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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깐……!”
“왜 그러십니까?”
“방금 그거……. 그거 농담이지? 지금 농담하는 거지? 어떻게 소, 속옷을……. 그럼 파렴치한…….”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술을 파르르 떠는 아이린이다.
더불어 그녀의 눈동자가 정신 사납게 흔들렸다. 마치 현실을 외면하고 싶다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을 보니, 내 마음속에서 가학심이 불거졌다.
좀 더 아이린을 괴롭히고 싶단 못된 생각이 피어올랐다.
아예 옷을 입지 못 하게 만들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이린은 남을 엘프들을 이끌어야 되는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최소한의 체면을 차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지 엘프들도 아무런 의심 없이 아이린을 믿고 따를 것이 아닌가?
“이게 왜 농담입니까? 저는 어디까지나 진심입니다.”
“그대는……!”
“아이린 씨, 지금 당신이 제게 큰소리를 칠 입장입니까?”
이리 물으며 아이린의 턱을 꽉 붙잡자, 돌연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금방이라도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 끝에 매달릴 것만 같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란 말인가? 쓸데없이 커다란 가슴을 달고 있는 주제에 눈물 하나만큼은 그럴 듯하다.
“……벌 받기가 싫었다면 애당초 졸지 않았으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우윽…….”
“울게요? 울어보시죠. 그런다고 제가 눈 하나 깜빡할 것 같습니까? 오히려 비웃어드리겠습니다. 다 큰 주제에 어린애처럼 금방 울어버린다고요. 자, 어디 한번 울어보시죠.”
짓궂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녀를 보고 어서 울어보라며 놀려대었다. 그리고 그 놀림에 아이린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더니, 어떻게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가에 맺힌 눈물은 결국 중력을 거스르지 못 하고 또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쁜 놈…….”
동시에 아이린의 입술 사이로 나를 욕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리고는 잠시 뒤, 아이린은 탁! 하고 내 손을 뿌리치더니 그대로 저택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흠…….”
결국 또 울려버리고 말았다. 이러다가 정말로 미움을 받아버리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내 발치에 떨어져 있는 아이린의 눈물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무릎을 꿇고 앉은 뒤에 손끝으로 눈물을 찍었다. 그런 다음 입으로 가져가서 맛을 보자, 미약한 짠맛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엘프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눈물은 짠 모양이었다.
‘달달하면 참 좋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만약에 눈물이 달콤했다면 하루 종일 펑펑 울도록 만들어줬을텐데 말이다.
혀를 내두른 나는 이윽고 몸을 일으킨 뒤에 벽에 걸려있는 망토와 가면을 집어든 뒤에 착용했다. 그런 다음 1번 방 문을 열자, 불현듯 낯익은 여성 두 명이 꺅!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졌다.
“뭐하십니까?”
그 모습에 다소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리고 이런 내 물음에 엉덩방아를 찧은 이 소현과 유 지아가 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소현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몸을 와락 붙잡았다.
“왜 이렇게 늦게 오신 거예요? 얼른 저희를 보내주세요!”
이러한 이 소현의 말에 다른 네 명의 마물 사냥꾼들도 고개를 주억이며 동의의 뜻을 내비쳐보였다. 이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일단 이 소현부터 진정시켰다.
“진정하세요, 이 소현 씨. 너무 그렇게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니요? 지금 아이들이 상가 안에 갇혀 있다고요! 언제 오크들한테 공격당할지도 모른다고요!”
그 외침에 나는 이 소현이 왜 이렇게 다급하게 소리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이 소현 씨는 이미 현장에 도착하신 겁니까? 다른 분들은요?”
이리 물으며 다른 네 명을 돌아보자, 이 지아를 비롯한 신 혜진이란 여성만 손을 들었다. 반면에 한 채원과 김 예지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손을 들지 않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럼 일단 본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고개를 주억인 나는 이 소현을 비롯한 다른 네 사람을 번갈아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안심하세요. 이곳에 호출된 동안만큼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요.”
이러한 내 말에 다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동시에 내 몸을 붙잡고 있던 이 소현의 손에도 힘이 서서히 풀렸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놓기 전에 그녀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재차 물었다.
“다, 다들 무사하겠죠?”
“걱정 마세요. 무사할 겁니다. 그보다 저는 여러분들이 걱정입니다.”
다정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속삭인 나는 이 소현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이런 내 태도에 그녀는 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어버버 거렸다. 그 태도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남자와 그다지 접촉해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처녀인가.’
커다란 가슴이 다소 천박해보이긴 하지만 처녀니까 용서가 되었다.
“오늘 나타난 오크의 숫자는 총 열 마리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은 다섯 명이죠.”
“…….”
이리 말하며 마물 사냥꾼들을 훑어보자, 다들 사뭇 긴장한 표정을 띠워보였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여러분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잠시 숨을 크게 들이켠 나는 이 소현, 유 지아, 한 채원, 김 예지 그리고 신 혜진 순으로 시선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마물 사냥꾼을 그만두고 싶으신 분은 포기해주세요.”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중에서 자기가 마물 사냥꾼이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목숨과 맞바꿀 만큼 중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일단 살아야지, 다른 무언가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최소 한 명, 많게는 세 명까지 여기서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
“전 하겠어요.”
그 때, 이 소현이 가장 먼저 내 손을 꽉 맞잡으며 힘차게 말했다.
마물 사냥꾼의 리더를 맡고 있는 만큼 무척이나 책임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욱이 그녀는 가장 어려운 역할인 동시에 가장 위험에 노출되는 역할인 탱커를 맡고 있었다.
“이 소현 씨가 가장 죽기 쉬운 입장입니다. 그래도 계속 하시겠습니까?”
“하겠어요. 전……. 지금이 좋아요.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 뒤를 이어서 이 지아가 입을 열었다.
“저도 계속 할게요. 어차피 이거 아니었으면 팔 병신으로 살아야 됐을 텐데……. 병신으로 살 바에는 뒈지는 게 낫지.”
그 호쾌한 말에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마물 사냥꾼도 복서로 인정해준답니까?”
“나도 그것 때문에 골치가 좀 아파.”
정말로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오른손으로 자기 뒷목을 주무르는 이 지아다. 확실히 골치가 아플 것이다. 막상 부상당했던 팔을 고쳐놨더니, 복싱 협회에서 마물 사냥꾼인 그녀를 받기를 꺼려하니 말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다른 선수들일 것이다.
아무래도 인간의 규격을 넘은 마물 사냥꾼과 복싱을 하는 건, 반칙처럼 느껴질 테니 말이다.
더욱이 이 지아가 본신의 힘으로 복싱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다들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마물 사냥꾼의 힘이라며 그녀의 노력을 조금도 보려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 방법이 있을 겁니다. 저도 노력해보겠습니다.”
“정말로요?”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이리 말한 나는 다른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채원이 손을 들어올리며 저요! 저요! 소리를 내었다.
“저요! 저도 언니들하고 같이 계속 할 거에요!”
“한 채원 씨에겐 달리 선택지가 없지 않았습니까?”
“아앗! 너무해요!”
불치병에 걸려서 반평생을 병원에서 보낸 병약 미소녀.
요즘 인터넷에서 한참 뜨고 있는 한 채원에 대한 이야기다. 확실히 희소성도 있고, 병약 미소녀라 불려도 될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예쁘장한 미모를 가지고 있는 한 채원이었다.
더욱이 마물 사냥꾼이 되면서 그 미모가 한층 더 물이 올랐다. 여기에 마법까지 사용하게 되었으니……. 딱 전형적인 마법 소녀였다.
‘아직 고등학생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라고 한다면 저 빈약한 가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빈약! 내 취향인 절벽에 부합되진 않았지만, 저 빈약한 가슴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빈약! 빈약하다! 빈약해서 더 좋다!
‘……빈약한 가슴 최고!’
내심 환호성을 터트리며 한 채원의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나는 이내 남은 두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사실 남은 두 사람이 가장 포기할 확률이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선 세 사람과는 다르게 남은 두 사람은 뚜렷한 동기가 없었으니 말이다.
“저도 계속 합니다.”
그 때, 신 혜진이 활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에 나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른 분들이 한다고 해서 굳이 억지로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뇨, 전 이 일이 좋아요. 게임 같아서 좋잖아요.”
“이건 게임하고 다르게 한번 죽으면 끝입니다.”
“그래서 더 좋아요. 게다가 돈도 벌 수 있잖아요.”
이리 말하며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신 혜진이다. 너무 무뚝뚝해서, 저게 정말로 진심인가 헷갈릴 지경이었다.
나는 저 말이 진심인지, 확인해볼 겸 신 혜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죽은 뒤에는 돈이 무슨 소용입니까?”
“꼭 죽는 걸 전제로 해야 해요? 너무 극단적인 거 같은데요?”
“그렇긴 하지만…….”
“그럼 됐잖아요.”
이리 말하며 어깨를 으쓱이는 신 혜진이다. 그 행동이 너무나도 가벼워서, 진심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길이 없었다.
‘뭐, 결국 자기 선택이니까.’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나는 마지막 남은 김 예지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앗! 하는 소리와 함께 성자의 지팡이를 제 품에 꼭 끌어안는 김 예지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유일하게 교복을 입고 있었다.
‘……여고생이었어?’
저번에 봤을 때, 너무 성숙해보여서 그만 성인이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보기와는 다르게 학생이었던 모양이었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게 아니었다. 혀를 내두른 나는 그녀를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런 내 시선을 받은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곧 입을 열어 대답했다.
“저도 계속 할 거예요!”
“진심입니까? 아직 그쪽은 학생입니다. 한 채원 씨처럼 불치병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처럼 성인인 것도 아닙니다. 좀 더 깊게 생각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 하지만…….”
이런 내 말에 돌연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리며 어깨를 파르르 떨어트리는 김 예지 학생이다. 와아, 여고생을 울려버렸다. 간만에 보는 현역 여고생의 눈물이라서 그런지, 아래쪽이 불끈불끈 거려왔다.
‘망토를 입고 있어서 다행이네.’
만약에 망토를 두르고 있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변태로 오해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나는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며 김 예지 학생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곧 그녀는 눈물을 그치며 말을 이었다.
“저 탈모인 걸요…….”
“네?”
“유전이라서……. 탈모 때문에……. 이거 아니면 치료할 길도 없고…….”
“…….”
탈모라는 말에 나를 비롯한 나머지 네 사람이 조용히 애도를 표시했다.
‘탈모라…….’
확실히 강력한 동기였다.
어떻게 보면 한 채원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동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역 여고생의 탈모였다.
무척이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마물 사냥꾼은 한 명의 여고생을 지옥에서 구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해합니다.”
“흐윽.”
“울지 마세요. 이미 해결된 일이 아닙니까?”
이리 말한 나는 이 소현의 손을 슬며시 떨어트려 놓은 뒤에 김 예지 학생 쪽으로 다가가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현역 여고생의 보들보들한 손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 부드러운 감촉, 참을 수 없을 만큼 기분 좋다.
물론 에나에 비할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비록 김 예지 학생이 현역 여고생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한시적인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현역 여고생에서 현역 여대생으로 탈바꿈하게 되어버린다. 그 때는 정말로 쓸모없어지는 것이었다. 더욱이 김 예지 학생은 가슴이 쓸데없이 커다랬다.
쓸모없는 가슴! 내 주위에는 왜 이렇게 가슴이 큰 여자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죄다 쓸모없다. 천박하긴!
‘믿었던 은하도 은근히 가슴이 컸단 말이지.’
입맛이 썼다.
혀를 내두른 나는 다정한 말로 김 예지 학생을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내 행동에 소녀는 일순 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더니, 곧 자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뭘요. 힘내세요.”
이리 말한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김 예지 학생의 손을 꽉 붙잡아주고는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에 다른 네 명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모두 마물 사냥꾼을 계속 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 같으니,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
다들 긴장된 얼굴로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이를 느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번에 나타난 적은 오크로 이전과 동일합니다. 다만 그 숫자가 한 마리에서 열 마리로 늘어났죠. 현재 여러분이 상대하기에는 그 숫자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한 가지 해결책을 구상해두었습니다.”
“해결책이요?”
이러한 내 말에 이 소현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나는 재차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일종의 도우미입니다. 다만, 이 도우미는 무척이나 강력합니다.”
“아…….”
“그래서 제게 말하고 싶은 건, 여러분이 도우미와 합류한 뒤에 오크와 전투를 벌이라는 건데……. 들어보니, 상가 안에 어린 아이들이 갇혀있는 것 같더군요. 때문에 그러긴 다소 힘들어 보입니다.”
“…….”
“그러니 최대한 오크들과의 전투를 피하면서 아이들을 구조하세요. 도우미는 최대한 빨리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이야기했다.
상가에 갇혀있는 아이들을 구하는 동시에 마물 사냥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이 지아가 손을 들며 물었다.
“그 도우미가 누구죠? 어떻게 생겼어요?”
그 물음에 나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은발의 외국인 여성입니다.”
========== 작품 후기 ==========
자라나라, 머리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