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 -->
∴ ∵ ∴ ∵ ∴
던전의 상황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개판이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는 소피아와 적이라고 생각되는 커다란 도마뱀에게 리자드맨들을 넘겨주고 있는 엘레노아 그리고 리자드맨을 건네받고서 마치 닭다리를 뜯어먹듯이 팔 한쪽을 붙잡고 있는 커다란 도마뱀까지.
누가 보면 엘레노아가 적과 손을 잡고서 나를 배신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엘레노아가 나를 배신할 리가 없었다.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할 수 있었다. 실제로 엘레노아는 나를 향해 버럭버럭 성을 내고 있는 커다란 도마뱀 녀석을 다그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쌔애애액!”
그러던 중 녀석이 땅바닥을 발로 걷어차며 날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러자 녀석의 주변에 모여 있던 새끼 도마뱀들이 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입을 열었다.
“고블린 소환.”
이런 내 말에 맞춰, 마흔여덟 마리의 고블린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무려 마흔 여덟 마리였다.
때문에 기세 좋게 날 향해 달려들던 새끼 도마뱀들은 통로를 가득 채우는 고블린들에게 가로막혀 우뚝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끼엑!”
일순 녀석의 주둥이 사이로 새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지간히도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칠흑의 지팡이로 녀석을 겨누며 입을 열었다.
“계속 하시겠습니까?”
“…….”
이런 내 물음에 코카드리유는 더는 생각할 것도 없단 듯이 몸을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는 발랑 뒤집어 까더니, 그대로 자신의 하얀 배를 내게 보여주었다. 마치 내게 복종을 맹세하듯이 말이다.
“쌔액! 쌔액!”
심지어 빨간 혀를 낼름낼름 거리며 애교까지 부리고 있었다.
실로 가관이었다.
“주인님!”
그 때, 엘레노아가 검은색 날개를 파닥파닥 거리며 내 품에 포옥 안겨왔다. 이에 나는 그녀의 몸을 가볍게 끌어안아주며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입니까?”
“음, 그러니까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면요.”
이런 내 물음에 엘레노아는 미주알고주알 전부 다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마정석 파편의 힘을 흡수하게 된 소피아가 던전 대행자가 되면서 마정석 파편을 찾아다니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엘레노아는 내가 명령한대로 소피아를 감시하기 위해서 함께 돌아다녔고 말이다.
아무튼 마정석 파편을 모으는 것까지는 좋았다.
내게 있어서 마정석 파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그건 바로 소피아가 독단적으로 리자드맨들을 던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엘레노아는 안 그래도 자기를 부하처럼 다루는 소피아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서 소피아가 제멋대로 리자드맨들을 던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니 억눌렀던 감정이 그만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저 건방진 인간 꼬맹이를 어떻게 골려줄까 하고요.”
엘레노아의 계획을 이러했다.
소피아가 위험에 빠졌을 때, 돕지 않고 방치하는 것.
물론 리자드맨들이 몰살당하고, 소피아가 적당히 반성의 기미를 보여줄 때 구해줄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일단 소피아는 감시 대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엘레노아의 계획은 얼마 있지 않아서 실행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거대한 도마뱀과 조우하게 되면서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믿기지는 않지만, 소피아는 저 거대한 도마뱀에게 형편없이 밀려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위기의 순간에 소피아는 엘레노아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당연하게도 엘레노아는 그 요청을 거절한 것이었다.
완벽하게 계획이 들어맞은 것이었다.
다만 이때, 엘레노아가 미처 생각지 못 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전투 도중에 던전으로 귀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애당초 엘레노아의 계획과는 다르게 리자드맨이 모조리 몰살당하는 것이 아닌 일부만 죽게 되었다.
“저는 그 때 낙담했죠.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릴까 하고요. 그런데 그 때, 코카드리유가 짠하고 나타난 거예요!”
단순히 덩치만 커다란 도마뱀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코카드리유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녀석이었다.
뭐, 아무튼 녀석은 놀랍게도 새끼 코카드리유를 이끌고서 이곳 던전까지 쫓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무슨 방법을 사용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던전 코어에게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고 한다.
자신의 목적은 도망친 리자드맨뿐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요구에 던전 코어는 소피아에게 리자드맨을 내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소피아는 그 요구를 거절했다.
코카드리유에게 리자드맨을 내줄 수 없다며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 소피아는 던전 대행자의 직위가 박탈당했다. 이후, 그 직위를 인계 받은 엘레노아는 얼씨구나 좋다구나 하고서 리자드맨들을 코카드리유에게 넘겨주려 한 것이었다.
“흠…….”
여기까지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여기서 솔직하게 내 심정을 밝히자면, 내 허락도 없이 던전 대행자를 임명한 던전 코어나 제멋대로 행동한 소피아 그리고 던전의 일원끼리 친하게 지내지는 못 할망정 싸우기나 하는 엘레노아. 세 사람 모두 괘씸했다.
물론 이 중에서도 가장 괘씸한 건, 바로 던전 코어였지만 말이다.
“……일단 코카드리유의 처우부터 결정하죠.”
이리 말한 나는 고블린들과 함께 코카드리유 쪽으로 다가섰다.
다만 이 때, 새끼 코카드리유가 자폭공격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일부러 멀찍이 떼어놓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내 요구에 코카드리유는 고분이 따르며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 태도가 너무나도 공손해서 내가 도마뱀을 앞에 두고 있는 건지, 아니면 사람을 앞에 두고 있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크흠, 그럼 코카드리유 씨는 뭘 원하십니까?”
“쌔액! 쌔액!”
코카드리유는 여전히 리자드맨들을 원하는 모양인지, 고블린들에게 둘러싸여있는 리자드맨들을 쳐다보며 울음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받은 리자드맨들이 가볍게 몸서리치며 낮게 크르렁 거렸다.
“왜 원하시는 겁니까?”
“쐐애액! 쐐애액! 쌔액!”
이런 내 물음에 코카드리유는 쐐애액! 쐐애액! 소리를 내며 아랫배에 힘을 꽉 주더니, 곧 주륵! 소리와 함께 녹색 알 하나를 낳았다.
그 모습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는데, 돌연 녀석이 녹색 알을 리자드맨 쪽으로 내밀었다. 그리고는 곧 주먹을 꽉 쥐어서는 알을 깨부수는 시늉을 했다.
“아아…….”
그 행동에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코카드리유는 지금 자기 알들을 깨부순 리자드맨들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짐작한 나는 잠시 리자드맨과 녹색을 알을 번갈아보았다.
‘뭔가 대신할만한 게 없을까?’
이리 생각하며 곰곰이 해결방법을 떠올려보는데, 돌연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에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낸 뒤에 먹이 상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다음 코카드리유라는 종족명을 기입해 넣자, 이전과 마찬가지로 코카드리유에게 줄 수 있는 간식들이 나열되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코카드리유가 정말 좋아하는 간식을 선택해서 구입했다.
“코카드리유가 정말 좋아하는 간식 소환.”
이처럼 간식을 소환하자, 경단 모양의 과자 하나가 내 손바닥 위에 올려졌다. 동시에 코카드리유의 노란색 눈동자가 보다 더 가늘어졌다. 녀석은 길쭉한 꼬리를 좌우로 거세게 흔들며 킁킁 냄새를 맡아대었다.
“쌔애액! 쌔애액!”
“원하십니까?”
“쌔애액! 쌔애애액!”
“드시고 싶으신 거죠?”
“쌔애액! 쌔애애애앳!”
내 물음이 거듭 될 때마다 코카드리유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감에 한껏 가득찬 울음소리를 내었다. 이에 나는 둥그런 경단을 좌우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걸로 끝내는 건 어떻겠습니까? 저는 당신에게 이걸 주고, 당신은 리자드맨들을 용서해주는 겁니다.”
“쌔애액! 쌔애액!”
이런 내 제안에 녀석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입을 쩌억 벌렸다. 어서 빨리 자기 입 안에 던져넣어 달라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에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녀석의 입 안으로 경단을 집어넣어주었다.
그러자 덥썩 경단을 물더니, 맛있게 쩝쩝 소리를 내며 먹는 코카드리유다. 그리고는 곧 녀석은 무척이나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쌔애애 쌔애애 소리를 내었다. 더불어 세로로 삐죽한 파충류 눈은 좀 더 간식을 원한다는 나를 애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더요?”
“쐐애액! 쐐애액!”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녀석은 고개를 정신없이 흔들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니, 잘하면 코카드리유도 아라크네와 마찬가지로 던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자폭 공격을 하는 새끼 코카드리유는 더없이 유용해보였다.
“좋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쌔액?”
“던전의 일원이 되어주십시오. 그러면 틈이 날 때마다 간식을 드리겠습니다.”
“쌔애액! 쌔애액!”
이러한 내 말에 코카드리유는 일말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지능을 갖춘 코카드리유임에도 불구하고 간식 앞에서는 영 맥을 못 추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곧장 코카드리유가 정말 좋아하는 간식을 하나 더 구입한 뒤에 입에 던져주었다.
그러자 냉큼 받아먹으며 팔다리를 부르르 떠는 코카드리유다. 심지어 투명한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었다.
한편 스마트폰 화면에는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코카드리유를 던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현재 던전 인원 (45/100)]
‘나쁘지 않네.’
이렇듯 코카드리유를 던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데 성공한 나는 고개를 돌려 소피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마치 죽을죄를 지은 죄인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서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