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35화 (33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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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곳인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니, 낯익은 바위 하나가 언덕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내 기억이 맞다면 방금 전에 내가 서있던 언덕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던 바위가 맞을 것이다.

나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은 뒤에 봉지 두 개를 양손에 들고서 언덕 위로 올라갔다.

약간 높은 언덕이긴 했지만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서 딱히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거 참…….”

언덕 위로 올라오자, 탁 트인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시야를 가릴만한 것이 없었기에 상당히 멀리까지 내다보였다. 물론 베네딕트 왕자가 있다고 생각되는 도시도 잘 보였다.

나는 풀잎을 자박자박 밟으며 평평한 바위까지 걸음을 옮긴 뒤에 그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에나 소환.”

조용히 나직이자, 내 앞에 은발의 여기사가 나타났다. 여전히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특히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와 질펀하게 야외 섹스를 즐겼다고 하니, 여기서 또 한 번 하고 싶단 못된 생각이 들었다.

“유현 님.”

에나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몸을 이쪽으로 돌렸다. 표정이 상당히 밝아 보이는 것이 삐친 기색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역시 기사 출신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하해처럼 넓다.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내 옆자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에나 씨, 이리와서 앉으세요.”

“네.”

이런 내 말에 그녀는 군말 없이 곧바로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 태도가 너무나도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어쩜 이리도 내 말을 찰떡처럼 알아들을까? 나는 당장에 에나의 손을 꽉 붙잡고서 키스를 해주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더 좋고 중요한 게 남아있었다.

괜히 여기서 키스를 해서 분위기에 초를 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잠시 내 욕망을 곱게 접어둔 뒤에 검은 봉지 안에 들어있는 자두를 꺼냈다.

“……아! 그건……!”

내 손에 들려있는 자두를 본 순간 에나의 표정에 반가운 기색이 가득 서렸다. 심지어 꼴깍, 군침을 삼키기까지 했다. 벌써부터 신맛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쿡쿡,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녀의 손에 자두를 쥐어주며 입을 열었다.

“저번에 약속했죠? 다음에 또 자두를 사드리겠다고요.”

“유, 유현 님…….”

에나는 사뭇 감동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느껴졌다. 특히나 바다를 닮은 푸른색 눈동자가 내 시선과 마주칠 때면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대로 넘어트려서 범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 되었다. 일단 하더라도 자두를 먹이고 난 뒤에 해야 되었다.

하물며 여기는 시야가 탁 트인 언덕이었다. 우연이라도 다른 누군가가 우리 모습을 볼지도 몰랐다. 그것은 실로 끔찍한 일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에나의 나신을 본다니! 그건 결단코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에나의 새하얀 피부도, 훈련으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도, 보름달처럼 복스러운 엉덩이도, 그리고 절벽 위에 핀 꽃처럼 고아한 가슴도 전부 나만의 것이었다. 내가 모르는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자, 드세요. 많이 사왔으니까, 저번처럼 아껴 드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리 말한 나는 검은 봉지 안에 들어있는 자두를 에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잠시 머뭇머뭇 거리다가 이윽고 자기 손에 들어있는 자두를 옷소매로 조심스럽게 닦았다. 그리고는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자두를 내게 내밀었다.

“유현 님, 먼저……. 유현 님, 먼저 드십시오. 저는 그 다음에 먹겠습니다.”

“……!”

수줍음 가득한 에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멎는 듯했다. 이 얼마나 살인적인 위력이란 말인가? 레벨하고 등급만 높아진 줄 알았더니, 사랑스러움도 함께 높아진 에나였다.

나는 감동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재빨리 에나가 내민 자두를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보답을 하기 위해서 검은 봉지 안에 들어있는 자두를 하나 꺼내서 똑같이 깨끗이 닦은 뒤에 그녀에게 내밀었다.

“에나 씨도 같이 드시죠.”

“유현 님……. 감사합니다!”

에나는 또다시 감동한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이윽고 내 손에 들려있는 자두를 건네받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내가 먼저 먹기를 기다리듯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이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자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새콤달콤한 과즙이 흠뻑 배어나오며 내 입 안을 즐겁게 해주었다.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매달리는 맛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자두를 먹자, 에나 또한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자두를 한 입 베어 물며 행복해 죽겠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특히나 두 눈을 꼭 감고서 입술을 오물거릴 때면 마치 온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맛있습니까?”

“맛있습니다. 너무……. 정말로 행복합니다.”

내 물음에 에나는 자두를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더불어 입가에 함박미소가 떠올랐다.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듯했다. 이대로 남은 자두를 에나에게 넘겨주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아예 과일 가게에 있는 과일이란 모든 과일을 전부 다 사서 에나에게 먹여주고 싶었다.

‘현주한테 부탁해볼까?’

확실히 현주라면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들어주기만 할까? 내 부탁이라면 죽을 각오로 수행할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내 자취방 안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양의 과일을 보내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건 좀 곤란한데.’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자두 씨를 오독오독 씹고 있는 에나에게 자두를 하나 더 건네주었다. 그러자 또다시 ‘감사합니다!’라고 소리치며 자두를 복스럽게 먹는 에나다. 왠지 모르게 이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다면 정말로 큰 화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에나는 사과녀로 유명해져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모습은 나만 간직해야지.’

이런 사랑스런 모습을 뭐 하러 남들과 공유한다는 말인가?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에나가 자두를 다 먹는 족족 하나씩 건네주었다. 마치 햄스터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하나씩 건네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양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바쁘게 먹고 있는 에나였으니 말이다.

‘……응? 그러고 보니 씨앗은 어디 있는 거지?’

문득 씨앗의 존재를 깨달은 나는 에나의 양 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씨앗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바닥에 뱉은 건 아닌가 싶었지만, 에나가 씨앗을 뱉는 모습은 전혀 보지 못 했다.

하물며 내 앞에서 씨앗을 퉷 뱉을 에나가 아니었다.

‘그럼…….’

씨앗을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데, 문득 에나의 빵빵한 볼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에나가 자두를 먹기 위해서 입을 벌릴 때마다 씨앗의 끄트머리가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진짜로 햄스터네.’

그냥 햄스터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햄스터처럼 씨앗을 입 안에 모으고 있는 에나였다.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씨앗은 이리 주세요. 제가 알아서 버리겠습니다.”

“아……. 음.”

이런 내 말에 에나는 잠시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씨앗을 하나씩 받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그 숫자가 무려 일곱 개나 되었다.

저 작은 입 안에 어떻게 저렇게 많은 씨앗이 들어갈 수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그나저나…….’

타액으로 진득진득하게 젖어있는 자두 씨앗을 보니, 절로 군침이 넘어갔다. 왠지 모르게 굉장히 달콤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핥고 싶다. 먹고 싶다. 입 안에 넣은 뒤에 사탕처럼 굴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내 이미지를 깎아먹는 짓이었다. 나는 애써 충동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저기 숲 속에다가 던지세요.”

“아, 저기…….”

이런 내 말에 에나는 방금 전과 똑같이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머뭇거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긴장 풀라는 뜻에서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아주며 물었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 겁니까?”

“그, 그게……. 제가 가지면 안 되겠습니까?”

“네?”

“따로 보관하고 싶습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자두 씨가 가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의외로 이런 거에 수집욕구가 있는 에나였다. 물론 다소 특이한 욕구이긴 했지만, 나는 기꺼이 이해해주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씨앗 수집이면 아주 건전한 욕구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이처럼 내 허락이 떨어지자, 에나는 정말로 기뻐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왼손에 들려있는 자두 씨앗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여전히 타액으로 흠뻑 젖어있는 씨앗을 말이다.

타액 범벅이 되어 있는 게, 정말로 맛있어 보였다.

살짝 혀를 내밀어, 맛만 보고 싶어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입만 말이다.

‘아니, 참자. 이런 걸로 이미지를 깎아먹을 순 없지.’

에나에게 있어서 나는 항상 정의롭고 멋들어진 남자여야만 했다. 타액으로 푹 젖은 씨앗을 핥는 그런 변태적인 사람이 아니라 말이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켜며 충동을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벙긋벙긋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남은 자두를 에나에게 한 개씩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두가 바닥을 보였을 때, 나는 검은 봉지를 꾸깃꾸깃 구겨서 주머니 안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에나 씨, 잠시 역소환해드릴 테니 로브 좀 가져와주시겠습니까? 예전에 제가 맡긴 거 있지 않습니까?”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에나를 역소환했다. 그리고는 속으로 30초를 센 나는 다시금 입을 열어 에나를 소환했다. 그러자 내 앞에 일전에 내가 맡긴 로브를 손에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무릎 위에 올려져있던 자두 씨앗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역소환되어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 지내는 거지?’

불쑥 호기심이 들었다. 나는 에나가 가져온 로브를 건네받은 뒤에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에나 씨는 역소환되어 있는 동안 어떻게 지내시는 겁니까?”

“훈련을 합니다.”

“훈련이요?”

“네,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에나는 내가 로브를 입는 것을 옆에서 도와주었다.

“훈련이라면……. 역소환이 되면 대체 어디로 가는 겁니까?”

“모르고 계셨습니까?”

에나는 조금 놀란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모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 자신을 역소환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역소환이 되면 어느 저택 안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저택이요?”

“그렇습니다.”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나는 로브의 허리띠를 살짝 조이며 재차 질문했다. 그리고 이런 내 물음에 에나는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조금 들뜬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공간입니다. 침실, 욕실, 훈련장……. 하지만 무엇보다도 편리한 것은 따로 먹지 않더라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본적으로 던전과 같은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나 자신이 던전 코어가 되어서 노예들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외롭지는 않습니까?”

“가끔씩 쓸쓸합니다. 하지만 그 때는 훈련을 하거나 잠을 청합니다. 특히나 잠을 청하면 유현 님께서 불러주시기 전까지 계속 잘 수가 있습니다.”

“…….”

애써 밝은 척 웃는 에나를 보니, 내가 참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양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꽉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매끄러운 등을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앞으론 제가 좀 더 신경을 써드리겠습니다.”

이리 말하며 에나의 뺨을 어루만져주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손바닥을 타고서 전해져오는 온기가 너무나도 기분 좋았다.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러나 자두의 새콤달콤한 맛이 말랑거리는 입술을 통해서 전해져 왔다. 특히나 그 향기가 무척이나 감미로웠다.

나는 살짝 입술을 벌려 혀를 내민 뒤에 그녀의 입 안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 향기와 달콤한 좀 더 뚜렷하게 전해져왔다.

“하음, 응……. 하아. 읏.”

참을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특히나 타액으로 촉촉하게 젖어있는 입 안은 너무나도 감미로웠다. 나는 혀는 물론이고 치열까지도 구석구석 희롱하며 충분히 맛을 보았다.

“……으읍, 응……. 츄읍, 응. 유현 님…….”

그러던 중에 에나가 곤란하다는 듯이 나를 부르며 내 팔을 꽉 붙잡았다. 여기서 더 했다간 또다시 야외 섹스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어느샌가 내 손이 그녀의 엉덩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위험할 뻔 했다.

나는 꿀꺽, 침을 삼키며 고개를 뒤로 빼었다. 그러자 노곤고곤하게 녹아있는 에나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나 입가가 아주 녹아내려서 표정 관리가 하나도 안 되고 있었다.

“곤란합니다. 다른 누군가가 이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문득 에나가 내 가슴팍에 포옥 안기며 가벼운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기쁨이 마구 피어나고 있었다. 그 행동과 말투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아무래도 에나는 나를 심장마비로 죽일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제까지 뛰어난 기사인 줄로만 알았더니, 이제 보니 암살에도 일가견이 있는 에나였다.

나는 내심 감탄하며 에나의 머리와 등을 한 번씩 쓰다듬어주고는 정수리에 입술을 맞췄다.

“그럼 이번 일이 끝나면 방에서 이어서 하죠.”

“…….”

이런 내 속삭임에 에나는 부끄러운 모양인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좀 더 내 품에 안겨드는 것으로 확실한 대답을 해주었다.

나는 짧게 웃음을 터트리며 에나의 엉덩이를 가볍게 토닥여주고는 몸을 떨어트려놓았다. 그리고는 아까 전에 바위에 올려둔 마트 봉지를 집어든 뒤에 그녀와 함께 언덕을 내려갔다.

========== 작품 후기 ==========

에나의 사랑스러운 세계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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