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14화 (314/599)

<-- [던전 디펜스] -->

‘이해 할 수가 없군.’

눈살을 살짝 찌푸린 소피아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의 의중을 짐작 할 수가 없었다. 대체 그는 무엇을 걱정하고 있다는 말인가?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에나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병사들을 쥐어 패며 길을 뚫고 있었다.

저건 미쳤다. 말이 안 됐다.

소피아는 속으로 그렇게 경악했다.

어떻게 사람의 손으로 금속으로 만들어진 방패를 찌그러트린다는 말인가? 아니, 단순히 찌그러트리기만 한다면 다행이었다. 에나라는 여기사는 그것도 부족하다는 듯이 금속으로 만들어진 갑옷을 마치 천으로 만들어진 옷을 찢듯이 간단히 찢어버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저건 괴물이었다. 헤레스의 병사들이 왜 에나를 보고서 괴물이라며 소리치는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저건 오우거보다도 더 했다. 만약에 전설 속의 용이 실제 한다면 저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가만…….”

용이라고? 소피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어쩌면 정말일지도 몰랐다. 실제로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바꾸어 여행을 다닌 용들이 존재했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옛 문헌에 수록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지금 와서도 그러지 말란 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물며 마왕의 정수라 불리는 마정석 파편이 대륙 곳곳에 뿌려져 있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래곤의 유희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아니, 내가 미쳤군. 내가 미쳤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피아는 절래절래 고개를 가로저으며 허황된 생각이라고 치부했다. 애당초 전설 속의 용은 질서와 수호의 존재였다. 마왕을 부활시키려하는 그를 드래곤이 도와줄 리가 없었다.

도리어 대륙의 안녕을 위해서 죽이려 들 것이 틀림없었다.

‘……모르겠군.’

급기야 소피아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이처럼 소피아가 두 손 두 발 다 든 사이에 일행은 어느덧 성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차남, 토니는 사뭇 감격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

“여기서부터는 지하수로를 이용합시다. 이바이크 백작 가의 자손들에게만 전해지는 비밀 통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걸 이용한다면 손쉽게 도시를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만약에 이게 외적들에게 성이 함락된 상황이라면 더없이 훌륭한 선택지였다. 애당초 비밀 통로라는 것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대비책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것은 내전 상황이었다.

차남인 토니가 비밀통로를 알고 있는데, 장남인 헤레스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소피아는 당장에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윽고 포기했다. 어차피 여기서 비밀 통로를 이용하다가 헤레스의 병사들과 마주치게 된다고 하더라도 에나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여기서 비밀통로를 이용하지 않으면 성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에게 뇌물을 주던, 죽이든 해서 지나가야만 되었다. 결국 상황만 번거로워질 뿐이었다. 때문에 소피아는 얌전히 입술을 꾹 다문 채로 토니를 쫓아 걸음을 옮겼다.

“이쪽입니다.”

토니는 한적한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선 뒤에 보도 한 장을 들어 옆으로 밀었다. 그 밑에 있는 것은 어두컴컴한 구멍이었다. 토니는 ‘발밑을 조심하십시오.’라고 말한 뒤에 먼저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소피아가 뛰어 들자, 첨벙 하고 발밑에서 물이 튀었다. 하지만 앞서 토니가 주의를 준 덕택에 넘어지는 일 없이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소피아가 들어오자, 열 명 남짓한 가신들이 차례로 아래로 내려왔다. 에나는 마지막까지 주변을 경계한 뒤에 사방에 적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보도로 원래 자리에 놓으며 아래로 내려왔다.

놀라운 재주였지만, 그 누구도 감탄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하긴 강철로 만들어진 방패를 손으로 간단히 찌그러트리는 여기사였다. 이 정도도 못 하는 것이 도리어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서둘러 이동합시다.”

어둠이 점령한 지하도 안에서 토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양 손을 뻗어, 벽을 더듬더듬 짚어보더니, 이윽고 한쪽 벽면에 준비되어 있던 램프를 꺼내들었다. 그 후, 램프에 불을 붙이자, 어두워졌던 지하도가 삽시간에 밝아졌다.

토니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모두가 지하도 안으로 들어와 있음을 확인하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때, 가신들이 자신들이 앞장서겠다고 말했으나, 토니는 오직 자신만이 길을 안다는 이유로 점잖게 사양했다.

그리고 확실히 지하도는 복잡했다. 얼기설기 이어져 있었으며 지금은 더 이상 쓰지 않는 지하수로도 보였다. 아마도 지금 소피아가 걷고 있는 이 통로 또한 버려진 지하수로 중에 하나일 것이 분명했다.

소피아는 지금 이 길을 잘 외워두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이바이크 백작령에 방문하게 되었을 때, 요긴하게 쓸 생각에서였다. 특히나 현재 던전에는 이바이크 백작과 영애가 있었다.

그들이 던전에 머물고 있는 이상, 언젠가 한번쯤은 여기로 다시 오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토니의 말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다행히도 헤레스의 병사들이 통로를 점령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소피아는 내심 안도했다. 이제 이걸로 끝난 것이다. 지하수로를 빠져 나가거든 토니와 작별 인사를 하고 에나와 함께 던전으로 돌아가면 되었다.

그럼 이제 이바이크 백작의 장남과 차남이 백작위를 두고서 서로 피 터지게 다투게 될 것이고, 던전은 안전해지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타났군.”

그 때,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지하수로 안에 울려 퍼졌다. 낯익은 목소리였다. 소피아는 자신이 잘 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소녀는 그만 두 눈을 찔끔 감고 말았다.

“……역시 쥐새끼처럼 잘도 빠져나왔군. 흐흐, 여기서 기다리길 잘 했어.”

헤레스의 집요함에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였다.

“혀, 형님…….”

토니가 이를 악 물며 자신의 형인 헤레스를 바라보았다. 이에 헤레스는 턱을 까닥거리며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수십 명의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사방을 둘러쌌다. 애당초 좁은 통로였기 때문에 포위망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네 녀석의 질린 명줄도 오늘로 끝이다.”

헤레스의 눈동자에 진한 살기가 서렸다. 반드시 토니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토니도 그걸 느낀 모양인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검을 뽑아들 뿐이었다.

두 형제가 여기서 결판을 내려고 하고 있었다.

‘안 돼……!’

반면에 소피아는 절망하고 말았다. 설마하니 헤레스가 이 정도로 주도면밀하게 나올 줄은 예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기껏 해봐야 비밀 통로에 병사와 기사들만 배치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소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헤레스는 자기가 직접 비밀 통로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소피아는 앞서 토니의 말에 반박하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소녀의 판단력이 많이 흐트러졌구나.’

마음 속 깊이 반성한 소피아는 지금 이 상황을 어찌 타개할지 생각해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상황은 헤레스와 토니의 입장에서만 좋았다. 이 둘이 어떤 식으로 결판을 내던지, 당장 여기서 내전의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었다.

소피아가 예상했던 긴 내전은 발생하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백작위에 오른 자가 누구 되었든 간에 백작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서 병사를 파견하려 할 것이 분명했다. 거짓이 들통 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소녀는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여기서 계획을 망칠 순 없다.’

겨우 얻어낸 기회였다. 여기서 완벽하게 해내야지 그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인 소피아는 서로를 증오 어린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는 두 형제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두 사람 모두 제압한다.’

다행히도 두 사람 모두 제압할만한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애당초 에나라는 여기사 한 명만 있어도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제압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이렇게 제압한 두 사람을 던전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마차가 필요하겠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재력으로든, 무력으로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차를 구해서 두 사람을 던전으로 데려간 뒤에 이바이크 백작과 똑같은 신세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던전 내에 오크가 없기는 하지만 고블린과 코볼트들이 남아있었다. 하다못해 리자드맨에게 시켜도 되었다.

어쩌면 아라크네와 코카드리유가 협력해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일 리가 있는 계획이었다.

어찌 보면 내전 계획보다 이게 훨씬 나을 수도 있었다.

“에나 경, 전부 제압하시오!”

결국 소피아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후후, 개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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