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 엘프] -->
“히익!”
내 물음에 요정은 무슨 귀신 보듯이 기겁하며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렸다.
그 모습에 나는 보란 듯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놀라고 그러십니까? 누가 보면 귀신이라도 본 줄 알겠습니다.”
“흐엉, 엉! 죄, 죄송합니다! 높으신 분을 감히 못 알아봤습니다! 엉엉!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급기야 꺼이꺼이 울음을 터트리며 내게 애원하는 요정이다.
‘어떻게 할까?’
나는 잠시 고블린의 손에 잡혀있는 요정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때, 키득키득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쯤 다들 죽었겠지?”
“당연하지! 그 분이 죽이셨을 거야!”
“죽었어! 시체를 먹자! 냠냠, 먹어치우자!”
“키득키득, 시체다! 시체!”
물속에 들어갔던 요정들이 다시금 올라오려는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조용히 고블린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다들 가만히 서서 요정들을 붙잡을 준비를 했다. 물론 요정들에게 된통 당했었던 렉스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바짝 약이 오른 표정을 지어보이며 씩씩 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고블린의 손에 붙잡혀있는 요정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흡! 하고 숨을 참으며 자기 입을 양 손으로 가로막는 녀석이다. 아주 영리한 녀석이었다. 여기서 뭘 해야지 자기가 살 수 있을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좋습니다. 목숨만큼은 살려드리죠.”
“헤헤, 감사합니다.”
간신배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요정이었다. 키득거리며 웃은 나는 숨을 죽이고서 요정들이 물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 기다리자, 사방에서 작은 물보라가 일어나며 요정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잡으세요!”
그걸 본 나는 재빠르게 소리쳤다. 그러자 고블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양 손을 쭉 뻗으며 요정들을 붙잡았다. 당연히 요정들은 우리가 당한 줄 알고서 방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붙잡힐 수밖에 없었다.
이 얼마나 순진한 요정들이란 말인가?
“히익! 뭐야? 그분은……. 꺅! 그분이 죽었어!”
“놔! 아악! 살려줘!”
“히이이이익! 시체가 아니야! 살아있어!”
아비규환이었다.
서른 마리 가량 남은 고블린들이 양 손에 요정들을 붙잡고서 기분 좋게 케르륵 케르륵 울음소리를 내었다. 렉스 또한 양 손을 포개며 스무 마리가 넘는 요정들은 덮쳤다.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요정들이 우리 손에 무기력하게 잡히고 말았다. 그나마 남아있는 요정들도 전의를 상실한 모양인지, 도망칠 생각도 하지 않을 채로 멍하니 날개만 파닥파닥 거리고 있었다.
“히히, 이대로 뭉개서 요정 주먹밥을 만들자!”
“아니, 박살내서 떡을 만들자!”
렉스는 양 손을 포갠 채로 낄낄 거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손 안에서는 요정들이 꽥꽥 비명을 터트리고 있었다.
요정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지옥도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옥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유현 님.”
그 때, 에나가 날 향해 마정석 파편을 내밀었다. 아까 처리한 살덩어리 안에서 마정석 파편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마정석 파편을 건네받았다.
그 후, 스마트폰을 꺼내서 알림문구를 확인해보았다.
[축하합니다!]
[마정석 파편을 획득하셨습니다!]
[이계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종료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됐군.”
이로서 이계 퀘스트는 완료되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타락한 호수의 요정들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느냐였다.
나는 잠시 일백 마리의 요정들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죽일까?’
아주 깔끔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요정들을 죽여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상대는 지금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여기서 요정들을 전부 죽여 버린다면 분명 꿈자리가 사나울 것이다.
‘……풀어줄까?’
인도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본다면 나름 타당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타락한 상태였다.
즉, 여기서 그냥 풀어주었다가 나중에 무슨 문제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게 복수하겠다며 던전을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실제로 코카드리유가 소피아를 쫓아서 오지 않았던가? 이러한 이유에서 타락한 요정들을 이대로 풀어주는 것은 안 되었다.
‘이득도 없고.’
사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내게 돌아오는 이득이 없다는 것이 말이다.
‘……그럼 역시…….’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렸다. 마지막 하나 남은 선택지가 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타락한 요정들에게도 무척이나 이득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분명히 이득이 될 것이다. 옛말 중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듯이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니 말이다.
이리 생각을 마친 나는 주변 요정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잠시 주목해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고블린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더불어 꽥꽥 소리를 지르며 살려 달라 소리치던 요정들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기본적으로 아주 멍청한 것은 아닌 모양인지, 상황 파악이 무척이나 빠른 요정들이었다.
나는 그런 요정들을 향해 아주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현재 요정 여러분들이 그 분이라 부르던 존재는 죽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다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여러분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방긋 웃으며 묻자, 일백에 달하는 요정들이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허엉! 엉엉! 살려주세요! 흐어어엉! 잘 못했어요!”
“잘 못 했어요! 엉엉! 살려주세요! 끅끅! 용서해주세요! 어엉!”
어느 요정들은 엉엉 울면서 용서를 빌었고, 또 어느 요정들은 변명을 했다.
“쟤, 쟤가 시켰어요! 우린 그냥 시킨 대로 했을 뿐이에요!”
“맞아요! 우린 아무 잘 못도 안 했어요! 그러니까 용서해주세요! 네?”
다들 살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여기서 도망치려하거나 우리를 공격하려는 요정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그래도 한 마리는 그럴 줄 알았는데, 상당히 의외였다.
나는 잠시 요정들의 반응을 관찰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다들 이렇게 반성하고 계시니,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런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요정들이 일제히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물론 간간이 끅끅 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오긴 했지만 그 정도는 이해해주기로 했다. 사실 목숨이 걸린 일인데, 어떻게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잠시 숨을 들이켠 뒤에 요정들을 훑어보며 질문했다.
“……저희 던전의 일원이 되십시오. 그럼 목숨을 살려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해낸 마지막 조건이었다. 일백에 달하는 요정들을 고스란히 던전의 전력으로 삼는 것이었다. 요정들은 목숨을 건져서 좋고, 나는 던전의 전력을 늘리게 돼서 좋으니 이보다 더 좋은 상황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정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할게요!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하겠습니다!”
“저도요! 저도 할게요!”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저를 부하로 삼아주세요!”
“주인님! 절 가지세요! 엉엉!”
다들 너무나도 열성적이었다. 심지어 렉스의 손 안에 갇혀있는 요정들까지도 필사적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던전의 일원이 되겠다고 말이다.
나는 날 향해 환호하는 요정들을 둘러보며 혹시 누구 한 명 빼고 있지는 않을까 살펴보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모두가 하나처럼 열광하고 있었다.
‘뭐, 확인해보면 알겠지.’
이리 생각한 나는 스마트폰 화면에 떠오른 알림문구를 확인했다.
[축하합니다!]
[타락한 요정 112마리를 던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현재 던전 인원 (219/200)]
[주의. 현재 던전 코어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을 넘긴 상태입니다.]
[던전 일원들이 미약한 굶주림을 느낍니다.]
“이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숫자를 받는 바람에 그만 최대 인원을 넘기고 말았다. 쯧쯧, 혀를 찬 나는 손에 쥐고 있는 마정석 파편을 바라보았다.
‘이걸 주면 던전 코어의 레벨이 상승하려나?’
이런 생각도 잠시, 나는 이번 이계 퀘스트의 보상이 랜덤 아이템 상자 10개라는 것을 떠올렸다.
‘……보상이냐, 굶주림이냐.’
나는 이 갈림길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이윽고 이 문제를 던전 코어와 상담해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뭔가 해답이 나오겠지.’
이리 생각을 정리한 나는 요정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여러분들을 던전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말과 동시에 나는 요정들을 던전으로 귀환시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블린의 손에 잡혀있던 요정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당연히 렉스의 손아귀 안에 갇혀있던 요정들 또한 사라졌다. 렉스는 살짝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호수에 풀썩 주저앉으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다행히도 별다른 미련이 없어보였다.
‘그나저나 남은 요정은 없는 건가?’
나는 혹시라도 내 제안을 거절한 요정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 살펴보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모두가 내 제안을 받아들인 모양인지, 요정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됐군. 우리도 돌아가죠.”
이렇듯 주변을 확인한 나는 던전으로 귀환했다. 그러자 잠시 시야가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환하게 밝혀졌다. 이를 확인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112마리의 요정들이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고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던전 마스터]
그 때, 던전 코어가 밝은 빛을 내며 내 곁에 섰다.
“별일 없었지?”
[그렇습니다. 수호자 ‘엘레노아’가 훌륭하게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들 역시 조용히 협력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번에 사로잡은 포로 중에 난동을 부리는 포로가 있어서 따로 격리해둔 상태입니다.]
“난동? 왜?”
[자기를 풀어달라고 했습니다. 충분히 몸값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요. 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발언입니다. 설혹 몸값을 지불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던전을 공격해오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확실히…….”
나는 조용히 끄덕였다.
[그리고 던전 마스터도 아시다시피 현재 수용 인원의 한계를 넘은 상태입니다.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만약 이 상태가 계속해서 유지된다면 던전 일원들의 불만이 쌓이게 될 겁니다. 하루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주셨으면 합니다.]
“마정석을 얻어다주면 되는 거지?”
[그렇습니다. 아니면 일부 던전의 일원을 추방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추방은 없다. 그리고 마정석 파편은 얼마나 더 필요하지?”
[현재 던전 마스터가 보유하고 계신 마정석 파편을 주시면 바로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제가 따로 퀘스트를 내드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흠…….”
그 말에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그러자 12시 30분이라고 적혀있는 게 보였다.
‘편의점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한다고 치면 현실 시간으로 10분 정도 남는 건가? 하지만 여기 시간은 훨씬 느리게 흘러가니까…….’
물론 중간에 현주를 만나서 USB를 건네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긴 하지만, 어차피 단순히 건네주는 것이었다. 오래 대화를 필요도 없었다. 이리 생각을 정리한 나는 시선을 요정들 쪽으로 던졌다. 그러자 오들오들 떨며 나를 올려다보는 요정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
그 모습이 놀랍도록 사랑스러웠다.
뭐지, 이 엄청난 파괴력은? 만약에 요정들이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나왔다면 꼼짝없이 당했었을 지도 몰랐다. 물론 고블린들과 렉스 그리고 에나에겐 조금도 먹히지 않고 있었지만 말이다.
실로 통탄스런 일이었다!
나는 내 옆에 서있는 에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귀엽지 않습니까?”
“무엇이 귀엽다는 말씀이십니까?”
“요정들이요.”
이런 내 말에 에나는 무심하게 요정들을 슥 훑어보더니 곧 별다른 표정 없이 대답했다.
“저들은 타락한 자들입니다. 귀엽다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
틀렸다. 감성이 너무나도 메말라있다. 아무래도 에나의 감성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달콤한 음식이 필요할 듯이 싶었다. 그러고 보니 자두도 또 사줘야 하는데, 그만 깜빡 잊고 말았다.
나는 다음에 꼭 자두를 챙기기로 마음을 먹고는 던전 코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던전 코어”
[네, 던전 마스터.]
“지금 당장 마틸다를 불러줄 수 있겠어?”
[가능합니다. 혹시 무엇을 시키려고 하십니까?]
“타락한 요정들이 머물 방을 만들게 할 생각인데? 왜?”
[그렇다면 제가 수호자 ‘마틸다’에게 그리 전하겠습니다. 던전 마스터는 방을 지정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 말에 나는 내심 감탄하며 던전 내부 지도를 열람했다. 그리고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윽고 인간들이 머무는 방에서 그리 떨어져 있지 않는 장소를 선택했다. 일단은 요정이니까, 아무래도 몬스터들보다는 인간 쪽이 더 낫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설정을 끝내자, 던전 코어가 고개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확인했습니다. 더 명령하실 게 있으십니까?]
“퀘스트를 내줘.”
[알겠습니다. 그럼 제 성장을 바로 이룰만한 마정석 파편이 있는 장소를 지도에 표시해드리겠습니다.]
이러한 던전 코어의 말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화면에 지도 하나가 표시되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게 이 세계의 지도인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잠시 지도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어 물었다.
“여기서 내가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장소는 없는 거야? 이래서야 어디가 위험한 건지 알 수가 없잖아.”
[그렇다면 제가 따로 추천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추천?”
[그렇습니다. 던전 마스터가 간단히 해결 할 수 있을만한 장소를 추천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던전 코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함정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 시선을 받고 있는 던전 코어의 표정은 좀처럼 변하지가 않았다. 하긴 무생물에게 뭘 기대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만약 이게 함정이라면 바로 현실로 도망치면 그만이니까.’
이리 생각한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아, 추천해봐.”
========== 작품 후기 ==========
내일 아이템 상자를 열겠네요. 혹시 원하는 아이템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