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 엘프] -->
“그럼 남은 건, 물속인데…….”
다행히도 수심은 그다지 깊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물의 색이 섬뜩하리만큼 기분 나쁜 핏빛을 띠고 있었지만, 그 근본은 엄연히 물이었다.
저건 절대로 피가 아니었다.
나는 찌푸려진 눈살을 가까스로 펴며 입을 열었다.
“……호수 안쪽으로 들어가 보죠. 고블린 여러분이 앞장을 서주세요.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렉스 씨가 이동하시고 에나 씨는 저와 함께 이동해주세요.”
이런 내 말에 마흔 여덟 마리의 고블린들이 앞장서서 호수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그러자 찰박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하복부가 물에 잠겼다. 아무래도 키가 1미터 20센티 밖에 되지 않다보니 생겨난 불상사였다. 그러나 고블린들은 특유의 힘찬 발걸음으로 물길을 헤치며 지나갔다. 그리고 렉스는 그런 고블린들을 앞세워 척척 걸음을 옮겼다.
마치 탱크를 호위하는 보병 부대를 보는 듯했다.
“적이다!”
“적!”
그러던 중에 사방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악의가 깃든 어린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이에 사방을 둘러보자, 일순 우리를 빙 둘러싸고서 작은 물보라가 일어났다.
마치 화려한 분수 쇼를 보는 것만 같았다.
단지 물보라 뒤에 나타난 작은 요정들만 아니라면 말이다.
“히히, 저게 뭐야? 죽으러 온 거야?”
“인간……. 고블린……. 오우거……. 전부 죽이자.”
“우리의 동료로 만들자. 전부 죽이자.”
“죽여! 죽여!”
이, 삼백에 달하는 요정들은 하나 같이 앙증맞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앙증맞은 외모와는 다르게 입 밖으로 내뱉는 말들은 하나 같이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 앞서 본 타락한 나무 정령들처럼 마정석 파편에 의해서 타락한 모양이었다.
나는 내 주먹보다 살짝 큰 체구를 가지고 있는 요정들을 둘러보았다.
‘어렵지 않게 쓰러트릴 수 있겠지.’
이리 생각한 나는 칠흑의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치며 입을 열었다.
“처리하세요.”
내 명령이 떨어지자, 고블린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타락한 호수의 요정들을 덮쳤다.
“케르르륵!”
“죽어! 죽어!”
순식간에 두 무리가 뒤엉켰다.
“막아!”
“찔러!”
요정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 공격과 수비를 전담했다.
방패를 든 요정들이 고블린의 몽둥이를 막으면 장창을 든 요정들이 고블린의 눈과 코, 입을 사정없이 찌르는 것이다.
“케르르륵!”
“케엑!”
요정들이 내지른 장창에 눈이 찔린 고블린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마구 날뛰었고, 그 때문에 고블린들의 전열은 형편없이 무너졌다. 상당히 흥미로운 전투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해줄 수만 없었기에 나는 곧장 렉스에게 말했다.
“고블린들을 도와서 요정들을 공격해주세요.”
이런 내 말이 떨어지자, 렉스가 크게 기지개를 펴며 소리쳤다.
“요정은 먹어도 되는 거지?”
“날개는 뜯어서 몸만 먹자!”
크게 포효한 트윈 헤드 오우거는 죽은 고블린들의 시체를 짓밟으며 요정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요정들이 저마다 꺅꺅 소리치며 높이 날아올랐다.
“멍청한 오우거야! 죽여! 머리가 두 개니까, 두 번 죽이자!”
“둘러싸! 오우거만 죽이면 돼! 키킥, 죽여!”
요정들이 렉스를 향해 벌 떼처럼 날아들었다. 비록 요정 하나하나의 몸집은 극히 작다고 할 수 있었지만, 일백에 달하는 숫자가 한꺼번에 날아드니 그것은 상당한 위압감을 만들어내었다.
더욱이 성가시기까지 했다.
“히익! 너무 많잖아! 이 날벌레들! 징그러워!”
“주인아, 도와다오! 나 좀 도와줘! 아이고, 나 죽는다!”
결국 렉스가 뒷걸음질 치며 내게 도움을 구했다. 천하의 트윈 헤드 오우거라도 일백에 달하는 요정들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눈이며 코 그리고 입 안을 장창으로 찔러대니 버틸 재간이 없어진 모양이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칠흑의 지팡이를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어둠의 화살.”
내 주문에 맞춰, 허공에 검은색 구체가 떠올랐다. 그리고 곧 그 구체는 내가 목표한 위치로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흩어져!”
요정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도망치기엔 너무 늦었다. 나는 그대로 어둠의 화살을 제어해 소리친 요정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 쾅! 소리를 내며 폭발하더니 그 주위에 있던 십 여 마리의 요정들을 흔적도 없이 증발시켰다.
“저, 저 인간 마법사야!”
“인간 마법사는 죽어야해! 죽여!”
이처럼 내 존재감을 드러내자, 렉스를 집중 공격하던 요정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후, 녀석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빠른 속도로 날 향해 달려들었다. 단숨에 내 숨통을 끊어버릴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걸 에나가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녀는 아단트의 불완전한 신검을 크게 휘둘러 여섯 마리의 요정들을 반 토막 냈다. 그 중에 두 마리의 요정이 방패로 에나의 검을 막아보려 했었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방패와 함께 반으로 쪼개지고 말았다.
“우리 방패를 부쉈어!”
“저 검은 대체 뭐야!”
일순 요정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방패가 부서진 일이 믿기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소란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다. 나는 어둠의 화살의 재사용시간이 되었음을 깨닫고는 다시금 마법으로 공격했고, 그 공격에 또다시 요정 열댓 마리가 검은 화염에 휩싸이며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불리해! 이건 위험해!”
“맞아, 그 분을 부르자!”
“어서 그 분을 불러!”
이처럼 전투가 요정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다들 그 분을 울부짖으며 물속으로 잠수했다. 그것에 나는 고블린들로 하여금 붙잡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찌나 움직임이 재빠르던지, 고블린이 미처 손을 뻗기도 전에 그 많던 요정들이 물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물론 몇몇 고블린들이 물속에 손을 짚어 넣어 휘저어 보았지만 단 한 마리의 요정도 붙잡지 못 했다.
마치 요정들이 물에 녹아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면 에나가 물속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요정 한 마리를 붙잡았다는 것이었다.
“놔!”
목덜미가 붙잡힌 요정은 크게 소리치며 장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에나는 가볍게 검으로 장창을 쳐내는 것으로 그 공격을 무마했다. 결국 요정은 저항을 포기한 듯이 씩씩 거리며 투명한 날개를 파르르 떨었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윽고 에나의 곁으로 다가가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요정에게 물었다.
“마정석 파편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 물음에 요정의 고개가 내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이윽고 흰자위가 없이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히히,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 너도 그 분을 탐내러 온 거구나! 하지만 이미 늦었어! 넌 죽을 거야!”
나를 비웃는 요정의 태도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물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너 바보 아냐? 당연히 그 분이지! 넌 정말로 바보구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저는 지금 검은색 돌을 누가 삼켰는지를 묻는 겁니다.”
“삼켜? 뭘 삼켜? 멍청아, 그 분은 그 분이야!”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하긴 마정석 파편에 의해서 타락한 요정이다. 제정신일 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에나의 손에 들려있는 요정을 처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호수 전체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
“히히, 이게 지진일 리가 없잖아! 바로 그 분이 왔어! 너흰 다 죽어! 이 멍청한 년놈들아!”
이 상황에 놀란 내가 중얼거리자, 그 소리를 들은 요정이 낄낄 대며 나를 비웃었다. 그리고 잠시 뒤, 요정이 말한 그 분이란 것이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키에에에엑!”
그것은 하나의 핏덩이였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붉은 광채를 뿜어내고 있는 살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저것 때문에 사방이 붉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누가 삼킨 건지는 몰라도 상당히 지독한 모습이었다.
“꺄하하핫! 죽어! 죽어! 멍청한 인간놈들아! 죽어! 고블린도! 오우거도 전부 죽어!”
그 때, 시끄럽게 꺅꺅대며 소리치는 요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나는 한심하단 눈길로 요정을 한번 바라보고는 이윽고 에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처리하세요.”
“네.”
내 명령을 받은 에나는 근처에 서있던 고블린에게 요정을 건네준 뒤에 살덩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요정은 자기 배를 부여잡으며 낄낄 웃었다. 에나가 살덩이에게 살해당할 거라고 확신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런 요정의 태도는 1초마다 달라졌다.
“키에에엑!”
에나가 살덩이와 마주한 1초 동안 그녀는 녀석이 쏘아댄 촉수를 피하지 않고 모조리 베어버렸다. 때문에 여기저기서 물보라가 일어났지만, 에나는 신경 쓰지 않고서 그대로 살덩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다시 1초가 지난 순간,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자 거짓말같이 녀석의 거대한 몸체가 반으로 쩌억 갈라졌다.
“……키에…….”
쿵!
다시 1초가 지난 순간, 살덩이는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그대로 쓰러졌다. 더불어 사방을 붉게 물들이고 있던 기괴한 광채 또한 더 이상 새어나오지 않았다. 이로서 세상이 자기 색깔을 되찾게 된 것이었다.
“…….”
푸른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 나는 이윽고 고블린의 손에 잡혀있는 요정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오들오들 떨면서 양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요정이 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더 이상 예전의 오만한 모습을 조금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이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누가 죽는다고요?”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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