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 -->
소피아를 달래준 직후 나는 소녀를 품에 안고서 던전 코어의 방으로 향했다.
던전 코어에게도 벌을 주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 일의 배후자라고 한다면 단언컨대 던전 코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일의 원인을 제공한 건 소피아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원인을 이용해서 이러한 일을 꾸며낸 건, 바로 던전 코어였다.
즉, 던전 코어가 소피아를 꼬드기지만 않았어도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 거란 이야기였다.
더욱이 던전 코어가 무슨 생각에서 이러한 일을 저질렀는지도 궁금했다.
‘소피아처럼 무언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모르니까.’
나는 한걸음씩 내딛으며 던전 코어의 속내를 짐작해보았다. 그런데 그 때, 내 품에 안긴 채로 꼬물거리는 소피아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에 고개를 숙여보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로 어쩔 줄 몰라해하는 소피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차분하고 억세 보이던 모습만 보여주던 소녀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이제야 소피아가 또래의 어린 아이처럼 보였다.
무척이나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소피아의 몸을 좀 더 세게 끌어안아주었다. 그러자 앗! 하는 소리와 함께 내 품에 꼭 안기는 소녀였다. 보들보들한 살의 감촉이라던가, 아직 어린 소녀의 풋풋한 살내음 그리고 연신 꼬무락거리는 팔다리의 움직임은 내 기분을 한층 들뜨게 해주었다.
특히나 어린 아이답게 미성숙한 가슴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 사실 소피아와 처음 마주했을 때에 이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평평하다 싶을 정도로 작은 가슴은 더없이 사랑스러웠으니 말이다. 물론 소피아의 살짝 올라간 눈매라던가, 아닌 척 하면서도 나를 걱정해주던 퉁명스런 말투도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
그 때, 소피아가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안겨 들어왔다. 나는 소녀의 떨리는 몸을 그리고 머릿결을 천천히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소피아 씨, 저는 당신이 좋습니다.”
“거짓말…….”
이런 내 말에 소피아가 볼멘소리로 반박했다. 이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소녀의 몸을 한층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는 소피아 씨가 좋습니다. 그래서 던전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소피아 씨가 걱정되어서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왔던 겁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회사에 출근하는 서연이 누나를 배웅하고서 매니저 어플을 실행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던전이 적에게 공격받고 있다니? 나는 그 순간, 혹시라도 소피아와 엘레노아 그리고 마틸다가 적에게 살해당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었다.
“…….”
그리고 이런 내 말에 소피아는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것을 느낀 모양인지, 소피아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 가슴팍에 머리를 기댈 뿐이었다. 이에 나는 소녀의 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소피아 씨의 복수는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소피아 씨는 제게 다 맡겨주세요.”
“그럼 나는 뭘 하면 되는 거지?”
소피아는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불안해하는 것만 같았다. 그 태도에 나는 소녀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맞추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소피아 씨는 아직 어립니다. 그러니 이런 건, 어른인 제게 부탁하세요. 그리고 소피아 씨는 어린 아이답게, 그리고 착실하게 한 명의 어른으로 성장해주세요. 복수를 생각하기엔 소피아 씨의 삶이 너무나도 아깝습니다.”
“…….”
이러한 내 말에 소피아는 몇 번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이윽고 입술을 꾹 다물며 내 가슴팍에 머리를 묻었다.
그 태도를 보아하니,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 이상으로 소녀를 보채지 않았다. 영리한 아이니까, 틀림없이 복수가 아닌 자신의 삶을 고를 것이 분명했다. 물론 소피아가 이제까지 겪은 일을 떠올려본다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일단 두고 봐야겠지.’
이처럼 생각을 정리한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곧 던전 코어의 방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에 나는 지체 없이 방 안으로 들어선 뒤에 방 한 가운데에 둥둥 떠 있는 던전 코어를 바라보았다.
“던전 코어.”
던전 코어를 부르자, 녀석이 웅웅 소리를 내며 미약하게 황금빛을 내었다. 다만 이렇다 할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엘레노아에게 듣기로는 던전 코어가 틀림없이 말을 했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엘레노아가 마정석 파편을 흡수하기 전에 딱 한 번 말이다.
그걸로 미루어보았을 때, 던전 코어는 충분히 내게 말을 걸어올 수 있었다.
“……대답해라, 던전 코어.”
나는 정말로 화가 난 목소리로 녀석을 불렀다. 그러자 녀석이 보다 강한 황금빛을 내며 웅웅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는 곧 내 귀에 뚜렷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던전 마스터를 뵙습니다.]
“정말이었군.”
나는 심히 불쾌하단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런 능력이 있었으면 이제까지 날 속였다는 말이지? 그것도 감쪽같이 말이야.”
[오해입니다, 던전 마스터. 제가 이 능력을 얻게 된 건, 대상 ‘소피아’가 마정석 파편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지금 이 능력을 사용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힘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이 상태로 계속 대화를 하다간 금세 모든 힘을 잃고 동면 상태에 들어가게 될 겁니다.]
“좋아, 그럼 짧게 말하지.”
이리 말한 나는 내 품에 안겨있는 소피아를 땅바닥에 내려놓은 뒤에 던전 코어 쪽으로 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내가 없는 동안 아주 발칙한 짓을 저질렀더군.”
[던전 마스터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던전 마스터를 위해서 헌신했을 뿐입니다. 다만 코카드리유의 경우, 전혀 예상지도 못 한 변수였습니다. 그러나 던전 마스터도 들으셨다시피 원활하게 해결하던 중이었습니다.]
“원활하게? 리자드맨을 넘겨주는 게 원활?”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던전 마스터, 화를 가라앉히시지요.]
“화? 글쎄, 난 그다지 화를 가라앉히고 싶지 않은데?”
이 말과 동시에 나는 던전 코어에 손을 얹었다.
[저는 오로지 던전 마스터를 위해서 행동했습니다. 제 진심을 알아주십시오, 던전 마스터.]
“아까부터 계속 날 위해서 행동한거라고 하는데, 내가 뭘 원하는 줄 알고 행동했다는 거지?”
[던전 마스터께선 힘을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던전을 개설한 순간부터 던전 마스터는 힘을 원하고 계셨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던전 마스터의 힘을 늘려드리고자, 마정석 파편을 모아 던전의 힘을 늘린 겁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같잖은 변명에 코웃음을 친 나는 그대로 내 손에 잡혀있는 던전 코어를 으스러트릴 기세로 움켜쥐었다.
[꺄아아악!! 지,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당장 그 손 놓아주십시오! 던전 마스터! 그 이상으로 힘을 주시면 망가집니다!]
그 순간, 던전 코어가 크게 소리치며 황금빛을 마구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개의치 않으며 거듭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던전 코어의 표면에 금이 갔다.
생각보다 경도가 낮은 모양이었다.
“너 말이야, 내가 언제 너보고 마정석 파편을 모아달라고 했었어? 아니면 던전의 힘을 늘려달라고 부탁했어? 내 기억에는 너와 내가 대화를 나눈 게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
[꺄악! 그, 금이 갔어요! 히이익! 던전 마스터, 저는 그저……! 꺄아아악! 그만! 그만 움켜쥐세요!]
“얼른 대답하지 그래, 던전 코어? 안 그러면 나도 모르게 으깨버릴지도 몰라.”
[히익! 저는 던전 마스터께서 힘을 원하시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제 부탁도 다 들어주셨지 않습니까!]
“네 부탁? 뭔 부탁?”
[통로를 개척하시고 고블린들을 일꾼으로 데려오시고……! 히익! 안 돼! 부서집니다! 제발, 던전 마스터! 용서해주세요! 히이익! 꺄악! 꺄아아악! 그렇게 흔들면 안 됩니다! 꺄악!]
던전 코어의 말을 들은 순간 나도 모르게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던전 코어의 말을 빌려보자면, 이제까지 내가 스마트폰으로 받았던 퀘스트가 전부 던전 코어가 내려주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현계 퀘스트랑 이계 퀘스트도 전부 네가 준 거냐?”
[아닙니다! 히익! 또 깨졌습니다! 꺄아악! 마, 망가집니다! 던전 마스터! 제발,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내게 애걸복걸하며 황금빛을 마구 뿜어내는 던전 코어다. 이에 나는 슬쩍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그제야 던전 코어가 조금씩 황금빛의 양을 줄이며 웅웅 떨기 시작했다.
[흑흑……. 흐으윽, 흑흑.]
심지어 울기까지 한다.
그 울음소리에 나는 내가 너무 심했다는 것을 느끼곤 일단 화를 가라앉혔다. 사실 방금 전, 던전 코어가 내뱉던 비명 소리를 듣고서 다소 화가 가라앉은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피아를 이용해 먹었던 던전 코어를 아주 용서해주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게 뭘 잘 했다고 질질 짜고 그래?”
이리 말한 나는 그대로 발로 던전 코어를 걷어찼다.
[꺄아아악!]
힘을 빼서 가볍게 찬 것임에도 불구하고 던전 코어는 크게 비명소리를 내뱉으며 허공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러다가 곧 중심을 잡은 던전 코어는 울음소리 대신에 웅웅웅 소리를 내며 벌벌 떨었다.
마치 흐느껴 울듯이 말이다.
“야.”
[네, 네…….]
“이 매니저 어플을 만든 사람이 누구야?”
[무한한 마력을 가지고 계셨던……. 부서진 마정……. 이제…….]
불현듯 던전 코어의 말이 조금씩 끊어져서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전자파가 닿지 않는 곳에서 통화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나는 잠시 던전 코어의 말을 멈추게 한 뒤에 입을 열었다.
“너 말이 왜 그래? 설마 망가진 거냐?”
[그게……. 아닙니다. 힘이……. 다한, 다한 상태……. 상태이기 때문에……. 곧 동면…….]
이 말과 동시에 방 안 가득 물결치던 황금빛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무언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엘레노아가 마정석 파편 네 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엘레노아 씨, 가지고 계신 마정석 파편을 제게 주시겠습니까?”
“설마 맨입으로요?”
엘레노아는 촉촉해 보이는 빨간 입술을 삐죽 내밀며 되물었다. 어서 빨리 키스를 해달라는 듯이 말이다. 그 어리광에 당장에라도 키스를 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키스 대신에 엘레노아의 정수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여주었다.
“엘레노아 씨에게 줄 벌은 이걸로 끝내겠습니다. 그러니 마정석 파편을 내놓으세요.”
“너무해요, 주인님! 이럴 순 없다고요!”
“너무한 건, 엘레노아 씨입니다. 제가 분명히 소피아 씨를 감시하라고 했지, 누가 이런 걸 도우라고 했습니까? 게다가 도우려면 끝가지 책임지고서 도와줄 것이지, 이런 일까지 벌이다니……. 그래도 주동자가 아니니까 이 정도에서 끝내드리는 겁니다.”
이렇듯 내가 말하자, 엘레노아는 자그맣게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찔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얌전히 마정석 파편 네 조각을 내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이처럼 마정석 파편을 건네받은 나는 곧바로 던전 코어 쪽으로 몸을 돌린 뒤에 마정석 파편 네 개를 올려주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정석 파편이 그대로 녹듯이 던전 코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더불어 여기저기 금이 가있던 던전 코어 표면이 다시금 매끈해졌다.
‘크기도 살짝 커진 거 같은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을 꺼내서 확인해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라 있는 게 보였다.
[축하합니다!]
[던전 코어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현재 던전 코어의 레벨은 ‘4’입니다.]
[던전 코어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총 ‘200’입니다.]
[‘200’이 초과될 경우, 던전 내에 수용된 인원들이 굶주림을 느끼게 됩니다.]
[던전의 영역이 증가합니다. 던전 내부의 지도를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던전 코어와 직접적인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퀘스트는 이전과 동일하게 표시되나, 던전 코어에게 직접 퀘스트를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던전 수호자의 제한 인원이 ‘3’으로 증가합니다.]
“오호…….”
살짝 감탄하며 알림문구를 살펴보고 있는데 돌연 방 안이 황금빛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렇게 몇 초가 흐르자, 내 앞에 한 명의 여성이 불쑥 나타났다.
다만 그것은 따로 실체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가 아닌 홀로그램으로 투영된 하나의 영상과도 같았다.
‘던전 코어인가.’
엘레노아가 설명해준 던전 코어의 외관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그런데 그 때, 던전 코어의 살짝 삐진 표정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물론 던전 코어는 자기 나름대로 표정 관리를 한다고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미묘하게 올라간 눈초리라던가 삐죽 내밀어진 입술은 나를 속일 수 없었다.
“너 삐졌냐?”
[삐져요? 누가요? 제가요? 설마요! 저 안 삐졌는데요.]
누가 봐도 ‘나 삐졌어요!’라고 소리치는 모습이었다. 이에 나는 끌끌 혀를 차며 던전 코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벌이 부족했나보네.”
이리 말하며 던전 코어를 덥썩 붙잡아, 일순 그녀의 표정에 경악이 서렸다.
[더, 던전 마스터! 제발 진정하시고 그 손을 좀 놔주십시오! 저는 충분히 벌을 받았습니다! 제가 잘 못 했습니다! 엉엉, 이제 그만 용서해주세요!]
“아니, 넌 벌이 부족해.”
딱 잘라 말한 나는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주어 던전 코어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일순 탁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던전 코어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내 앞에 비추어진 여성은 양 손으로 자기 머리를 붙잡으며 괴로움에 가득찬 비명성을 터트렸다.
[꺄아아아악!! 부서집니다! 방금 막 고쳤는데! 히익! 또 금갔어! 던전 마스터, 그 이상으로 충격이 가해지면 저 정말로 망가집니다! 전 섬세한 마법의 결정체란 말입니다! 이렇게 다뤄질 순 없습니다! 히익!]
“뭘 이렇게 다뤄질 순 없어야? 옛날부터 고장 난 컴퓨터는 다 이렇게 고쳤어.”
퉁명스레 대꾸한 나는 던전 코어를 땅바닥에 내려놓은 뒤에 발로 밟았다.
[히익! 땅바닥에 벌레가 있습니다! 싫어! 히익! 땅은 차가워서 싫습니다! 히이익! 던전 마스터, 제발 저 좀 용서해주세요! 꺄아아악! 발로 그렇게 밟지 마세요!]
발로 지그시 밟아주자, 던전 코어는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내 발에 깔려있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곧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엉엉 울었다.
[흐어어어엉! 좋은 던전 마스터인가 싶었더니, 알고 보니 나쁜 던전 마스터였어! 어어엉! 괜히 충성했어! 흐엉, 난 정말로 충성을 다한 거였는데……. 몸도 마음도 다 받쳤는데……. 흐어엉, 던전 마스터 미워요! 으앙, 미워! 밉다고요!]
누가 들으면 오해할 법한 그런 말들을 내뱉으며 꺼이꺼이 우는 던전 코어다.
나는 그 장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턱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너 나한테 정말로 충성한 거였냐?”
[흐엉, 몰라요. 이젠 몰라! 나쁜 던전 마스터 따위!]
이제는 아주 막나가기로 작정한 모양인지, 대놓고 나를 욕하며 반항하는 던전 코어다. 이에 나는 발에 좀 더 힘을 주어서 던전 코어를 밟았다.
[히이이익! 꺄악! 안 돼요! 어어엉, 그만해요! 나 망가져요! 흐어어엉! 네, 네! 충성했어요! 지금도 충성하고 있어요! 나쁜 던전 마스터라도 충성할게요! 엉엉!]
그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에 힘을 풀었다.
그 후, 여전히 꺽꺽대며 울고 있는 던전 코어를 향해 명령했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충성을 확인해볼까?”
이리 말한 나는 발로 밟고 있던 던전 코어를 주워든 뒤에 말을 이었다.
“……애교 부려봐. 내 화가 풀리게.”
이러한 내 요구에 던전 코어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내 내 손아귀에 조금 힘이 들어간 것을 확인하곤 재빨리 입을 열어 말했다.
[던전 마스터, 사랑해요! 알라뷰! 저는 던전 마스터가 너무너무 좋아요! 저는 던전 마스터의 영원한 던전 코어입니다!]
손으로 하트까지 만들며 내게 애교를 부리는 던전 코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모습을 보니, 즐겁다기보다는 기분이 더러웠다.
그 결과 나는 내 손에 잡혀있는 던전 코어를 한층 더 세게 움켜쥐며 벌을 주었다.
[꺄아아아악!! 부서져요! 그만! 히익! 또 깨졌어! 어엉, 저거 또 어떻게 고쳐! 꺅!]
꺅꺅! 비명을 지르며 울상을 지어보이는 던전 코어를 보니, 그제야 기분이 좀 풀렸다. 아무래도 던전 코어는 평생 내게 괴롭힘을 당해야 될 운명인가 보다.
========== 작품 후기 ==========
건방진 던전 코어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