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17화 (317/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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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지현이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이윽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입술을 곱씹던 그녀는 이윽고 입술을 떼었다.

“……오빠는 서연이 언니……. 그 사람이랑 사귀어서 좋아요?”

“좋아.”

나는 일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서연이 누나는 내게 있어서 과분한 여자였다. 그런데 지금 그런 여자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었다. 오히려 황송할 지경이었다.

나는 나를 쳐다보는 지현이의 시선을 똑바로 받으며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내 시선을 받은 지현이는 눈가를 촉촉이 적시며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깔았다.

“은하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그 호소에 나는 반대로 묻고 싶어졌다.

‘그럼 서연이 누나는 불쌍하지 않아?’

나와 헤어지게 될 서연이 누나가 불쌍하지도 않느냐면서 말이다. 나는 입 안에 맴도는 이 말을 혀로 굴리다가 이윽고 목구멍 안으로 꿀꺽 삼켰다. 이건 하지 말아야 될 말이었다.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이었다.

나는 이리저리 시선을 배회시키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대답했다.

“시간 다 됐어. 일어나자.”

“대답해줘요!”

지현이가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제법 커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돌아볼 정도였다.

나는 서둘러 지현이의 어깨를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은하한테는 내가 알아서 잘 말할게.”

“못 믿겠어요. 은하가……. 은하가 또 충격 먹을까봐 무서워요. 걔가 그렇게 서럽게 우는 건, 한 번도 못 봤단 말이에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애당초 은하가 우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지 못 했었다.

‘아니, 딱 한번 있었지.’

은하를 조교의 방으로 불러내었을 때, 지나친 쾌감에 결국 버티지 못 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말이다.

그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니 일순 흥분감이 몰려왔다.

‘……나도 참 글러먹은 놈이네.’

이런 상황에서 흥분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는 지현이의 어깨에서 손을 떼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지현이가 움찔 몸을 떨며 놀란 토끼마냥 나를 쳐다보았다.

“아…….”

멍하니 나를 쳐다보던 지현이는 이윽고 정신을 차린 듯이 양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더불어 양 갈래로 나뉜 머리카락이 정신 사납게 흔들렸다. 보아하니 내가 흥분하면서 쾌감 공유가 발동한 모양이었다.

‘이거 참…….’

참 곤란한 능력이었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계산하고 있을게.”

이 말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계산대로 걸음을 옮겼다. 더불어 내 눈에 몸을 들썩이고 있는 지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느껴진 쾌감에 정신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조심할 필요성이 있을 듯이 싶었다.

‘참 유용한 스킬인데, 이럴 때는 좀 불편하네.’

혀를 내두른 나는 서둘러 계산을 끝마친 뒤에 식당 입구에 선 채로 지현이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심통 난 오리마냥 입술을 빼죽 내밀고 있는 지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무어라 말하려던 나는 이윽고 그만두기로 했다. 여기서 왜 그렇게 입술이 튀어나왔냐고 물어보면 분명히 은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푸르디푸른 하늘이 내 눈에 들어왔다.

데이트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크워어어어!!”

이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불현듯 흉포한 포효성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나는 서둘러 포효성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자 도로 한복판에 나타난 오우거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뒤이어 쾅! 소리와 함께 차량 한 대가 오우거를 들이박았다.

갑작스레 나타난 오우거를 미처 피하지 못 한 것이었다.

끔찍한 사고였다.

“오크다!”

“시발, 개쩐다!”

그러나 사람들은 차량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미친 듯이 오우거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미친 광경이었다. 제정상이 아니었다. 나는 다급히 고개를 돌려서 지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는 지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현아, 정신 차려!”

“오, 오빠……. 저, 저거…….”

당황한 모양인지, 내 팔을 꽉 붙으며 목소리를 떠는 지현이다. 이에 나는 지현이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입을 열었다.

“얼른 공원으로 가자. 오우거 날뛰기 전에 도망쳐야해.”

만약에 오우거가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한다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한 발 빠르게 자리를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지현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확인한 나는 지현이의 어깨를 부여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얼른 가자.”

이리 말한 나는 지현이의 손목을 붙잡고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슬쩍 고개를 돌려 오우거 쪽을 바라보자,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자신의 발을 친 차량을 내려다보고 있는 오우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우거라니…….’

사람들은 지금 저것을 오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저건 틀림없이 오우거였다. 애당초 크기부터가 달랐다. 오크의 신장이 2미터 안팎인 것에 반해서 오우거의 신장은 무려 3미터에 달하니 말이다.

실제로 트윈 헤드 오우거인 렉스의 신장이 딱 그 정도였다.

“크워어어어!!”

그 때, 또다시 포효성이 들려왔다.

오우거는 진득한 침을 뚝뚝 흘리며 사람들을 돌아보아보더니, 이윽고 자기 발치에 뭉개져 있는 자동차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 천장을 오로지 악력만으로 뜯어내었다.

끼기긱, 쇠가 우그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오우거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던 사람들의 행동이 우뚝 멈추었다. 다들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뜰 수밖에 없었다.

콰직! 우드득! 오독! 오독!

차량 안에 타고 있던 운전자를 우악스레 집어든 오우거는 그대로 자기 입 안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머리부터 시작해서 몸통, 다리를 차례차례 씹어 먹었다. 붉은 피가 사방에 뿌려지자, 도로 한 복판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꺄아아악!!”

“으아아아!!”

그제야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더불어 아니나 다를까, 도망치는 사람들로 거리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가게 안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은 정신없이 뛰어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넘어지는 사람들도 있었고, 앞선 사람들을 밀치며 도망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나와 지현이는 일찍 도망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람들과 몸을 부닥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싫어어어!!”

또다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넘어진 여성이 오우거에게 붙잡힌 것이었다. 여성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려는 듯이 양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누구 한 명 그녀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아니, 돕는다고 하더라도 같이 죽을 뿐이었다.

애당초 상대는 3미터가 넘어가는 괴물이었다. 일반인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으적! 으적! 으드득!

또다시 사방에 핏방울이 튀었다. 사람들은 더더욱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앞사람을 밀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질서라곤 조금도 없었다.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이 이성을 가지고 질서정연하게 도망치는 건 어디에도 없었다.

이건 공포, 그 자체였다.

나는 이를 악 물고서 지현이와 함께 죽을힘을 다 해서 뛰었다. 그리고 이윽고 공원에 도착하자, 지현이는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인지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이에 나는 그녀의 어깨를 꽉 붙잡아주며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도 쫓아오지는 않는 모양이네.’

재수가 옴 붙어도 단단히 옴 붙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현계 퀘스트의 범위가 1000킬로미터로 설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무려 1000킬로미터였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아우르는 거리였다. 그런데 바로 코앞에서 등장한다? 재수가 옴 붙어도 단단히 옴 붙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혀를 내두른 나는 지현이가 정신을 못 차리는 틈을 타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서둘러 마물 사냥꾼들을 호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스마트폰을 꺼낸 순간, 은하와 예은이한테서 온 카톡이 눈에 들어왔다.

카톡이 온 시간을 보니, 1분 전이었다.

다행히도 휘말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심 안도한 나는 메시지를 당장 확인하기 보다는 매니저 어플부터 실행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현계 퀘스트 ‘오우거’가 발생했습니다!]

[오우거가 당신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오우거는 흉포하고 잔인한 사냥꾼입니다. 또한 인간을 날로 먹기를 즐기기 때문에 사방에 널린 인간들을 끊임없이 잡아먹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때를 노려야 합니다. 오우거가 인간들을 잡아먹는데 정신이 팔린 사이에 처리하십시오. 그렇지 않고 정면으로 맞붙게 된다면 분명 큰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어쩌면 마물 사냥꾼 중에 한 명이 죽을지도 모릅니다.]

-오우거를 처리하세요! (0/1) (보상 : 랜덤 스킬 상자)

현계 퀘스트를 읽는 순간,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뭐, 오우거가 인간들을 잡아먹는데 정신이 팔린 사이에 처리하라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으득, 이를 간 나는 서둘러 확인을 누른 뒤에 마물 사냥꾼들을 호출했다.

[마물 사냥꾼을 호출합니다.]

[1분 뒤에 조교의 방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평소 같았으면 5분 뒤에 소환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1분도 아까웠다. 하지만 장비를 챙길 시간은 주어야 되었기에 나는 1분이란 시간을 주었다.

물론 이 시간도 극히 짧았지만 나는 마물 사냥꾼들을 믿었다.

‘만약에 못 챙겼다면……. 어쩔 수 없지. 랜덤 장비 상자를 몇 개 더 개봉하는 수밖에.’

이리 생각하며 어서 빨리 1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데, 은하한테서 전화가 왔다. 걱정이 되어서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재빨리 통화를 누른 뒤에 전화를 받았다.

-오빠? 오빠, 지금 어디에요? 괜찮아요? 지금 지현이가 전화를 안 받아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다급히 소리치는 은하다.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런 은하의 태도가 기특하면서도 일단 진정시키자는 생각에서 서둘러 입을 열었다.

“괜찮아. 지금 지현이는 나하고 있어.”

-오빠하고요?

“그래, 지금 만나기로 한 공원이야. 근데 너 지금 어디야?”

-햄버거 집 앞이에요. 예은이랑 있어요.

햄버거 집이라면 오우거 출현 지역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안전 지역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혹시나 싶은 생각에서 서둘러 입을 열었다.

“거기서 더…….”

도망쳐라고 말하려는 찰나 눈앞이 일순 어두컴컴해졌다. 마물 사냥꾼을 호출한 지 1분이 다 된 모양이었다. 나는 와락 눈살을 찌푸리며 시야가 다시금 밝아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낯익은 저택 내부의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주인님!”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고개를 돌려보니,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운피레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그 옆에는 아이린이 쭈뼛거리며 서있었다. 뭔가 어색해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 짓궂게 괴롭히고 싶단 못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는 운피레아의 입술에 입을 맞춰주며 속삭였다.

“지금은 제가 좀 바쁩니다. 다음에 상대해드리겠습니다.”

“아……. 네.”

이러한 내 말에 운피레아는 살짝 넋이 나간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아이린이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이에 그녀 쪽을 돌리자, 양 볼을 붉게 물들이며 양 쪽 귀를 처연하게 늘어트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자기도 키스를 해주었으면 하는 모양이었다.

아이린의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니, 다급했던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러자 촉촉하게 젖어있는 부드러운 입술에 꽉 맞닿으며 기분 좋은 감촉을 만들어내었다.

“하음, 응……. 하아.”

이윽고 입술이 떨어지자, 아이린은 아쉬워하는 눈초리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좀 더 해주었으면 하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다음에요.”

이리 말한 나는 서둘러 여러 가면들이 걸려있는 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평소처럼 가면을 얼굴에 착용한 나는 곧바로 1번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바짝 긴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다섯 명의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방 안에 서있는 여성들을 번갈아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마물 사냥꾼 여러분?”

========== 작품 후기 ==========

마물 사냥꾼의 차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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