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197화 (197/599)

<-- [변화] -->

‘저게 가능한 거였구나.’

영화 속에서나 보던 장면을 실제로 보게 되니, 어안이 벙벙해졌다.

물론 이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방금 전, 에나가 보여준 몸놀림에 넋이 나간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내 ‘방금 전에 그거 뭐였어?’라던가 ‘누가 지나간 거 같은데?’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에나는 자리를 떠나고 난 뒤였기 때문에 알 방법이 없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그것도 잠시, 나는 서둘러 스마트폰을 들어 올린 뒤에 방송을 확인했다.

그러자 오크들과 한참 전투를 벌이고 있는 마물 사냥꾼의 모습이 화면에 비추어 보였다. 동시에 김 예지 학생의 곁에 모여 있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초등학생을 구하려다가 오크들에게 걸린 모양이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게 상대는 오크 세 마리 뿐이었다.

다른 일곱 마리는 따로 떨어져서 행동하는 모양인지,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오크가 뭐 저렇게 쎄?

-미친, 저러다가 지는 거 아냐? 아직 세 마리 밖에 안 되는데?

-힐러가 힐 안 하고 뭐하냐?

-탱커가 불쌍하네. 무슨 동네북도 아니고, 저렇게 얻어맞나?

한 번에 상대해야 될 오크가 세 마리인 만큼 이 소현에게 가는 부담이 막대했다.

더욱이 힐러를 맡고 있는 김 예지 학생은 우는 초등학생을 달래느라고 전투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 하고 있었다.

실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눈살을 와락 찌푸린 나는 위태롭게 오크들을 맞상대하는 이 소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때, 유 지아가 오크 한 마리를 집요하게 공격하더니, 결국에는 녀석의 시선을 자기 쪽으로 돌리는데 성공했다.

이 덕분에 이 소현이 잡아둬야 될 오크가 세 마리에서 두 마리로 변하자, 이 소현은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꾸벅이고는 간간히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숨통이 트인 것이었다.

-오오, 도적 개쩜!

-근데 도적이 저래도 됨? 한 대 맞으면 죽는 거 아냐?

-그러니까 잘 피해야지

-저 도적녀 개쩜. 저번에 싸울 때, 봤는데 잘 피함

채팅창에 올라온 말 그대로 유 지아는 현역 복서답게 오크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공격을 가했다. 실로 놀라운 몸놀림이었다. 특히나 아슬아슬하게 적의 공격을 피하며 카운터 공격을 날리는 모습은 모든 이들의 감탄성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와, 도적 개쩌네! 그래, 저게 바로 도적이지!

-움직임 미쳤다 ㄷㄷㄷ 저거 사람 맞아?

-리얼 도적. 만약에 은신까지 있었으면 대박일 텐데

-저게 바로 딜탱의 표준인 듯

-ㄴㄴ, 저건 회피탱임

이처럼 모두가 유 지아의 날렵한 몸놀림에 감탄하고 있는데, 돌연 그녀가 허리를 굽히며 오크가 휘두른 몽둥이를 피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서 단순히 피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대로 오른팔을 쭉 뻗어 녀석의 목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이전에 가슴팍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가 낭패를 보았던 경험을 참고해서 가슴팍에 꽂기보다는 목에 꽂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오크는 그대로 자기 몸을 움켜쥐며 컥컥 대다가 그대로 쿵! 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유 지아, 단신의 힘으로 오크 한 마리를 처리한 것이었다. 동시에 그녀가 이 소현을 돕기 위해서 오크 한 마리를 유인하자, 순식간에 전세가 마물 사냥꾼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유 지아. 혼자서 게임 다 하네? 도적 캐리각?

-도적 너프 필요할 듯ㅋㅋㅋㅋ

-법사랑 궁수 버프 좀요

이러한 유 지아의 슈퍼 플레이에 이 소현의 얼굴에 여유가 깃들었다.

더욱이 김 예지, 한 채원, 신 혜진.

세 사람 모두 유 지아의 활약에 자극이라도 받은 모양인지, 보다 적극적으로 오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에나 없이 이기는 거 아냐?’

예상보다 훨씬 더 분전해주는 마물 사냥꾼의 활약에 이대로 무난하게 이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롭게 오크 두 마리가 추가되었다.

때문에 잠시나마 여유를 가졌던 이 소현의 얼굴에 낭패가 그려졌다.

더욱이 새롭게 추가된 오크들은 곧장 이 소현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아닌 초등학생들과 함께 있는 김 예지 학생 쪽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삐이이익!

이 상황에 이 소현은 재빠르게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러자 일순 오크들의 고개가 김 예지 학생이 아닌 이 소현 쪽으로 향했다.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지만, 유 지아가 상대하고 있던 오크까지 이 소현 쪽으로 달려든 탓에 그녀는 순식간에 네 마리의 오크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탱커 죽겠다! 힐러 뭐하냐?

-개노답이네. 저거 힐러 왜케 얼타냐?

-이 소현 님, 죽겠다!

-ㅠㅠ 이 소현 님ㅠㅠ

-답답하다. 나였으면 저기서 힐 겁나 날렸을 텐데

이처럼 오크 네 마리에게 둘러싸인 이 소현은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하며 방패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 틈에 유 지아는 어떻게든 오크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계속 공격했다. 그러나 위협의 호루라기의 효과가 생각 이상으로 굉장한 모양인지, 좀처럼 오크들이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방금 전에 그 호루라기가 뭐였기에 오크들이 저러냐?

-꿀 바른 거 아냐? 미친 듯 ㄷㄷ

-이러다가 정말로 탱커 죽는 거 아냐?

김 예지 학생이 열심히 부상 회복과 체력 회복을 사용해보지만, 이 소현의 몸에 생기는 생채기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그런데 그 때, 신 혜진이 쏜 화살이 오크의 눈에 맞았다.

그러자 돌연 녀석이 크게 발광하며 신 혜진 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그로 튀었다!

그 말대로 이 소현 쪽으로 향하고 있던 위협 수치가 신 혜진 쪽으로 향한 것이다.

물론 이건 게임이 아닌 현실이었기에 정말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오크의 행동을 보면 적어도 게임처럼 어그로가 튀었다고 볼 수 있었다.

-궁수 뭐하냐? 도망쳐야지?

-도망쳐!

-ㅌㅌㅌ

이처럼 오크가 신 혜진을 향해 달려들자, 시청자들이 다급히 채팅을 치며 도망치라고 했다. 그러나 신 혜진은 도망치기보다는 손을 쭉 뻗으며 나무 넝쿨을 소환했다. 그러자 아스팔트를 뚫고서 나무 넝쿨이 쑥쑥 자라더니, 곧 오크의 다리와 허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오오, 속박!

-궁수 개쩌는데?

-원딜 CC기 보소

CC기는 Crowd Control의 줄임말인데, 간단히 말해서 적의 움직임에 제약을 거는 스킬을 CC기였다. 그리고 이처럼 신 혜진이 나무 넝쿨로 오크 한 마리를 붙잡자, 유 지아가 마치 기다렸다는 나무 넝쿨에 구속된 오크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그러나 녀석은 한 쪽 눈을 잃은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유 지아의 공격을 뿌리쳐냈다.

그러나 결국에는 녀석의 목덜미에 단검을 쑤셔 넣으며 숨통을 끊어버리는 유 지아였다.

“와아아아아!!”

-도적님 사랑해요!

-더블 킬!

-도적은 사랑입니다!

-난 이제부터 도적만 한다! 도적 최고!

이렇듯 유 지아가 두 마리째 오크를 처리하자, 일순 채팅창에 유 지아 찬양 글이 올라왔다.

더불어 지금 이 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개인 방송을 보고 있는 모양인지, 유 지아가 오크의 숨통을 끊는 순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들 환호성을 터트렸다. 심지어 경찰들도 기쁜 표정을 지어보일 정도였다.

-이제 남은 오크는 3마리임!

상황은 희망적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그런데 그때였다.

쾅!

-어어?

-미친, 방금 법사가 뭔 짓 한 거야?

-방금 뭐야?

-건물 무너지는 거 봐 ㄷㄷ 저거 bj님 집에 맞았으면 죽은 거 아님?

-소름돋네

한 채원이 쏜 화염구가 그만 빗나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건물을 맞추고만 것이었다. 이에 깜짝 놀란 bj가 서둘러 카메라를 돌려 화염구에 맞은 건물을 비추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화면에 비추어진 2층짜리 상가 건물이 조금씩 기울다가 이내 희뿌연 연기를 내며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이 비추어 보였다.

-부실 공사 아님?

-저거 진짜 미친 듯

-방금 오크가 맞았으면 게임 끝 아님?

-그 전에 탱커가 먼저 죽는 거 아냐?

그 광경에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방에서 오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 한 채원이 쏜 화염구가 건물에 부딪치면서 폭발음을 일으켰는데, 아무래도 그걸 다른 오크들이 들은 모양이었다. 실제로 3번 출구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까지 그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욱이 건물이 무너지면서 2차 소음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듣지 못 한 게, 오히려 더 이상할 지경이었다.

-법사가 개트롤짓 한 거 맞지?

-전멸각 아니에요? 저거 마물 사냥꾼에서 탈퇴시켜야 될 듯

-망함!

-오크 두 마리 추가됨

-bj님! 다른 곳도 좀 비춰줘 봐요! 오크 또 올지도 모르잖아요!

-마물 사냥꾼들이 지면 어떻게 됨?

-법사 때문에 졌음

시청자들이 다른 곳도 좀 비추어 달라고 하자, bj는 곧바로 다른 곳도 비추어 보여주었다. 그러자 저 멀리서 마물 사냥꾼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오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도합 다섯이었다.

다른 곳을 돌아다니고 있던 오크들이 전부 다 폭발음을 듣고서 마물 사냥꾼이 있는 쪽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bj님 도망쳐야 되는 거 아니에요?

-ㅌㅌ!

-얼른 튀셈!

지금 상대하는 오크 네 마리도 벅차하던 이 소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오크 다섯 마리가 더 추가된다? 죽으라는 말 밖에 되는 지 않았다. 실제로 화면에 비추어 보인 이 소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더욱이 이 사단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한 채원은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꺼이꺼이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더 이상 전투 진행이 불가능해보였다.

물론 여기서 다른 마물 사냥꾼들이 재빨리 한 채원을 다그쳐준다면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겠지만, 다들 한 채원에게 신경 써줄 수 있을 만큼 여유를 가지지 못 하고 있다.

당장만 해도 유 지아는 이 소현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오크 두 마리를 붙들고 있었다.

여기에 궁수인 신 혜진도 나무 넝쿨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오크 한 마리를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남은 세 마리는 어찌할 수 없었기에 결국 이 소현이 그걸 부담해야만 되었다.

-이건 정말 못 이김

-ㅈㅈ

-bj님 얼른 튀세요. 도망쳐야 될 듯요

-마물 사냥꾼이 지면 정말 어떻게 되는 거임?

-새로운 마물 사냥꾼 모집하나?

-나도 지원해야지

-그 전에 다 죽을 듯?

채팅창이 정신없이 올라갔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마물 사냥꾼들은 어떻게든 오크들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분전하고 있었다.

‘에나는 아직 멀었나?’

초조해진 나는 방송 화면에 에나가 잡히지는 않는 지,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에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길을 잘 못 든 모양이었다.

‘……내가 나서야하나?’

여기서 고속 이동까지 쓰며 이동한다면, 최소한 전멸은 면하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탱커, 방패 놓침!

-망함!

그 순간, 오크들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던 이 소현이 그만 방패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걸 본 오크들이 득달같이 그녀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꺄아아악!]

오크가 휘두른 몽둥이가 그녀의 어깨를 때린 순간,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이 소현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오크들이 우악스레 손을 뻗어, 이 소현이 입고 있는 옷을 붙잡아 찢기 시작했다.

-헐? 헐?

-강간하는 거야?

-미친, 저게 뭐야?

-이거 좆 된 거 아냐?

오크가 이 소현의 옷을 잡아 뜯자, 부우욱 소리와 함께 그녀의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그 모습에 채팅창이 또다시 빠르게 치솟았다. 동시에 유 지아를 비롯한 다른 마물 사냥꾼들이 경악 어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어떻게든 이 소현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들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유 지아와 신 혜진은 지금 눈 앞의 오크들에게 발목이 붙잡혀있는 상태였고, 한 채원은 넋을 잃은 채로 울음을 터트리고 있는 중이었다.

남은 건, 김 예지 학생뿐인데 그녀는 전투 능력이 전무했다.

‘망할!’

속으로 욕설을 내뱉은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젠 내가 나설 수밖에 없을 듯이 싶었다. 내 정체가 들키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더욱이 애당초 이건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니 내가 처리해야만 되었다. 그래, 이게 맞는 거였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으득, 이를 간 나는 한 걸음 내딛었다.

“와아아아!!”

그런데 그 때,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이에 깜짝 놀란 나는 다시금 스마트폰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오크들에게 붙잡혀 있던 이 소현을 품에 안고서 김 예지 근처에 서는 에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야?

-외국인데? 미친, 겁나 예뻐!

-엘프녀다! 엘프녀!

-대체 누구야? 저 외국인도 마물 사냥꾼이야?

-개쩐다! 방금 움직임 봤어?

-ㄴㄴ 못 봄

-저거 사람 맞아? 도적녀보다 더 빠르던데?

에나는 자기 품에 안겨있는 이 소현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에 오크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오크들이 저마다 고함을 터트리며 에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눈앞에서 먹이를 빼앗긴 것에 대한 분풀이를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광경에 에나는 무표정하며 그대로 주먹을 빠르게 휘둘렀다. 그러자 일순 퍽퍽! 소리와 함께 오크들의 머리통이 하나둘씩 터져나갔다.

마치 물풍선 터트리듯이 말이다.

-어?

-헐?

-???

-뭐임?

-ㅁㅊ?

-응?

순간 채팅창에 물음표가 연속으로 올라왔다.

다들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저게 뭐야!]

심지어 이제까지 침묵을 유지하던 bj도 한 마디 거들고 말았다.

그 정도로 지금 에나가 보여주고 있는 광경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주먹 한 방당 오크 한 마리.

딱 그 모양이었다.

에나가 주먹을 한번 내지를 때마다 오크들의 머리통이 여지없이 터져나갔다. 그리고 이윽고 남은 오크 여덟 마리를 모두 처리한 에나는 주위에 서있는 마물 사냥꾼들을 한번 슥 훑어보더니 곧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적당히 큰 목소리로 말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 작품 후기 ==========

예의 바른 에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