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259화 (259/599)

<-- [하이 엘프] -->

“굉장히 기분 좋아보이시는군요.”

나는 아이린의 턱을 잡아 나를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그러자 평소엔 기세 좋게 올라가 있던 눈초리가 지금은 아래로 축 쳐진 채로 눈물방울을 매달고 있었다.

이 얼마나 가녀린 모습이란 말인가!

나는 내심 감탄하며 아이린의 눈가에 맺혀있는 눈물을 엄지로 슥 훔쳐내었다.

“……어떻습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이런 내 속삭임에 그녀는 잠시 어깨를 가늘게 떨다가 이윽고 눈동자를 힘없이 아래로 떨어트렸다.

“나, 나는…….”

“거짓말하려 하지 마세요.”

나는 아이린이 내 시선을 피하지 못 하도록 집요하게 그녀의 눈동자를 쫓았다.

“……아이린 씨는 적어도 저한테만큼은 솔직해지셔야 합니다.”

“어째서……!”

“그야 당연히 제가 당신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내 주인이 아니다! 하물며 나는 누군가의 소유물도……!”

“아니요, 저는 당신의 주인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제 노예고요. 저와 했던 계약을 잊으신 겁니까?”

“하지만……!”

아이린은 어떻게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부정해보려 했다.

마지막 발악이라 생각해도 좋았다. 아마도 이것이 그녀에게 있어서 마지막 자존심이겠지.

나는 그 마지막 하나 남은 자존심마저 철저하게 짓밟고자, 다소 과장되게 소리쳤다.

“오, 불쌍한 아이린! 당신이란 여자는 어째서 그토록 자신을 감추려 드는 것입니까?”

“시끄러워!”

“솔직해지세요. 그럼 당신도 저도 편해집니다. 서로가 하하호호 웃으며 사이좋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대는 틀리다! 나는 충분히 편해! 지금도…….”

“아니요, 당신은 속박당한 채입니다. 아이린 씨, 저는 당신을 자유롭게 해드리려는 겁니다. 좀 더 자신에게 충실해지세요. 대체 당신이 뭐가 부족해서 이러시는 겁니까?”

“나, 나는…….”

아이린은 이를 악 물며 어떻게든 내 시선을 피해 보려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집요하게 그녀를 쫓았다. 더불어 여전히 쾌감의 여운이 남아있는 그녀의 신체를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다독여주었다.

“자신을 죄인이라 여기지 마세요.”

“하지만…….”

“그리고 이런 걸로 속죄하려 들지 마세요.”

“속죄라니! 아니다, 나는…….”

“애당초 당신이 속죄의 의미로 다른 엘프들을 대신해서 저택의 메이드 업무를 전부 감당하고 있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세 살배기 어린 아이도 알 수 있었다. 아이린의 의도쯤은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분명히 아이린에게 그녀를 비롯한 모든 엘프들에게 메이드 업무를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항상 조교의 방으로 들어오면 오로지 아이린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우연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공교롭지 않는가?

왜 다른 엘프들은 보이는 않는 거지?

이 의문의 해답은 간단하다. 아이린이 모든 엘프들을 대신해 홀로 업무를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엘프 마을에서 일어났던 참사에 대한 속죄라는 뜻이었다. 이 얼마나 고결한 하이 엘프라는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아이린은 하이 엘프란 지위를 이용해 편하게 일생을 보낼 수도 있었다.

빗자루를 들고 저택 바닥을 쓸지 않아도 되었고, 마른 걸레로 창문을 닦을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나와 마주쳐서 희롱당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일부러 이 모든 것을 감내했다.

“……아이린 씨, 당신은 이미 모든 죗값을 치렀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쾌감을 애써 부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이건 당신에게 주는 상입니다. 벌을 빙자한 상이요.”

“틀리다. 나는…….”

“무얼 망설이십니까? 저는 당신이 기특합니다. 모든 엘프를 위해서 헌신했으며 어머니만을 생각하는 올곧은 마음이 저를 감동시킨 겁니다.”

“…….”

이윽고 아이린의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이겼습니다, 아이린 씨. 저는 이제부터 아이린 씨에게 벌을 주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어머니인 운피레아 씨도 풀어드리겠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든 뒤에 조교의 방을 열람했다. 그런 다음 운피레아를 14번 방의 메이드로 임명했다. 이로서 운피레아 또한 조교의 방 일원이 된 것이었다.

“……일단 옷부터 추슬러 입으세요. 운피레아 씨를 데려오겠습니다.”

“아, 저…….”

이런 내 말에 아이린은 다소 혼란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래, 혼란스럽겠지. 왜 안 그렇겠는가? 그토록 원할 때는 찾아오지 않았던 상황이지, 갑작스레 찾아온 것이었다.

더욱이 그녀는 내가 주는 쾌감에 조금씩 눈을 뜨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운피레아와 재회하게 한다면? 분명 모녀가 서로를 부둥켜안고서 기쁨의 눈물을 뚝뚝 흘려댈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나는 더 이상 아이린을 안아주지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신사적으로 대할 것이다.

과연 그걸 아이린이 버텨낼 수 있을까?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아이린이 스스로 치마를 들치며 자기 처녀를 가져가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그 웃음기를 싹 지우며 거듭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운피레아가 기다리고 있는 14번 방에 들어서기 전에 로브 하나를 챙겼다.

내 기억이 맞다면 운피레아는 지금 나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로브를 챙긴 나는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운피레아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반가움에 가득찬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아, 주인님!”

마치 방 안 가득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운피레아는 한달음에 달려와 내 품에 안겼고, 나는 가볍게 그녀의 몸을 마주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살포시 입술을 맞춰주자, 시골 처녀처럼 수줍게 웃음을 터트리는 운피레아다.

도저히 한 아이의 어머니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운피레아 씨.”

“보고 싶었어요, 주인님.”

운피레아는 뾰족한 귀를 거듭 위아래로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마치 제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와도 같았다.

‘그러고 보니 민서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애타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민서의 모습을 떠올리니 살짝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운피레아의 몸에 로브를 둘러주며 입을 열었다.

“아이린 씨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그럼……!”

“네, 조금 늦었지만 아이린 씨와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정말로……. 정말로 감사드려요.”

드디어 딸과 만날 생각을 하니 눈물이 북받쳐 오르는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운피레아의 눈가에 맺혀있는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며 속삭였다.

“울지 마세요. 예쁜 얼굴이 망가지지 않습니까?”

“흐윽, 읏……. 주, 주인님…….”

“자, 웃으세요. 운피레아 씨는 웃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이런 내 속삭임에 운피레아는 더더욱 양 볼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아니, 이제는 귀까지도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 모습이 꼭 빨갛게 잘 익은 사과를 보는 것만 같았다. 어쩜 모녀가 이렇게 쏙 빼닮은 건지 모르겠다.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트린 나는 운피레아를 데리고서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린!”

“어머니!”

모녀는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이 앞으로 달려가 해후를 만끽했다.

그 모습이 정말로 아름다워 보였다. 특히나 아름다운 두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몸을 끌어안는 모습은 내 눈을 더없이 즐겁게 해주었다.

‘이 얼마나 멋진 광경이란 말인가?’

나는 조용히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이후, 내 품에 안긴 채로 신음할 모녀를 생각하며 하복부로 피가 쏠렸다. 분명 인생에 있어서 두 번 다신 없을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아니, 이렇게 된 김에 아이린의 처녀 상실을 운피레아 앞에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기념적일 것이다.

‘……아니, 그건 아이린에게 너무 가혹한가?’

잠시 번민하던 나는 이윽고 어깨를 으쓱였다.

‘나중에 차차 생각해보지.’

아이린의 욕구가 언제쯤 폭발할 지는 아무도 몰랐으니 말이다. 시간은 내 편이었다.

나는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고서 해후를 만끽하는 모녀를 조용히 지켜보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모녀가 서로 못 다한 이야기를 편히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겸사겸사 민서도 보고 말이다. 아마도 지금쯤 목이 빠져라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서둘러 1번 방 쪽으로 걸음을 옮긴 뒤에 그 옆에 준비되어 있는 로브와 가면을 착용했다. 그 후, 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앗! 하는 소리와 함께 짙은 검은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는 민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셨어요, 주인님?”

그 밝은 목소리에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도 화답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김 민서 씨?”

========== 작품 후기 ==========

민서의 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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