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 디펜스] -->
마물 사냥꾼들에게 인사말을 건넨 나는 재빠르게 다섯 명의 무장 상태를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챙기지 못 한 장비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런 내 우려와는 다르게 다들 하나도 빠짐없이 장비를 착용한 상태였다.
다행인 일이었다.
나는 내심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마물 사냥꾼 여러분들이 상대해야 될 적은 오우거입니다.”
“오우거요?”
오우거라는 말에 방 안이 잠시 술렁였다.
“그렇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제까지 상대한 오크보다 더 강하면 강했지, 결코 약한 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RPG 게임으로 따지자면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한 셈이었다. 그러니 그에 걸맞은 장비를 새로이 지급해줄 필요성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부 다 바꿔주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부족한 장비를 채워주고, 부분적으로 바꾸어주었다는 것이다.
애당초 모든 장비를 바꿔줄 만큼 정기가 넉넉하게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마물 사냥꾼들의 장비 수준이 그 정도로 낮은 것도 아니니까.’
이리 생각한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든 뒤에 마물 사냥꾼들의 정보를 열람해보았다.
[마물 사냥꾼]
[이름 : 이 소현]
[성격 : 이해심 많음, 이타적, 자기희생적]
[나이 : 22살]
[신체 : 161cm, B89(F)-W58-H92]
[성향 : 방어적]
[보유 장비 : 은빛 장검(N), 수호의 방패(N), 위협의 호루라기(N), 강철 손목 보호대(N), 가죽 갑옷(N), 견고한 치마(N), 진리의 검은 스타킹(N)]
[근력 71] [민첩 60] [체력 78] [마력 57] [행운 51]
[보유 경험치 : 1050]
[이름 : 한 채원]
[성격 : 호기심 많음, 사교적, 밝음]
[나이 : 18살]
[신체 : 149cm, B71(A)-W57-H79]
[성향 : 도전적]
[보유 장비 : 봉인된 마도서(R), 현자의 부츠(N), ]정신 보호의 머리띠(N), 증폭 구슬(N)]
[근력 43] [민첩 45] [체력 58] [마력 81] [행운 54]
[보유 경험치 : 1030]
[이름 : 유 지아]
[성격 : 귀찮음을 싫어함, 주도적, 고집이 강함, 자유분방]
[나이 : 24살]
[신체 : 172cm, B84(D)-57W-83H]
[성향 : 저돌적]
[보유 장비 : 날렵한 단검(N), 곰의 발톱(R), 바람을 달리는 부츠(R)]
[근력 72] [민첩 81] [체력 72] [마력 51] [행운 49]
[보유 경험치 : 1250]
[이름 : 김 예지]
[성격 : 장난이 심함, 가벼움]
[나이 : 18살]
[신체 : 153cm, B75(B)-W54-H77]
[성향 : 중도]
[보유 장비 : 성자의 지팡이(R), 맹약의 반지(N)]
[근력 53] [민첩 52] [체력 56] [마력 60] [행운 60]
[보유 경험치 : 900]
[이름 : 신 혜진]
[성격 : 음흉함, 비밀주의자]
[나이 : 19살]
[신체 : 158cm, B82(C)-W57-H83]
[성향 : 안전]
[보유 장비 : 단풍 활(N)]
[근력 52] [민첩 65] [체력 59] [마력 52] [행운 80]
[보유 경험치 : 800]
‘……응?’
이처럼 마물 사냥꾼들의 정보를 열람한 순간, 다들 능력치가 조금씩 변동되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하락한 게 아니라 상승한 것으로 말이다. 나는 혹시 내 기억이 잘 못 된 건 아닌가 싶어서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하지만 역시 내 기억 속의 능력치와 화면에 표시된 능력치가 조금씩 달랐다.
특히나 유 지아의 경우, 내가 일부러 스킬을 얻기 위해서 민첩을 80으로 맞춰두었기 때문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스마트폰 화면에 표시된 능력치는 81이었다.
이 말은 즉, 능력치 변동이 이루어졌다는 뜻이었다.
‘훈련 같은 걸 한 걸까?’
어쩌면 다 같이 모여서 훈련을 한 걸지도 몰랐다. 나는 잠시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어낸 뒤에 마물 사냥꾼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다섯 명이 동시에 흠칫 떨며 딴청을 피웠다.
마치 못 된 짓을 하다가 걸린 아이들처럼 말이다.
“왜 그러십니까?”
“…….”
내 물음에 다들 쭈뼛쭈뼛 거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더더욱 수상해보였다. 이에 나는 이 소현을 콕 집어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소현 씨,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네? 아, 저……. 저요?”
이런 내 질문에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켰다.
“네, 이 소현 씨요.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어, 없어요! 네, 없어요. 정말이에요.”
허둥대며 소리치는 걸 보아하니, 분명히 무언가 있었다. 나는 더더욱 눈을 가늘게 뜨고서 이 소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유 지아가 이 소현의 팔을 툭툭 치며 눈짓을 주었다. 아니, 유 지아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마물 사냥꾼들도 은근한 눈길로 이 소현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가 희생해서 직접 물어봐주길 원한다는 듯이 말이다.
리더의 비애였다.
그러나 이 소현은 결코 물어보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필사적으로 다른 여자애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꿋꿋이 입을 다물었다. 이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게 있으시면 물어보세요. 화내지 않겠습니다.”
이처럼 내가 딱 잘라서 말하자, 유 지아가 작은 목소리로 ‘소현아, 화 안 낸다고 하잖아. 얼른 물어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이 소현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그럼 언니가 물어봐요!’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하기에 이리도 호들갑을 떠는 걸까? 나는 잠시 이 소현과 유 지아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윽고 김 예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김 예지 씨가 한번 말해보세요. 왜 그렇게 다들 긴장하고 계신 겁니까? 그리고 뭐가 궁금하신 겁니까?”
“힉!”
내 질문에 새된 비명소리를 내뱉으며 성자의 지팡이를 꽉 끌어안는 김 예지다. 이쪽도 글러먹었다.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이번에는 신 혜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획하니 돌리며 딴청을 피우는 신 혜진이다. 이에 나는 마지막으로 한 채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치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얼굴이 보였다.
만약에 여기서 내가 한 채원 씨라고 부르면, 펑!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다들 왜 이러는 거야?’
안 그래도 오우거 출현으로 마음이 뒤숭숭한데, 여기서 마물 사냥꾼들까지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 더더욱 심란해졌다. 물론 마물 사냥꾼들의 능력치가 전체적으로 소폭 상승한 것은 분명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가짐으로 오우거와 맞붙었다간 틀림없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했다.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이 소현과 말다툼을 하고 있는 유 지아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유 지아 씨, 당신이 가장 연장자니까 말해보세요. 다들 왜 이러는 겁니까?”
“…….”
이처럼 유 지아를 콕 집어서 묻자, 일순 이 소현의 얼굴에 꼬시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반면에 유 지아는 설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을 줄은 몰랐다는 듯이 눈살을 와락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그녀답게 금세 표정을 풀며 다소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소리를 내었다.
“그 뭐냐……. 저번에 텔레비전에 나온 거 있잖아.”
“네.”
“그거…….”
유 지아는 말꼬리를 늘리며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귓불이 붉게 달아올라 있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한동안 우물쭈물거리다가 이윽고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곧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너야?”
저번에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이 나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설마 이것 하나 물어보려고 그렇게 뜸을 들였다는 말인가? 나는 잠시 다른 마물 사냥꾼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하나 같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정말로 이게 궁금해서 그렇게 안절부절 못 했었던 모양이었다. 재차 한숨을 푹 내쉰 나는 입을 열어 대답했다.
“네.”
“저, 정말로? 정말로 너라고?”
“네. 제가 맞습니다. 애당초 그런 방송을 할 수 있는 건, 저 뿐인데…….”
“대박……!”
내 말이 미처 끝을 맺기도 전에 유 지아가 감탄성을 터트리며 입을 살짝 벌렸다. 동시에 한 채원과 김 예지가 두 눈을 반짝이며 거듭 와아! 와아! 하고 탄성을 터트렸다.
“가, 가면 한번만 벗어주시면 안 될까요?”
“맞아요! 어차피 우리 사이에 숨길 것도 없잖아요.”
현역 여고생답게 한 채원과 김 예지가 내 곁으로 바짝 다가오며 온갖 아양을 떨었다. 제발 가면을 벗어달라면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입을 열었다.
“진정하세요.”
내가 이리 말하며 다그쳐보지만, 두 여고생은 막무가내였다.
“에이, 그러지 말고요! 네? 한번만 보여주세요, 오빠!”
“맞아요! 오빠, 딱 한번 만요!”
검지 하나를 펼쳐 보이며 딱 한번만을 연호하는 한 채원과 김 예지다. 이에 나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이 소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현은 나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오히려 가면 속 내 얼굴을 보고 싶다는 듯이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글러먹었다.
‘이거 참…….’
절래절래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한 채원과 김 예지의 어깨를 꽉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해고당하고 싶으십니까?”
========== 작품 후기 ==========
이것은 악덕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