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36화 (336/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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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대답을 못 듣고 있었네요.”

언덕을 내려온 직후 나는 에나와 함께 가도를 따라 걸으며 입을 열었다. 이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무엇을 말씀이십니까?’라고 물었다.

“저번에 제가 에나 씨에게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없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아…….”

그제야 기억이 난 모양인지, 에나의 입술 사이로 자그마한 탄성이 새어나왔다.

“왜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리신 겁니까?”

“네? 아니……. 그게…….”

에나는 어쩔 줄 몰라해하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세요? 어서 말해보세요.”

이리 말하며 에나의 손을 꽉 붙잡자, 그녀의 어깨가 가볍게 들썩였다. 동시에 수줍음 가득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이대로 곧장 조교의 방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데려갈 때, 데려가더라도 에나의 대답은 꼭 듣고 싶었다.

대체 뭘 숨기고 있기에 저리도 부끄러워하는 걸까?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에나를 바라보았다. 이에 그녀는 한동안 우물쭈물대다가 이윽고 말소리를 뽑아내었다.

“기, 기뻐서…….”

잠시 말꼬리를 늘린 에나는 빼꼼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너무 기뻐서 저도 모르게 그만…….”

“아.”

마치 순박한 시골처녀의 고백을 듣는 것만 같았다. 이 얼마나 순수하다는 말인가? 에나보다 더 순수한 여성은 아마도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나는 감동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대로 곧장 그녀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앗! 소리를 내며 어깨를 들썩이는 에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키스를 해주자 그 떨림도 잦아들었다.

“하음, 응……. 아아, 유현 님……. 흐응.”

몇 번을 해도 질지가 않았다. 나는 몇 번이고 에나의 입술을 탐하며 여기저기에 깃발을 꽂았다. 가지런한 치열도 내 것이고, 말랑거리는 혀도 내 것이었다. 물론 자두의 새콤달콤한 향기가 베여있는 입술도 전부 내 것이었다.

나는 쿡쿡, 웃음을 터트리며 좀 더 혀를 내밀어 안쪽까지 탐했다.

“……하읏, 하아……. 저기……. 후아, 아……. 유현 님.”

돌연 에나가 내 몸을 살짝 밀치며 오른손으로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누군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고개를 뒤로 떼어낸 뒤에 에나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쳐주었다. 그런 다음에 그녀가 손으로 가리켰던 방향을 바라보니, 언덕의 경사면을 따라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길 맞은편에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 용병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그 뒤에는 여러 대의 짐마차가 행렬을 이루어 따라가고 있었다.

보아하니 도시로 향하는 상인 무리인 모양이었다.

“마주칠 것 같습니다.”

에나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 말대로 짐마차의 속도가 제법 빨라서 금세 마주칠 것 같았다. 물론 피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구태여 이쪽에서 짐마차 행렬을 피할 이유는 없었다.

딱히 거리낄 것도 없었고 말이다.

“상관없지 않습니까?”

“유현 님께서 들고 계신 그것에 흥미를 보일 겁니다.”

“이거요?”

나는 내 왼손에 들려있는 마트 봉지를 집어 들며 물었다. 그리고 이런 내 물음에 에나는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흠, 뭔가 문제라도 생길까요?”

“유현 님을 조금 귀찮게 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식으로요?”

“예로부터 상인은 마족과 거래를 해서 그들의 혀를 가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마족과 거래를 하진 않았겠지만, 그만큼 달콤하게 속삭일 줄 아는 자들입니다. 또한 집요하기까지 합니다. 분명 귀찮은 일이 생길 겁니다.”

에나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숨죠.”

“숨는 것보다는 이곳에서 잠시 쉬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 편이 좀 더 자연스러울 테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그렇게 하죠.”

이리 말한 나는 에나와 함께 근처에 자리를 잡고서 앉았다. 물론 손에 들고 있던 마트 봉지는 수풀 속에 잘 숨겨두었다.

나는 풀잎에 가려져서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마트 봉지를 바라보며 에나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훌륭합니다. 상인들도 보지 못 하고 지나칠 겁니다.”

에나는 조금 과장되게 감탄하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아부를 어쩜 이리도 잘 떠는지, 입가에 웃음꽃이 절로 피어났다. 나는 에나를 내 옆자리에 앉힌 뒤에 뺨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러자 마치 갓 쪄낸 따끈한 찐빵마냥 그녀의 볼 살이 쭈욱 늘어났다.

“에나 씨도 아부가 많이 늘었네요.”

“아, 아부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 놀림에 에나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엔 진심이 담겨있었다. 아무래도 에나는 자기가 내게 아부를 했다는 걸 제대로 인지하지 못 한 모양이었다. 이런 걸 두고서 진심어린 아부라고 하는 거겠지? 이리 생각하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진심으로 감탄한 거였습니까?”

“진심으로 감탄한 겁니다.”

떳떳한 목소리였다. 나는 에나의 볼 살을 놓아준 뒤에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춰주었다. 그러자 어버버 거리며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는 에나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몇 번 더 입술을 맞춰주고는 은근슬쩍 허벅지를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린 에나가 내 손을 꽉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아, 안 됩니다. 마차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샌가 훌쩍 우리 앞까지 다가온 짐마차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용병들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히죽히죽 웃거나,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간간히 아우성을 내뱉은 용병들이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좀 더 화끈하게 키스해봐!’라던가 ‘형씨, 확 덮쳐버려!’라고 소리치는 쪽이 더 많았다.

역시 남자는 어딜 가도 똑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쓰게 웃음을 터트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용병들이 날 향해 비난을 터트렸다. 좋은 구경거리를 빼앗긴 어린아이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길지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차 행렬은 이런 용병들의 아우성과는 상관없이 꾸준히 바퀴를 굴리며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선두에 선 용병들이 완전히 지나가고 나자, 여러 물건을 가득 실은 마차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굉장하네.’

오크통부터 시작해서 무구류, 가죽, 밀 포대까지 없는 게 없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가장 호화스러운 것은 사람도 푹 들어갈 만큼 커다란 통과 나무 상자가 실려 있는 짐마차였다. 특히나 이 마차는 여느 다른 마차들과는 다르게 말 두 마리가 끌고 있었다.

누가 봐도 상당히 호사스런 짐마차였다.

‘……중요한 게 실려 있는 건가?’

대체 무엇을 실고 있는 걸까 생각하며 짐마차 행렬을 구경하고 있는데, 불현듯 누군가 ‘잠깐 멈춰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짐마차 행렬이 우뚝 멈추었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에 내심 감탄하는데, 돌연 상인 한 명이 짐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놀랄 정도로 빨랐기에 미처 반응하지 못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 상단을 이끌고 있는 아놀프라고 합니다.”

자신을 아놀프라고 소개한 중년인은 날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꽤나 갑작스런 악수 신청이었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이의 악수를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받았다.

“김 유현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날 소개하자, 중년인의 얼굴에 역시나 싶은 표정이 떠올랐다.

“실례지만 바다 건너 다른 대륙에서 넘어오셨습니까?”

아놀프의 질문을 받는 순간 뭔가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이 상인은 나를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바다 건너 다른 대륙에서 넘어온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오직 베네딕트 왕자만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웃음 짓던 중년 상인의 얼굴에 반가움과 놀라움이 서렸다. 나는 그런 아놀프를 잠자코 바라보다가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이런 내 물음에 중년 상인은 앗 하고 정신을 차리더니 이내 겸연쩍은 듯이 웃었다.

“현자님에게 그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말았군요.”

현자? 나는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 나를 현자라고 부르는 걸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는데, 불현듯 이계 퀘스트의 내용을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베네딕트 왕자가 나를 현자라고 부르면서 칭송했었지.’

아무래도 이러한 이유에서 내가 현자라고 알려진 모양이었다.

나는 찌푸렸던 이맛살을 풀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그보다 저는 한 명의 이방인에 불과하지, 현자 같은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현자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 날, 라페스에서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전부 다 현자님의 도움 덕분입니다.”

이리 소리쳐 말하며 아놀프가 고개를 깊숙이 숙이자, 각자 짐마차를 이끌고 있던 상인들 또한 날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하나 같이 호의가 가득 실려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인사를 일일이 받아주고는 입을 열었다.

“고개를 그만 드세요.”

이러한 내 말에 아놀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사뭇 감격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현자님. 이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놀프의 말에 나는 무어라 대답해주기보다는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이런 내 미소를 본 그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이윽고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현자님께선 어딜 가시던 중이셨습니까? 혹여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현자님을 뵙게 되었는데, 무언가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뭐라도 좋으니, 말씀만 하십시오.”

아놀프의 말에 곁에 있던 에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보아하니 상인에게 이런 대우를 받아보는 건, 난생처음인 모양이었다. 하긴 마족과 혀를 거래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평판이 안 좋은 상인들이다. 그런데 그런 상인들에게 이런 대우를 받으니, 놀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어서 빨리 성 안으로 들어가야 될텐데 말이죠.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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