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15화 (315/599)

<-- [던전 디펜스] -->

∴ ∵ ∴ ∵ ∴

던전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아직 중요한 게 더 남아있었다.

‘은하한테는 뭐라고 말해야 되지?’

서연이 누나한테는 자신만만하게 말해두었지만, 실상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이제 곧 은하와 얼굴을 마주치게 될 텐데, 지금 내 머릿속은 새하얀 백지처럼 깨끗한 상태였다. 이대로 아무런 대책 없이 시간을 보낸다면 분명 은하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오늘 밤에 서연이 누나한테 또다시 시달릴 것이 틀림없었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뭔가 할 말을 준비해야 될 텐데…….’

은하의 고백을 거절하기 위한 좋은 말들을 필사적으로 떠올려보지만, 좀처럼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은하네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며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오빠, 뭐해요?”

그 때, 내 뒤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양 갈래로 나눠 묶은 긴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지현이가 서있었다.

여전히 성실하게 가장 먼저 나와서 연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머리털을 쥐어뜯던 양 손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밥 먹었어?”

“지금부터 먹으려고요.”

장난꾸러기마냥 히히 웃으며 내 팔을 꽉 끌어안는 지현이다. 보아하니 밥을 사주었으면 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때 보면 아주 산적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면 주변에 친구가 은하 밖에 없어서 부담이 안 가는 귀여운 산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달라고?”

“그럼 안 사주려고요?”

지현이는 능글스럽게 웃으며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들어 대었다. 그 모습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나는 내 팔에 매달린 지현이를 억지로 떼어낸 뒤에 근처 샌드위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현이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꺅꺅대며 나를 따라 샌드위치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다음, 나보다 먼저 자리에 앉은 뒤에 지현이는 제멋대로 샌드위치를 고르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분명히 사준다고 한 적이 없을 텐데 말이다.

“내가 샌드위치를 사준다고 했었나?”

“에에? 그럼 안 사주려고 했어요?”

실망한 기색이 가득해보였다. 그 모습에 쿡쿡, 웃음을 터트린 나는 ‘알았어, 사줄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제야 활짝 웃으며 자기가 먹을 샌드위치를 고르는 지현이다. 물론 나 또한 먹을 샌드위치와 음료를 골랐다.

“이거랑 이거 주시고요. 음료는 오렌지 주스로 주세요.”

이처럼 주문이 끝나자, 지현이는 두 다리를 쭉 뻗으며 앙증맞을 정도로 작은 손으로 주물럭거렸다. 보아하니 아침 일찍 나와서 연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내 입을 열어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이런 내 물음에 지현이는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응? 아, 내 말은……. 연습하기로 한 건, 1시였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나와서 연습하는 거야?”

“아아…….”

내 질문의 요지를 깨달은 지현이는 그제야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그녀는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은하하고 예은한테 짐이 될 순 없잖아요.”

“짐이라니?”

“그거……. 오빠도 알잖아요. 은하하고 예은이 실력이 부쩍 늘어난 거요.”

“…….”

“근데 저는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고……. 게다가 이것도 따지고 보면 제가 애들을 꼬신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더 못 하면 어떡해요?”

곤란하다는 듯이 하하 웃은 지현이는 편하게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잘 해보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안함이 몰려왔다.

지금 이 순간, 지현이가 이런 부담감을 가지게 된 원인에는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내가 은하와 예은이의 능력치를 올리지만 않았다면 여전히 지현이가 압도적인 우위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지현이가 유일하게 앞서고 있는 것은 자신감과 우월한 미모였다.

목소리는 은하가, 춤은 예은이가 지현이를 추월한지 오래였다. 그것도 까마득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줘야 될지 고민하다가 이윽고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너무 부담가지지 마. 그리고 은하하고 예은이가 그런 거 가지고 신경 쓸 애들은 아니잖아.”

이러한 내 말에 지현이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내 쪽으로 고개를 쭉 내밀며 생글생글 웃었다.

“매니저라고 지금 저 멘탈 관리해주는 거예요? 기특한데요? 특급 칭찬이라도 해드릴까요?”

어디서 본 것은 있어가지고, 불쑥 오른손을 내밀어 내 머리를 가볍게 토닥여주는 지현이다. 그리고 그 행동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가만히 그 손길을 느끼다가 이내 고개를 뒤로 빼었다. 이에 지현이는 뭔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이윽고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빠, 아까 전에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었던 거예요?”

“…….”

그 물음에 나는 잠시 무어라 대답할지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말해서 있는 그대로 ‘은하의 고백을 어떻게 거절할지 고민 중이었어.’라고 대답한다면 한결 속이 시원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현이는 은하와 둘도 없이 친한 친구였다.

지현이에게 있어서 유일한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지현이한테 이런 상담을 한다고? 뺨 맞기에 딱 좋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이것저것?”

“그냥 이것저것이 뭔데요?”

“그냥 있어.”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종업원이 우리가 주문한 샌드위치와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이에 나는 ‘얼른 먹자.’라고 말을 한 뒤에 샌드위치를 잡고 먹었다.

한입 베어 물자, 아삭아삭한 양상추와 토마토 그리고 짭조름한 햄 맛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건데, 나쁘지 않았다. 언제 한 번 서연이 누나와 같이 와서 먹어야 될 듯이 싶었다.

‘응?’

이처럼 샌드위치를 먹는데, 불현듯 쩝쩝거리며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지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이지, 생긴 건 천생 여자애인데 하는 행동은 그야말로 선머슴이 따로 없었다. 음, 확실히 이렇게 보니 산도적이 따로 없었다.

쯧쯧, 혀를 찬 나는 손으로 지현이의 입술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었다.

“무슨 애도 아니고, 뭘 그렇게 묻히면서 먹냐?”

“어? 아…….”

내 행동에 깜짝 놀란 모양인지, 지현이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쩝쩝 소리를 내며 샌드위치를 씹던 입이 그대로 멈추었다. 그 모습에 나는 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핥아먹으며 입을 열었다.

“얼른 먹으라고 안 보챌 테니까, 천천히 먹어.”

이러한 내 말에 지현이는 우물쭈물 거리다가 ‘아, 네……. 죄송해요.’라며 답지 않은 사과를 했다. 괜히 나까지 어색해지는 것만 같았다.

잠시 지현이와 내 손에 들린 샌드위치를 번갈아보던 나는 이윽고 남은 샌드위치를 한 입에 꿀꺽 삼키고는 음료를 꿀꺽이며 들이마셨다.

그 후, 뭘 할까 고민하던 나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혹시라도 무언가 새로운 메시지가 오지는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매니저 어플을 실행하자, 여러 개의 알림문구가 화면에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던전 퀘스트 ‘이바이크 백작 가의 영애’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병과 전직이 주어집니다.]

[병과 전직을 진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사용자의 명령을 받은 던전의 일원 ‘소피아’와 던전의 일원 ‘에나’의 성과를 보고합니다.]

[인간 476명 토벌]

[인간 2명 생포]

[성과를 정산합니다.]

[소피아는 현재 0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에나는 현재 4760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주의. 적들의 수준이 낮기에 경험치 획득량이 감소합니다.]

[에나는 현재 476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

던전 퀘스트가 완료된 것은 기쁘지만, 인간 476명 토벌은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 숫자가 뜬다는 말인가? 나는 확인을 누를 생각도 못 한 채 멍하니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샌드위치를 다 먹은 지현이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크흠, 헛기침을 하며 확인을 눌렀다.

“누구에요? 서연이 언니?”

살짝 가시 돋친 목소리였다. 친구의 연적은 자신의 연적이라는 건가……. 나는 잠시 지현이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태연하게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대답했다. 사실은 도로 주머니에 넣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괜한 의심만 더 받을 것 같아서 이리 행동했다.

“친구한테 카톡이 와서……. 그런데 왜?”

“아뇨, 그냥……. 오빠가 되게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있길래요.”

이리 대답한 지현이는 금세 흥미를 잃은 듯이 창밖을 내다보며 주스를 마셨다. 그 모습에 내심 안도의 숨을 내뱉은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평상시처럼 스마트폰을 만지며 이번 던전 퀘스트의 보상을 살펴보았다.

[병과 전직을 시킬 부대를 선택해주세요. (0/50)]

[인간 (9/9) / 고블린 (83/83) / 리자드맨 (9/9) / 코카드리유 (1/1) / 아라크네 (1/1) / 타락한 요정 (112/112) / 코볼트 (21/21)]

‘병과 전직이라…….’

보아하니 원하는 부대를 선택해서 전직시킬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일단 실험삼아서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는 타락한 요정을 선택했다.

[‘타락한 요정’을 선택하셨습니다.]

[현재 ‘타락한 요정’은 ‘타락한 레프러콘’ 과 ‘타락한 하베트롯’으로 전직이 가능합니다.]

[전직을 진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레프러콘과 하베트롯이라…….’

레프러콘은 언제나 한쪽 구두만 만드는 구둣방의 요정이다. 주로 삼각 모자를 쓰고 가죽 앞치마를 두른 자그마한 노인으로 묘사되는데, 보통은 혼자 살며 한적한 곳에서 구두와 가죽신을 만든다고 전해진다. 다만 망치질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서 어디에 있는 지 쉽게 알 수 있다. 게다가 이 요정은 금단지를 숨겨두는데, 운 좋게 사로잡아서 잘만 붙잡고 있는다면 금단지를 숨겨놓은 장소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요정의 속임수에 말려서 놓치고 만다.

반면에 하베트롯은 실을 잣는 사람을 수호한다고 알려진 노파 요정이다. 매일 실을 잣기 때문에 실을 빼는 손이 물집투성이며, 실을 핥는 입술은 두텁고 보기 흉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흉한 외관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순박한 요정이다.

실잣기를 명령받은 젊은 처녀들에게는 큰 도움을 주며, 만약 실을 잣지 못 하는 처녀가 있다면 방법을 가르쳐주기까지 한다. 심지어 하베트롯이 직접 만든 셔츠를 입으면 병이 낫는다고도 한다.

‘……재밌네. 이런 식으로 전직이 되는 건가?’

살짝 기대가 되었다. 내 예상이지만 레프러콘의 경우에는 혼란 마법을 잘 쓰는 부대로 변할 것 같았다. 반면에 하베트롯의 경우에는 실 짜기라는 능력을 이용해서 아군에게 도움이 되는 옷이나 갑옷을 만들어낼 것 같았다. 아니면 치료 마법을 써주던가 말이다.

다만 부대 이름 앞에 ‘타락한’이라는 명칭이 붙은 만큼 반드시 치유 쪽보다는 저주 쪽에 가까운 확률이 다분했다.

나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아니요를 눌렀다. 그러자 다시금 처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일단 가장 많은 숫자를 보유하고 있는 건, 타락한 요정과 고블린들인데…….’

사실 마음 같아서는 아라크네나 코카드리유를 병과 전직시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개체를 전직시키자고 이 기회를 사용하는 건, 조금 아까웠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효율의 문제였다.

나는 턱을 괴고서 고민하다가 이윽고 고블린을 선택해보았다.

[‘고블린’을 선택하셨습니다.]

[현재 ‘고블린’은 ‘홉고블린’ 과 ‘레드 캡’으로 전직이 가능합니다.]

[전직을 진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홉고블린은 유럽의 민간전승에서 나오는데, 대게 퍼크 혹은 로빈 굿펠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대개의 고블린들이 그렇듯이 장난기가 많은데, 그 장난이 그리 심하지 않다. 게다가 한 컵의 우유를 주면 집안일을 도와주는 꽤 선량한 고블린이라고 볼 수 있다.

외관은 긴 꼬리를 가진 인간과 산양의 혼합 형태이다. 이 때, 당연히 하반신은 산양이고 상반신은 인간이다. 또한 몸집이 매우 작고 인간의 아이들과 닮았다. 하지만 내가 보유하고 있는 고블린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리 귀엽게 생기지 않을 확률이 다분했다.

그리고 홉고블린과 함께 전직 가능 병과로 떠오른 레드 캡은 보초병의 초소 등 피가 흘러 있는 곳에 출몰하는 고블린이다. 손톱이 길게 자라 있고 피로 물든 새빨간 모자를 쓰고 있다. 항상 자신의 모자를 사람의 피로 물들이고 싶어 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이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성서의 말을 외치거나 칼자루가 십자가 모양인지 검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딱 봐도 견적이 나오네.’

홉고블린은 전문 일꾼, 레드 캡은 전문 병사였다.

나는 컵 안에 들어있는 얼음을 입 안에 털어 넣으며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말해서 일꾼의 경우에는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애당초 만능 일꾼이라고 불리는 코볼트들이 스물두 마리나 있었으니 말이다. 설혹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인근의 고블린들을 좀 더 긁어모으면 그만이었다.

========== 작품 후기 ==========

고민이네요. 솔직히 말해서 전부 다 좋은 병과입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딱 그런 병과들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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