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 디펜스] -->
이처럼 유 지아에게 요정의 날개옷을 건네준 나는 자리로 돌아가, 깃털 달린 챙모자와 단풍 머리핀 그리고 엘프 궁수의 옷을 챙겼다.
‘은장도도 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윽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 혜진의 전투 방식을 고려보았을 때, 은장도를 쥐어주는 건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 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유 지아만큼 단검류를 잘 다룰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괜히 보조 무기를 주어서 혼란을 빗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다음 마물 사냥꾼을 염두에 두어두는 편이 좋았다.
“신 혜진 씨.”
이러한 내 부름에 신 혜진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매달렸다.
그녀는 사뿐사뿐 걸음을 옮겨 내 앞에 서더니, 이윽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전부 저한테 주시는 건가요?”
“네.”
“이번엔 많이 챙겨주시네요.”
나를 올려다보는 신 혜진의 검은색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추어 보였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투명한 눈동자였다.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깃털 달린 챙모자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저번에는 못 챙겨드렸으니까요.”
“고마워요. 그럼 잘 쓸게요.”
이리 말한 신 혜진은 넙죽 손을 내밀어 깃털 달린 챙모자를 넘겨받았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자기 머리에 쓰더니, 이윽고 샐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때요? 잘 어울려요?”
“잘 어울립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머리띠 좀 해주세요.”
왠지 모르게 주객전도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유 지아와는 다르게 시원시원하게 진행되는 것이었기에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혜진의 머리에 단풍 머리띠를 꽂아주었다. 그러자 뭐가 그리도 마음에 드는 지, 요염하게 눈웃음을 치며 살랑살랑 고개를 흔드는 신 혜진이다.
“……고마워요. 옷은 제가 입을게요.”
항상 그렇지만 신 혜진은 뭔가 상대하기가 껄끄럽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위화감 같은 게 드는 건 아니었다. 뭐라고 할까? 열아홉 살답지 않게 어수룩함이 전혀 없다고나 할까? 마치 경험 많은 누님을 상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분명히 나이는 내가 더 많은데도 말이다.
‘어쩌면 리더는 신 혜진이 맡아야 되었을지도…….’
확실히 그러면 그것 나름대로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앞에 내밀어져 있는 조막만한 두 손을 발견하고는 상념을 털어내었다. 괜한 생각이었다. 리더로는 이 소현이 딱이었다.
나이도 적당하고 리더쉽도 충분하니 말이다.
나는 내 손에 들려 있는 엘프 궁수의 옷을 신 혜진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이처럼 준비한 장비를 전부 다 나눠준 나는 내 팔에 매달려있는 한 채원을 살짝 떨어트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밖에 나가있을 테니 갈아입고 계세요.”
이리 말하며 뒤돌아서려는데, 김 예지가 불쑥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쌤, 저는요?”
“쌤?”
“아! 헤헤, 말실수에요. 아무튼 저는요? 저는 뭐 없어요?”
배시시 웃음을 터트린 예지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은장도라도 챙겨줄까 싶었지만, 사사로운 정 때문에 장비를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예지는 후방에서 치료를 해주는 힐러였다.
힐러가 은장도를 사용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설혹 써야되는 상황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신 혜진이 지켜 줄 테니까.’
지난번에도 김 예지를 구해준 전적이 있는 신 혜진이었다. 그러니 구태여 은장도를 넘겨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없습니다. 대신에 다음에 따로 챙겨드리겠습니다.”
“정말로 없어요? 하나도요?”
“하나도 없습니다.”
“혹시 방금 전에 가면 좀 벗어달라고 한 것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죠?”
“그랬다면 한 채원 씨도 안 챙겨드렸을 겁니다.”
나는 즉각 반박했다. 사실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예지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더 이상 고집 부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다음에 꼭 챙겨주셔야 해요.”
“많이 챙겨드리겠습니다.”
“꼭 약속이에요!”
“약속하겠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곧바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런 다음에 문을 닫은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서 두 눈을 잠시 감았다.
‘이걸로 괜찮겠지?’
오우거가 얼마나 셀지 가늠은 되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이 소현이 들고 있는 은빛 장검은 강화 7단계였다. 만약에 오우거가 오크의 다음 스테이지 같은 개념이라고 한다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더욱이 마물 사냥꾼 모두 체육관에서 따로 복싱과 낙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약간의 능력치 상승이 있었으니, 어렵지 않게 오우거를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되었다.
‘……능력치도 올려둘까?’
확실하게 해두려면 능력치까지 올려두는 편이 좋기는 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고 한다면 다들 보유 경험치가 어정쩡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80대 능력치가 존재하지 않는 이 소현이나 김 예지 같은 경우에는 그다지 상관이 없었다. 70대 능력치를 올리는데 필요한 경험치는 500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80대 능력치의 경우에는 판이하게 달랐다.
‘무려 2500…….’
감히 올릴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일단 이 소현만 올려둘까?’
김 예지도 900의 경험치를 보유하고 있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다소 애매했다. 마력이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었고 말이다. 물론 한 채원의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영향이 아주 없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상처 회복은 지금도 충분했다.
거의 죽을 뻔한 사람조차도 살려내는 것이 회복 마법이 아니던가?
나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이윽고 김 예지는 보류해두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은 인위적으로 능력치를 올리기보다는 훈련을 통해서 개인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결단을 내린 나는 이 소현의 능력치를 올려주기 위해서 상태창을 열람했다.
[마물 사냥꾼]
[이름 : 이 소현]
[성격 : 이해심 많음, 이타적, 자기희생적]
[나이 : 22살]
[신체 : 161cm, B89(F)-W58-H92]
[성향 : 방어적]
[보유 장비 : 은빛 장검(N)(+7), 수호의 방패(N), 위협의 호루라기(N), 강철 손목 보호대(N), 가죽 갑옷(N), 견고한 치마(N), 진리의 검은 스타킹(N), 냉기의 반지(N), 강인함의 휘장(N)]
[근력 71] [민첩 60] [체력 78] [마력 57] [행운 51]
[보유 경험치 : 1050]
‘역시 체력 쪽을 올려주는 편이 좋겠지.’
게다가 다른 능력치들과 마찬가지로 80을 달성하는 즉시 모종의 스킬이 주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뭐가 나오려나.’
나는 기대에 부푼 마음을 꽉 끌어안고서 체력을 올렸다.
[체력(78)의 점수를 상승시키시겠습니까?]
[체력(78) 1점수 상승시키는데 필요한 경험치 혹은 정기는 500입니다.]
[상승시키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체력이 78에서 79로 상승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체력이 79에서 80으로 상승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체력이 80을 달성함에 따라 새로운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쓰러지지 않아’를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 체력이 10% 이하로 줄어들 경우, 최대 50%까지 다시 회복합니다. (위의 스킬이 발동 할 경우, 24시간이 지나야지만 재사용이 가능합니다.)]
“오…….”
나름 괜찮은 스킬이라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스킬 설명을 읽어보니, 따로 외쳐서 발동할 필요 없이 자동적으로 발동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전투를 진행 할 때,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올려두길 잘했네.’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확인을 눌렀다. 그런 다음에 고개를 들자, 조용하기 짝이 없는 저택 내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이 엘프 모녀는 잠시 어디로 간 모양인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저택 내부를 둘러보다가 이윽고 손으로 방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쪽에서 ‘들어오세요!’라고 소리치는 한 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나는 요정의 날개옷을 입은 유 지아의 모습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방 문을 열었다.
“자, 잠깐!”
그리고 이처럼 방 문을 여는 순간, 유 지아의 새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나는 이미 방 문을 열었고, 내 눈에 요정의 날개옷을 입고 있는 유 지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
예상은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옷이 잘 어울리는 유 지아였다. 확실히 여자는 몸매가 좋고 봐야 될 일이었다. 나는 내심 감탄하며 요정의 날개옷을 입고 있는 유 지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돌연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오른손으로 치마 밑단을 꽉 내리 누르는 유 지아다.
어지간히도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이 무색하도록 이색적인 매력적인 뿜어내고 있는 그녀였다. 특히나 허벅지를 반쯤 가리고 있는 스커트는 남성의 마음을 뒤흔드는 아슬아슬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매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잘 단련된 매끈한 허벅지라고 할 수 있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꿀벅지가 바로 저것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꿀꺽, 군침을 삼킨 나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요정의 날개옷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등 뒤로 은색의 투명한 날개가 매달려있었다. 다만 착용자가 의도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모양인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플라이를 사용해야지만 제대로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뭐,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
그 때, 유 지아가 버럭 성을 내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었다. 부끄러워서 곧 죽을 것만 같다는 태도였다.
그 모습이 평소의 당당하던 그녀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서, 어쩐지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웃음을 터트리기라도 한다면 당장에 옷을 벗겠다고 할 것이 자명했기에 나는 애써 웃음을 삼키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유 지아 씨의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나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술술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거짓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유 지아의 모습은 다른 이들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아름다웠으니 말이다.
만약에 내가 미인에 대한 내성이 없었다면 정말로 넋을 빼고서 유 지아를 하염없이 쳐다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하다 못 해 유 지아의 가슴이 조금만 더 작았더라도 정말로 넋을 빼고서 쳐다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D컵은 좀 과하지.’
과유불급이었다. 자고로 여성이란 채원이처럼 아담한 A컵이여만 했다.
B71(A)-W57-H79!
이 얼마나 이상적인 수치라는 말인가?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정도였다. 나는 잠시 시선을 돌려 채원이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대로만 커다오.’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았다. 딱 이렇게만 커주었으면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한 채원을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유 지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요정의 날개옷이란 게, 딱 유 지아 씨를 위해서 존재하는 옷인 것 같습니다.”
“응? 그, 그런가?”
“그렇습니다! 자, 보십시오. 몸에 딱 맞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런 옷이 한두 벌 정도 있어줘야지, 가끔씩 기분 전환도 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너무 화려한 것 같은데…….”
“화려하다니요? 이 정도가 딱 좋습니다! 게다가 스커트 길이도 적당하고요. 오히려 요즘 여성들이 입고 다니는 스커트에 비하면 이것도 긴 편에 속합니다.”
이리 말한 나는 이 소현을 비롯한 다른 마물 사냥꾼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너희들도 어서 칭찬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다들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이며 유 지아를 향해 칭찬을 쏟아내었다.
“맞아요, 언니. 다들 이 정도는 입어요.”
“언니는 몸이 좋아서 이런 것 좀 입어줘야 해요.”
“바지보다 치마가 훨씬 나아요!”
“예뻐요. 잘 어울려요.”
이처럼 마물 사냥꾼들이 칭찬을 해주자, 유 지아의 표정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치마 밑단을 꽉 내리누르고 있던 오른손을 천천히 떼어내며 자기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정말로 안 이상해?”
이상할 리가 없었다. 애당초 요정의 날개옷이라고 해서 판타지 세상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옷이 아니었다. 오히려 개량 한복처럼 현대에 걸맞게 세련되게 잘 꾸며져 있었다. 만약에 디자이너들이 이 옷을 본다면 침을 뚝뚝 흘리며 달려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잘 어울립니다.”
“조금도?”
“조금도요.”
이처럼 내가 딱 잘라 말하자, 그제야 유 지아는 안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양 손을 내렸다. 그러자 D컵의 큰 가슴이 미약하게 출렁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과시했다. 확실히 평소처럼 펑퍼짐한 옷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쪽으로 좀 더 부곽이 되고 있었다.
‘난리 나겠네.’
모르긴 몰라도 이번 오우거와의 전투가 방송에 나가게 된다면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쓰게 웃음을 터트리며 신 혜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엘프 궁수의 옷이라는 말에 걸맞게, 연둣빛으로 일색이 되어있는 의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잘 어울리시네요.”
“감사합니다.”
이처럼 내가 칭찬해주자, 신 혜진은 생긋 웃으며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오우거와 맞붙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