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물 사냥꾼] -->
“어때?”
누나는 자기 옷차림을 내게 보여주며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나는 살포시 서연이 누나의 몸을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예뻐요.”
이런 내 말에 누나는 수줍게 양 볼을 발그레 물들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발적으로 치켜 올라간 눈으로 나를 한번 슥 올려다보더니, 곧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하고는 입을 열었다.
“나 그럼 갔다 올게.”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쿡쿡, 웃으며 대답한 나는 누나의 엉덩이를 가볍게 몇 번 토닥여주고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했다. 그리고 이윽고 누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내려가자, 나는 다시금 집 안으로 들어가 스마트폰을 챙겼다.
‘간밤에 별일 없었겠지?’
이리 생각하며 매니저 어플을 실행하자, 화면에 여러 문구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출석 체크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스킬 상자가 주어집니다.]
[랜덤 스킬 상자를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축하합니다!]
[던전 퀘스트 ‘고블린 주거지’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아이템 상자가 주어집니다.]
[랜덤 아이템 상자를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사용자의 명령을 받은 던전 수호자 ‘엘레노아’의 성과를 보고합니다.]
[고블린 1417마리 토벌]
[마정석 파편 8개 발견]
[성과를 정산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엘레노아는 현재 4251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엘레노아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던전 수호자 ‘엘레노아’의 레벨이 9 -〉 21 로 변경됩니다.]
[던전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던전 수호자 ‘엘레노아’가 요격합니다.]
[던전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또?”
던전이 공격받고 있다는 알림문구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와락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혀를 내두른 나는 다급히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다음 신발을 신은 나는 이전처럼 아파트 계단에 선 뒤에 던전 내로 이동했다. 그러자 일순 눈앞이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어두컴컴한 동굴 안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환영합니다, 던전 마스터]
그 때, 던전 코어가 제 모습을 드러내며 내게 인사말을 건넸다. 이에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입을 열어 물었다.
“엘레노아는 어디 있지?”
[침입자들을 요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침입자들의 수준은 던전 수호자 ‘엘레노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 할 정도로 낮습니다. 그녀는 지금 침입자들을 농락하고 있으며, 침입자들은 겁에 질린 상태입니다.]
이러한 던전 코어의 말을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던전 내부의 지도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한참 침입자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엘레노아의 위치부터 시작해서, 마틸다와 소피아 그리고 아라크네, 코카드리유의 모습이 표시되었다.
“지금 엘레노아가 리자드맨을 이끌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현재 던전 수호자 ‘엘레노아’는 리자드맨과 함께 침입자들을 농락하고 있습니다. 또한 던전 수호자 ‘엘레노아’는 던전 마스터께서 일찍이 명령하신대로 던전 주변을 정리하면서 리자드맨들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했습니다. 덕분에 리자드맨들은 현재 던전 수호자 ‘엘레노아’의 충실한 심복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물론 던전 마스터가 원하신다면 리자드맨들은 언제든지 던전 마스터를 따를 겁니다.]
던전 코어는 내가 따로 묻지 않은 부분까지 세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뭐, 나쁘진 않네.’
더욱이 엘레노아, 혼자서 싸우는 게 아니라 리자드맨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거라면 일단 안심이 되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던전 코어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던전 내에 침입해 들어온 건, 어떤 몬스터지? 고블린? 오크?”
[현재 던전 내에 침입해 들어온 적은 인간입니다. 6인으로 구성된 용병단이며, 이 중 한 명은 던전 수호자 ‘엘레노아’가 휘두른 채찍에 맞아 사망했고, 다른 두 명은 리자드맨의 발톱에 중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현재 남은 세 명이 아군을 상대로 분전을 하고 있지만 금방 죽거나 제압당할 것입니다.]
“하?”
인간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그만 놀란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설마하니 사람이 던전 내로 침입해 들어올 줄은 예상지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다.
‘인간이 왜 공격해온 거지? 우연인가?’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이런저런 이유를 떠올려보지만, 좀처럼 이렇다 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엘레노아는 고블린만 토벌했을텐데?’
실제로 엘레노아는 고블린 1417마리만 토벌했을 뿐이었다. 그 외에 죽인 몬스터나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에 나는 던전 코어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용병들이 어째서 던전을 공격해온 거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흠…….”
[혹시 용병들의 목적이 궁금하시다면 던전 수호자 ‘엘레노아’에게 말해서 인간들을 사로잡도록 하겠습니다. 전투 능력 차이가 크기 때문에 사로잡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좋아, 그렇게 해줘.”
이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장 엘레노아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장소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때, 던전 코어가 밝은 빛을 뿜어내며 불쑥 입을 열었다.
[저, 저기 던전 마스터!]
“응?”
그 부름에 던전 코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허공에 들어올린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던전 코어는 평소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참 실없는 말이었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래.’라고 대답하고는 곧장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런데 그 때, 내 뒤쪽에서 자그마한 한숨 소리와 함께 던전 코어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또 걷어차 주셨으면 했는데…….]
아쉬움이 짙게 깔려있는 목소리였다.
‘하?’
그리고 그 말소리를 들은 순간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말았다. 설마하니 던전 코어가 이런 걸 원할 줄은 예상지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괴롭혀서 어디 망가진 거 아냐?’
확실히 축구공 차듯이 뻥뻥 걷어차기는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크게 망가질 정도로 세게 걷어찬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힘 조절을 하면서 걷어찼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걸 던전 코어가 느끼고 있었을 줄은……. 예상 외로 마조 끼가 다분한 던전 코어였다.
심란한 마음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조금 어울려줄까? 어차피 조금 늦는다고 해서 엘레노아한테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이리 생각을 정리한 나는 도로 던전 코어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던전 코어다.
[던전 마스터?]
“던전 코어.”
[네, 네!]
나직한 목소리로 던전 코어를 부르자, 그녀는 얼른 입을 열어 두 번씩이나 대답했다. 이에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던전 코어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양 볼에 홍조를 그려 넣으며 기뻐하는 던전 코어다.
“혹시 내게 하고 싶은 말 없어?”
[하고 싶은 말이요?]
“그래, 하고 싶은 말.”
이런 내 말에 던전 코어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대답했다.
[어, 없습니다.]
“정말로?”
[네…….]
“정말로 없다고?”
거듭되는 내 추궁에 던전 코어는 자기 몸을 베베 꼬다가 이윽고 사실대로 토로했다.
[사실……. 던전 마스터께서 저번처럼 저를 꾸중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번처럼? 저번에 내가 어떻게 했었는데?”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 하며 던전 코어의 애간장을 태웠다. 그리고 이런 내 의도대로 그녀는 안달이 난 표정을 지어보이며 얼른 입을 열었다.
[저번처럼 걷어차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갈라진 제 틈 속으로 던전 마스터의 손톱을 밀어 넣어 무자비하게 후벼 파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 속 깊이 반성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못된 제가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게요.]
“이런 음탕한 던전 코어 같으니…….”
[네, 네! 전 음탕한 던전 코어에요! 하아, 그러니까 던전 마스터께서 혼내주세요! 저번처럼 때려서 고쳐주세요! 하윽!]
숨까지 헐떡거리며 말하는 꼴이 완전히 현주의 닮은꼴이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킥킥대며 웃음을 터트린 나는 이윽고 던전 코어의 소원대로 발로 던전 코어를 걷어차 주었다. 그러자 탁!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지는 던전 코어다.
[꺄읏! 아아, 또……. 또 금이 갔어요! 흐에에! 흐으읏! 윽!]
아무래도 내구성이 떨어지다 보니, 던전 코어의 표면에는 여기저기 금이 갔다. 그걸 확인한 나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던전 코어를 집어든 뒤에 표면에 묻어있는 흙을 털어주었다. 입김까지 후후 불어가면서 말이다.
[……하앙, 아! 그,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지면 저 또……. 하으으윽! 아앙! 아앗!]
“…….”
내 손에 쥐어진 던전 코어는 부들부들 떨며 기쁨의 환호성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알기 쉬운 성격이었다.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나는 갈라진 틈 속으로 손톱을 밀어 넣어 살살 긁어주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던전 코어의 표정이 발정난 암컷마냥 음란하게 변했다.
[하으으으윽! 아앙, 앗! 저, 저기……! 히익! 좋아요! 하아아아아앙! 저, 더는……. 햐으으으읏!!]
그렇게 몇 번 툭툭 긁어주자, 던전 코어는 더 이상 버티지 못 하고 절정에 달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나는 미련 없이 손에 잡혀있는 던전 코어를 허공에 휙 던지고는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 작품 후기 ==========
던전 코어는 역시 괴롭히는 맛이죠.
이걸로 마조가 둘로 늘어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