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218화 (218/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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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장소로 나가보니, 지현이와 예은이가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현이는 내가 은하와 같이 나온 게 마냥 신기한 모양인지, 슬쩍 내 팔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웬일로 이렇게 은하랑 나란히 사이좋게 오신대요?”

지현이의 큰 가슴이 내 팔에 닿은 순간 절로 헛숨이 삼켜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현이의 가슴이 엘레노아나 서연이 누나보다 더 크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역 여대생의 가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력이 담겨있었다.

더욱이 지현이가 조금 예쁘던가? 여기에 모여 있는 세 명 중에 단연 발군이었다.

아니, 대한민국에서 상위 5% 이내라고 하더라도 과언은 아니었다.

“……혹시 둘이…….”

그 때, 지현이의 시선이 은하 쪽으로 향했다. 어찌나 요사스럽던지, 마치 먹음직스런 물고기를 노리는 암코양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받은 은하는 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더니, 이내 퍽퍽! 소리가 나도록 지현이의 등짝을 때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퍽퍽!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내 속이 다 시원해졌다.

“꺄악! 아파! 아프다고 이것아! 나 죽는다! 아이고! 오빠, 저 좀 살려줘요!”

급기야 지현이가 내 뒤로 숨으며 날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순간 은하의 손이 딱 멈추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쯤에서 지현이를 용서해줄 생각은 조금도 없는 모양인지, 사납게 지현이를 쏘아보이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얼른 나와! 오빠가 곤란해 하잖아!”

“흥, 거짓말! 오빠가 곤란하긴 뭐가 곤란해? 그렇죠, 오빠?”

이리 말하며 내 옷자락을 더욱 더 세게 잡아당기는 지현이었다. 이에 나는 잠시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내 멀리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는 예은이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예은이는 이 진흙탕 싸움에 끼어들기 싫은 모양인지 무심하게 내 시선을 피했다.

‘배신자!’

진짜 배신자다.

마음 같아서는 물귀신 작전으로 예은이를 물고 늘어지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여기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은 번화가였다. 더욱이 지현이가 보통 눈에 뜨이는 미인이던가?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미인인데, 이렇게 난리까지 피우니 평소엔 그냥 지나칠 사람들도 무슨 불구경하듯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아.”

자그맣게 한숨을 내뱉은 나는 지현이와 은하의 손목을 꽉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밥 먹자.”

이러한 내 말에 지현이는 곧바로 ‘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은하는 여기서 포기하기 싫다는 듯이 갸릉갸릉 거렸다. 누가 보면 사람이 아니라 암사자인 줄 알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은하의 태도에 지현이가 또다시 내 뒤에 숨었다.

아무래도 여기선 은하를 달래주는 것이 주요 관건인 모양이었다.

“은하야, 나 배고프다.”

“그, 그렇지만 지현이가 약 올려서…….”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눈물까지 글썽이는 은하다. 이에 나는 슬쩍 손을 뻗어 은하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러자 앗! 소리를 내며 ‘저 어린애 아니라니까요!’라고 소리치는 은하다. 하지만 꽉 끌어안은 채로 몇 번 다독여주니, 은하의 불만어린 투정도 금세 쑥 들어갔다.

“나중에 혼내자.”

“네.”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답하긴 하지만 많이 화가 풀어진 모습이었다. 애당초 왜 화를 내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 가자.”

여하튼 은하를 다독여준 나는 지현이와 예은이를 데리고서 근처 돈가스 집에 들어갔다. 그런 다음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리는 부산하게 메뉴를 정한 뒤에 이번 주에 있을 아이돌 프로젝트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예선 통과했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이번 주말에 1박 2일로 2차 예선을 치른대요.”

“1박 2일? 그럼 하룻밤 잔다는 거야?”

“네.”

하룻밤 잔다는 말에 은하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어버버 거리는 게, 사전에 듣지 못 한 모양이었다. 반면에 예은이는 담담하게 ‘부모님께 여쭤볼게요.’라고 말했다. 정말이지, 생긴 것하고는 다르게 엄청난 모범생인 예은이었다.

‘아니, 모범생이 맞나?’

꽤 노는 애들하고 어울리고 있었으면서도 처녀였으니 말이다.

사실 이쯤 되면, 예은이가 왜 그런 애들하고 어울리고 있었던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서 남자 친구로 보이는 사람도 없었고 말이다.

‘대체 왜 거기에 있었던 걸까?’

호기심이 왈칵 치솟았지만, 그간 저지른 일이 있었기에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아니, 애당초 여기서 물어보는 순간 자살행위였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호기심을 꾹 억누르며 지현이의 말을 경청했다.

“오빠는 우리들 보호자 자격으로 참가할 거예요.”

“보호자?”

“네, 보호자는 따로 자리를 마련해준다니까 거기서 구경하시면 되요.”

“구경이라…….”

“짐도 지키셔야 해요.”

“그래, 걱정 마.”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더욱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 이 정도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정말로 연예인의 매니저처럼 얘네들의 스케줄을 관리해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데, 문득 지현이가 짝 하고 가볍게 박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전략을 짜야 해요.”

“전략?”

“네, 전략이요.”

전략이란 단어에 힘주어 말한 지현이는 은하가 놓아준 포크로 숟가락을 툭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제가 생각할 때, 이번 본선에서 할 건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꽤나 본격적이다.

나는 조금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는 옛날 명곡을 부르기. 아마도 핑클, SES, HOT, 젝스키스……. 이런 1세대 아이돌들의 노래를 부르게 하겠죠.”

엄청나게 그리운 이름들이었다. 특히나 HOT의 노래는 어렸을 적에 많이 들어봤기에 새삼 감동이 밀려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똑바로 정신을 차렸다. 벌써부터 감상에 빠지기에는 지현이의 말이 너무 빠르게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이게 아니라면 무작위로 팀을 합치는 쪽으로 하겠죠.”

“팀을 합친다고?”

“네, 예를 들어서 A조하고 B조를 합치는 거예요. 두 조가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는 지를 봐서 평가하는 거죠. 꽤 많아요, 이런 거.”

“여러 가지로 조사해왔나 보네.”

“기본이죠, 이건.”

에헴! 소리를 내며 콧대를 세우는 지현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콧대를 세울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특히나 아이돌 프로젝트에 관련해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나를 상대로라면 더더욱 말이다.

명색에 매니저라는 인간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그저 면목이 없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부터 1세대 아이돌 노래 연습할 거야?”

“제 추측이 맞다면 그래야 되겠지만, 막상 연습해 갔더니 거기서 최신 가요를 내놓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무엇에 주력할지요.”

이 말에 나를 비롯한 예은이와 은하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가 잠시 뒤, 은하가 입을 열어 물었다.

“그냥 옛날 곡이랑 요즘 곡, 둘 다 연습하면 안 돼?”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다 외울 자신 있어?”

“하긴 그러네.”

확실히 은하의 말대로 전부 다 연습해서 간다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잠시 테이블을 검지로 툭툭 두드리다가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옛날 곡을 연습해서 가자.”

“왜요?”

“내가 주최 측이라면 옛날 곡을 내놓을 테니까. 솔직히 말해서 최신 가요는 자주 접하는 노래잖아? 그런데 그걸 부르게 하면 방송이 식상해지지 않을까? 까놓고 말해서 이건 그냥 오디션이 아니라 방송용 오디션이잖아?”

“아……! 확실히 그러네요! 역시 오빠!”

이런 내 말에 지현이를 비롯한 은하와 예은이도 납득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종업원이 테이블 위로 돈가스를 차례차례 내려놓기 시작했다.

“맛있게 드세요.”

이렇듯 요리를 받은 우리는 방금 전에 은하가 놓아준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들고서 돈가스를 썰기 시작했다.

그 후, 한 입 딱 먹으려는 찰나 예은이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선배, 들었어요?”

“뭘?”

“여자들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알몸으로 다시 나타났대요.”

“…….”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도 모르게 그만 포크를 떨어트릴 뻔했다. 하지만 나는 가까스로 정신 줄을 부여받으며 태연한 척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너무 태연한 척 하면 예은이가 의심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적당히 놀란 척 했다.

“……뭐? 진짜?”

“네, 기사도 떴어요. 보실래요?”

이리 말한 예은이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검색한 뒤에 내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정말로 예은이의 말대로 화면에는 꽤나 자극적인 문구로 여러 기사가 올라와있었다.

-갑작스레 실종되었던 수십여 명의 여성들! 다시 돌아온 순간, 나체……. 국민들 충격!

-새로운 마물의 출현을 염두에 두어둬야 되는 사태! 정부가 직접 나서서 여성들을 조사

-실종자 전원 무사 귀환한 것으로 확인! ‘우린 아무렇지도 않다.’

다행히도 내가 던전 내 조교의 방으로 불렀던 여성들 전원 별다른 소리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심하는 것도 금물이었다. 나는 예은이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생체 실험 당한 거 아님? ㄷㄷㄷㄷ

-좀 섬뜩하다. 우리도 잘 못 하면 저렇게 끌려간다는 거 아냐?

-하지만 다들 괜찮다고 하잖아. 괜찮지 않을까?

-마물 사냥꾼들 뭐하냐? 진짜 세금 낭비 쩌네

-이번 사태는 좀 심각한 듯

다들 이번 일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성급하게 일을 벌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다 못 해, 던전 내 조교의 방이 아닌 조교의 방으로 부를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시간이 흐를 줄이야.’

아니,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몰래 촬영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두고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스마트폰을 파괴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설마 이렇게 큰 일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

‘……생각 좀 하고 움직일 걸.’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오긴 했지만, 일은 이미 벌어지고 난 뒤였다. 차라리 이 실수를 초석으로 삼아서 다음에 실수하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숨을 고른 나는 예은이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입을 열었다.

“혹시 너도 휘말린 건 아니지?”

“아니에요. 근데 선배는 뭔가 감이 오지 않으세요?”

“응?”

“이거……. 그 변태 가면이 한 것 같지 않아요?”

그 말에 뜨끔하긴 했으나, 나는 필사적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너무 빠르게 뛰어서 옆에서 우리를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은하가 들을 것만 같았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꾹 참았다.

여기서 들켰다간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될 테니 말이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나는 평온을 가정하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럴지도……. 혹시 마물들을 다루는 게, 그 변태 가면인 건 아닐까?”

“마물을 다루는 게, 변태 가면이라고요?”

“그래. 확신은 안 서지만, 예전에 내가 서연이 누나하고 이상한 공간으로 끌려갔을 때 괴물이 나타났었거든? 그걸로 봤을 때, 이번에 나타나는 마물도 변태 가면이 조종하는 것 같은데…….”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쳐보였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예은이의 얼굴에 놀란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포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었다.

“서연이 언니한테 물어봐야겠네요.”

“이따 이야기해보자. 은하, 너도.”

이런 내 말에 은하가 결연한 표정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편 우리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지현이가 살짝 불만어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변태 가면이니 뭐니 이야기하는데, 대체 무슨 이야기야?”

“응?”

그 물음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이윽고 은하의 팔꿈치를 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게임 이야기야. 요즘 변태 가면이란 범인을 놔두고서 잡는 게임을 하고 있거든. 그렇지, 은하야?”

이렇듯 바통을 넘기자, 은하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변태 가면을 잡는 게임이야.”

“흐음.”

불행히도 지현이는 우리의 말을 그다지 믿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오히려 불신만 더 짙어졌다.

이럴 때, 속시원하게 밝힐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변태 가면에 얽힌 이야기는 그다지 떠벌리고 싶은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숨기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서연이 누나는 정말로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내게 그런 짓을 당하고도 아득바득 이를 갈면서 복수를 꿈꾸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도 말이다.

‘빨리 단념시켜야 될 텐데.’

끙, 숨을 들이켜며 상념에 잠기려는데 불현듯 은하가 내 팔꿈치를 툭 치며 바통을 넘겼다. 이에 나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밥 먹자.”

“지금 밥이 넘어가요? 나 빼고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속닥거린 건데요? 예은이 너가 말해봐!”

이러한 지현이의 말에 예은이는 묵묵히 돈가스를 먹으며 외면했다. 확실히 저 방법 또한 무척이나 좋은 방법이었다. 나는 내심 예은이의 대처에 감탄하며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막 돈가스 한 조각 먹으려는데, 또다시 뒤통수가 따끔따끔 거려왔다.

“……?”

시선이 느껴진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지만, 이번에도 저번처럼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밥을 먹거나 맞은편 사람과 수다를 떠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빠, 왜 그래요?”

그 때, 은하가 날 향해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대꾸하고는 포크에 찍혀있는 돈가스 조각을 먹었다.

========== 작품 후기 ==========

아이돌 프로젝트 1차 예선은 아직 방송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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