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 -->
“던전 코어.”
[흑흑, 네……. 훌쩍.]
내 부름에 던전 코어는 코를 훌쩍훌쩍 거리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던전 코어를 살살 굴리며 물었다.
“이 매니저 어플을 만든 사람이 대체 누구지?”
[마왕 안드레아입니다. 훌쩍. 무한한 마력을 가진 마족이었으며, 그 분은 높은 긍지와 강한 힘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또한 매우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계셨으며 동시에 마계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뿔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두 번째? 그럼 첫 번째는 누군데?”
[첫 번째는 마족 스텔라입니다. 그 분은 마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뿔을 가지고 계셨으며, 마왕 안드레아의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물어본 거였는데, 의외로 세세히 알고 있는 던전 코어였다.
나는 살짝 감탄하다가 이내 본론으로 다시금 화제를 돌렸다.
“매니저 어플을 만든 마왕 안드레아의 목적은 뭐지?”
[마왕 안드레아의 목적은 알 수 없습니다. 접근 할 수 없는……. 히익! 또 움켜쥐지 마세요! 허엉, 정말로 몰라요! 전 정말로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꺄아아악!]
손아귀에 힘을 주는 것과 동시에 울며불며 내게 매달리는 던전 코어다.
그 태도를 보아하니, 확실히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나는 천천히 손아귀에 힘을 풀며 입을 열었다.
“마왕 안드레아는 어디에 있지?”
[흑흑, 죽었습니다.]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가장 가까이했던 친우에게 배신당하면서 마정석 파편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마정석은 모든 마족의 근원. 특히나 마왕 안드레이가 품고 있던 마정석은 무한한 마력을 지닌 것이었기 때문에 수십 억 개로 나뉘어져 세계에 뿌려진 상태입니다.]
“설마 그 스텔라라는 마족한테 배신당한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마족 세이라와 마족 엘레나에게 배신당한 겁니다.]
“왜 배신당한 거지?”
[마족 스텔라와 마족 세이라 그리고 마족 엘레나의 부군을 마왕의 자리로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
실로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계속해서 던전 코어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내가 마정석 파편을 모두 모으게 되면 마왕 안드레아가 부활하게 되는 거야?”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쪽도 복수인가.”
[그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고?”
[그렇습니다. 마왕 안드레아는 배신을 당하는 그 순간, 차원 이동을 감행했고 그 결과 차원 이동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깨져있던 마정석은 그 여파를 견디지 못 하고 그만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마왕 안드레아는 차원 이동에 성공했지만 사망한 겁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 부활한다고 하더라도 마왕 안드레아는 본래 있던 차원으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무슨 이유에서?”
[차원 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무한에 가까운 마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미 한번 깨어진 마정석은 결코 무한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건, 유한한 마력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마왕 안드레아가 만에 하나 부활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왕 안드레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매니저 어플을 남긴 것이지?”
[알 수 없습니다. 꺄악! 정말로 모른다니까요! 정말로 몰라요! 엉엉, 그만 좀 움켜쥐세요! 흐엉, 저 죽어요! 어어엉!]
던전 코어는 정말로 서럽다는 듯이 꺼이꺼이 울음을 터트리며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너무 심했나?’
그 모습에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던전 코어의 표면을 슬슬 문지르며 상념에 잠겼다.
‘……마왕 안드레아의 목적이 대체 뭘까? 그보다 이대로 계속 매니저 어플을 해도 되는 걸까? 혹시 나중에 부활한 마왕한테 영혼을 빼앗기고 이러는 거 아냐?’
진부하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던전 코어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마왕 안드레아가 부활했을 때, 내 영혼을 빼앗거나 그러지는 않을까?”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마왕 안드레아는 긍지 높은 마족입니다. 또한 뿔에 대한 애정이 매우 높습니다.]
“뿔에 대한 애정이 높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마족의 뿔은 추악함에 비례해서 흉하게 일그러집니다. 하지만 마왕 안드레아는 마계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뿔을 가진 마족입니다. 그런 이상, 마왕 안드레아가 스스로 자신의 뿔을 추악하게 만드는 짓은 벌이지 않을 겁니다.]
“그럼 뭔가 다른 걸 노리는 게 있다는 건가?”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던전 마스터.]
“무슨 말이지?”
[마왕 안드레아가 던전 마스터에게 보답을 했으면 했지, 반대로 해코지를 할 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마냥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상대는 마족이었으니 말이다.
만에 하나라도 대비해두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납을 안 할 수도 없고…….’
혀를 쯧쯧 차며 손에 들려있는 던전 코어를 살살 굴리는데, 돌연 햐읏! 하고 야릇한 소리가 들려왔다.
“응?”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엘레노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엘레노아가 낸 소리가 아닌 모양인지, 그녀는 던전 코어 쪽을 바라보며 어머어머 소리를 내었다. 이에 엘레노아가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양 볼을 감싸고 있는 던전 코어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 그게…….]
내 시선을 받은 던전 코어는 적잖게 당황한 듯이 말까지 더듬었다.
그 모습에 나는 혹시나 싶을 생각에서 손에 들려있는 던전 코어를 살살 어루만졌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던전 코어의 입술 사이로 야릇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하윽! 하앙, 거, 거긴……. 안 됩니다, 던전 마스터! 햐읏! 아앙!]
놀랍게도 던전 코어는 만져지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건 또 새로운 사실이었다.
내심 감탄한 나는 던전 코어의 갈라진 틈 사이로 손톱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살살 긁듯이 만지자, 돌연 던전 코어의 몸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히이이익! 트, 틈 사이로 이상한 거 넣지 말아주세요! 하윽! 아아앗! 안 됩니다! 히익!]
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던전 코어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내게 애원했다. 다만 그 애원이 이전과는 살짝 달라있었다. 이전에는 그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처음 느껴보는 쾌감에 어쩔 줄 몰라해하는 몸부림이었다.
“호오.”
감탄성을 터트린 나는 좀 더 거칠게 갈라진 틈을 후벼 파며 괴롭혔다.
[까앗! 아읏! 아아앗, 앙! 햐으으으! 으읏, 윽! 더, 던전 마스터……. 히익! 햐읏! 아아아아앙!]
그렇게 몇 번이고 거듭해서 갈라진 틈을 후벼 파자, 돌연 던전 코어의 입술 사이로 긴 교성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방 안이 황금빛으로 가득 찼다. 어찌나 밝게 빛을 내던지, 바닥이며 벽이며 온통 황금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하윽, 읏. 아……. 하아, 하아.]
그 때, 던전 코어가 멍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보아하니, 절정에 달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쳐다보던 나는 돌연 던전 코어의 앞에 서며 물었다.
“너 혹시 절정에 달한 거냐?”
[후아, 아? 네? 저, 절정이라니요! 저는 그런 거 모릅니다!]
내가 묻기가 무섭게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강하게 반박하는 던전 코어다.
그러나 절정의 여운으로 붉게 물들어 있는 양 볼이라던가,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팔다리는 결코 내 눈을 피해갈 수 있었다.
이건 확실히 절정의 징후였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한 번 더 기분 좋게 해주려고 했더니…….”
[네? 또, 또요?]
“왜?”
[아, 그……. 그게 그러니까…….]
던전 코어는 잠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내 은근하게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맞는 거 같습니다, 던전 마스터.]
“맞는 거 같다니?”
[저, 절정에 달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네…….]
수줍게 대답하는 모습이 마치 첫날밤을 맞이한 새색시를 보는 듯했다.
나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웃음을 꾹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나보고 한 번 더 해달라는 거야?”
[아, 그게……. 으읏, 네……. 맞습니다. 한번만 더…….]
의외로 솔직하게 대답하는 던전 코어다. 그만큼 처음 맞이한 절정감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했던 모양이었다.
“음, 근데 이걸 어쩌지?”
[네? 뭐, 뭔가 문제라도……?]
“난 하기 싫은데?”
[그, 그런……!]
“나보고 나쁜 던전 마스터라며?”
[아, 아니에요! 던전 마스터는 착한 분이세요!]
“정말로?”
[정말입니다!]
크게 소리쳐 말한 던전 코어는 정신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에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이게 그렇게 좋냐?”
[하앙! 아앗, 흐으윽! 아아……. 던전 마스터, 흐읏!]
갈라진 틈 속으로 손톱을 밀어 넣어, 살살 긁어주자 던전 코어는 곧바로 기쁨에 몸서리치며 숨을 헐떡였다. 그 모습이 실로 신선했다. 어떻게 한낱 구슬 따위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말인가? 내심 감탄한 나는 천천히 손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더 하기 전에 몇 가지 좀 물어보자.”
[아, 흣……. 아아, 네. 뭐든지 물어봐주세요.]
던전 코어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면서도 얌전히 내 질문을 기다렸다.
그 태도가 제법 기특했기에 나는 상으로 던전 코어의 표면을 슥슥 어루만져주었다. 그러자 자그맣게 교성을 터트리며 부르르 몸을 떠는 던전 코어다.
“현계 퀘스트, 이계 퀘스트는 누가 내주는 거지?”
[제 언니들입니다. 단, 현계 퀘스트의 경우는 다릅니다.]
“다르다니?”
[현계 퀘스트의 경우에는 주도적인 것이 아닌 마물들이 현계에 침범해 올 경우에만 관리해주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이계 퀘스트와 던전 퀘스트의 경우, 저희들이 그 때 그 때 내어드리는 겁니다.]
“그 언니라는 사람들도 볼 수 있을까?”
[불가능합니다. 저와는 다르게 마땅한 매개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개체를 만들 수는 없을까?”
[저로는 알 수 없……. 히익! 정말입니다! 저는 모릅니다! 정말로 몰라요! 엉엉!]
내 손에 힘이 들어갈 기미가 엿보이자, 던전 코어는 재빠르게 몸을 납작 엎드리며 내게 매달려왔다. 이에 나는 혀를 차며 도로 손에 힘을 풀었다.
정말로 아쉽다.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매니저 어플이 어째서 내게 들어온 거지? 나는 따로 뭘 한 적이 없는데?”
[우연입니다.]
“우연?”
[네, 그렇습니다. 오로지 우연입니다. 매니저 어플은 남녀노소를 가지지 않으니까요.]
“어째서지?”
[상납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되기 때문입니다. 던전 마스터도 상납을 1회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
[그대로입니다. 상납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매니저 어플을 계속 이용하실 수 있는 거고, 상납을 제대로 하지 못 하면 자격이 박탈당하게 되는 겁니다. 실제로 상납을 제대로 하지 못 해서 사용자 자격을 박탈당한 사용자가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박탈당한 사용자가 있었다고? 그럼 내가 매니저 어플을 손에 넣기 전에 사용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첫 번째는 프랑스인이었습니다. 그는 매니저 어플로 많은 정기를 모았지만, 이계 퀘스트를 하던 와중에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중국인이었습니다. 그는 사용자 정보는 읽는 와중에 그만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다음으로 세 번째는 미국인이었는데, 그는 매니저 어플을 실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해킹의 위험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매니저 어플은 상납 문제로 삭제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러시아인이었습니다만, 그녀는 이계 퀘스트의 위험성을 깨닫고 매니저 어플을 포기했습니다.]
“그럼 내가 다섯 번째인가?”
[그렇습니다.]
실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잠시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이내 혹시나 싶은 생각에서 물었다.
“혹시 나 말고 매니저 어플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는 거야?”
[없습니다.]
“어째서지? 나 혼자서 마정석 파편을 모으는 것보다는 여럿이서 모으는 게 훨씬 빠를 텐데?”
[복수의 사용자가 매니저 어플을 이용하게 될 경우, 사용자들 간에 충돌이 일어나게 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충돌?”
[그렇습니다. 매니저 어플은 마정석 파편과 정기를 모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사용자 간에 반목을 일으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매니저 어플은 사용자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사용자가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사용자를 사냥하는 사용자? 하지만 그럴 때는 너희가 직접 나서서 조취를 취하면 되잖아.”
[불가능합니다. 매니저 어플은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것입니다. 강제로 자격을 박탈할 수는 없습니다.]
“의외로 철저하네.”
혀를 내두른 나는 스마트폰과 던전 코어를 번갈아보았다. 그런데 그 때, 던전 코어가 은근슬쩍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어……. 던전 마스터, 이제 슬슬…….]
슬슬 만져주었으면 하는 모양인지, 안달이 난 목소리로 나를 보채는 던전 코어다.
========== 작품 후기 ==========
이번 편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스텔라의 뿔은 마계 제일이다!'
입니다. 역시 스텔라의 뿔은 마계 제일이죠.
곧게 뻗은 그 모양이며 촉감은... 크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