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264화 (264/599)

<-- [하이 엘프] -->

“하읏……. 하아.”

쾌감의 여파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 모양인지, 민서는 내 품에 안긴 채로 간간이 신음했다.

수면 아래로 보이는 매끄러운 나신이 무척이나 눈부셨다. 나는 그녀의 어깨와 가슴 그리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씻겨드리겠습니다.”

“아, 읏……. 네.”

이런 내 말에 민서는 양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거품칠까지 해주며 그녀의 몸을 세심하게 닦아주었다. 물론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면, 땀투성이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어차피 기분 삼아서 하는 것이니 딱히 상관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건 기본 예의였다. 상대에 대한 예의 말이다.

“……흐읏, 응. 하아.”

중간 중간 민서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고개를 들어 그녀의 안색을 살펴보니, 굉장히 기분 좋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게 보였다. 다행히도 이런 내 봉사가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나는 내심 안도하며 잘 단련되어 있는 팔뚝과 허벅지 그리고 복부까지 꼼꼼히 씻겨주었다. 그리고 이처럼 모든 게, 끝나자 민서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나는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어딘가 덜 씻겨졌습니까?”

“네? 아, 아뇨…….”

“그럼요?”

“그게……. 아쉬워서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다음에 또 불러드릴 테니까요.”

이리 말하며 민서를 달래준 나는 곧장 욕조 밖으로 나간 뒤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바지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든 나는 민서에게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조교를 끝마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앞이 잠시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환하게 밝혀지며 자취방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곧장 스마트폰을 들어서 화면에 떠오른 새로운 알림문구를 확인했다.

[조교에 따른 정기를 정산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는 현재 2445의 정기를 획득했습니다. (누적 정기의 양 2620)]

“괜찮네.”

비록 본전은 못 찾았지만, 민서의 엉덩이를 맛보았으니 손해라고 할 수 없었다.

‘아니지.’

1세트 마지막에 민서를 향해 비웃음을 터트리던 러시아 선수에게 보란듯이 복수를 해주었으니 충분히 이득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때를 떠올리며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스마트폰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이계 퀘스트 ‘호수의 마정석 폭주’가 발생했습니다.]

마정석 파편에 의해서 오염된 호수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요정들은 마정석 파편을 정화하는데 실패했고, 그들의 대부분은 오염된 마정석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폭주한 마정석 파편이 폭발로 소멸하기 전에 회수하세요.

-오염된 호수의 마정석 파편을 획득하세요. (보상 : 랜덤 아이템 상자x10) (폭발까지 02:23:34)]

[본 이계 퀘스트는 거절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계 퀘스트 ‘호수의 마정석 폭주’를 수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오염된 호수?”

낯익은 단어였다. 어디서 들어봤던 건지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보자, 곧 이전에 봤던 이계 퀘스트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때 보았던 이계 퀘스트의 명칭이 분명 ‘오염된 호수의 요정’이었을 것이다.

‘할까?’

폭발한다는 것이 다소 꺼림칙하긴 했지만 내게는 퀘스트 포기가 있었다. 만약 시간이 부족하다 싶으면 곧바로 현실로 돌아가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보상이 이제까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랜덤 아이템 상자가 무려 10개라니!’

꿀꺽, 마른침을 삼킨 나는 한동안 퀘스트를 살펴보다가 이윽고 퀘스트를 수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런 기회는 쉽게 있는 게 아니니까.”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을 신었다. 그 후, 네를 누르자 일순 시야가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천천히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곧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핏빛으로 점철되어 있는 숲 속이었다.

“……뭐야, 이건?”

한 눈에 봐도 기분이 나쁜 숲 속이었다. 더욱이 눈 씻고 찾아와 봐도 호수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잘 못 전송 된 건가?’

이러한 생각에서 지도를 확인하자, 내 위치와 마정석 파편의 위치가 정상적으로 표시되었다. 그걸 보아선 일단 제대로 전송된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일단 가보는 수 밖에 없는 건가.”

혀를 내두른 나는 칠흑의 지팡이와 보호의 반지를 소환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에나를 소환하자, 내 눈 앞에 은빛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는 여기사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윽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요정의 호수입니다.”

이런 내 대답에 에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우리가 서있는 장소는 온통 핏빛으로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들은 요정의 호수와는 상당히 다르군요.”

“솔직히 말해서 저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실제로 나 또한 믿기지가 않아서 방금 전에 지도를 확인했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그 누가 여기를 요정의 호수라고 생각하겠는가? 요정은커녕 괴물이나 튀어나오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이리 생각하며 고개를 가로젓는데, 일순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우득우득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람 때문에 나뭇가지가 흔들린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유현 님, 적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에나가 검을 뽑아들며 말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나무들이 뿌리를 들어 올리며 쩌억 입을 벌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섬뜩하던지, 한 편의 공포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온 몸의 털이 쭈뼛쭈뼛 서는 듯 했다.

“……나무 정령이로군요. 게다가 타락했습니다.”

“강할까요?”

내 물음에 에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무 정령 자체는 약합니다. 하지만 그 수가 수백에 달할 때는 문제가 됩니다. 부디 이 숲의 모든 나무 정령들이 타락하지 않았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에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타락한 나무 정령들이 우리들 주변을 둥그렇게 포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망치지 못 하도록 말이다. 뭐, 그래봤자 나에게는 퀘스트가 포기가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지만.’

마음을 굳게 먹은 나는 칠흑의 지팡이로 땅바닥을 내리쳤다.

“고블린 소환.”

고블린을 소환하자, 일순 내 주위에 마흔 여덟 마리의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때문에 포위망을 서서히 좁혀오던 타락한 나무 정령들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고 말았다.

“케르르륵!”

“기기긱!”

잠시 고블린들과 타락한 나무 정령들 사이에 신경전이 오갔다. 꽤나 신기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구경할 이유는 없었다. 일단 이쪽은 시간에 쫓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이 핏빛 숲속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정신병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전부 쓰러트리세요.”

“케르르르륵!”

내 명령이 떨어지자, 마흔 여덟 마리의 고블린들이 타락한 나무 정령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선 놈들이 얼마나 강한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런 내 기대대로 타락한 나무 정령들은 굵은 나뭇가지를 마구 휘두르며 고블린들의 접근을 막았다.

“케르르륵!”

“키기기긱!”

두 무리는 순식간에 뒤엉켰다. 타락한 나무 정령들은 굵은 나뭇가지를 느리게 휘두르며 고블린들을 공격했고, 그 때마다 고블린들은 나뭇가지를 피하며 녀석의 몸통을 공격했다. 그러나 금속 무기가 아닌 나무 몽둥이로는 타격을 주기가 힘든 모양인지, 타락한 나무 정령은 고블린들의 공격에 끄떡도 하지 않았다.

물론 고블린들 또한 적들의 느릿한 공격을 맞아줄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기에 그 어떤 피해도 입고 있고 있지 않았다.

‘이래서 약하단 거였군.’

납득이 되었다. 이 정도면 위협이 된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이에 나는 에나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무기인 아단트의 불완전한 신검을 휘두르며 타락한 나무 정령에게 달려드는 여기사다.

그리고 그 순간, 전황이 뒤집어졌다. 에나가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타락한 나무 정령의 굵은 몸통이 반 토막 나버렸다. 실로 어마어마한 괴력이었다. 만약에 상대가 인간이었다면 몸통이 반으로 잘려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분명 피와 내장이 사방에 뿌려지겠지.

‘윽…….’

그 모습을 상상하니, 살짝 비위가 상했다. 나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윽고 나무 정령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키기긱! 키기긱!”

녀석들은 공포라는 것을 모른다는 듯이 죽은 타락한 정력의 시체를 밟으며 계속해서 우리들을 포위했다. 제법 흥미롭기는 했지만, 계속 상대해줄 만큼 이쪽 상황이 여유롭지 못 했다.

나는 에나를 도와 타락한 나무 정령을 처리할만한 도우미를 불러내었다.

아주 듬직한 동료라고 할 수 있었다.

“렉스 소환.”

내 부름과 동시에 엄청난 크기를 자라하는 트윈 헤드 오우거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전히 엄청난 위압감을 보이고 있었다.

“나무가 잔뜩 있어! 이것들 전부 다 먹자!”

“멍청아, 우린 육식이야! 초식 같은 건, 안 해!”

여전히 시답잖은 말다툼을 하는 트윈 헤드 오우거였다. 나는 쓰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렉스 씨, 에나 씨를 도와서 타락한 나무 정령들을 처리해주세요.”

이런 내 말에 렉스가 잔뜩 신이 난 듯이 쿵쿵 발돋움을 하며 소리쳤다.

“잡초를 몽땅 뽑아버리자!”

“맞아! 야생의 포효를 쓰기 전에 후딱 해치워 버리자!”

“야생의 포효가 뭐야?”

“노루 약해요!”

한쪽이 압도적으로 지능이 좋다보니, 아무래도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지능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렉스는 에나와 거의 비등한 속도로 타락한 나무 정령들을 주먹으로 으깨고, 발로 뻥뻥 걷어차며 처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탱크라고 할 수 있었다.

“키기기기긱!”

이처럼 에나와 렉스의 난입으로 타락한 나무 정령 중에 절반 이상이 순식간에 죽어버리자, 녀석들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에 움직임이 굼떴기에 에나와 렉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란 무리였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마흔 여덟 마리의 고블린들이 녀석들을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었다.

“케르르륵!”

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갈 땐 아니란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고블린이 휘두른 몽둥이에 뿌리라도 맞으며 타락한 나무 정령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 했다.

“케르륵! 도망치지 못 하게 막아라! 케륵!”

“뿌리를 맞았으니 멀리 도망치지 못 했을 거다! 케르르륵!”

고블린들은 도망치는 타락한 나무 정령들의 발목을 붙잡았고, 에나와 렉스는 그런 녀석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며 그 끝에는 전부 처리해버렸다.

그 숫자가 얼추 보아도 이백은 되어보였다.

‘굉장하네.’

혀를 내두른 나는 렉스와 에나 그리고 고블린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제한된 시간 내에 마정석 파편을 회수하기 위해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 때, 렉스는 뭔가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떠들어대었다.

“히히, 여긴 빨갛다! 저도 빨갛고 여기도 빨갛다! 나도 빨갛지?”

“아니, 넌 녹색이야! 이 녹색 괴물아!”

“히익! 나는 왜 녹색이야?”

“왜냐하면 우리가 오우거라서 그런 거야!”

킬킬대며 떠들고 있는 렉스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정신병이 더 빨리 찾아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다르게 에나는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역시 여기사라서 그런지 정신력부터가 다르다. 물론 신체적으로도 다르겠지만 말이다.

“…….”

문득 내 시선이 에나의 엉덩이 쪽으로 향했다.

‘엉덩이의 조임은 어떨까?’

잠시 이런 생각을 하던 나는 이윽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나는 이계 퀘스트를 진행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망측한 상상을 한다는 말인가? 나란 인간은 참 글러먹었다.

“호수입니다.”

그 때, 에나가 입을 열었다. 이에 나는 고개를 여기사의 엉덩이에서 정면으로 돌렸다. 그러자 곧 내 눈에 하나의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로 넓은 호수였다. 다만 한 가지, 좀 섬뜩한 게 있다면 호수 전체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설마 피는 아니겠지?”

꿀꺽, 마른침을 삼킨 나는 호수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여타 다른 호수들과 마찬가지로 찰랑거리며 이는 물이 보였다. 아무래도 색만 붉은색을 띠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마정석 파편은 어디에 있는 거지?’

이처럼 호수의 물이 피가 아니란 것을 확인한 나는 이 일대를 둘러보았다. 혹시라도 마정석 파편이 이 근처에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어디에도 폭주한 마정석 파편 같은 건보이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렉스가 그 동안 출현을 못 했으니, 잠깐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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