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11화 (31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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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소피아와 에나는 유현의 배웅을 받으며 마차에 올랐다. 소피아는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간만에 보는 바깥의 풍경이었다. 다만 돌길에 마차가 계속해서 흔들렸기 때문에 차분히 풍경을 감상할 수가 없었다.

소피아는 시선을 거두어 자신의 품에 들어있는 손수건을 만지작거렸다.

이 손수건 안에는 이바이크 백작의 영애, 레이첼의 머리카락이 담겨있었다. 이것이 영애의 죽음을 증명할 것이다. 이 시대에 귀족 영애의 머리카락은 곧 목숨을 의미하니 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소피아가 영애에게 머리카락을 잘라서 달라고 요구했을 때, 레이첼은 질색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왕의 힘인가.’

하지만 이처럼 질색하던 영애도 유현이 무어라 달콤하게 몇 마디 속삭여주자, 금세 미련 없이 머리카락을 잘라서 넘겨주었다.

그것도 한 움큼씩이나 말이다.

물론 누군가에는 고작 한 움큼일지는 몰라도 귀족 영애에게 있어서 이만큼의 머리카락은 천금보다도 귀한 것이었다.

소피아는 한 움큼의 머리카락을 건네받으며 유현의 능력에 재차 감탄했다. 그는 달콤한 혀를 가지고 있었으며, 모든 여성을 황홀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안에는 소피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달콤한 속삭임에 가슴이 얼마나 쿵쿵 떨렸던가?

“…….”

소피아는 갈색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했다. 지금은 마차 벽에 가려져서 안 보이지만, 마차를 이끌고 있는 여기사 또한 그의 여자였다. 분명 몸도 마음도 홀라당 넘어갔을 것이다. 실제로 몇 번이고 그를 향해 애틋한 시선을 보냈었으니 말이다.

문득 그의 매력이 어디까지 통할지 궁금해진 소피아였다.

반쯤 농담 삼아서 한 것이었지만, 그라면 소피아가 소개시켜주는 모든 공작 영애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후후, 짧게 웃음을 터트린 소피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불현듯 마차가 멈추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창밖을 내다보니, 열 명이 넘어가는 사내들이 마차를 포위하고 있는 게 보였다.

‘도적들인가.’

이바이크 백작 가의 마차임을 뜻하는 깃발이 걸려있음에도 도적들이 공격해오는 것을 보아하니, 이곳의 치안이 그리 좋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도적들이 개념을 상실했거나 말이다. 소피아는 이바이크 백작을 고문하는 와중에 얻어낸 금붙이를 꺼냈다.

아깝기는 했지만 여기서 몇 푼 아끼는 걸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깔끔하게 금붙이 하나 던져주고 계속 나아가는 편이 나았다. 소피아는 금반지 하나를 꺼낸 뒤에 마차 문을 열었다.

“이거나 먹고…….”

꺼져라고 말하려는 찰나, 소피아의 눈에 사방에 너부러져 있는 도적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방금 전까지 하더라도 음험한 표정을 짓고서 마차를 포위하고 있었던 도적들이었다. 그런데 십여 초도 되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소피아는 어처구니가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에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기사가 손을 툭툭 털며 입을 열었다.

“문을 닫아주시겠습니까?”

“그, 그래.”

소피아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지 못 했다.

이건 강해도 너무 강했다. 물론 상대가 일개 도적이라서 그런 것일도 모르겠지만, 열 명이 넘는 사내는 십 여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쓰러트리는 건 결코 쉽지 않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검을 뽑지도 않았다.

‘그 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소피아는 이전에 본 에나의 무위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비교 대상이 용병과 도적이었기 때문에 쉽사리 가늠할 수가 없었다. 결국 고민하기를 그만 둔 소피아는 조용히 잠을 청했다. 물론 잠을 자는 도중에 간간히 마차가 멈추기는 했지만, 처음에 그랬듯이 십여 초가 지나면 금세 출발했다.

소녀는 그렇게 안락한 호위를 받으며 이바이크 백작이 다스리는 도시에 도착했다. 늦은 저녁이긴 했으나, 이바이크 백작 가의 마차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귀빈 대접을 받으며 성까지 안내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성에 도착한 소피아는 병사들의 호위 겸 감시를 받으며 이바이크 백작의 첫째 아들 헤레스를 만날 수 있었다. 이바이크 백작의 부재중이니, 당연히 장남인 그가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게 맞는 일이었다.

그러나 둘째가 없는 자리에서 이바이크 백작의 유언을 보여주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만약에 이 자리에서 유언을 들려주었다가는 감금은 물론이고 살인 멸구를 위해 뼛조각 하나까지 태워질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미색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약에 절여져 사창가로 팔려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소피아는 헤레스에게 말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이바이크 백작님의 둘째 아드님도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소피아의 요구에 헤레스는 탐탁지 않아 했으나, 아버지의 마차를 타고 온 소녀였기 때문에 순순히 응했다. 게다가 예법이라던가 말투에서 귀하게 자란 티가 풀풀 나고 있었다. 물론 옷차림이 다소 추레하기는 했으나, 몸에 베여 있는 귀티가 그것을 가리고도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만 기다리시죠.”

헤레스는 소피아의 요구대로 동생인 토니도 불러왔다. 그리고 이처럼 두 아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소피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레이첼의 머리카락이 담겨 있는 손수건과 이바이크 백작의 가주를 상징하는 반지를 꺼냈다.

이 순간, 헤레스와 토니 그리고 가신들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이, 이게 대체……! 아버님과 레이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오!”

“어서 말하시오! 이것들이 전부 뭔가!”

득달 같이 달려드는 두 사내의 태도에 소피아는 짐짓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두 분 다 진정하시죠.”

조용히 다그치는 말이었지만, 그 말에는 묘한 힘이 실려 있었다. 순식간에 두 남자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걸 본 소피아는 큼, 하고 기침을 한 뒤에 반지에 저장되어 있는 마법을 개방했다. 그러자 곧 푸른색 보석을 통해서 이바이크 백작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헤레스, 토니. 너희들이 내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내가 죽은 이후겠지.

“아, 아버지…….”

차남, 토니의 입술 사이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의 유언과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토니는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반지를 통해 흘러나오는 유언을 경청했다. 반면에 장남, 헤레스는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 순간 속으로 환호했다.

드디어 자신이 영지를 물려받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죽은 건, 분명 슬픈 일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영주가 된 것은 기쁜 일이었다. 실제로 이 날을 얼마나 꿈꿔왔던가? 헤레스는 당장에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환호성을 꾹 참으며 유언을 들었다.

-동굴 안에 숨어있던 고블린들을 모조리 죽이는데 성공한 이 아비는 레이첼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기쁨을 만끽한 순간, 콜록콜록! 고블린들이 수풀 속에서 쏟아져 나오더구나! 아차 싶었지! 하아, 서둘러 레이첼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지만 나의 충성스런 기사 다밀 경이 쓰러지는 순간 병사들이 모조리 죽고 말았다.

이 순간, 모든 가신들이 탄식을 터트렸다.

-콜록콜록! 레이첼도……. 크으윽! 커헉! 하아, 결국 나 또한 큰 부상을 당해서……. 그나마 여기서 소피아 수녀님을 만나서 이렇게 말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수녀라는 말에 헤레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쩐지 귀티가 난다 싶었더니 수도녀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순례 여행을 다니는 모양이었다.

기실 순례 여행은 꼭 신앙심에 눈을 뜬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유민 여성은 물론이고 귀족 영애들도 자주 다닌다.

더욱이 호위로 붙은 여기사가 있다고 하니, 순례 여행 중인 어느 가문의 영애일 것이 틀림없었다.

-나 이바이크 백작은……. 하아, 내 후계자로 차남 토니를 선택하겠다. 토니, 네가 이바이크 백작 가를 올바르게……. 커흑! 올바르게 이끌어가거라. 하아.

이처럼 말이 끝남과 동시에 푸른색 보석에서 뿜어져 빛이 사그라졌다. 유언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이바이크 백작의 자리에 차남, 토니가 앉게 된 것이었다.

“이럴 순 없다!”

“형님?”

당연하게도 장남, 헤레스가 크게 반발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순리대로라면 마땅히 헤레스가 물려받아야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유언에는 후계자로 차남, 토니를 언급하고 있었다. 헤레스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유언은 무효다! 이런 엉터리를 믿을 수 없다!”

헤레스는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들 것처럼 씩씩 거렸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태도에 가신들이 재빨리 토니의 곁에 서며 소리쳤다.

“이건 틀림없이 영주님의 유언입니다.”

“진정하시지요, 헤레스 님.”

“그렇습니다! 불합리하다 하더라도 이건 분명 영주님의 유언입니다.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대다수의 가신들이 토니를 감싸 돌자, 순간 헤레스의 눈이 돌아갔다.

“이 새끼들이……!”

화를 참지 못 한 헤레스가 검을 뽑자, 가신들 또한 검을 뽑아서 그를 상대했다. 이 때, 토니가 어떻게든 말로서 헤레스를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그 말이 제대로 전해질 리가 없었다. 오히려 승자의 비아냥거림처럼 들릴 것이 틀림없었다.

“으아아아!! 다 죽여 버릴 거야!”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제압당한 헤레스는 자신의 방에 감금당했다. 그리고 가신들은 차남, 토니를 영주 직위로 올리기 위해서 준비를 서둘렀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마치 처음부터 예상했다는 듯이 말이다.

물론 토니는 이래서는 안 된다며 영주 직위를 장남인 헤레스에게 양보하기 위해 가신들을 설득해보았지만, 가신들 입장에서는 욕심 많고 성정이 급한 헤레스보다는 성격 좋은 토니 쪽이 훨씬 구미가 당겼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신들은 어떻게는 토니를 영주로 만들어 도장을 콱 찍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걸 얌전히 두고 볼 헤레스가 아니었다. 자신의 방에 감금된 헤레스를 이를 부득부득 갈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반전시켜보려 했다.

“토니, 그 개자식이 영주 자리에 오르는 걸 내가 그냥 두고 볼 것 같아? 거긴 내 자리라고……!”

하지만 좀처럼 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심복들에게 연락을 조금이라도 넣으려고 하면 병사들이 가로막았으니 말이다.

“빌어먹을!”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진 헤레스는 보다 과격하게 행동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병사들의 경비는 한층 더 두터워졌다. 그리고 그렇게 깊은 밤이 되자, 가신들에게 허락을 받은 소피아가 헤레스의 방을 방문했다.

소피아가 허락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순례 여행 중인 수도녀라는 사실과 자신이 직접 설득해보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단 겉보기에 소피아는 토니의 편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유언을 가져올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처럼 가신들의 허락을 받아, 헤레스의 방 안에 들어선 소피아는 술에 잔뜩 취해있는 그의 앞에 마주앉았다.

“백작위가 탐나지 않습니까?”

“하! 당연히 탐나지!”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충복들에게 보낼 편지를 제게 주십시오.”

이러한 소피아의 말을 듣는 순간, 헤레스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껏 들이켰던 알코올이 모조리 증발하는 듯했다.

‘혹시 이 년이 수작을 부리는 거 아냐?’

아주 잠깐 이런 의구심이 들었지만, 헤레스는 금세 그 의심을 거두었다. 어차피 여기서 의심한다고 한들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은 도박이었다! 헤레스는 그 즉시, 충복들에게 보낼 편지를 적어서 소피아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받은 소녀는 곧장 헤레스의 충복들에게 가서 편지를 주었다.

그리고 이처럼 편지를 전달받은 충복들은 그 즉시 병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 수가 무려 일백에 달했다. 헤레스의 충복들은 일백에 달하는 병사를 데리고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나갔다.

성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죽여!”

“토니를 찾아! 반드시 죽여야 한다!”

헤레스의 충복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서 토니를 찾아다녔다. 만약에 여기서 차남이 살아남아 성을 빠져나가기라도 한다면 골치가 아파지기 때문이었다. 다들 목숨을 걸고서 찾아다녔다. 물론 헤레스 또한 미친개마냥 검을 들고 뛰어다녔다.

한편 소피아는 잠시 방에 두었던 에나를 호출한 뒤에 토니의 방을 찾아갔다. 여기서 토니가 살아야지, 본격적으로 내전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것과는 도저히 비교도 안 되는 그런 엄청난 전쟁이 말이다.

“아악!”

그 때, 저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몸을 돌린 소피아는 서둘러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토니를 보호하고 있는 가신들과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수십에 달하는 적들에게 둘러싸인 상태였다.

그걸 본 소피아는 서둘러 에나를 바라보았다. 이에 여기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하고는 곧장 내달렸다. 그리고 토니의 가신 중에 한 명이 도끼에 맞아 죽기 바로 직전, 주먹을 내질렀다.

퍽!

에나가 휘두른 주먹이 상대방의 코뼈를 무참히 으스러트렸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저 멀리 날라버리기까지 했다.

그 광경이 일순 사방이 조용해졌다. 주먹으로 사람을 쳐서 날려버리다니……! 이건 듣도 보도 못 한 광경이었다.

“…….”

“…….”

다들 그만 넋을 빼고 말았다. 그러나 여기사는 그런 시선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빠르게 주먹을 휘둘러서 수십 명에 달하는 병사들을 쓰러트렸다.

한 방에 한 명씩.

그렇게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에나의 주변에는 수십 명의 사내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 작품 후기 ==========

소피아의 안락한 여행길.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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