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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에 옅은 호선을 그린 나는 나머지 상자들도 차례차례 열어보았다.
[축하합니다!]
[장비 ‘증폭 구슬(N)’을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 공격 마법의 위력을 상승시켜줍니다.]
[축하합니다!]
[장비 ‘저주 받은 마리오네트(R)’를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1 : 본 장비는 사용자와 생명력을 공유합니다. 목각 인형이 파괴될 시에 사용자는 사망합니다.]
[효과 2 : 공격 시, 20%의 확률로 저주 : 무기력을 선사합니다.]
[효과 3 : 공격 시, 10%의 확률로 저주 : 슬픔을 선사합니다.]
“오…….”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저주 받은 마리오네트 소환.”
입을 열어 저주 받은 마리오네트를 소환하자, 곧 내 앞에 하나의 인형이 나타났다.
인형은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저주 받은 마리오네트라는 이름이 무색하도록 생김새가 무척이나 귀여웠다. 뭐라고 할까? 나는 영락없이 처키를 연상했는데, 의외로 귀여운 여자 아이를 닮은 인형이었다.
나는 잠시 인형을 살펴보다가 이내 인형의 발치에 놓여있는 십자 모양의 나무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실에 이끌려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인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인형은 내가 별다른 조종을 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 혼자서 똑바로 자리에 섰다.
“어?”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 목소리를 내는데, 돌연 인형이 말소리를 내었다.
달칵달칵, 입을 움직이면서 말이다.
“어머, 젊은 주인이네. 깔깔깔.”
소녀를 닮은 인형은 조금 경망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에 잠시 넋을 잃었던 나는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말을 할 수 있는 겁니까?”
“그럼 제가 말이 아닌 다른 걸 하고 있나요?”
“아, 그러네요. 실례했습니다.”
“어머나, 실례라니요? 그렇지 않아요. 깔깔깔.”
인형은 무척이나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당신을 조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절 조종해요? 어머, 겉보기와는 다르게 완전 짐승이시네요. 여자를 조종하다니……. 하지만 그런 거, 싫지는 않아요.”
라고 말하며 흘깃 나를 쳐다보는 인형이다. 그 눈길이 인형 치고는 꽤나 요염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 않고서 말을 이었다.
“조종할 수 없다는 겁니까?”
“절 다루실 자신이 있으시다면요. 참고로 저는 꽤 거친 암사자랍니다. 깔깔깔.”
“하하…….”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이윽고 십자 모양의 나무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언제 깔깔대며 웃었냐는 듯이 소녀 인형이 풀썩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충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건지, 감이 왔다.
나는 저주받은 마리오네트를 역소환한 다음에 남은 상자 네 개를 차례로 개봉했다.
[축하합니다!]
[장비 ‘곰의 발톱(R)’를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1 : 공격 시, 50%의 확률로 출혈을 일으킵니다.]
[효과 2 : 공격 시, 10%의 확률로 대상을 공포 상태에 빠트립니다.]
[효과 3 : 적 공격을 방어하는데 성공했을 때, 10%의 충격을 축적합니다. 원할 때, 공격에 피해를 더할 수 있습니다.]
“오……. 이건 유 지아 씨에게 주면 되겠는 걸?”
복서 출신인 만큼 단검보다는 너클 형태의 곰의 발톱을 훨씬 더 잘 다룰 것이 틀림없었다.
더욱이 현재 유 지아가 쓰고 있는 날렵한 단검이 노말 등급인데 반해서 곰의 발톱은 레어 등급의 장비였다.
‘여기에 바람을 달리는 부츠까지 착용하면 완전 날아다니겠네.’
안 그래도 오크를 상대로 훨훨 날아다니던 유 지아였는데, 앞선 두 장비를 새롭게 착용하게 된다면? 틀림없이 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줄 것이 틀림없었다.
“좋네.”
잠시 유 지아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던 나는 이윽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계속해서 랜덤 장비 상자를 개봉했다.
[축하합니다!]
[장비 ‘치료술사의 지팡이(N)’를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1 : 대상의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5분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효과 2 : 대상의 상처를 회복시킵니다. (1분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자는 ‘치료술사의 지팡이(N)’과 중복되는 장비를 보유하고 계십니다.]
[중복되는 장비를 획득할 시에는 장비 강화 혹은 정기 교환을 하실 수 있습니다. (단, 이 경우 정기 획득양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장비 강화 / 정기 교환]
“오!”
랜덤 장비 상자를 개봉하던 와중에 내가 보유하고 있는 장비가 나왔다. 이에 나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장비 강화를 선택했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정기 교환보다는 장비 강화 쪽이 훨씬 더 이득이었기 때문이었다.
[축하합니다!]
[장비 ‘치료술사의 지팡이(N)(+1)’를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1 : 대상의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4분 30초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효과 2 : 대상의 상처를 회복시킵니다. (50초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좋긴 좋은데 미묘하네.”
확실히 대기 시간이 짧아진 건 좋기는 하지만, 노말 등급의 장비이다 보니 그 성능이 애매했다. 차라리 김 예지 학생이 가지고 있는 성자의 지팡이가 나와 주었다면 훨씬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니, 이건 욕심인가.’
그도 그럴 것이 중복되는 장비 혹은 스킬 얻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모든 게, 행운에 좌우되는 랜덤 시스템이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랜덤 상자를 구매하기 위해서 현질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정도인가.’
확실히 이런 쪽으로는 반길만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게 랜덤인 건 살짝 과하단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 모든 시스템이 사용자의 정기를 빨아먹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지 않은가?
흠, 하고 숨을 내뱉던 나는 이윽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남은 두 개의 상자를 개봉했다.
[축하합니다!]
[장비 ‘견고한 치마(N)’을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 즉시 수복이 가능합니다. (10분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장비 ‘진리의 검은 스타킹(N)’을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 사용자가 다리에 상처를 입을 경우, 곧바로 지혈이 됩니다.]
“뭔가 굉장한 조합이네.”
솔직히 말해서 앞서 나온 레어 등급의 장비들도 좋았지만, 지금 나온 이 두 장비 또한 만만치 않게 좋았다. 특히나 마물 사냥꾼의 리더, 이 소현이 견고한 치마와 진리의 검은 스타킹을 입고서 전투를 하는 모습은 그저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 흐뭇해지는 듯했다.
“……크흠.”
물론 그렇다고 사적인 감정이 있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었다.
차분히 숨을 고른 나는 엄지로 확인을 누른 뒤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여전히 고블린들에게 범해지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사실 범해지고 있다고 하기에 상당히 애매했다.
“하앙! 흐읏! 아아아, 더……. 흐읍! 으읏!”
“쿠흡! 으읏, 아윽! 아, 좋아. 하앙! 아앗! 하읏! 앙!”
하나 같이 모든 여성들이 고블린들에게 범해지면서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웃기는 광경이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싫다며 저항했던 여성들이 지금에 와서는 고블린들에게 범해지면서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이 미약의 효과 탓이라고는 하지만 고블린과의 섹스를 즐기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윽고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모두 물러나세요.”
내 말소리에 맞춰 모든 고블린들이 행동을 딱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뒤, 마흔 여덟 마리의 고블린들이 여자들을 놔두고서 뒤로 물러났다. 이에 여성들은 당황한 듯이 어버버 거리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점점 멀어지는 고블린들을 애타게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꽤나 우스워, 나는 살짝 입술을 비틀며 입을 열었다.
“……무척이나 좋은 시간을 보내신 것 같군요.”
이리 말하며 여성들을 훑어보자, 다들 하나 같이 움찔 몸을 떨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몇몇 여성은 여전히 아쉽다는 눈길로 고블린들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는 광경이었다.
나는 짧게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군요. 저는 분명히 여러분들에게 벌을 준 거였는데 말이죠.”
“…….”
“그런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러한 내 물음에 여성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나는 일백 여명에 가까운 여성들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섹스가 아니라 고문으로 바꿔볼까요? 가령 예를 들어서 손톱을 뽑는다던가 다리를 분지른다던가 말이죠. 아니면 고블린과 데스 매치 어떻습니까? 죽을 때까지 한번 싸워보는 겁니다. 그러면 조금은 마물 사냥꾼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연달은 내 질문에 여성들은 하나 같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더불어 아까 전까지만 해도 미약에 취해서 고블린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여성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이쯤 할까?’
비록 내가 의도했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충분히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모두가 고블린과의 섹스에 만족했으니 말이다.
비록 그것이 미약 탓이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아무래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께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일순 동굴 안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끄러울 정도로 술렁거리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조금 들뜬 술렁임이었다.
나는 술렁임이 가라앉기를 기다린 뒤에 차분히 입을 열었다.
“현실로 돌아가거든 자신이 쓴 댓글을 전부 삭제하고 마물 사냥꾼, 한 채원 씨를 응원해주세요. 아니, 마물 사냥꾼 전원을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만 해주신다면 이쯤에서 끝내드리겠습니다.”
이렇듯 말을 끝마치자, 다시금 동굴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몇몇은 크게 갈등하는 빛을 보이며 고블린들을 쳐다보기까지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두려움의 표시인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애틋한……. 마치 현주가 내게 보이던 그런 시선이었다.
‘호오.’
놀랍게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성들이 고블린들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현주가 내게 애틋한 감정을 품었듯이 말이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다수인 것은 틀림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서 묻는 건데…….”
잠시 말꼬리를 늘린 나는 여성들을 한 차례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고블린과 계속해서 관계를 가지고 싶으신 분이 계십니까?”
“……!”
이러한 내 말에 대다수 여성들이 동요의 빛을 내보였다. 그리고 이윽고 한 여성이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저, 저는 계속 하고 싶어요!”
한 명이 손을 들자, 그 뒤를 이어서 다른 여성들도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도요!”
“저도!”
“저도 하고 싶어요!”
혹시나 싶어서 물어본 건데, 놀랍게도 무려 팔십 여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손을 들어 고블린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며 의사를 밝혔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이것이 미약의 후유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재차 입을 열었다.
“벌로 준 것이 도리어 상이 되어버렸군요.”
“…….”
이런 내 말에 손을 들고 있던 여성들이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이에 나는 하하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단지 조금 의외였을 뿐입니다.”
이리 말한 나는 손을 들고 있는 여성들을 쭉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렇게나 많은 여성분들이 고블린과의 관계를 원하고 있으니, 한 가지 신호를 정합니다.”
“……?”
신호라는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간단합니다. 매달 1일이 되는 날, 마물 사냥꾼 공식 카페에 ‘한 채원 씨, 사랑해요.’라는 글을 올리시면 되는 겁니다. 단, 이 때 실명으로 올리셔야 합니다. 그러면 제가 일주일 내로 여러분들을 이 자리로 불러내어드리겠습니다.”
“아…….”
순간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물론 고블린과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 분들만 올리면 됩니다. 어떻습니까, 서로 좋은 일이지요?”
이러한 내 말에 다들 수긍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걸로 현주 때처럼 골머리를 썩이지는 않겠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주 안심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켠 다음에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거든 당장 그만 두세요. 만약에 그런 짓을 한다면 그 땐 저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
“농담 같으신가요? 어둠의 화살.”
주문을 외운 순간, 내 앞에 검은색 구체가 생성되더니 곧 그것은 빠른 속도로 동굴 벽 쪽으로 날아가 쾅!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어찌나 큰 소리를 내던지 고막이 먹먹해질 정도였다.
그래도 그 충격음 덕분인데, 일백 명의 여성들의 얼굴은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자, 그럼 스마트폰을 걷겠습니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한 나는 고블린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스마트폰을 수거하도록 만들었다. 애당초 대다수의 스마트폰이 찢어진 옷가지와 함께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기에 수거하기란 무척이나 쉬웠다.
“어둠의 화살.”
이처럼 스마트폰을 모두 회수한 나는 어둠의 화살로 모조리 박살내었다.
깔끔한 뒤처리였다.
물론 이 와중에 촬영을 했을 여자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왕에 일처리를 하는 거 뒤탈 없이 깔끔하게 하고 싶었다.
‘이걸로 문제없겠지.’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벙찐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돌아갈 시간입니다.”
이리 말한 나는 조교를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