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57화 (357/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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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다 입은 후에 모니카와 함께 방을 나서자, 어둠이 짙게 깔려있는 복도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저 멀리 시녀들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며 촛대에 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새삼스레 성녀와 너무 오랫동안 따로 시간을 가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모니카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양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슬쩍 웃은 나는 모니카와 함께 복도를 걸으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말해둘게 있습니다.”

“편히 말씀하세요.”

내가 말을 놓아주기를 원하는 모양인지, 다섯 손가락으로 내 새끼손가락을 휘감는 모니카다.

보아하니 내 손을 잡고는 싶은데, 차마 부끄러워서 내 손을 붙잡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극적으로 타협을 본 것이 바로 이 새끼손가락인 듯이 싶었다.

나는 내 새끼손가락을 붙잡고 있는 다섯 손가락의 꼼지락거림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저는 오늘 이 왕성을 떠날 겁니다.”

“네? 아! 그럼 저와 함께 신전으로…….”

내 말을 오해한 모양인지, 감탄성과 함께 보다 세게 내 새끼손가락을 붙잡는 성녀다. 이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니카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아닙니다. 저는 다른 왕국으로 떠날 겁니다.”

“네?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거짓말이죠?”

“말한 그대로입니다. 저는 오늘 떠날 겁니다.”

이러한 내 말에 모니카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몸을 휘청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보다 세게 내 새끼손가락을 부여잡으며 입을 열었다.

“왜, 왜요? 제 곁이 있어주시면 안 되는 건가요?”

애원 섞인 모니카의 말소리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여기가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다. 만약에 여기서 내가 흔들리게 된다면 이제까지 노력한 모든 것이 전부 다 허사로 돌아가게 될 테니 말이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모니카, 당신 곁에 남고 싶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저 때문이라니요? 저는……. 저는 이해할 수 없어요! 그냥 제 곁에 남아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제발…….”

크게 소리쳐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니카다. 더불어 몇몇 시녀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다가 이내 발걸음을 멈추고서 웅성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작은 웅성거림이었기 때문에 무어라 하는 것인지 자세히 들리지 않았지만, 얼추 들어보니 나와 성녀의 관계를 유추하는 목소리인 듯이 싶었다.

하긴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또 없을 것이다.

현자와 성녀의 사랑.

이 얼마나 달콤한 이야기라는 말인가? 당장에 로맨스 소설로 나오더라도 손색이 없었다.

“울지 마세요, 모니카.”

나는 더없이 마음 아파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새끼손가락을 부여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꽉 붙잡았다. 세게, 으스러지도록 세게 말이다. 내 거짓된 마음이 그녀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저도 당신을 놔두고 떠나야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위해서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검은색 돌은……. 정말로 위험한 물건입니다. 때문에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 아니, 당신과 저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아이…….”

“그렇습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요.”

이리 속삭인 나는 일부러 모니카의 배를 어루만졌다.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배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특히나 잘록한 허리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골반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가능하다면 이 자리에서 그녀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파렴치한 행위를 하기에는 여기저기서 보는 눈이 너무나도 많았다. 물론 대놓고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둠 속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만큼은 확실하게 들고 있었다.

“……모니카.”

“네…….”

“금방 끝내고 돌아올게. 아주 잠깐이면 돼. 그러니까 조금만 꾹 참고 나를 기다려줘.”

나는 여기서 일부러 반말을 했다. 존댓말을 하는 것보다는 반말로 신뢰감을 주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모니카는 눈물로 젖은 눈을 옷소매를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릴게요. 꼭…….”

애써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어 보였다.

이걸로 되었다.

모니카는 더 이상 나를 신전으로 데려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역시 모성을 자극하는 것이 제일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나쁜 남자에 소질이 있는 모양이었다.

속으로 웃음을 터트린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촉촉하게 젖어있는 그녀의 눈매를 엄지로 닦아주었다.

“고마워, 모니카.”

“아아…….”

그녀의 입술 사이로 재차 탄성이 새어나왔다. 모니카는 또다시 눈물을 터트리며 내 품에 그대로 안겼다.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복도 안을 가득 채웠다. 더불어 작게 들썩이는 어깨가 내 마음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저 어떡해요? 벌써부터 보고 싶어요. 헤어지기 싫어요.”

그래, 이해한다. 나도 헤어지기 싫으니까 말이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모니카와 함께 이대로 신전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서연이 누나가 심히 마음에 걸렸다.

막말로 내가 덜컥 사라져 버리기라도 하면 누나가 미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누나라면 나를 찾아서 이계까지 쫓아올 것만도 같았다.

‘그건 좀 무서운데…….’

소름끼치는 상상이었다. 나를 찾아서 이계까지 쫓아온 서연이 누나라니……. 물론 순수하게 사랑하기에 나를 찾아온 것이라면 이보다 더 감격스러운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서연이 누나의 사랑에 집착이 없을 수가 있을까? 하물며 내가 성녀와 알콩달콩 신혼집을 꾸리고 있는 것을 보기라도 한다면 눈이 돌아가서 나와 성녀를 대뜸 죽이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실로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물론 그 가능성이 0%에 한 없이 수렴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매니저 어플은 오직 한 사람만 쓸 수 있는 거니까.’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단호히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은 나는 내 품에 안긴 채로 흐느끼고 있는 성녀를 살짝 떼어내었다. 그리고는 눈물로 흠뻑 젖어있는 뺨을 손바닥으로 닦아내어주며 입을 열었다.

“최대한 자주 찾아가겠습니다.”

“차라리 제가 따라가면 안 될까요?”

“그건 곤란합니다.”

“왜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순 없는 건가요?”

“아주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홀몸도 아니지 않습니까? 모니카, 당신에게 그런 위험한 일을 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신에 이렇게 하죠.”

무어라 반박하려는 성녀의 태도에 나는 이리 딱 잘라 말했다. 동시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아주 좋은 기회였다. 조용히 미소 지은 나는 성녀의 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검은색 돌을 최대한 많이 모아주세요. 그럼 제가 적당한 시기를 봐서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검은색 돌을요?”

“네, 그걸 모아놓으시면 됩니다.”

“많이 모아두면……. 더 빨리 오시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나로서는 두 팔 벌려서 환영할 일이었다.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것은 마정석 파편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모니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많이 모아놓을게요. 그러니까……. 자주 와주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모니카의 간절한 애원에 나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대답했다.

‘일석이조네.’

마정석 파편도 얻고, 성녀도 만나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 후한 거래도 없을 것이다. 나는 내심 흐뭇하게 웃으며 모니카를 좀 더 달래주고는 함께 홀로 향했다. 그리고 이윽고 홀 안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귀족들과 신관들 그리고 왕의 시선이 내게로 쏟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들 내 옆에 서있는 성녀의 가슴을 쳐다보며 꿀꺽 군침을 삼켰다.

속이 훤히 보여서 내가 다 불쾌할 정도였다.

성녀가 그 동안 감내해야 됐을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지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안 들려요.”

그 때, 성녀가 해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정말로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완벽하게 문제가 해결된 셈이었다.

나는 성녀를 향해 다정한 미소 지어 보여주며 ‘다행이네요.’라고 대답해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성녀의 몸이라도 꽉 끌어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창피해할 것 같았기에 꾹 참았다.

더욱이 왕의 앞이었다. 예의를 지킬 필요가 있었다.

나는 충동을 억누르며 성녀와 함께 국왕의 앞까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윽고 앞에 서게 되자, 국왕이 나와 성녀를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잘 끝났는가?”

“그렇습니다.”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한 나는 성녀를 한 차례 바라본 뒤에 다시금 국왕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예정대로 저는 검은색 돌을 연구하기 위해서 대륙을 떠돌아다닐 것입니다.”

이러한 내 말에 국왕은 조용히 성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받은 모니카는 고개를 조아리며 무척이나 온화한 목소리로 ‘그것이 대륙을 위한 길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오오, 과연…….”

“대륙을 위한 길인가!”

“진정한 영웅이로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새어나왔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무려 성녀가 공인한 자였다. 이보다 더 확실한 것도 없었다. 하물며 베네딕트 왕자가 일찍이 나를 현자라고 칭했다. 왕자에 이어서 성녀에게까지 공인받은 현자. 그 누가 나를 의심하겠는가? 막말로 내가 언데드 군단을 이끌고 다니더라도 사람들은 끝까지 나를 아군이라고 여길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처럼 공인된 현자가 된 이상, 베네딕트와 모니카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언행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조용히 미소 지은 나는 국왕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 또한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과연 내 아들이 입술이 마르도록 칭찬 할 만하구려!”

여기서 국왕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베네딕트를 추켜세웠다. 얼핏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귀족들 입장에선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아마도 지금쯤 왕위 후자계로 베네딕트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셀리 공주가 과하게 반응할 만도 하네. 아니, 당연한 반응인가.’

누가 보더라도 국왕은 베네딕트를 무척이나 아끼고 있었다. 셀리 공주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시기와 질투가 날 법도 하다. 나 역시 셀리 공주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울화통이 터졌을 것이다.

“검은색 돌을 가져 오거라!”

그 때, 국왕이 크게 소리쳤다. 드디어 올 게 온 셈이었다. 나는 군침을 삼키며 마정석 파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1분 정도를 기다리자, 내 앞으로 열 몇 살 남짓한 시종이 다가왔다. 그 시종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있었는데, 당연하게도 그 쟁반 위에는 사이하다 싶을 정도로 매혹적인 검은 광채를 뿜어내고 있는 마정석 파편이 놓여 있었다.

‘맞군.’

두 번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현자여, 이것이 그대의 대륙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물건이 맞는가?”

“그렇습니다.”

나는 구태여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았다. 딱 한 마디면 충분했다. 괜히 미사여구를 붙여보았자, 사기꾼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을 들은 국왕은 더없이 흡족해하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대를 믿고 건네겠네.”

“믿어주셔 감사합니다.”

이리 말한 나는 쟁반 위에 올려져있는 마정석 파편을 손으로 집었다.

‘이걸로 퀘스트 완료인가.’

여러 가지로 보람이 많은 퀘스트였다.

나는 마정석 파편을 주머니 안에 찔러 넣은 뒤에 모니카에게 ‘조금 있다가 뵙겠습니다.’라고 말한 뒤에 왕자 베네딕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 때, 성녀가 아쉬운 듯이 날 향해 은근한 시선을 보냈지만, 여기서 그녀의 어리광을 계속 받아주었다가는 꼼짝없이 하룻밤 보내야 될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래도 그건 무리니까.’

그러니 되도록 빠르게 작별 인사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성녀를 향해 눈인사를 건넨 뒤에 베네딕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일 나갔던 서방님을 맞이하는 새색시마냥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내 곁으로 다가오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단하십니다, 유현 님.”

대뜸 나보고 대단하다고 하는 베네딕트의 행동에 나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무엇이 말씀입니까?”

“성녀님에게 인정을 받으셨지 않습니까! 역시 대단하십니다. 처음 볼 때부터 알아봤지만……. 현자님은 역시 범상치 않으십니다.”

“범상치 않다니요. 저는 그저 평범한 학자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내 말에 베네딕트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머리를 흔들었다. 철썩 같이 나를 현자라고 믿고 있는 순진한 왕자님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순수하게 느껴져서, 미약한 양심의 가책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 작품 후기 ==========

만약에 서연이가 매니저 어플을 손에 넣게 된다면? 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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