 가끔씯은 농땡이도 피우고, 융통성 있게 해도 되지 않겠는가?

작게 한숨을 내뱉은 예지는 가방을 등에 멘 뒤에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오늘도 반짝반짝 빛을 내는 반지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 모습에 잠시 감탄하던 예지는 또다시 들려오는 어머니의 호통 소리에 ‘네, 나가요!’라고 소리친 뒤에 성자의 지팡이까지 챙겨들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크게 소리쳐 말한 예지는 곧바로 집 밖으로 나갔다. 그런 다음에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1층으로 내려가자, 검은색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김 예지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어서 타시죠,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깍듯이 인사하는 것이 마치 영화 속 조폭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처음 이 모습과 마주했을 때, 얼마나 부담스러웠던가? 하지만 이것도 며칠 하나보니 어느샌가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네!”

쾌활하게 대답한 예지는 곧바로 검은색 차 안으로 몸을 실었다. 그리고 뒤이어 두 명의 아저씨가 앞좌석에 앉았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성자의 지팡이를 무릎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두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부드럽게 미끄러지듯이 나아간 차가 곧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도로로 진입하는 게 보였다.

‘오늘도 사람이 모여 있으려나.’

학교 앞에 모여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울적해졌다. 그리고 이런 예지의 마음을 마치 눈치 채기라도 한 것처럼 보조석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예지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학교 앞에 아무도 없을 겁니다.”

“없어요?”

“네, 사람을 시켜서 전부 다 정리해뒀습니다.”

“저, 정리요? 혹시…….”

불길한 예감에 예지가 이리 묻자, 아저씨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좋은 말로 타일렀습니다.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어떤 식으로 좋게 타일렀는지는 몰라도, 일단 사람들을 돌려보냈다니 예지는 안심하기로 했다.

‘하긴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최소한 주먹질로 내쫓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어느샌가 차가 학교 앞에 도착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예지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학교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저씨들이 그녀를 호위하듯이 섰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동시에 등교하던 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예지의 모습을 찍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건 도저히 며칠이 지나더라도 바뀌지 않는 풍경이었다. 실제로 학생들의 SNS를 통해서 예지의 일상이 인터넷 상에 퍼져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걸 제지해보려고도 생각해봤다. 명백한 사생활침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딱히 악의를 가지고서 찍는 게 아니었기에 일단은 지켜보는 중이었다. 실제로 해가 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득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군데에서 섭외 연락이 오니 말이다.

“제발! 제발 제 아내를 고쳐주세요!”

“아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러던 중에 저 멀리서 처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예지는 발걸음을 멈추고서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런 예지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처절한 목소리가 한층 더 크게 울려 퍼졌다.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게 아니면 제 아내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듣는 이의 마음이 찢어질 것만도 같은 목소리였다. 눈물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예지는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 예지가 저 사람의 아내를 고쳐주었다간 그 소문을 듣고서 수 십, 수 백, 어쩌면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그 분의 허락도 없이 다른 사람들을 고쳐주었다가 능력이라도 잃게 된다면, 예지는 다시 평범한 그 때로 돌아가야만 되었다.

아니, 평범하게 돌아가는 것 자체는 괜찮았다.

‘또 머리카락이…….’

아침마다 수북하게 빠지는 머리카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것만큼은 안 돼!’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은 예지는 자신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아저씨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도망치듯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 ∵ ∴ ∵ ∴

창문 너머로 들어온 따사로운 햇살이 내 얼굴을 간질였다. 천천히 눈을 뜨자, 내 품에 포옥 안긴 채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서연이 누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죽은 것처럼 곤히 자고 있는 걸 보니, 어젯밤 확실히 무리를 하긴 한 모양이었다.

쿡쿡, 웃음을 터트린 나는 누나의 정수리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그러자 우웅, 소리를 내며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 반응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스멀스멀 흥분감이 피어올랐다.

‘확 덮칠까?’

덮친다면 어떤 식으로 덮칠까? 저 작은 입술만 가지고 놀까? 아니면 아래쪽을 마구 찔러서 범해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누나의 등허리를 쓰다듬는데, 문득 가느다란 팔이 내 허리를 꽉 감싸는 게 느껴졌다. 이에 혹시 깼나 싶어서 고개를 숙여보니, 아니나 다를까 잠에서 깬 누나가 두 눈을 말똥히 뜨고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잘 잤어요?”

========== 작품 후기 ==========

힐러는 정말 쓸 데가 무궁무진하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