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29화 (329/599)

<-- [던전 디펜스] -->

“…….”

카페 밖으로 나오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좋았던 분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제 와서 지현이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볼까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민감한 문제였다. 하물며 이건 내가 은하와 직접 풀어야 될 문제지, 지현이가 간섭한다고 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냉정한 이야기지만 지현이는 은하의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은하를 대신해서 나와 사귀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반대로 나를 대신해서 은하와 사귀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지현이의 설득에 넘어가서 서연이 누나와 헤어지고 은하와 사귀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오빠, 화났어요?”

그 때, 지현이가 내 옷자락을 붙잡으며 물었다.

나는 애가 왜 이러나 싶어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아무런 말도 안 하잖아요. 괜히 무섭게…….”

미묘하게 말끝을 늘어트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지현이다. 더불어 그녀의 양 갈래 머리카락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확실히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미인이다. 나는 잠시 헛숨을 들이켰다가 이윽고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화 안 났어. 그냥 좀 어색해서, 뭐라고 말을 꺼낼 수 없었던 거야.”

“정말이죠?”

“정말이야.”

“괜히 이것 때문에 은하한테 심술부리면 안 돼요.”

“안 부려. 내가 그렇게 속 좁은 사람으로 보여?”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입술을 삐죽 내민 지현이는 내 옷자락을 꾹꾹 두 번 잡아당기며 말했다. 마치 어린애가 투정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달래주고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는 여전히 경찰관들이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돌아가야 되었다. 덕분에 평소엔 붐비지 않았던 거리가 오늘따라 사람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물론 차량 통행도 많았다. 나는 혹시라도 지현이가 사람들과 부닥치지는 않을까 싶어,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이에 지현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올려다보자, 나는 별다른 뜻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양 손을 살짝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하고 부딪칠까봐.”

이런 내 말에 지현이는 피시식 웃음을 터트리더니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오빠, 아이스크림 사줘요.”

“갑자기 웬 아이스크림?”

다소 뜬금없는 요구에 그만 벙찐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러나 지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이 내 손을 와락 잡아당기며 말했다.

“화해 기념으로요.”

“누가 보면 내가 너랑 싸운 줄 알겠네.”

“싸웠죠. 말싸움!”

당당하게 소리쳐 말하는 지현이의 태도에 헛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논리인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듯이 저리도 생글생글 웃고 있는 지현이를 보고 있자니, 도저히 사주기 싫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절래절래,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지현이를 데리고서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사실 말이 아이스크림이지, 실상은 와플에 아이스크림을 얹어 놓은 것이었다.

아이스 와플 집 앞에 선 우리는 각자 먹을 것을 주문했다.

“딸기 와플 주세요.”

“저는 바닐라로 주세요.”

이처럼 주문을 마친 내가 지갑을 꺼내서 값을 계산하려고 하자, 지현이가 내 손을 가로막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계산할게요.”

“아까는 사달라면서?”

“당연히 농담이죠. 오빠가 점심도 사줬는데, 이것도 사게 둘 수는 없죠.”

이리 말한 지현이는 자기 지갑을 꺼내서 값을 계산했다. 은근히 이럴 때는 또 기특한 지현이었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잘 먹을게.’라고 말했다. 그러자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오늘 있었던 일은 은하한테 비밀이에요.’라고 말하는 지현이다.

뒤처리까지 확실했다.

뭐, 사실 이건 나한테도 유리한 조건이었다. 나도 되도록 이런 이야기는 은하한테 전해지지 않았으면 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문제네.’

오늘은 어영부영 넘어갔지만, 내일은 또 어떻게 해야 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완성된 아이스 와플을 건네받은 뒤에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바삭한 와플과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입 안에 춤을 추듯이 어우러졌다. 더불어 스트레스도 살짝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단 것이 제격이었다.

실제로 지현이가 아까 전보다 훨씬 더 행복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아이스 와플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나도 행복해지는 듯했다.

“바닐라 맛있어요?”

문득 지현이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맛있어.”

“그럼 저 한 입만요. 저도 드릴게요.”

이리 말하며 자기 와플을 내게 내미는 지현이다. 이에 나는 어쩔까 고민하다가 이윽고 사양하지 않기로 했다. 애당초 상대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거절한다는 건, 남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고개를 내밀어 지현이가 내민 와플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딸기 특유의 향이 내 코를 간질였다. 확실히 부드러운 단맛이 일품인 바닐라와는 다르게 딸기는 제법 상큼했다.

“……이제 저 주세요. 저요.”

이처럼 내가 한 입 베어 물자, 지현이가 먹이를 바라는 아기 새처럼 재잘재잘 대며 나를 보챘다. 그리고 그 보챔에 나는 내가 들고 있는 와플을 그녀 쪽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최대한 입을 크게 벌린 뒤에 덥썩 깨물어 먹는 지현이다.

“……!”

한 입 베어 문 지현이는 돌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치 신세계를 경험했다는 듯이 말이다. 당장에라도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지현이는 열심히 오물거리며 와플을 씹어먹더니 이윽고 꿀꺽 삼키며 탄성을 터트렸다.

“와아…….”

“그렇게 맛있어?”

이런 내 물음에 대뜸 고개를 끄덕인 지현이는 검지를 세우며 입을 열었다.

“저 한 입만 더 먹어도 되요?”

“그냥 하나 사줄까?”

“아뇨, 딱 한 입이면 충분할 거 같아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은 영 아니었다. 저건 절대로 한 입 가지고 만족할 표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본인이 저리도 원하니, 안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빠, 한 입만 더요! 네?”

원래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놈이 줬다가 뺏는 놈이라던데, 지금 상황이 딱 그랬다.

자기가 사줬다고 다 뺏어먹을 셈인가? 생각해보면 방금 전에 보여줬던 표정도 밑밥처럼 느껴졌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와플을 내밀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크게 벌려 와플을 베어 무는 지현이다. 그리고는 우물우물 씹는데, 아까 전과 같은 표정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뭔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라, 뭐지?”

“왜?”

“아까는 엄청 맛있었는데…….”

“지금은 맛없다고?”

“네…….”

굉장히 서운해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삐죽 내미는 지현이다. 그 표정을 보니, 방금 전에 먹었던 게 정말로 맛있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혹시 뭔가 굉장히 맛있는 게 들어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이리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처음 먹었을 때, 뭐가 맛있는 게 들어있었던 거 아냐?”

“그런가?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던 지현이는 이내 포기한 듯이 자기 걸 먹었다. 그러자 일순 그녀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 모습이 흡사 처음 내 와플을 한 입 먹었을 때와 비슷해보였다.

“……와아.”

감탄성까지 터트리는 걸 보니, 확실히 맛있는 모양이었다. 지현이는 부르르 어깨를 떨더니, 이윽고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그러나 두 번째부터는 아까와 같은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당혹감에 가득찬 표정을 지어보이며 와플 속을 들여다볼 뿐이었다.

“오빠 말대로 뭔가 들어있었나 봐요.”

“그렇게 맛있었냐?”

“와, 대박! 이란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나는 남은 와플을 한 입씩 베어 물며 먹어보았다. 그러나 지현이가 말한 그 맛은 나오지 않았다. 뭐랄까? 그냥 평범한 아이스 와플이었다.

이건 지현이도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그녀는 마지막 한 입을 베어 먹으며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나 더 사먹을까요?”

간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의사를 묻는 지현이다.

“난 배부른데? 너 사먹을 거면 사먹어.”

“오빠, 그러지 말고요. 같이 먹어요. 네?”

“아니, 왜 나까지 끌어들이는 건데?”

“혼자 먹으면 돼지 같잖아요.”

“…….”

이게 말이야, 똥이야? 어이가 없어진 나는 잠시 지현이를 내려다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래, 먹자.”

“사올게요. 아까랑 똑같은 맛으로 사면 되죠?”

“아, 이번에는 초코로 줘.”

“네, 초코!”

크게 소리쳐 말한 지현이는 곧바로 딸기 아이스 와플과 초코 아이스 와플을 하나씩 사서 가져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내게 초코 와플을 넘겨준 뒤에 딸기 와플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먹는 게, 참 복스러웠다.

‘배부르지도 않나?’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지현이와 함께 걸음을 옮기며 아이스 와플을 먹었다. 그러나 계속 먹어도 지현이가 감탄성을 터트릴만한 맛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질렸다. 이건 지현이도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그녀는 마지막 남은 와플까지 전부 다 먹은 뒤에 도통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에?”

탄식과도 같은 의문성을 터트린 지현이는 혹시 먹지 않은 와플이 남은 건 아닌가 싶어서 열심히 제 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몇 번을 살펴보아도, 손 안에 남아있는 건 와플을 감싸고 있던 종이 뿐이었다.

결국 원하는 맛을 보지 못 한 지현이는 마치 나라를 잃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렇게나 맛있었어?’

나는 잠시 지현이와 내 손에 들려있는 와플을 번갈아보다가 이윽고 남은 한 조각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먹어.”

“네?”

“지현이, 네가 말한 맛이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까……. 혹시 알아? 나올지.”

이런 내 말에 지현이는 무척이나 감동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내가 내민 와플을 건네받은 그녀는 꿀꺽, 군침을 삼키며 마지막 한 조각 남은 와플을 한 입에 꿀꺽 삼켰다.

“우와아……!”

그 순간, 지현이의 입술 사이로 자지러지는 감탄성이 새어나왔다.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있는 양 볼이 실룩실룩 뛰며 경련하는 게, 어지간히도 맛있는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 맛이기에 저러는 거야?’

그보다 설마 마지막 한 입에 들어있을 줄은 전혀 예상지도 못 했다. 대체 뭐가 들어있기에 저러는 걸까? 나는 의뭉스런 표정으로 지현이를 바라보았다. 반면에 지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와플을 오물오물 씹으며 한껏 음미했다. 그리고는 꿀꺽, 삼킨 그녀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와플을 감싸고 있던 종이를 꾸겼다.

“다음에 또 사먹죠!”

쾌활하게 웃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러자고 대답한 뒤에 지현이와 함께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 지현이가 살고 있는 자취방에 도착한 나는 입을 열었다.

“내일 보자.”

“네, 내일 봐요. 오빠.”

지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집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집 안으로 한 걸음 내딛은 순간 돌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혹시 뭐라도 드시고 가실래요?”

“응?”

전혀 예상지도 못 한 제안에 살짝 당혹스러워졌다.

혹시 유혹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현이는 은하의 절친한 친구였다. 더불어 내가 서연이 누나와 사귀고 있다는 것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나를 유혹한다고? 무엇 때문에? 하물며 지현이가 내게 반한다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아마도 예의상 한 소리겠지.’

아니면 은하에 관한 일로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던가 말이다.

이리 단정 지은 나는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난 괜찮아. 얼른 들어가서 쉬어야지.”

“그, 그래요?”

“너도 오늘 일로 피곤할텐데, 들어가서 푹 쉬어. 내일 늦지 말고.”

이런 내 말에 지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네요. 오늘은 푹 쉬어야죠. 미안해요, 오빠. 괜히 저 때문에 피곤했죠?”

“피곤하긴.”

오히려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마물 사냥꾼들이 어떠한 장면을 보고 듣고 있었는지, 더불어 은하를 어떻게 해야 될지도 어느 정도 갈피가 잡혔다.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된 하루였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너도 푹 쉬어.”

이리 말하며 지현이를 집 안으로 들여보낸 나는 곧장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잠시 등장인물 정리에 들어가겠습니다.

〈현실〉

아이돌 프로젝트 : 이 은하, 신 예은, 장 지현

마물 사냥꾼 : 한 채원, 유 지아, 김 예지, 이 소현, 신 혜진

배구 : 김 민서

여자 친구 : 유 서연

회사 : 이 현주

〈이계〉

던전 : 엘레노아, 마틸다, 시류 발렌시아, 레이첼 이바이크, 소피아

메이드 : 운피레아, 아이린

이계 퀘스트 : 에나

도합 19명이네요. 많기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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