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10화 (310/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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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이라는 말에 레이첼의 표정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언이었다. 일반적으로 유언이라고 하면 죽음을 앞둔 사람이 남기는 말이었다. 제아무리 가족에게 버려졌다고는 하지만 막상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 누구도 무덤덤할 수가 없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니까.’

나는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영애의 다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진정시켜주었다.

“유언이면……. 백작이 죽기라도 한 겁니까?”

“죽는다?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방금 전에 소녀가 말하지 않았는가? 백작은 지금 오크들과 즐겁게 성교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이다.”

“그럼 이건 대체 뭡니까?”

나는 소피아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있는 반지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리고 이런 내 물음에 소녀는 반지의 중앙에 박혀있는 큼지막한 푸른색 보석을 슬슬 문지르며 대답했다.

“이바이크 백작의 유언이 담긴 반지다. 아아, 그렇군. 소녀의 설명이 부족했다. 다음부턴 주의를 기울이겠다.”

“설명이 부족했다니요?”

“소녀의 계획은 이러하다.”

크흠, 헛기침을 한 소피아는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로 나와 레이첼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이바이크 백작은 자신의 딸, 레이첼을 구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백작은 그만 큰 부상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결국 생명이 위독해진 백작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이 반지에 유언을 남기는 것이다. 자신의 둘째 아들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말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간단하게 말해서 서로 싸움을 붙이는 것이다. 첫째와 둘째를 말이다.”

“그걸 한다고 해서 무슨 이득을 볼 수 있습니까?”

“던전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던전의 안전을요?”

이바이크 백작의 둘째 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하는 것이 던전의 안전과 대체 무슨 관계라는 말인가? 나는 삐걱삐걱 대는 머리를 흔들며 소피아를 펴다보았다. 그리고 이런 내 시선에 소녀는 자신만만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 현재 그대는 던전의 안전을 보장받고 싶은 게 아닌가? 더욱이 영애를 여기에 둔 채로 말이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영애를 이곳에 두면서 이바이크 백작 가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역시 백작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녀가 볼 때, 백작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혹 설득한다고 하더라도 풀려난 백작은 십중팔구 다시 공격해올 것이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로 말이다.”

“그렇지요.”

“때문에 백작을 풀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유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때, 첫째 아들이 백작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백작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서 병사를 보낼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여기서 그대는 영애를 내어주기 싫다고 했으니, 영애 또한 백작과 함께 죽은 것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그럼 일이 어찌 될 것 같은가? 분명 백작 가에서 보낸 병사들이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백작의 시신은 둘째치더라도 영애의 시신 또한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

“단언컨대 백작은 다시금 이곳으로 병사들을 보낼 것이다.”

소피아의 설명을 들으니,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

“그걸 막기 위해서 둘째를 후계자로 지목하자는 겁니까?”

“그렇다. 차기 백작으로 낙점되어 있던 첫째 아들이 어느날 갑자기 둘째 아들에게 가주 자리를 빼앗기면 어찌 될 것 같은가? 물론 첫째 아들이 순순히 유언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랫사람들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은가? 첫째와 둘째는 자의든 타의든 서로 다툴 수밖에 없다. 결국 백작의 시신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첫째와 둘째는 후계 자리를 두고서 서로 다투게 되겠지.”

“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정말로 훌륭했다. 아주 뛰어난 계책은 아니었지만, 소피아의 계책은 내가 원하는 것을 전부 충족시켜주고 있었다. 레이첼과 이바이크 백작을 계속 이곳에 두면서, 더 이상 이바이크 백작 가의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가?”

“마음에 쏙 듭니다. 그런데 이게 계획대로 잘 풀릴까요?”

“소녀 또한 그 점이 걱정된다. 때문에 그대에게 한 가지 허락을 구하고자 한다.”

“무엇을요?”

“소녀가 이 반지를 직접 이바이크 백작 가에 전달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으면 한다.”

“직접이요?”

“혹여 소녀가 도망칠까봐 걱정되는 것이라면 그대가 함께 가도 좋다. 아니면 감시인을 따로 붙이더라도 상관없다.”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소피아의 말에 나는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제가 반문했던 건, 소피아 씨가 순수하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틸다를 데려가면 충분하니 말이다.”

확실히 마틸다라면 걱정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여성의 몸으로 용병단을 이끌던 그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마틸다는 엘레노아와 함께 이 던전을 총괄하고 있는 살림꾼이었다. 그녀가 빠진다면 포로들을 감시하는데 있어서 크든 작든 구멍이 생길 것이 틀림없었다.

특히나 이번에 병사 서른 명이 추가되지 않았던가?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윽고 에나의 존재를 떠올렸다.

‘확실히 에나라면 걱정이 없는데…….’

나는 소피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소피아하고 에나를 붙여둬도 괜찮을까?’

가능하면 내가 직접 소피아와 함께 가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곳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뱉은 나는 레이첼의 질 내를 찌르고 있는 남근을 빼낸 뒤에 입을 열었다.

“마틸다는 안 됩니다. 대신에 다른 사람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옷매무새를 고쳐 입었다. 이에 엘레노아와 레이첼이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그걸 본척만척 하며 그녀들의 옷까지 똑바로 입혀주었다. 그런 다음에 스마트폰을 들어 올린 나는 새로운 알림문구를 확인했다.

[엘레노아가 당신의 정액에 만족합니다.]

[엘레노아의 호감도가 2 상승했습니다.]

[70의 정기를 빼앗겼습니다. (누적 정기의 양 2695)]

[엘레노아가 절정에 달합니다!]

[엘레노아의 호감도가 1 상승했습니다.]

[레이첼이 당신과의 섹스에 황홀해합니다.]

[레이첼의 호감도가 2 상승합니다!]

[레이첼이 당신의 정액에 기뻐합니다! 임신을 기대합니다.]

[레이첼의 호감도가 5 상승합니다.]

‘뭐지? 왜 퀘스트 완료가 안 뜨는 거지?’

나는 혹시 뭔가 잘 못 된 건 아닌가 싶어서 확인을 누른 뒤에 한참을 기다려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보아도 던전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알림문구를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스마트폰의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이상해 보였을까, 엘레노아가 내 곁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러세요, 주인님?”

그 물음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이바이크 백작령까지는 어떻게 갈 생각입니까?”

이런 내 물음에 소피아는 푸른색 보석이 박혀있는 반지를 주머니 안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백작이 병사들을 이끌고 올 때, 타고 온 마차가 있다더군. 그걸 타고 갈 생각이다.”

“길은 알고 계십니까?”

“물론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소녀는 거의 대다수의 귀족들의 작위와 영지를 기억하고 있다.”

“그렇군요. 그럼 일단 마차가 있는 곳까지 가도록 하죠.”

이리 말한 나는 소피아와 레이첼 그리고 엘레노아를 데리고서 던전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것과 동시에 나는 에나를 던전의 일원으로 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해두지 않으면, 내가 현실로 돌아갔을 때 에나의 모습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에나를 던전의 일원으로 만드는 김에 레이첼도 일원으로 만들어 둬야지.’

이처럼 에나와 레이첼을 던전의 일원으로 만들자, 내 옆에서 걸음을 옮기고 있던 레이첼이 돌연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뭐, 뭐지? 갑자기 배가 부른 게…….”

두 눈을 깜빡이며 놀라움을 표시하는 영애의 태도에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맞춰주었다. 그러자 언제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냐는 듯이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며 내 품에 포옥 감기는 레이첼이다. 이에 한 번 더 안아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소피아를 에나와 함께 이바이크 백작령으로 보내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이처럼 한참 걸음을 옮겨 던전 입구에 도착하자, 짐마차 다섯 대와 호화스럽게 꾸며져 있는 마차 한 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이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에나를 불러내었다.

“에나 소환.”

이 말과 동시에 일순 내 눈 앞에 은발의 여기사가 나타났다. 그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주변을 먼저 살펴보고는 이윽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유현 님.”

“안녕하세요, 에나 씨.”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소피아를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타닥타닥 걸음을 옮기며 내 앞에 서는 소녀다.

“……오늘은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에나는 언제나처럼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역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나는 내 앞에 서있는 소피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소피아 씨와 함께 이바이크 백작령에 다녀와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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