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 디펜스] -->
“저게 가능해……?”
소피아는 저도 모르게 경악하고 말았다.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른이 넘어가는 병사들이었다.
어둠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소피아의 눈에 보인 병사의 숫자는 서른 명이 넘어갔다. 심지어 그 중에는 기사로 보이는 자들도 여러 명 보였었다.
그런데 그 많은 병사들과 기사들이 고작 1분 남짓한 시간에 제압당한 것이었다.
그것도 겨우 단 한 명의 여기사에게 말이다!
거짓말 같은 상황이었다. 경악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이건 소피아만이 아니었다. 차남인 토니를 보호하고 있던 가신들조차도 경악하고 있었다. 다들 하나 같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벌벌 몸을 떨고 있었다.
고마움보다는 압도적인 힘 앞에 겁에 질린 것이었다.
이건 소피아가 원한 상황이 아니었다. 소녀가 애초에 계획한 상황은 아슬아슬하게 차남, 토니를 구해내어서 상대로 하여금 고마움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함께 동고동락하여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인상을 남겨줘야만 되었다.
그래야지 토니가 소피아를 진정으로 믿고 의지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에나가 전혀 예상지도 못 한 압도적인 힘을 보여줌으로서 그 무게 추가 완전히 소피아 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자연스럽게…….’
소피아는 이를 악 물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여기서 발을 빼는 것도 우스웠다. 소피아는 서둘러 토니와 그 가신들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이 때, 일부러 호흡을 흐트러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래야지 다급히 왔다는 인상을 남겨줄 수 있지 않겠는가?
소녀는 능청스럽게 숨을 헐떡였다.
“하아, 토니 님……. 무사하셔 다행입니다.”
“오, 소피아 수도녀 님!”
이처럼 소피아가 가쁘게 숨을 토해내며 곁에 서자, 그제야 토니와 그 가신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더불어 몇몇 가신들이 그제야 자신들을 구해준 여기사가 소피아 수도녀의 호위 기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달려와 본 건데……. 제 판단이 옳았군요. 이게 다 아단트 여신님의 은덕입니다.”
이리 말하며 양 손을 가지런히 모아, 아단트 여신님의 은덕을 칭송하자 여기저기서 작은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보여주는 소피아의 모습이 순례 여행 중인 독실한 신자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독실한 신자만큼 선한 이미지도 또 없었다.
이걸로 토니와 그 가신들은 소피아가 이 일의 배후자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미소 지어보인 소피아는 천천히 손을 내리며 토니에게 말했다.
“……자, 이럴 게 아니라 어서 빠져나갑시다.”
“아, 네! 제가 길을 알고 있습니다. 어서 갑시다!”
소피아의 말에 토니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고는 휘하 가신들을 데리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소피아도 에나와 함께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뛰어가자, 토니를 찾아 성 내를 돌아다니고 있던 병사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토니를 찾았다!”
“저기 있다!”
헤레스의 병사들은 토니를 발견하자마자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병사들이 사방에서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방이 온통 적이었다.
이쪽은 열 네 명이 끝인데, 저쪽은 감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만약 여기서 시간이 더 끌리게 되면, 순식간에 적들에게 둘러싸이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쿠, 쿨츠……!”
그 때, 누군가가 경악 어린 비명성을 터트렸다.
“쿨츠라니! 그를 풀어주었다는 말인가!”
“세상에, 쿨츠까지……!”
토니를 비롯한 가신들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쿨츠! 그는 이바이크 백작령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이런 뛰어난 실력보다 더 앞서는 것은 바로 그의 포악한 성정이었다.
어찌나 포악하던지, 심심하단 이유로 아녀자를 강간하고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아무나 때려잡아 죽이기로 유명했다. 때문에 이바이크 백작이 그를 한 달간 지하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가 지금 이렇게 버젓이 나와 있다는 것은 헤르스의 가신들이 쿨츠를 풀어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이 개자식들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토니의 가신들은 분노에 부들부들 몸을 떨면서 에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힘들겠지.’
‘상대가 좋지 않아. 하필 쿨츠라니…….’
아무리 그녀가 뛰어난 기사라고 하더라도 쿨츠 앞에서는 한낱 가녀린 여성 밖에는 되지 않았다. 애당초 체격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쪽은 170 남짓한 키를 가진 여성에 불과한데 쿨츠는 190이 훌쩍 넘어가는 거구의 사내였다.
잠시 쿨츠와 에나를 비교하던 토니의 가신들은 곧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이 검을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소피아 수도녀 님! 토니 님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호위 기사와 함께 도망쳐주십시오!”
“저희가 길을 뚫어보겠습니다!”
이처럼 가신들이 용감히 앞으로 나서자, 일순 토니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그대들의 충심을 잊지 않겠소!”
이리 소리쳐 말한 토니는 소피아의 앞에 서며 소리쳤다.
“……소피아 수도녀 님! 저를 따라오십시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가슴 뜨겁게 만드는 사내들의 우정이었다. 하지만 소피아는 어쩐지 낯이 화끈거려왔다. 괜히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째서 부끄러움은 자신의 몫이라는 말인가! 소피아는 잠시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다가 이윽고 에나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토니가 가신들을 잃으면 곤란하다.’
충성스런 가신은 곧 영주의 힘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 열 명 남짓한 가신들을 모조리 잃게 된다면 그 힘이 대폭 꺾일 것이 틀림없었다. 즉, 내전이 예상보다 일찍 종결이 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바이크 백작의 자리에는 성정이 포악한 헤르스보다 온순한 토니가 올라야지, 던전의 안전이 보다 확고하게 보장될 것이 틀림없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소피아는 에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에나 경, 길을 뚫을 수 있겠는가?”
“뚫겠습니다.”
이리 대답한 에나는 곧바로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이처럼 여기사가 전장에 난입하자, 일순 가신들의 표정에 얼이 빠졌다. 다들 당황한 나머지 에나를 향해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뭐하는 건가! 당장 돌아가게! 여긴 우리가 막겠네!”
“쿨츠는 자네가 함부로 감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닐세!”
“헛되이 목숨을 버리지 말게!”
토니의 가신들은 한 목소리로 에나를 만류했다. 그러나 여기사는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이 어깨를 가볍게 풀더니, 이윽고 쿵쿵 소리를 내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쿨츠를 응시했다. 그리고 이런 에나의 시선을 받은 쿨츠는 마치 성난 짐승마냥 씩씩 대며 음흉하게 웃었다.
“크흐흐, 안 그래도 계집이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잘 됐군!”
무려 보름 만에 본 여성이었다. 쿨츠의 남근이 힘차게 발기하며 성을 내었다. 어서 빨리 저 여자를 범하라면서 말이다. 쿨츠는 혀를 길게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핥으며 에나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가슴은 좀 작지만, 상관없지! 어차피 쑤셔 박으면 그만이니까! 크하핫!”
이리 품평을 늘여놓은 쿨츠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우악스레 양 손을 쭉 뻗었다. 이대로 에나의 몸을 꽉 붙잡아서 범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쿨츠의 손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에나는 무심한 눈길로 상대를 쳐다보며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에나의 주먹이 쿨츠의 턱을 올려 친 순간, 턱뼈가 으스러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설마하니 이 정도로 주먹이 셀 줄은 몰랐었기에 쿨츠는 그만 자기 혀를 깨물고 말았다. 때문에 잘려나간 새빨간 혀 조각이 허공을 선회하며 바닥에 툭 떨어졌다.
물론 쿨츠의 육중한 몸 또한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
“…….”
일순 사방이 고요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기절한 쿨츠 쪽으로 향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천하의 쿨츠가 여성의 주먹에 맞아 기절한 것이었다.
고작 주먹 한 방에 말이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병사들의 온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하지만 에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이 헤르스의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고요한 폭풍과도 같았다. 에나가 주먹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병사들의 몸이 벽에 처박혔다.
“사, 살려줘!”
“도망쳐! 도망치라고!”
병사들에겐 악몽이었다. 단 한 명의 여기사에게 수십 명의 병사들이 유린당하는 것이었다. 물론 몇몇 병사들이 용감하게 들러붙어보았지만, 순식간에 제압당해 바닥에 처박혔다.
이 광경에 토니와 가신들은 전율했다.
저게 과연 사람이 맞다는 말인가?
“이게 무슨 소란이냐!”
그러던 중에 돌연 한 명의 기사가 크게 소리치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히르페 경!”
“히르페 경마저 헤르스의 편에……!”
“이럴 순 없어! 어째서!”
히르페라 불린 기사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헤르스의 병사들은 환호성을 터트렸고 토니의 가신들은 절망했다. 이건 산 너머 산이었다. 지금 상황을 말하자면 쿨츠는 어린애 장난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애당초 이바이크 백작의 명령을 받아 쿨츠를 지하 감옥에 처박아 넣은 것이 바로 히르페였으니 말이다!
“어째서……. 어째서 히르페 경! 어째서 형님을 따르는 것이오?”
히르페만큼은 자신의 편……. 아니, 적어도 중립을 유지할 거라 생각했던 토니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 울분 섞인 외침에 히르페는 무심하게 토니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자신의 검을 뽑아들며 대답했다.
“소신은 장남이 가문을 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언이……!”
“유언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딱 잘라 말한 히르페는 검 끝을 토니에게 겨누었다. 신장 216cm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엄청난 것이었다. 토니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가신들마저 온 몸을 으슬으슬 떨 정도였다.
‘살해당한다!’
‘죽는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왔다. 악몽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토니는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검을 보며 죽음을 예감했다.
이건 결코 피해갈 수가 없었다.
“그 간의 정을 생각해서 고통 없이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리 말한 히르페가 토니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순간, 에나도 발을 맞추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죽고 싶은가?”
일순 히르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질문을 받은 에나는 잠시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이리 말한 에나는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컥!”
막을 겨를이 없었다. 묵직하면서도 빠르게 날아온 주먹은 순식간에 히르페의 명치에 꽂혔다. 상대가 미리 예고를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응하지 못 한 것이었다! 심지어 상체에 둘러져 있는 단단한 갑주는 마치 종잇장처럼 찌그러지며 고통을 가중시켰다.
‘이, 이게 대체…….’
히르페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 자신의 명치를 때린 여성을 바라보았다.
강하고 아름다운 여기사였다.
‘……아름답구나!’
쿵!
의식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뚝 끊어졌다.
========== 작품 후기 ==========
역시 적은 서열대로 등장해야 재밌는 법이죠.
내가 서열 5위 쿨츠다! 크하하핫!
퍽!
내가 서열 4위 히르페다! 하하핫!
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