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 엘프] -->
“오늘이요?”
“응, 바로 가고 싶어.”
누나는 생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많이 풀린 듯이 싶었다.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나이프와 포크로 스테이크를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썬 뒤에 누나 접시에 올려주었다.
“그럼 그렇게 할까요? 근데 피곤하지 않으세요?”
“괜찮아. 하나도 안 피곤해.”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마치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나조차도 설렐 정도였다.
“알았어요. 그럼 오늘 가요.”
“응, 얼른 먹자.”
이리 말한 누나는 내가 썰어준 고기를 한 입에 먹으며 행복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지금 당장 안아주고 싶었다. 만약에 내가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청혼했을 것이다.
나는 누나가 음식을 먹는 속도에 맞춰, 나이프와 포크를 놀리며 스테이크를 먹었다. 고기가 무척이나 부드러워서 먹기 좋았다. 특히나 스테이크 위에 뿌려진 붉은색과 검푸른 색의 소스는 무척이나 맛이 좋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누나가 아니었으면 이런 음식은 먹어보지도 못 했겠지.’
슬쩍 웃은 나는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참 음식을 먹던 누나가 살짝 눈초리를 올리며 나를 마주보았다. 그리고는 곧 슬쩍 웃으며 ‘왜?’라고 묻는 누나다. 마치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듯했다.
“그냥……. 맛있어서요.”
“언제는 맛없던 적이 있어?”
“하긴 그렇죠.”
서연이 누나의 핀잔에 실없이 웃음을 터트린 나는 마저 식사를 끝마쳤다.
그 후,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곧바로 차를 타고 남산으로 향했다. 시간은 어느덧 8시를 향해 가고 있는데,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그 사람들의 대부분이 남녀로 이루어진 연인들이었다.
“차로 더 못 들어가는 거야?”
“그런 것 같네요. 저기에 주차하고 걸어가죠.”
“흠.”
이런 내 말에 누나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듯이 짧게 침음성을 터트렸다. 그러나 남산에 가고픈 욕심이 더 큰 모양인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납득하고는 다른 차량들과 마찬가지로 빈자리에 차를 주차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해?”
“저기로 가면 되요.”
“와봤어?”
“아뇨,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죠.”
이리 말한 나는 누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넙죽 내 손을 붙잡으며 한걸음 내딛는 서연이 누나다. 기다랗고 부드러운 손가락이 내 손을 감싸자 기분이 살짝 들떴다. 더불어 주변 야경도 훌륭해서 데이트 코스로 더없이 좋게 느껴졌다.
“언제 검색했어?”
“누나랑 사귀고 나서요.”
나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왜냐하면 여긴 전 여자친구와 한번 와본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우는 잘 지내려나.’
나는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를 잠시 떠올렸다. 해외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평소 착실하던 그녀의 성격을 떠올려보면 분명 잘 지내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얼굴도 예쁘장해서 분명 무수히 많은 남성들에게 대시를 받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알콩달콩 사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시우하고 사귀던 것도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먼저 사귀자고 고백해놓고서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군입대였다. 군대에 입대한 나 때문에 시우가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우는 이런 내 말을 듣고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보고 ‘여자 친구도 못 믿는 병신 새끼.’라고 욕했다.
‘……그 때는 내 행동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병신 같은 짓이었다. 아니, 병신이었다. 남자친구로서 시우에게 정말로 못된 짓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나 마음씨 착하고 예쁜 애한테 말이다.
만약에 그 날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날 위해서 2년만 기다려달라고 바꿔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말은 쏟아진 뒤였고 결과적으로 나는 시우와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나는 지금 서연이 누나와 사귀고 있는 중이었다.
시우와의 일은 안타깝지만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금에 충실할 필요성이 있었다.
“알았어, 믿어줄게.”
누나는 새침하게 웃으며 내 옆에 찰싹 붙었다. 늘씬한 미녀가 내 곁에 찰싹 붙어서 아양을 떠니,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 손에 잡혀있는 누나의 손을 꼬옥 붙잡아주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고마우면 보답을 해줘야지.”
“어떻게요?”
“그건 네가 알아서 생각해야지.”
그 말에 나는 슬쩍 고개를 내밀어 누나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러자 양쪽 귀를 새빨갛게 물들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서연이 누나다. 그리고는 이윽고 화들짝 놀란 듯이 내 가슴팍을 거세게 두드리며 말했다.
“미쳤어?”
“왜요? 이마잖아요.”
“그래도…….”
삐죽 입술을 내민 누나는 들릴락 말락한 작은 목소리로 ‘이러면 반칙이잖아.’라고 중얼거렸다. 다행히도 보답이 된 모양이었다.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누나의 손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어서 가요.”
이러한 내 말에 누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남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조금 가파르긴 했지만 누나는 별달리 힘든 기색 없이 척척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혹시나 싶은 생각에서 누나의 허리를 받쳐주며 ‘업어줄까요?’라고 물어봤는데, 누나는 ‘필요 없어!’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딱 잘라 거절했다.
조금은 약한 척 해주었으면 하는데 말이다.
‘그 땐 참 귀여웠는데…….’
늑대에 물린 나를 끌어안고서 엉엉 울음을 터트리던 누나의 모습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한 번 더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인 이상 또다시 늑대에게 물리고 싶지는 않았다.
“뭘 그렇게 생각해?”
불쑥 누나가 내 손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나는 누나를 마주보며 대답했다.
“늑대한테 물렸을 때요.”
“그런 생각하지 마.”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는 서연이 누나다.
“왜요? 그 때, 누나 진짜로 귀여웠는데…….”
“난 심각했어. 네가 혹시 죽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싫어.”
내 말을 중간에 자른 누나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이에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어보이며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해가 완전히 저문 탓에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물론 조명이 켜져 있어서 어느 정도 밝혀져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는 우리를 따로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재빠르게 누나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일순 누나의 입술이 달싹이다가 이윽고 얼굴이 새빨갛게 잘 익은 사과처럼 변했다.
“미, 미쳤어?”
당황한 누나가 다시금 내 가슴을 투닥투닥 때렸다. 그러나 그다지 세지 않았다. 나는 태연하게 누나의 손을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
“얼른 가요.”
“야!”
“자물쇠 걸어야죠.”
이리 말하며 성큼 걸음을 내딛자, 뒤에서 작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나는 픽 웃으며 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걷자, 문득 남산 아래로 보이는 서울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형형색색으로 빛을 내는 야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우리는 잠시 야경을 구경하다가 이윽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얼른 자물쇠 사자.”
남산 타워가 보이자, 누나가 조금 들뜬 목소리로 나를 보챘다. 이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누나의 말대로 자물쇠를 사기 위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누나는 여러 종류의 자물쇠를 번갈아보다가 이윽고 하얀색 바탕에 붉은색 하트가 그려져 있는 자물쇠를 골랐다.
의외로 소녀 취향이었다.
조금 놀릴까도 싶었지만, 그랬다간 미움 받게 될 것 같았기에 꾹 참았다. 게다가 이렇게나 좋아하고 있는데, 괜히 초를 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는 누나를 데리고서 자물쇠를 거는 곳으로 향했다.
“와아…….”
순간 누나의 입술 사이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설마하니 이렇게나 많은 자물쇠가 난간에 달려있을 줄은 몰랐다는 태도였다. 하긴 나도 여기에 처음에 왔을 때, 놀람을 감추지 못 했었다. 쿡쿡, 웃음을 터트린 나는 자물쇠가 들어있는 포장을 뜯은 뒤에 입을 열었다.
“여기에 적고 싶은 말 적으세요.”
이리 말하며 자물쇠와 네임 펜을 건네주자, 누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윽고 자물쇠에 글자를 적었다.
[신부 유 서연, 신랑 김 유현]
“어때?”
다 적어 넣은 누나는 꽤나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게 물었다. 정말로 누나다웠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슬쩍 고개를 내밀어 누나의 이마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술을 맞췄다. 그리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좋네요.”
“그렇지?”
배시시 웃음을 터트린 누나는 내게 자물쇠와 네임 펜을 넘겨주었다. 이에 나는 무어라 적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백년해로 하게 해주세요.’라고 적어 넣었다. 원래는 ‘사랑해요, 누나’라는 문구를 적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결혼을 언급했으니 이쪽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도 내가 적은 게 마음에 든 모양인지, 흐뭇한 표정을 짓고서 어서 빨리 자물쇠를 걸자며 보챘다. 그리고 그 보챔에 얼른 고개를 끄덕인 나는 빈 공간에 자물쇠를 걸었다. 그런 다음, 열쇠는 자물쇠통에 집어넣었다.
========== 작품 후기 ==========
남산 타워 가실 때는 케이블카 이용하시면 보다 빠르게 가실 수 있습니다.
다만, 주말 같은 경우에는 대기 줄이 있기 때문에 어쩔 때는 걷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데이트를 하시는 거라면 역시 주변 경치 구경하면서 걷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