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13화 (313/599)

<-- [던전 디펜스] -->

“히르페 경이 한방에…….”

“쿨츠 경에 이어서 히르페 경까지……!”

다들 입이 떡 벌어졌다.

백작령 내에서 손에 꼽히는 기사 쿨츠와 히르페가 이름 모를 여기사의 손에 쓰러진 것이다. 그것도 주먹질 한 번에 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서도 안 되었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우,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괴물……. 괴물이야!’

헤르스의 병사들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냉정을 유지하는 자가 있었다. 앞서 에나의 손에 쓰러진 히르페 경의 부관이었다.

그는 재빨리 병사들을 다그치며 소리쳤다.

“르블 경과 이타크 경을 불러와라! 아니, 세르츠 경까지 불러와라! 지금 당장!”

저 이름 모를 여기사는 기사 한두 명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상대가 아니었다. 최소한 히르페 경과 비슷한 수준의 기사 세 명은 있어야 되었다.

부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여기사를 여기에 잡아둬야 해!’

만약에 여기서 저 여기사를 놓치게 된다면 앞으로 두고두고 골치 아파질 것이 틀림없었다. 가령 예를 들어, 저 이름 모를 여기사가 토니의 군대를 이끌기라도 한다면 그건 재앙, 그 자체나 다름이 없었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반드시 죽인다!’

부관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방패를 들어라! 버텨라! 버티는 거다!”

명령은 재빨랐으며 실행은 거침없었다. 병사들은 언제 혼란에 빠졌었냐는 듯이 방패를 치켜들고서 에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건 토니 쪽도 마찬가지였다. 토니를 포함한 가신들은 복도를 가득 채운 방패의 장벽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에나 경, 덕분에 한숨 돌리게 되었지만……. 이대로 시간이 끌리면 불리한 건, 이쪽입니다.”

“어떻게든 뚫고 지나가야 됩니다.”

이리 말한 가신들은 에나를 은근하게 바라보았다. 내심 에나가 저 방패병들을 뚫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모양이었다. 반면에 에나는 그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주먹과 땅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수많은 병사들과 기사들을 번갈아보았다.

‘너무 약해.’

맥이 빠질 정도로 약했다. 약간 허무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회의감이 드는 건 아니었다.

애당초 이건 에나의 주인인 유현에게 받은 힘이었다. 그게 싫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황송하다 못 해 황홀할 지경이었다. 지금도 그 날, 자신을 안아주던 유현 님의 손길을 떠올리기만 해도 흥분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의욕이 뚝 떨어졌다.

물론 이게 유현이 직접 내려준 명령이었다면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오히려 언제 명령을 내려주나 싶어서 안달이 났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현이 아닌 다른 이에게 받는 명령은 무언가 의욕이 떨어졌다.

이쯤 되니, 조금은 자신도 즐기고 싶어졌다.

‘……힘을 좀 더 빼야 될까.’

에나는 오랜 옛날, 기사가 되기 위해서 피땀 흘려 노력했었을 때를 추억했다. 매일 아침, 그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서 훈련을 시작했으며 밤늦게까지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리고 그 결과, 에나는 기사가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상대와 대련을 해야만 되었다. 비록 진검 승부는 아니었지만, 그것에 준하는 격렬한 대현이었다.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입가에 절로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가 참 즐거웠다.

“…….”

이처럼 에나가 추억에 잠긴 채로 옅게 웃음을 터트리자, 순간 병사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병사들은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으며 몸을 벌벌 떨었다.

“대체 저 여자가 왜 웃는 거야?”

“우릴 다 죽이려는 건가?”

“전부 죽이려는 거야! 우리를 먹잇감으로 보고 있다고!”

병사들이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지금 에나의 발치에는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심지어 다들 어디 한군데 부러지거나 불구가 된 채로 신음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웃는다? 미쳤거나 전투가 너무 쉬워서 웃는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병사들은 후자를 생각했다.

만약에 에나가 미쳤다면 이렇게 명령을 받고서 움직일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에나 경, 서둘러 길을 뚫으시오!”

그 때, 소피아가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 말소리를 들은 에나는 그제야 상념을 멈추었다. 더불어 너무 오랫동안 추억에 잠겼다는 것을 깨닫고는 절래절래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답지 않게…….’

유현과 항상 붙어 다니다가 이렇게 똑 떨어지니, 잡념만 늘어난 에나였다. 쓰게 혀를 찬 여기사는 방패를 치켜들고 있는 병사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처럼 에나가 접근해오자, 몇몇 병사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것이었다. 이를 본 부관이 재빠르게 소리치며 병사들이 자리를 이탈하지 못 하도록 막았다.

“죽을 각오로 막아라! 지원군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우리의 승리다!”

이처럼 부관이 병사들을 다독이자, 그제야 병사들의 동요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나의 걸음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사는 가볍게 속목과 발목을 풀어준 다음에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병사들의 방패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온다!”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동시에 병사들이 크게 함성을 터트리며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에나를 밀쳐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그녀가 원하던 바였다. 에나는 눈앞에 나타난 방패들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까앙!

“으아아악!”

“아악!”

마치 공성추가 성문을 세게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에나의 발에 걷어차인 병사는 그 힘을 이기지 못 하고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당연히 그 뒤에 서있던 병사들도 함께 휩쓸려서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순식간에 전열이 망가졌다.

에나는 볼링공에 맞아 쓰러진 볼링핀처럼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병사들을 슥 훑어본 뒤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병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퍽! 퍽!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애당초 노말 등급에 해당되는 병사들이 영웅 등급의 에나에게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에나의 주변에 있는 병사들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 막아!”

“으아악, 다가오지 마!”

병사들의 행동은 전부 제각각이었다. 어느 병사는 무기를 집어던진 채로 도망쳤고, 또 어느 병사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방패를 들어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걸 에나가 허락할 리가 없었다. 방패가 몸을 보호하든 말든 여기사의 주먹은 가차 없이 목적을 이루었다.

“바, 방패가 찌그러졌어!”

“방패로도 못 막는 걸, 어떻게 막으란 거야!”

“다 죽을 거야!”

에나의 주먹에 맞아 형편없이 찌그러진 금속 방패를 목격한 순간, 병사들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이건 이제껏 냉정을 유지하던 부관도 마찬가지였다. 히르페가 항상 버릇처럼 지휘관은 언제 어느 때나 냉정하고 침착해야 된다고 말했었다.

설령 적의 매복에 당할지라도 매복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태연하게 지휘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부관 또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에 항상 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이런 미친…….’

사람의 손이 무슨 철퇴도 아니고, 어떻게 맨주먹으로 방패를 찌그러트린다는 말인가? 이건 도저히 경악하지 않고는 배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부관은 혹시 이게 꿈은 아닐까 싶어서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았다.

그러나 이런 그의 기대는 여지없이 배신당하고 말았다. 뺨에서 얼얼한 통증이 여실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항복해야해.’

손발이 벌벌 떨려왔다. 부관은 에나의 주먹에 맞아 쓰러져 있는 병사들을 쳐다보며 이를 딱딱 부닥쳤다.

“하, 항복을…….”

이처럼 부관이 항복을 입에 담으려는 찰나, 그의 어깨 위로 묵직한 무게가 실렸다.

“후후, 난장판이로군.”

“이거 참 재밌는 일이야. 천하의 히르페가 한방에 당하다니…….”

“상당한 여걸이로군. 마음에 든다. 내 아내로 삼아주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부관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일찍이 병사를 보내 불러오도록 했던 르블 경과 이타크 경 그리고 세르츠 경이 서있었다. 이바이크 백작령이 자랑하는 최고의 기사들이었다!

“오오, 벌써 오신 겁니까?”

순간 부관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두려움이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그래, 이 세 명의 기사라면 충분히 이름 모를 여기사를 쓰러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부관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조심하십시오! 저 이름 모를 여기사는 이미 쿨츠 경과 히르페 경을 차례로 쓰러트렸습니다! 그것도 일격에 말입니다!”

이처럼 부관이 조언을 하자, 세 명의 기사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후후, 이 몸을 뭐로 보는 것이냐? 나는 철벽의 르블이다! 나를 맨손을 쓰러트릴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히르페조차 내 민첩함을 인정했다. 이 몸이 저 이름 모를 여기사에게 맞을 리가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저 여걸은 무조건 내 아내로 삼는다. 걱정마라.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할 테니.”

세 명의 기사 모두 과도한 자신감을 내비쳐 보이고 있었지만, 그 정도의 자신감을 내비쳐도 될 만큼 다들 한 가닥씩 하는 기사들이었다. 부관은 이들을 믿기로 했다. 애당초 이들마저도 저 이름 모를 여기사에게 당한다면 헤르스는 이미 망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 질 리가 없어! 세 명의 기사가 협력해서 공격하는 거다! 그래, 이걸 견뎌낼 인간이 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지!’

부관은 기대어린 시선으로 세 명의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처럼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기사들이 전장에 난입하자, 일순 에나의 손이 우뚝 멈추었다.

“…….”

여기사는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병사와 세 명의 기사를 번갈아보다가 이윽고 병사를 놓아주었다. 그러자 히익! 소리를 내며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는 병사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세 명의 기사는 에나의 앞에 우뚝 멈춰 섰다.

“나의 이름은 르블! 앞선 두 명과는 다르게 나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철벽이기 때문이다! 어디 한 번 나를 뚫어 보거라!”

“이름 모를 여기사여! 그대의 힘에 경외를 표시한다! 하지만 이 이타크가 장담하건데 그대의 공격은 결코 이 몸에게 닿지 않을 것이다!”

“셋이서 함께 공격하는 건 그리 탐탁지 않지만! 그러나 넌 여기서 끝나야 된다. 너는 나 세르츠의 아내로 삼아주마!”

세 명의 기사는 위풍당당하게 자세를 잡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잠시 검을 뽑을까 말까 고민하던 에나는 이윽고 그만두기로 했다.

“일단 하나.”

이리 말한 에나는 그대로 주먹을 내뻗었다.

콰직!

“컥!”

에나가 내뻗은 주먹이 르블의 안면에 꽂혔다. 그러나 앞선 기사들과는 다르게 그는 의식을 잃지 않고 신음성을 터트렸다. 확실히 철벽이란 이름에 걸맞게 뛰어난 내구성을 지니고 있었다.

에나는 내심 탄성을 터트리며 무릎으로 르블의 복부를 차서 허리를 꺾었다.

“……커헉!”

르블의 입 밖으로 헛숨이 터져 나왔다. 에나는 고개를 숙인 르블의 목덜미를 붙잡은 뒤에 벽에 손수 꽂아주었다.

콰직!

붉은 피가 사방에 튀었다.

“…….”

“…….”

이 모든 게, 불과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타크와 세르츠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철벽이란 이름을 받았을 정도로 맷집이 좋은 르블이 순식간에 제압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잡지 못 했다는 것이었다.

‘내, 내가 눈으로 쫓지 못 하다니…….’

‘이 여걸은 내가 감당하지 못 한다. 불가능. 살해당한다!’

남은 두 기사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러나 미처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에나의 주먹이 두 사람의 안면에 꽂혔다.

“……!”

저항할 틈도 없었다. 에나의 주먹에 복부를 맞은 이타크는 저 멀리 날아가 벽에 처박혔고, 세르츠는 안면을 맞아 코뼈가 형편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마치 어른과 아이의 싸움을 보는 듯했다.

세 명의 기사를 간단히 정리한 에나는 남은 병사들도 주먹을 때리며 하나씩 정리해 나아갔다. 그리고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본 부관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이젠 항복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도망치는 게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 끝났어. 망했어.’

부관은 에나가 휘두른 주먹에 맞아, 장렬히 기절했다.

그리고 이처럼 남은 병사를 모두 쓰러트리고서 길을 뚫어낸 에나는 손에 묻어있는 피를 창문 커튼에 슥슥 문대며 입을 열었다.

“길을 뚫었습니다.”

별 대수롭지 않단 목소리로 말하는 에나의 태도에 모두들 얼빠진 표정을 지어보이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소피아는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깊은 회의감에 빠졌다.

‘던전의 안전? 뭐? 던전의 안전……?’

이건 미쳤다. 말도 안 되었다.

‘……쟤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잖아!’

설령 수십만의 병사들이 던전으로 몰려든다고 하더라도 에나, 한 명만 있으면 모조리 막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소피아는 유현이 대체 뭘 걱정하고 있는 건지, 심층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소피아 : 그대여, 말해봐라! 대체 뭘 걱정하고 있는 것이냐?

김 유현 : 그냥?

소피아 : 그러니까 그 '그냥'이 대체 뭐란 말이냐! 드래곤이라도 되는 것이더냐?

김 유현 : ...

소피아 : 소녀는 미치겠다! 뭐라고 좀 말해봐라!

김 유현 : (현실로 도주)...

소피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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