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16화 (316/599)

<-- [던전 디펜스] -->

‘일단 보류해둘까?’

좋은 기회인만큼 신중하게 선택하고 싶어졌다. 물론 다음에 또 던전 퀘스트가 발생했을 때, 보상으로 병과전직이 주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예상에 불과했다. 최악의 경우, 병과 전직이란 보상 자체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일단 좀 더 고민해보자.’

더불어 다른 부대의 숫자도 50명씩 채워두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병과 전직을 선택할 때, (0/50)이란 수치가 나와 있었다. 그 말은 즉, 최대 50명까지 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최대한의 효율을 보기 위해서는 병과 전직을 희망하는 부대의 숫자를 50명까지 채워둘 필요가 있었다.

이처럼 생각을 끝마친 나는 아니요를 눌렀다. 그러자 곧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병과 전직을 보류하시겠습니까?]

[주의. 병과 전직을 12시간 이내 사용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삭제됩니다.]

[네 / 아니요]

“…….”

전혀 예상지도 못 한 알림문구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물론 12시간이라고 하면 꽤나 넉넉한 시간이었다. 더욱이 이계로 넘어가게 되면 시간이 더 천천히 흐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12시간 이상의 시간을 제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계에 진입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아이돌 프로젝트 연습을 도와주고 서연이 누나를 만나면 12시간은 금방 지나갈 텐데…….’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시간의 여유가 없는 탓에 이계 진입 시기를 잡지 못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결정을 내리려면 지금 여기서 결정을 내려야만 되었다. 나는 화면에 표시된 알림문구를 한참 바라보다가 이윽고 아니요를 눌렀다.

‘……다시 원점인가.’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떤 종족을 무엇으로 전직을 시키느냐는 것이었다.

‘오십 명 이상 보유하고 있는 종족은 타락한 요정과 고블린뿐이니까, 무조건 이 중에 하나를 골라야 되는데…….’

솔직히 말해서 두 종족 모두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종족 모두 병과 전직을 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현실적인 문제인 것이다. 나는 던전의 안전에 좀 더 도움이 되는 쪽으로 생각해보았다.

‘……역시 전투 계열이 낫겠지.’

이렇게 생각하자, 고블린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물론 타락한 요정의 전직 병과인 레프러콘도 전투 계열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요정이라는 특성상 마법사 쪽일 확률이 다분했다. 이건 내가 원하는 전투 계열이 아니었다.

나는 좀 더 튼튼한 쪽을 원했다. 그래야지 생존 확률이 더 올라갈 것이 아닌가? 애당초 모든 게임의 기본은 체력이었다. 체력이 뒤받쳐주지 않으면 풍선처럼 펑 터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내 던전이 그런 식으로 허무하게 무너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고블린’을 선택하셨습니다.]

[현재 ‘고블린’은 ‘홉고블린’ 과 ‘레드 캡’으로 전직이 가능합니다.]

[전직을 진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이 물음에 나는 곧바로 네를 눌러서 전직을 진행했다. 그러자 곧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고블린의 병과 전직을 선택해주세요.]

[주의. 최대 50 마리까지 전직이 가능합니다.]

[홉고블린 / 레드 캡]

역시 내 예상대로 최대 50 마리까지만 전직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곧바로 레드 캡을 선택했다.

[고블린의 병과 전직 ‘레드 캡’을 선택하셨습니다.]

[병과 전직을 진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내 예상이 맞다면 이게 마지막 선택지일 것이다. 나는 차분히 숨을 고른 뒤에 네를 눌렀다. 그러자 일순 화면에 밝게 빛나더니, 이윽고 폭죽이 터지는 영상과 함께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음을 알려주는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고블린의 병과 전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고블린 50 마리가 레드 캡 50 마리로 병과 전직했습니다.]

이처럼 고블린을 레드 캡으로 병과 전직 시켜놓으니 한결 후련해졌다. 물론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했다. 만약에 시간이 좀 더 넉넉하게 있었다면 다른 종족들도 인원을 50까지 늘려서 병과 전직을 고려해보았을테니 말이다.

‘이게 아라크네나 코카드리유였다면…….’

정말 엄청나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온 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결정을 하고 난 뒤였다. 이제 와서 아쉬워 해보았자 소용없었다. 지금은 그저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남은 종족의 인원을 50까지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아라크네에게 동족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물어봐야 될 듯이 싶었다.

이리 생각을 끝마친 나는 유리잔 안에 들어있는 얼음 하나를 입 안에 털어 넣은 뒤에 아그작 씹어 먹었다.

“오빠.”

그 때, 멍 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지현이가 나를 불렀다. 이에 나는 스마트폰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왜?”

“은하하고 어떻게 할 거에요?”

“은하?”

“네, 은하요.”

지현이가 다시 한 번 더 강조했다.

나는 이번에도 얼버무릴까 싶었다. 앞서 말했듯이 지현이한테 이 일을 상담하는 건 그리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애당초 지현이는 은하와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런 지현이한테 은하와 헤어질 생각이라고 말한다? 뺨 맞는 건 물론이고, 어떻게든 나와 은하를 이어주려고 할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내 마음이 바뀌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귀찮아 지게 될 것은 틀림없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에 지현이가 집요하게 내 얼굴을 쫓으며 시선을 보내왔다.

“……이번에는 얼버무리지 마요.”

“…….”

“솔직히 말해서 방금 전에도 은하에 대한 거, 고민하고 있었죠?”

이번에는 꽤나 직설적으로 물어오는 지현이다. 나는 이걸 어떻게 맞받아쳐야 될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실은 은하와 헤어질 생각이야. 서연이 누나와 계속 사귈 거야. 난 서연이 누나하고 결혼 할 생각이야. 우린 진지하게 사귀고 있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그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쩐지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글쎄.”

“은하한테 상처 주지 마요.”

이번에도 제법 세게 나오는 지현이다. 이에 지현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이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와 같은 장난기 많은 미소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나도 덩달아 심각해지고 말았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입가를 손으로 주무르며 대답했다.

“나도 노력하고 있어.”

이러한 내 말에 지현이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 유 서연이란 여자, 완전 민폐잖아요.”

“…….”

“처음에 오빠를 보자마자 변태로 몰아붙였다면서요? 거기다가 자기 멋대로 오빠 집까지 뒤지고……! 게다가 오빠가 병원에 입원했었던 것도 전부 다 그 여자 때문이라면서요?”

어디서 들었는지, 서연이 누나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지현이다.

나는 복잡한 마음에 유리잔 안에 들어있는 얼음을 하나 더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좀처럼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답답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 좀처럼 적당한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오빠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여자랑 사귀는데요?”

“서연이 누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부족하다면 내 쪽이었다. 애당초 매니저 어플이란 것을 손에 넣지 못 했다면 나는 서연이 누나에게 말 한번 제대로 붙여보지 못 했을 것이다.

“은하가 오빠 엄청 좋아하고 있어요. 내가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걔가 저랑 만나면 가장 먼저 뭐부터 이야기하는 줄 아세요? 전부 오빠에 관한 거예요. 어제는 유현이 오빠가 뭘 했느니, 오늘은 뭘 했느니……. 그런데 애가 숫기가 없어서 오빠한테 제대로 표현하지 못 했을 뿐이에요.”

지현이의 말을 듣고 나니, 은하가 그 동안 나를 얼마나 좋아했었던 건지 짐작이 되었다. 만약에 이 이야기를 좀 더 일찍 들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은하에게 다가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이제 와서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나는 서연이 누나와 사귀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은하가 나를 좋아하고 있는 만큼 서연이 누나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건 따로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현아, 너도 알잖아.”

“어제 은하, 엄청 울었어요.”

“알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애당초 그 날, 카페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서 지켜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불쌍하지도 않아요?”

“불쌍하다고 해서 서연이 누나하고 헤어지고, 은하하고 사귈 수는 없잖아.”

“왜 안 되는데요?”

“그건…….”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꿀꺽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서연이 누나하고 먼저 사귀었으니까.”

========== 작품 후기 ==========

현실 하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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