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28화 (328/599)

<-- [던전 디펜스] -->

“누구랑 사귄다는 게 무슨 느낌이에요?”

“사귄 적 없어?”

지현이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현이가 보통 미인이던가? 지나가던 남자도 한번쯤 뒤돌아가 만드는 그런 미인이었다. 그런데 이런 미인이 다른 누군가와 사귄 적이 없다는 것은 나름 큰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저 이래봬도 고등학생 때는 공부벌레였거든요? 지금이야 이렇게 옷도 잘 입고, 자기 관리도 하지만 그 때는 화장도 할 줄 몰랐고 머리는 항상 폭탄 맞은 것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매일 저보고 누가 널 데려가냐면서 잔소리를 했었어요.”

킥킥, 웃음을 터트린 지현이는 양 갈래 머리를 붙잡고는 이리저리 흔들었다. 마치 그 때의 상황을 재현하듯이 말이다. 그 모습이 꽤나 우스꽝스러워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크흠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대학생이 된 뒤로는 잘 꾸미고 다녔잖아. 사귀자고 하는 사람 없었어?”

“있기는 했죠. 그런데 뭐만 하면 손을 잡으려고 하고, 키스하려고 하고……. 술은 또 얼마나 먹이던지, 진절머리가 났어요. 이게 대체 뭐하는 건가 싶었죠. 그래서 피곤하다고 말한 다음에 술집을 뛰쳐나갔어요. 그랬더니 과내에 이상한 소문이 도는 거 있죠?”

지현이는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비싼 년, 꽃뱀, 얼굴 값 한다. 심지어 보지가 헐렁해서 넣는 느낌도 안 났다고 하더라고요. 저 섹스는 한번 안 해봤는데!”

돌연 울컥한 모양인지, 큰 소리로 버럭 성을 내는 지현이었다. 이에 나는 깜짝 놀라서는 재빨리 지현이를 진정시켰다. 동시에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카페 손님들을 향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어이가 없었어요.”

지현이는 다 식은 커피를 꿀꺽꿀꺽 마시며 씩씩 거렸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을 거 같아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되묻는 지현이의 태도에 나는 잠시 당시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아마 그 남자를 찾아가 보지 않았을까?”

“맞아요. 찾아갔어요. 그리고 물어봤죠. 네가 그 소문을 퍼트렸냐면서요. 그랬더니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뭐라고 했는데?”

“걔가 저한테 ‘이런 소문나기 싫으면 나랑 사귀든가.’라고 말하는 거예요. 꼭 자기가 성심 써주듯이 말이에요.”

지현이는 그 상황을 회상하기라도 하듯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쩐지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너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발로 불알을 있는 힘껏 걷어 차줬죠. 뒤에서 그 새끼가 ‘이 시발년아!’라고 소리치는 게 들렸지만, 저는 그냥 무시했어요. 근데 웃긴 게 뭔지 아세요? 갑자기 덜컥 겁이 나는 거예요. 혹시 보복같은 걸 당하는 건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

“휴학했어요.”

“뭐?”

지현이가 휴학했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런 일로 휴학을 했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 했다.

“무서운 걸 어떻게 해요? 내 편은 하나도 없고, 전부 다 나만 욕하는데요. 그래서 휴학했어요. 집에 내려가서 1년 동안 틀어박혔어요. 근데 그냥 틀어박히려니까 너무 심심한 거예요. 그래서 1년 동안 뭘 할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여행을 가볼까도 싶었지만, 여자 혼자서 가는 건 무섭고……. 자격증 공부를 해볼까도 싶었지만, 너무 힘들더라고요. 고등학생 때도 그렇게 신물이 나도록 공부를 했는데, 대학생이 되서도 공부라니……. 눈앞이 막 캄캄해지는 거 있죠?”

“그렇긴 하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1학년 때는 시우와 이곳저곳 놀러만 다녔으니 말이다. 물론 시우가 너무 놀기만 하는 건 안 된다면서 나를 도서관으로 데려가서 공부를 하곤 했었다.

물론 당시 내 눈에 공부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덕분에 나는 학점을 망쳤지만, 시우는 학점에서 흥했다.

“그래서 뭘 할까 고민을 하는데, 만화책 방이 보이더라고요. 거기서 원피스를 처음 봤어요. 그냥 심심해서 1권만 빌려본 거였는데, 어느샌가 전권을 대여했더라고요. 정말 정신없이 봤어요. 하루하루가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러다가 문득 애니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애니도 챙겨봤죠. 처음에는 원피스였는데, 그 다음에는 클라나드, 다음은 나루토 그리고 블리치……. 1년이 눈 깜짝 할 사이에 흘렀어요.”

지현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

“……어느 날 엄마가 제 등짝을 때리더라고요. 이 년아, 언제까지 만화만 들여다보고 있을 거냐면서요. 그때서야 복학할 때가 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아, 그렇구나. 벌써 1년이 지났구나! 그래서 다시 복학한 거예요. 혹시 그 자식이 있을까 싶었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이 여자 저 여자한테 찝쩍거리다가 된통 당하고는 도망치듯이 군대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병신 같은 놈이네.”

“맞아요, 병신 같은 놈이죠.”

내 말에 지현이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맞장구를 쳤다. 어찌나 크게 웃음을 터트리던지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지현이는 손으로 눈물을 슥 닦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 놈 덕분에 1년 휴학해서 은하를 만났잖아요.”

“은하하고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은하, 걔 성격 아시죠? 처음에 친해지기 힘든 거요.”

“그렇지.”

지현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는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다.

대인 관계가 서툴고 말수가 극히 드문 사람……. 하지만 일단 친구가 되면 활발해지는 유형 말이다.

은하가 딱 그런 유형이었다.

“성격이 가뜩이나 이런데 1년 재수까지 해서 좀처럼 다른 애들하고 친해지지 못 하고 있는 거예요. 막 주변을 겉도는 게 웃긴 거예요. 근데 생각해보니 저도 똑같은 거 있죠? 1년 휴학하니까, 완전히 신입생이나 다름없는 거예요.”

“그래서 둘이 친해졌구나.”

“네, 맞아요. 제가 먼저 은하한테 작업 걸었죠. 이름이 뭐냐,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어디에서 왔냐……. 막 이것저것 이야기하니까, 점점 친해지는 거 있죠? 게다가 은하가 또 털털하기도 하잖아요. 보면 볼 수록 정감이 막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 애인으로 삼았죠. 에헴!”

마치 개선장군마냥 제 어깨를 으쓱이며 헛기침을 터트리는 지현이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베프가 아니라 애인이었어?”

“사실 이 정도면 애인이죠. 근데 그 애인을 다른 사람한테 빼앗겼지만요.”

이리 말하며 나를 흘겨보는 지현이다. 하지만 원망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나를 바라보던 지현이는 문득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언제 대답해줄 거예요?”

“뭘?”

“누구랑 사귀는 게 어떤 느낌이냐고 제가 물어봤잖아요. 얼른 대답해줘요.”

입술을 살짝 내밀고서 내 대답을 보채는 지현이의 태도에 나는 잠시 어떤 느낌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귄다는 게 대체 어떤 느낌일까? 솔직히 말해서 딱 이거라고 규정지을 수가 없었다. 사실 누군가와 사귄다는 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때는 피곤하기도 하고, 또 어쩔 때는 우울하기도 하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난다.

“글쎄…….”

말꼬리를 늘린 나는 서연이 누나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냥 행복하다고 할까.”

“행복이요?”

“그래, 행복해.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이런 내 말에 지현이는 눈꺼풀을 아래로 내렸다가 이윽고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오빠는 행복해요?”

“행복해.”

지현이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재차 말했다.

“그 행복, 은하한테도 나눠주면 안 돼요?”

“그건…….”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지현이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설마 나보고 양다리를 걸치라고 하는 걸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양다리라니……. 서연이 누나한테 살해당하기에 딱 좋았다. 하물며 은하도 그런 건, 원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하지 않을 거야.”

세 사람이 모두 불행해지고 말 것이다. 물론 매니저 어플의 힘이라면 충분히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애당초 혼인신고만 하더라도 그랬다.

혼인 신고를 할 수 있는 배우자는 오로지 한 명뿐이었다.

결혼식도 그랬다.

일생에 단 한번 있는 결혼식을 그 누가 하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산재해 있었다.

물론 내가 너무 앞서 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당장만 하더라도 서연이 누나는 나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까요?”

“그럴 거라고 생각해.”

딱 잘라 말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집에 가자. 데려다 줄게.”

이러한 내 말에 지현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도로 고개를 숙였다.

“알았어요.”

이리 대답한 지현이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나를 따라 카페 밖으로 나갔다.

========== 작품 후기 ==========

주인공이 양다리를 걸친다면? 스쿨데이즈!

*좆을 좆대로 놀리면 좆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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