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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모니카의 손을 잡아줄 순 없었다. 유감스럽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녀를 이대로 가만히 놔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막말로 내가 현실로 돌아가게 되면 한동안 독수공방하게 될 모니카였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붙어있을 때,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되었다.
그것이 바로 연인의 존재의의였다.
함께 있는데 외롭다면 왜 연인이겠는가? 그것은 타인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녀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안절부절 못해하는 얼굴로 내 손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엾어 보였다.
마치 주인의 애정 어린 손길을 바라는 강아지와 같다고 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모니카에게 손을 내밀면 그녀는 더 이상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 손을 덥썩 잡을 것이 분명했다. 그야말로 해피엔딩. 모니카의 입장에선 더없이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 옆에는 에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행동보다는 다른 걸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조용히 미소 지어 보인 나는 모니카에게 질문을 던졌다.
“성녀님께선 이곳 하폰의 수도에서 지내십니까?”
“네?”
이런 내 질문에 그녀는 짧은 외마디와 함께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어지간히도 집중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모니카가 바라보고 있던 내 손을 살짝 쥐며 다정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재차 질문을 던졌다.
“성녀님께선 하폰의 수도에서 지내시는 겁니까?”
“아……! 아, 아뇨! 그렇지 않아요.”
허둥대며 말하는 모니카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게 보였다. 마치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앳된 소녀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물론 몸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특히나 저 커다란 가슴은 성숙한 여인의 완숙미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중고생 정도의 앳된 소녀들이 함부로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그럼요?’라고 물었다. 그리고 이런 내 물음에 모니카는 수줍음 가득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방금 전보다 더 뚜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로 로체스터 왕국에서 지내요.”
“그럼 곧바로 로체스터로 돌아가시겠군요.”
“네, 유……. 현자님께선 언제쯤 로체스터에 방문하실 수 있나요? 제가 그 때에 맞춰서 시간을 비워두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하는 일이 아무래도 이렇다 보니……. 어느 날짜에 간다고 명쾌하게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로체스터 왕국을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군요…….”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하던 모니카는 이윽고 나를 빼꼼 올려다보며 ‘검은색 돌을 최대한 많이 모아둘게요.’라고 덧붙였다. 어쩜 이리도 예쁜 말만 속속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당장에라도 성녀를 꽉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성녀님께선 언제부터 성녀가 되셨습니까?”
“일곱 살이 되던 해였어요. 그 땐, 참 신기했어요. 뭐라고 해야 될까……. 그냥 알 수가 있었어요. 제가 성녀가 되었다는 걸요. 그리고 대주교님께서 저를 직접 찾아오셨을 때, 확신했죠. 제가 성녀가 되었다는 걸요.”
모니카는 이렇게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마냥 즐거운 모양인지, 해맑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 때의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말에 나는 연신 맞장구를 쳐주며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들었다. 태어나자마자 신전 앞에 버려진 일이라던가, 세례를 받은 일이라던가, 교황 전하를 직접 뵙게 된 것까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것까지, 모니카가 살아온 삶을 대략적으로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나는 좀 더 그녀와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니카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함으로서 좀 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낀 모양인지,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한층 더 뜨거워져 있었다.
만약에 그녀가 내 노예였다면 지금쯤 호감도 상승을 알리는 알림문구가 수두룩하게 쌓여있었을 것이다.
“현자님을 뵙지 못 했다면, 저는 못 버텼을 거예요.”
불쑥 모니카가 내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손끝의 떨림이 여실히 전해져왔다. 더불어 진심도 말이다. 정말로 내가 아니었다면 성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 하고, 신전에 틀어박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가엽고 딱했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지어보이며 모니카의 손을 꽉 한번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에나의 시선을 의식해서 천천히 내려놓았다. 이에 성녀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나는 애써 그 표정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또 그런 일을 겪게 되신다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언제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현자님…….”
감동한 목소리가 모니카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더불어 우리 뒤를 따르던 신관들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들 하나 같이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 명쯤 의심할 법도 한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니카를 돕지 않겠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쯤에서 누군가는 내 음흉한 속셈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게 바로 명성의 힘인가.’
확실히 사람은 유명해지고 볼 일이었다. 실제로 유명세를 이용해서 사기 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으니 말이다. 지금 내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유명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다시금 걸음을 옮기며 모니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과는 다르게 시답잖은 잡담들뿐이었지만, 잡담만큼 상대방의 호감을 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나는 왕성을 나서는 순간까지 모니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호감을 쌓았다. 그리고 헤어지는 순간에는 성녀가 대놓고 내 손을 붙잡으며 함께 가자고 청할 정도였다. 심지어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신관들마저도 내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고개를 조아렸다.
‘조금 지나쳤나 보네.’
짐짓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보인 나는 그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친절에 감사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대륙을 위해서라도 한시 바삐 가봐야 될 곳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친절은 이후에 이 일이 해결되거든 받도록 하겠습니다.”
대륙의 안전을 앞세워 이리 말하자, 다들 납득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하나둘씩 고개를 들어올렸다. 모니카 또한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하긴 무려 대륙을 위해서였다. 이 한 몸 희생해서 대륙을 지켜내겠다는데, 과연 그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성녀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러한 내 말에 모니카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윽고 내 손을 조심스레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무사하세요. 어디 다치시면……. 곤란한 일이 생기거든 저를 찾아오세요.”
진심이 담긴 그 목소리에 가슴이 울렁거려왔다. 나는 그 기분 좋은 울림을 하나하나 맛보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리 말하며 손을 떼어내려는데, 불현듯 모니카가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이에 뭔가 싶어서 고개를 숙여보니, 내 손바닥 위에 올려져있는 명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일전에 베네딕트에게서 받은 명패처럼 황금색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정도였다.
“제 명패에요. 이걸 가지고 절 찾아오시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꼭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이걸로 도합 세 개의 명패를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세 개의 명패 모두 하나같이 범상치 않는 물건들이었다.
왕자임을 증명하는 명패와 리벨 조합에서 얼마든지 돈을 빼낼 수 있는 명패 그리고 성녀임을 증명하는 명패.
그저 이렇게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배가 다 불러올 정도였다.
이게 있다면 최소한 어디를 가더라도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몸……. 몸조심하세요.”
마지막까지 내 몸을 걱정해주는 모니카다. 나는 그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손등에 가볍게 입술을 맞춰주고는 에나와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이 때, 슬쩍 에나의 눈치를 살펴보았는데 의외로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기껏 호감도가 80을 넘었는데……. 뭔가 변화가 없네.’
조금 슬퍼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시선을 의식한 모양인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에나가 나와 시선을 딱 마주치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양 볼에 홍조를 그려 넣었다. 더불어 부끄럽단 듯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니, 확실히 호감도 80의 위력이 대단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냥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뿐인가.’
이런 앙큼한 포커페이스를 봤나? 음흉하게 웃은 나는 에나의 손을 꽉 붙잡은 뒤에 한적한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다음에 그녀를 벽 쪽으로 몰아붙인 다음에 입술을 맞춰주었다.
“하음, 응……. 하아, 유현 님…….”
“제가 없는 동안 외롭지 않았습니까?”
에나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서 이리 묻자, 그녀는 잠시 머뭇머뭇 거리다가 이윽고 내 옷을 꽉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조금……. 외로웠습니다.”
솔직한 그녀의 대답이 나를 한 없이 기쁘게 만들었다. 나는 상으로 몇 번 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춰주고는 오른손으로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둔부가 내 손바닥에 착 감겨왔다.
모니카의 부드러운 엉덩이와는 전혀 다른 감촉이었다.
“……하읏, 아……. 아, 안 됩니다. 여기선…….”
그 때, 에나가 내 가슴팍을 살짝 밀쳐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여기서 에나와 섹스를 하기엔 지나치게 개방된 장소였다. 혹시라도 누군가 에나의 나신을 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건 안 되지.’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에나의 엉덩이를 맛보고는 손을 떼어내었다.
“슬슬 돌아가도록 하죠.”
이리 말한 나는 로브를 벗은 뒤에 에나에게 건네주었다. 그 후,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화면을 켜자, 새로운 알림문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축하합니다!]
[마정석 파편을 획득하셨습니다!]
[이계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종료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됐군.’
영양가가 높은 퀘스트였던 탓인지, 유난히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리며 네를 눌렀다. 그러자 잠시 눈앞이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환하게 밝아지며 내 자취방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더불어 내 로브를 들고 서있는 에나의 모습도 보였다.
그걸 본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에나 씨. 그럼 다음에 또 부르겠습니다.”
“네.”
내 말에 고분이 대답하는 에나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에나를 역소환했다. 그러자 한 순간 방 안이 휑하니 비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작 한 사람 차이일 뿐인데도 말이다.
흠, 하고 숨을 들이켠 나는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5시 42분……. 꽤 아슬아슬한데.’
조금 빠듯하게 움직여야 될 듯이 싶었다. 고개를 살짝 가로저은 나는 신발을 벗는 것과 동시에 이계 퀘스트를 완료했다.
[축하합니다!]
[이계 퀘스트 ‘은혜 갚는 왕자님’를 완료했습니다.]
[아이템 ‘마정석 파편’이 소멸됩니다.]
[보상으로 랜덤 스킬 상자가 주어집니다.]
[랜덤 스킬 상자를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뭐가 나오려나.’
이왕이면 고블린 소환 스킬이 하나 더 나왔으면 했다.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차분히 가라앉힌 나는 화장실 앞에 서는 것과 동시에 바지를 벗었다.
[축하합니다!]
[스킬 ‘다이어 울프 소환’을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 다이어 울프 1마리를 소환합니다.]
[강제로 역소환되었을 시, 30분 뒤에 다시 소환 할 수 있습니다.]
“다이어 울프라…….”
다이어 울프는 플리이오세에서 살았던 포유류로 화석 상태로 흔하게 발견되는 종인데, 현존하는 늑대보다 몸과 두개골이 크고 무겁다. 하지만 뇌가 덩치에 비해서 작았기에 지능이 많아 떨어질 것이라도 추측되는 늑대이다.
‘고대 늑대의 부활인가.’
고고학자들이 이걸 본다면 좋아서 미쳐 날뛸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내가 소환할 수 있는 고블린과 오크 그리고 슬라임, 스켈레톤을 본다면 까무러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현계 퀘스트로 등장한 몬스터들이 전세계 과학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만약 현계 퀘스트로 등장한 몬스터들이 시체를 남겼다면, 지금쯤 과학자들이 몬스터들의 몸을 해부해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해부라.’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책상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은 뒤에 베네딕트와 아놀프 그리고 모니카에게서 받은 명패를 서랍 안에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에 샤워를 하기 위해서 서둘러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라도 서연이 누나의 퇴근 시간을 맞추지 못 한다면 한 소리 듣게 될 테니 말이다.
‘얼른 씻자.’
샤워기에 물은 튼 나는 찬 물에 머리를 감은 뒤에 몸에 비누칠을 하는 것으로 간단히 샤워를 끝마쳤다. 그런 다음에 밖으로 나와서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니, 서연이 누나한테서 온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유 서연 : 지금 가고 있어]
벌써 퇴근한 모양이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빨래 건조대에 걸려있는 옷을 집어 입은 뒤에 자취방을 나섰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서연이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