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 -->
[이계 퀘스트]
[담피르 히브]
히브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길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때로는 뱀파이어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인간들과 어울리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다친 늑대인간 소녀를 치료해주어,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히브가 담피르이기 때문에 늑대인간 무리가 그녀를 싫어하긴 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가 담피르이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아주 천천히 녹아들 수가 있었습니다. 히브는 머지않아 늑대인간 무리와 친해졌고, 가족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히브는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정든 늑대무리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히브에게 도움을 받아 친구가 된 늑대인간 소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히브에게 마정석 파편을 주었습니다. 히브는 늑대인간 소녀가 건네준 마정석 파편을 소중히 간직한 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후, 떠돌아다니기 좋아하는 히브는 똑같이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집시 무리와도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공통점이 많았고, 금세 친해졌습니다. 히브는 집시들이 가진 신비로운 지식에 매료되었고, 집시들은 히브의 경험에 매료되었습니다. 덕분에 히브는 한동안 집시들과 함께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떠돌아다니던 중에 집시들이 히브가 가진 마정석 파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집시들은 호들갑을 떨며 마정석 파편에 뛰어난 힘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히브에게 알렸습니다. 이것은 아주 대단한 보물이라고요. 더불어 이것을 가공해서 히브에게 선물해주고 싶다는 뜻을 내비쳐보였습니다. 히브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기꺼이 허락의 뜻을 내비쳐보였습니다.
허락을 받은 집시들은 곧바로 마정석 파편을 가공했고, 히브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공된 마정석 파편을 받은 순간 히브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마정석 파편이 히브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피의 갈망을 일깨운 것이었습니다.
히브는 뱀파이어 본능에 따라 집시들을 공격했고, 무수히 많은 집시들이 그녀에게 흡혈을 당했습니다.
이후, 정신을 차린 히브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깊은 숲 속에 들어갔습니다.
-담피르, 히브로부터 마정석 파편을 얻어내십시오. (보상 : 랜덤 장비 상자)
[은혜 갚는 왕자님]
라페스를 구한 하폰의 왕자, 베네딕트는 무수히 많은 백성들에게 영웅이라 칭송받게 되었습니다. 덩달아 왕자의 입지 또한 한없이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왕자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겸손함을 잃지 않았으며, 매번 현자 김 유현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에게 은혜를 갚을 날만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왕자 베네딕트가 마정석 파편을 삼킨 고블린을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왕자, 베네딕트는 이번에야 말로 현자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비밀리에 현자를 찾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왕자가 미처 현자를 찾기도 전에 신전에서 마정석 파편의 존재를 알아차렸습니다.
높은 신성력을 지닌 신관이 마정석 파편의 기이한 기운을 알아챈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아단트 여신을 모시는 신전에서 왕실에게 마정석 파편을 내놓으라고 요구를 했고, 그 요구에 왕실은 진상조사를 이유로 대답을 질질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시간이 끌리게 된다면 결국 입장이 난처해진 베네딕트 왕자가 어쩔 수 없이 마정석 파편을 내어주게 될 것입니다.
-왕자, 베네딕트가 신전에게 마정석 파편을 건네주기 전에 손에 넣으세요. (보상 : 랜덤 스킬 상자)
‘베네딕트라…….’
내 기억이 맞다면, 베네딕트는 일전에 내가 ‘위기에 빠진 도시, 라페스’라는 이계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구해준 왕자였다. 확실히 매력적인 왕자였다. 자신과 함께 싸운 병사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눈물을 흘릴 줄도 아는 선한 청년이었으니 말이다.
‘……이건 뭐, 고민 할 필요도 없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후자였다.
베네딕트가 이렇게나 날 위해서 마정석 파편을 준비해줬는데, 그걸 마다한다면 예의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이계 퀘스트 ‘은혜 갚는 왕자님’을 선택했다.
[이계 퀘스트 [은혜 갚는 왕자님]을 수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이 물음에 나는 네를 눌렀다. 그러자 별안간 눈앞의 풍경이 어렴풋해지더니 서서히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충분한 시간이 흐르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탁 트인 푸른 하늘과 드넓은 언덕 그리고 곳곳에 수놓인 나무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봉긋 솟아있는 언덕 중앙에 진을 치고 있는 평평한 바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다음에 주변을 한차례 둘러보자 잘 닦인 가도가 여러 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가도의 끝에는 높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 도시가 자리해 있었다.
놀랍도록 멋진 도시였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벽돌집부터 시작해서 중앙에 위치해 있는 성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감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그런 도시가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저기에 베네딕트 왕자가 있는 건가…….’
나는 혹시나 싶은 생각에서 지도를 확인해보았다. 그러자 지도에 내 위치와 마정석 파편의 위치가 표시되었다. 더불어 내가 아까 본 도시에 마정석 파편이 있다는 것이 명백하게 나왔다.
‘……그럼 저 안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건데.’
가도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성문 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검문을 거쳐야 되는 모양이었다.
‘몰래 들어가야 하나? 아, 잠깐……. 그럴 필요가 없잖아?’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불현듯 왕자 베네딕트가 내게 건네준 명패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것이라면 별다른 검문 없이 곧바로 도시 내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어쩌면 병사들의 안내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잘 됐네.”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곧바로 퀘스트를 포기했다. 그러자 일순 눈앞의 풍경이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천천히 풀어지며 자취방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이것을 확인한 나는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내가 분명히 책상 서랍 속에 넣어뒀던 것 같은데……. 아, 여기 있다.’
책상 서랍을 열자,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명패가 내 눈에 들어왔다. 황금으로 만들어져서 그런가, 며칠 박아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귀태가 풀풀 났다. 나는 옷소매로 명패의 표면을 몇 번 문지르고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계 퀘스트를 실행하려던 나는 문득 에나를 떠올렸다.
‘……자두 좀 살까?’
혹시라도 에나의 화가 덜 풀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다음에 또 자두를 사주기로 약속을 하기도 했고 말이다.
‘게다가 베네딕트를 만나러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그도 그럴 것이 베네딕트는 무려 나를 위해서 신전과 대립하면서까지 마정석 파편을 보관해주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좀 감동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에 베네딕트가 왕자가 아닌 공주님이었다면 곧바로 청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면 내 보물 중에 하나인 빈유환을 선물로 주던가 말이다.
“베네딕트는 그럴 자격이 있지.”
살짝 고개를 끄덕인 나는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명패를 주머니 속에 깊숙이 찔러 넣은 뒤에 자취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간 나는 곧바로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일단 자두부터 사고……. 베네딕트에겐 뭘 주지?’
재래시장 안으로 들어선 나는 곧바로 자두 한 봉지를 샀다. 제철이라서 그런지 잘 익어있었다. 나는 빨갛게 잘 익어있는 자두들을 살펴보며 흐뭇하게 웃고는 베네딕트에게 선물로 줄 물건을 살펴보았다.
‘……왕자니까, 어지간한 건 다 가지고 있을 텐데.’
이왕이면 이 세계에만 있는 것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
나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살만한 물건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좀처럼 좋은 선물이 눈에 띄지 않았다. 차라리 에나처럼 과일을 선물로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왕족인만큼 어지간한 과일은 전부 다 먹어보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마트에 들어가 볼까?’
이처럼 고개를 돌려보던 중에 문득 마트가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마트가 좀 더 확실할지도 몰랐다. 이리 생각을 마친 나는 마트 안으로 발을 들인 뒤에 왕자 베네딕트에게 선물로 줄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껌?”
문득 내 눈에 껌이 들어왔다. 확실히 껌이라면 아직 이계에 등장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특히나 단맛이 나는 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츄잉껌부터 시작해서 자일리톨까지 하나씩 종류별로 구입했다. 하지만 이걸로는 아직 무언가 부족한 감이 있었기에 나는 초콜릿과 사탕까지 구입했다.
‘과자도 사갈까?’
그러다가 불현듯 세일 중인 과자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먹을 것만 사가는 것 같은데.’
잠시 주변을 서성이던 나는 결국 과자를 몇 개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계산을 하자, 마트 봉지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제법 묵직했지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거라면 베네딕트도 분명 좋아해줄 것이 틀림없었다.
‘설마 이 중에 마음에 안 드는 게, 하나도 없겠어?’
무려 종류별로 하나씩 골랐다.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서둘러 자취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후, 방 안에 들어선 나는 두 개의 봉지를 왼손에 쥔 뒤에 오른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이계 퀘스트 ‘은혜 갚는 왕자님’을 선택했다.
[이계 퀘스트 [은혜 갚는 왕자님]을 수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이 물음에 엄지로 네를 누르자, 시야가 잠시 뭉개졌다가 이윽고 천천히 풀어지며 드넓은 언덕의 풍경이 나타났다.
========== 작품 후기 ==========
은혜 갚는 왕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