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40화 (340/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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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초콜릿을 삼킨 셀리 공주는 좀 더 달란 듯이 날 향해 눈짓했다. 물론 입으로는 연신 나를 욕하고 있었다. ‘변태 현자!’ ‘허풍쟁이 같으니!’ ‘천하에 둘도 없는 색골!’ 등등 말이다. 공주의 신랄한 비판에 마음이 너덜너덜 넝마처럼 펄럭였다.

그럼에도 내가 주는 초콜릿을 야금야금 잘도 받아먹는 공주의 모습을 보니, 금세 기분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초콜릿 말고 더 없어?”

문득 공주가 자기 검지를 쪽 빨며 시니컬하게 물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 손가락도 빨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졌다. 마침 내 손가락에 초콜릿이 묻어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랬다간 틀림없이 지금보다도 더 신랄한 비판이 날아올 것이 자명했다. 하물며 내 뒤에는 에나가 가만히 서있었다.

어느 정도 선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

나는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손수건을 꺼내서 손가락에 묻어있는 초콜릿을 닦아낸 뒤에 입을 열었다.

“껌은 어떠십니까?”

“껌?”

“그렇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마트 봉지 안에서 자일리톨을 꺼내들었다. 풍선껌을 꺼낼까도 싶었지만, 아무래도 초콜릿을 먹었으니 자일리톨이 좀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줘봐.”

내 손에 들려있는 자일리톨을 본 공주는 대뜸 왼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통 안에 들어있는 자일리톨 하나를 꺼내서 공주의 입 쪽으로 가져다대었다.

“……넌 정말……. 하아, 마음대로 해라.”

또다시 무어라 한 소리 하려던 공주는 이윽고 체념한 모양인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내 손에 들려있는 자일리톨을 얌전히 받아먹었다.

“어떻습니까?”

“흐음, 괜찮네.”

입술을 오물거리며 한참을 씹던 셀리 공주는 이윽고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많이 풀어진 듯이 싶었다. 역시 화가 날 때는 단 것만큼 좋은 것이 또 없었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셀리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공주를 어떻게 단념 시키지?’

공주의 기분을 풀어주는 건 성공했지만, 왕위 이외의 새로운 목표를 부여해주는 건 아직이었다. 하물며 셀리 공주는 여전히 왕위에 대한 욕심이 많아 보였다.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공주 정도 되면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처지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며 손 안에 들려있는 자일리톨 통을 만지작거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생각해?”

문득 공주가 날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에 나는 무어라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이윽고 적당히 둘러대기로 결정을 내렸다.

“공주님이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 무슨……! 하! 바보 아냐? 내가 귀여워? 눈이 삔 거 아냐?”

양 볼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툴툴거리는 공주님이다. 그야말로 새침데기가 따로 없었다.

‘새침데기 공주님이라…….’

흔하지만 훌륭한 조합이었다.

“이봐, 색골 현자. 나 같은 미인한테는 아름답다고 해야 하는 법이야. 귀여운 게 아니라.”

검지로 내 가슴팍을 쿡 찌르며 지적하는 셀리 공주다. 놀라울 정도로 당당한 태도였다. 어떻게 자기 입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보통 자신감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니, 충분히 할 만한가.’

실제로 그만큼 셀리 공주는 아름다웠으니 말이다. 나는 빙글빙글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제가 그만 실례를 범하고 말았군요. 죄송합니다, 셀리 공주님. 공주님은 아름다우십니다.”

“그렇지? 후후.”

짧게 웃음을 터트린 셀리 공주는 내 가슴팍을 쿡 찌르고 있는 손가락을 아래로 스르륵 내렸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심장이 쿵쾅쿵쾅 거세게 뛰었다. 미인의 손길이라 그런지, 흥분감이 물씬 치솟았다.

“……아!”

그 순간, 공주의 입술 사이로 놀란 소리가 새어나왔다. 셀리 공주는 적잖게 당황한 듯이 황급히 손을 뒤로 빼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흥분하면서 쾌감이 공유된 모양이었다.

‘응?’

하지만 그건 둘째 치더라도 공주의 반응이 무척이나 신선했다.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고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라니…….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처녀의 반응이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다. 셀리 공주는 처녀였다.

이 생각이 머릿속에 미치자, 더없이 구미가 당겼다.

‘……꼬시고 싶은데.’

하지만 좀처럼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지금은 공주의 야욕을 꺾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나는 헛된 생각을 애써 떨쳐내며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인지부터 생각해보았다.

“뭐, 뭐라도 좋으니까……. 말 좀 해봐.”

“네?”

“너 때문에 계속 어색하잖아. 현자면 현자답게 뭐라도 지껄여보라고.”

셀리 공주의 입술 사이로 불만어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당혹스런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 나를 탓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남을 탓하는 건, 좋은 회피책이었다. 실제로 내가 잘 못 해놓고서 남을 탓한다는 사자성어가 있었으니 말이다.

‘정글차이.’

지금 상황이 딱 그랬다. 자기가 당황해 놓고서 내 탓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기서 정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내가 그것까지 말해야해? 무늬만 현자 아냐?”

새치름하게 나를 쏘아본 셀리 공주는 이윽고 자기 손에 들려있는 술병을 근처 시녀에게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여행하면서 생긴 일이나 이야기해봐. 내가 모르는 이야기로.”

“이야기라…….”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될지 막막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어린 시절에 읽었던 인어공주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거라면 셀리 공주가 들어보지 못 한 이야기일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인어공주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인어공주?”

“그렇습니다. 이건 제가 이 대륙으로 넘어오면서 뱃사람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리 말한 나는 인어 공주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용은 따로 각색하지 않았다. 애당초 여긴 오크와 고블린이 나오는 세상이었다. 인어라고 해서 새삼 새로울 것도 없었다. 믿으려는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믿을 수가 있었다.

“……16살이 된 인어공주가 배 위에 있는 왕자님을 보고 첫 눈에 반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후, 인어공주는 태풍 때문에 바다에 빠진 왕자를 구해서 해변까지 옮긴다. 하지만 미처 얼굴을 마주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이 와서 왕자를 주워가 버린다. 그리고 이 때, 왕자를 주운 사람이 이웃 나라 공주였기 때문에 왕자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인어공주가 아닌 이웃나라 공주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왕자를 잊지 못 한 인어공주는 바나 마녀를 찾아가 다리를 달라고 부탁한다. 마녀는 그 대가로 인어 공주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요구하고, 사랑을 이루지 못 하면 물거품이 된다고 속삭인다. 이 어마어마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인어공주는 기꺼이 마녀와 거래를 해서 육지로 올라오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인어 공주는 왕자가 와주하게 된다. 왕자는 비록 말은 못 하지만 매우 아름다운 인어공주를 두고서 업둥이 아가씨라 부르며 예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왕자가 인어공주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왕자는 이웃 나라와 혼담이 오고가는 사이였고, 이 와중에 인어공주에게 잔인하게 ‘너도 기뻐해주겠니?’라고 묻기까지 한다.

결국 왕자와 이웃나라 공주는 배 위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인어공주는 혼자서 쓸쓸하게 배 위에 서있게 된다. 그런데 이 때, 인어공주의 언니들이 나타나서는 그녀에게 단검을 내밀며 말한다.

단검으로 왕자를 죽이면 다시 인어로 돌아오게 된다고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인어공주는 단검을 손에 꼭 쥐고서 왕자와 이웃나라 공주가 있는 방으로 향한다. 하지만 인어공주는 왕자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차마 그를 죽이지 못 한다.

“결국 인어공주는 스스로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이야기를 끝마치자, 셀리 공주의 뒤에 서있던 시녀들이 눈물을 흐느끼고 있는 게 보였다. 몇몇 시녀들은 어떻게든 눈물을 참아보려고 허벅지를 때리거나 손으로 입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 공주의 이야기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모양인지 다들 하나 같이 이슬과도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끝?”

그 때, 셀리 공주의 입술 사이로 의문사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다소 어처구니가 없단 듯이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이윽고 나를 바라보며 짜증을 냈다.

“……설마 이걸로 끝이야?”

공주의 질문을 받는 순간 말문이 턱 막히는 듯했다.

‘뭐지?’

내가 원하던 반응은 이런 게 아니었다.

나는 잠시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대답했다.

“이걸로 끝입니다.”

“어이없네.”

헛웃음을 터트린 셀리 공주는 껌을 딱딱 씹으며 말을 이었다.

“……멍청한 인어 같으니……. 거기선 찔러야지.”

공주는 팔짱을 끼며 인어 공주의 멍청함을 욕했다.

“아니면 글을 써서 왕자한테 사실을 알렸어야지! 내가 널 구했다고 말이야. 대체 뭘 한 거야? 걔 병신 아냐?”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찬 셀리 공주는 훌쩍훌쩍 거리고 있는 시녀들을 향해 ‘그만 울어, 이것들아!’라고 소리쳤다.

========== 작품 후기 ==========

롤에는 몇 가지 사자 성어가 있죠.

봇 : 봇이 이기면 원딜 덕분, 봇이 지면 서폿 때문

미드 : 미드 미아

탑 : 정글 차이

정글 : 정글 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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