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 디펜스] -->
“자, 그럼…….”
나는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마물 사냥꾼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지금 물어보세요.”
이러한 내 물음에 소현이 슬그머니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스킬이 생겼다고 떴는데, 혹시 만들어주신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몰라서 챙겨드렸습니다.”
“아하.”
소현은 자그맣게 탄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불어 감격한 빛이 하나 더 떠올랐다.
저러다가 나한테 반하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나는 속으로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다른 마물 사냥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더 이상 질문이 없는 모양인지, 다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럼 건투를 빌겠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마물 사냥꾼들을 전투 지역으로 전송했다. 그러자 일순 눈앞의 풍경이 일그러지더니 이윽고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공원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수화기 너머로 은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오빠, 왜 그래요? 오빠, 말 좀 해봐요!
급기야 울먹이는 목소리로 몇 번이고 나를 부르는 은하다. 이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니, 괜찮아. 미안, 잠깐 다른 생각을 했어.”
-정말이죠? 아무런 문제도 없는 거죠? 어디 다친데는 없는 거죠?
거듭 질문을 던지며 내 몸 상태를 걱정해주는 은하의 태도에 기분 좋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은하에게 해주려고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다급히 말문을 열었다.
“정말로 괜찮아. 그리고 은하야.”
-네, 오빠.
“지금 예은이랑 같이 있다고 했지? 둘이서 거기 있지 말고 더 멀리 가있어. 아니, 되도록 멀리 도망쳐.”
-네? 어디로요?
“일단……. 그래, 집으로 가. 오늘은 연습하지 말자.”
-집으로요? 하지만 지현이는…….
“지현이는 내가 집에 데려다 줄 테니까, 걱정 마.”
-알았어요. 오빠,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걱정 마. 이 정도는 무리도 아니니까.”
이리 말한 나는 통화를 끊었다. 그러자 지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내게 물었다.
“은하……. 은하예요?”
“응, 은하야.”
“뭐래요? 다들 괜찮대요?”
지현이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게 연달아 질문을 던졌다. 입술이 파르르 떨고 있는 걸 보아하니, 방금 전의 여파가 아직까지도 채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러는 와중에 은하를 걱정하는 걸 보니,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지현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괜찮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 집에 돌아가 있으라고 했어.”
“아……. 다행이다. 잘 하셨어요, 오빠.”
그제야 안도의 숨을 토해낸 지현이는 자기 스마트폰을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화면에 표시되어 있는 부재중 통화 3건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꿈이 아니었네요.”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지현이의 손끝이 벌벌 떨고 있었다. 확실히 방금 전, 오우거가 사람을 잡아먹는 장면은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끔찍한 광경이었다. 어쩌면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잠시 고개를 들어 공원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우리처럼 오우거를 피해서 도망쳐온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옷이 찢어져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중간에 넘어진 듯이 다리를 절뚝절뚝거리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허리를 숙이고서 토악질을 해대고 있었다. 심지어 집단 공황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으아아! 다 죽을 거야! 다 죽을 거라고!”
“좀 말려봐!”
“붙잡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급히 집단 공황에 빠진 사람들을 붙잡으며 말렸다. 119에 신고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난리도 아니었다. 이게 전부 다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했다.
‘매니저 어플을 지워야 하는 건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매니저 어플을 지운다고 하더라도 어플 자체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저 매니저 어플이란 것이 내 손에서 벗어나,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단순 반복될 뿐이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 매니저 어플을 넘겨받은 사람이 마물 사냥꾼을 제대로 구성하지 못 해서, 현계로 넘어온 몬스터를 막아내지 못 하는 사태가 발생할 지도 몰랐다.
말 그래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물론 반대로 매니저 어플을 넘겨받은 사람이 나보다 더 깔끔하게 몬스터들을 막아낼지도 몰랐다. 지금처럼 사망자를 만들어내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결국 예상에 불과했다.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매니저 어플을 삭제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건 최악의 선택지였다. 결국 책임 회피에 불과했다. 하물며 내가 매니저 어플을 삭제하게 되면 마물 사냥꾼들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어버린다. 게다가 에나와 엘레노아, 마틸다 그리고 운피레아와 아이린은? 노예로 삼은 이들은 매니저 어플이 삭제되는 것과 동시에 소멸하게 된다.
‘그런 병신 같은 짓을 할 순 없지.’
한순간 매니저 어플을 삭제 할까 고민했던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이를 악 물은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지현의 몸을 일으켜주며 입을 열었다.
“벤치로 가자. 거기서 좀 숨을 고르자.”
“네.”
이러한 내 말에 힘없이 대단한 지현이는 몸을 휘청이며 일어섰다. 그런 다음에 내 팔을 꽉 붙잡고서 한 걸음씩 천천히 옮겼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고 있는 게, 훤히 보여서 마음이 아파왔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나는 지현이는 벤치에 앉히며 손에 쥐어져 있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레벨을 올리는 거겠지?’
그렇게 되면 뭔가 좋은 방법이 생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리 생각하며 지현이의 옆에 엉덩이를 깔고 앉는데, 돌연 멀리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아!”
흡사 2002년 월드컵 당시를 연상시키는 환호성 소리였다.
공원까지 들려오는 환호성 소리에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돌아갔다. 동시에 몇몇 사람들이 자기 스마트폰을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마물 사냥꾼이다!”
“살았다! 마물 사냥꾼들이야!”
사람들이 저마다 기쁨에 가득찬 환호성을 터트렸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터트리기까지 했다. 다들 마물 사냥꾼들이 오우거를 물리쳐 줄 거라고 의심치 않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내 옆에서 어깨를 가늘게 떨고 있던 지현이도 얼굴색을 밝히며 안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우거와 맞붙은 건가.’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재빨리 인터넷 방송을 켰다. 그러자 마물 사냥꾼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개인 방송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를 확인한 나는 시청자 수가 가장 많은 방으로 들어갔다.
“오빠, 저도요!”
그 때, 지현이가 조금 들뜬 목소리로 소리치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왔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마트폰을 나와 지현이 사이에 두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방송 화면에 마물 사냥꾼들의 모습이 잡혔다.
-갓갓갓! 찬양하라!
-검에서 빛나는 거 같지 않음?
-지아 누님 옷차림 완전 쩔어!
-사람들 소리치는 거, 씹소름...
-19금 방송 달으셔야 할 듯. 사람 내장 보여요
-마물 사냥꾼이다아아아!!
-미친 듯ㄷㄷㄷ 저거 전부 피 아님?
-애플녀는 언제 나옴?
-지아느님 쪽으로 카메라 좀 당겨주세요! 좀 더 보여주세요!
-드디어 마물 사냥꾼이 등장했다! 기다렸어요!
-감격!
-근데 저건 대체 무슨 오크야? 엄청 큰데?
방금 막 도착한 모양인지, 오우거의 앞에 서있는 마물 사냥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이처럼 마물 사냥꾼들이 오우거의 앞에 서자, 녀석은 마치 사람 다리를 이쑤시개처럼 쓰며 입을 쩝쩝 거렸다.
-헐
-저거 진짜 사람 다리?
-다리...
-빨리 19금 다셔야 할 듯. 방장님 영정 당해요
-토할 뻔함
BJ도 이런 장면은 다소 과하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19세 제한을 걸었다. 그러자 대거 시청자가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람이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시청자가 대거 들어왔다.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마물 사냥꾼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한 채원이 봉인된 마도서를 펼치며 주문을 외우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뒤, 채원이의 주위에 불길이 치솟더니 이윽고 거대한 화염구가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치 모든 것을 불태울 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오우거는 그것에 위협을 느낀 모양인지, 크게 포효성을 터트리며 한 채원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무려 3미터가 넘어가는 신장을 지닌 오우거의 주먹이었다. 그저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터엉!
그런데 그 주먹을 이 소현이 막아내었다.
그녀는 방패를 앞으로 내밀어, 오우거의 주먹을 막아낸 뒤에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일순 검에서 번쩍 빛이 일어나더니, 오우거의 손목에 반짝거리는 빛이 매달렸다. 은빛 장검의 두 번째 효과인 은빛 표식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표식이 매달린 순간, 한 채원이 오우거의 머리를 향해 화염구를 날렸다.
콰앙!
그 순간, 커다란 폭발음과 동시에 3미터가 넘어가는 오우거의 머리에 화염구가 적중했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화염은 오우거의 몸을 삽시간에 뒤덮으며 모든 것을 불태우려고 했다. 그러나 마법 저항력이 상당히 높은 모양인지, 녀석은 양 팔을 거세게 뒤흔드는 것으로 불길을 떨쳐내었다.
실로 괴물 같은 녀석이었다.
========== 작품 후기 ==========
오우거! 역시 오우거는 강력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