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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배를 갈라야하나?’
너무 극단적인 건 아닐까? 아무리 내게 치료술사의 지팡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사람의 배를 가르는 일이었다. 다 큰 어른도 버티기 힘든데, 어린 소녀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배를 가르는 도중에 쇼크로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마취를 하면 될지도 모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가진 아이템 중에는 마취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 단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여기서 더 심각한 건, 내게 의학적인 지식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구토를 유도해볼까? 과연 뱉어질까?’
차라리 이게 더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소피아의 배속에 들어있는 건, 마정석 파편이었다.
즉, 어느 정도 질량을 가진 돌멩이라는 뜻이었다.
구역질로 간단히 나올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해답법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 어느 때, 마정석 파편이 소피아의 몸을 변화시킬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최악의 경우, 엘프의 숲에서 보았던 살점 덩어리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소피아를 쳐다보았다.
소피아는 마틸다와 다른 아이들이 수다를 떠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완전히 이곳에 적응한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약간 붕 떠있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지금 소피아가 처해있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저것도 솔직히 기적이라 불러도 좋았다.
천천히 숨을 들이켠 나는 소피아의 안색을 살펴보다가 이내 엘레노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엘레노아 씨라면 소피아 씨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배를 갈라야죠.”
엘레노아는 별다른 고민 없이 시원하게 말했다.
“그러다가 죽으면요?”
“자기 운명이죠.”
“…….”
그 시원스런 대답에 조금 허탈한 기분마저도 들었다. 하지만 엘레노아의 말이 정답이었다.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마정석 파편을 꺼낼 밖에 없었다.
마정석 파편에 오염되어서 죽으나, 수술 도중에 죽으나 매한가지였으니 말이다.
결단을 내린 나는 소피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일순 소피아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소피아 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경청하겠다.”
무언가 직감한 모양인지, 소피아의 표정이 조금 굳어있었다.
나는 잠시 소녀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아까 전에 소피아 씨가 드신 검은색 돌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걸 꺼내야 합니다.”
“이제 와서 그 이야기를 왜 다시 꺼내는 것이지?”
소녀는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먹게 되면 늦든 이르든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잊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으니까요.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런 내 태도에 소피아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소녀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내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대가 사과할 일은 아닐 텐데? 오히려 제멋대로 검은색 돌을 삼킨 내 책임이 아닌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잘 못은 잘 못이니까요. 만약에 제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소피아 씨가 검은색 돌을 삼킨 직후 어떻게든 뱉어내도록 했을 겁니다. 적어도 아까처럼 안일하게 대처하진 않았을 겁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대가 보기에 내가 그렇게 어리석은 인물로 보이는가?”
“네?”
“딱 봐도 수상쩍은 돌멩이를 삼킬 정도로 나는 멍청이가 아니다.”
딱 잘라 말한 소피아는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입을 벌려 무언가를 뱉었다. 그러자 진득한 타액과 함께 검은색 돌멩이 하나가 소녀의 손바닥 위로 떨었다.
“하.”
그 광경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 발칙한 꼬맹이 아가씨가 마정석 파편을 삼킨 척 연기를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꼼짝없이 속아 넘어갔던 것이고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는 소피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담담하게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여는 소녀다.
“그대를 속여서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대를 좀 더 알아야만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내 불쾌한 과거를 밝혔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그대에게 했다. 또한 이 검은색 돌을 삼킨 척 연기도 해야 되었다.”
“어째서 연기한 겁니까? 뭐가 더 알고 싶었던 겁니까?”
“그대가 과연 어떠한 인물인가 궁금했다.”
소피아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나를 관찰하듯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 그대를 보았을 때, 나는 그대를 그저 영웅 심리에 취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대는 오크와 고블린을 수족처럼 다루었으며, 상상도 못할 만큼 강한 기사를 데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러한 능력을 가진 자를 보지 못 했다.”
“…….”
“허나 들어본 적은 있다.”
소녀는 내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바로 마왕이란 존재다.”
“…….”
“하지만 그대는 마왕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선했다.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그대를 그 누가 마왕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렇기에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나는 그대에게 내 과거사를 밝히고 필요 이상의 증오를 보여주었다. 여기서 그대가 마왕이라면 틀림없이 내 증오를 이용하려 들 테니 말이다.”
소피아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마정석 파편을 천천히 굴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대는 망설였다. 그걸 보고 나는 확신했다. 그대는 마왕이라고 말이다. 마왕이면서 동시에 선한 존재라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대가 좀 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마정석 파편을 삼킨 척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대가 마왕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말이다. 그러나 그대는 내게 거짓말을 하더군! 때문에 나는 다시 궁금해졌다. 어째서 이토록 필사적으로 나를 단념시키려고 하는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이곳에 들어선 순간, 자연히 알게 되었다.”
차게 웃은 소녀는 내게서 시선을 떼어내어 마틸다와 엘레노아를 쳐다보았다.
“정이 들었는가, 마왕이여?”
“…….”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표정을 굳히고 말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엘레노아와 마틸다에게 정이 든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내 말이 맞나보군.”
보아하니, 방금 전 행동으로 소피아는 나를 마왕이라고 단정 지은 모양이었다.
“전 마왕이 아닙니다.”
“자신이 마왕임을 부정하는 것인가?”
“아니…….”
“걱정마라, 나라면 그대를 도울 수 있다.”
“소피아 씨.”
나는 조금 언성을 높이며 소녀를 불렀다. 그러나 소피아는 이런 내 말이 조금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혹시 방금 전에 내가 밝혔던 목적이 거슬리는 것이냐? 걱정마라. 아무리 나라고 해도 죄 없는 수만 명의 백성들까지 죽일 생각은 없다. 내 목적은 오로지 내 가문을 모함한 귀족 놈들과 왕 뿐이다.”
“…….”
이젠 무어라 대꾸 할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반면에 소피아는 뭐가 그리도 신이 나는지, 유쾌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이상하게도 여기서 소피아의 입을 꾹 다물게 만들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다문채로 소피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그런데 그 때, 소녀가 우뚝 말을 멈추고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슬쩍 내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마왕이여, 혹시 내가 그대를 속였다는 것에 마음이 상했는가? 그렇다면 그대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내게 벌을 주거라. 달게 받겠다.”
그 말에 입가를 이죽인 나는 곧장 손을 뻗어 소피아의 가느다란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소녀의 손에 들려있는 마정석 파편을 빼앗아 들었다.
‘확실히 마정석 파편이네.’
안도의 숨을 내뱉은 나는 이윽고 내 손에 붙들려있는 소피아를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귀여운 소녀다. 하지만 또 발칙하기도 하다.
감히 날 속였으니 말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게 혼자서 끙끙 앓았고, 계속 소녀의 처우를 두고서 고민에 빠졌었다.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이란 말인가?
그 때, 소피아의 입을 벌리게 만들어서 꼼꼼히 확인해 보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 발칙한 소녀는 그것도 염두에 두어두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때문에 약간 괴롭힐 필요가 있었다.
“정말로 제 마음이 풀릴 때까지 벌을 주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소피아는 각오를 굳힌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에 나는 소녀의 턱을 붙잡아 내 시선을 피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저는 조금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당신처럼 어린 여자아이를 고블린들 무리 속으로 던져주는 거죠. 그러면 고블린이 뭘 하는 줄 아십니까? 하루 종일 당신을 범하는 겁니다. 하나가 끝나면 다음 하나가, 다시 또 하나다. 끝없이 그것이 반복되죠. 그러다가 당신은 가임여부와 상관없이 임신하게 됩니다. 고블린의 정액은 아주 특별해서 그 어떤 암컷이라도 임신시키거든요. 때문에 당신은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만삭의 임산부처럼 배가 잔뜩 부풀어 오를 겁니다.”
나는 되도 않는 거짓말을 진실인 양 술술 말했다.
“……사람은 아이를 열 달 동안 배에 품고서 출산하지만, 고블린은 그렇지 않습니다. 임신과 성장이 빠른 만큼 출산도 빠릅니다. 고블린은 보름도 채 되지 않아서 빠르게 수정한 뒤에 출산까지 이어지지요. 때문에 당신은 보름마다 고블린의 아이를 출산하게 되는 겁니다. 고작 열대여섯 살 된 몸으로요. 어떻습니까, 한번 경험해보시겠습니까? 무척이나 색다른 경험이 될 겁니다.”
“질 나쁜 농담이구나.”
그 말에 나는 씩 웃어 보이며 물었다.
“이게 왜 질 나쁜 농담입니까? 소피아 씨, 제 눈을 보세요. 지금 제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거짓말이다.”
“아니요, 진짜입니다.”
곧바로 거짓말이라고 단정 짓는 소피아의 행동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독심술이라도 하나?’
만약에 정말로 그렇다고 한다면 실로 무서운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독심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더불어 내 앞에 있는 소피아는 십 대 소녀에 불과했다. 내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틀림없이 아까 전에 나를 속였던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
“…….”
우리는 서로를 조용히 응시했다. 흡사 눈싸움을 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십대 소녀와 눈싸움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지만, 나는 그 자존심을 잠시 접어두고서 소피아를 진지하게 상대했다.
여기선 절대로 물러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데, 돌연 소피아가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깔며 눈물을 글썽였다.
“미안하다. 내가 잘 못했다. 용서해다오.”
꼬리를 말며 사과하는 소피아의 태도에 묘한 희열감이 차올랐다. 그래, 이겼다.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막상 이렇게 이기고 나니까 조금은 속이 시원해졌다. 어른의 여유 따윈 개나 줘버려!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대로 소피아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다음부턴 제게 거짓말을 하지 마세요.”
“알았다, 약속하겠다.”
“좋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소피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퍼석퍼석해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에서 의외로 푹신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물론 말라비틀어진 정액이 내 손바닥에 맞닿으며 푸스스 부서졌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일단 씻길 필요성이 있어보였다. 이에 나는 엘레노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엘레노아 씨, 근처에 씻을 곳이 있습니까?”
“있어요! 씻기고 올까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소피아와 다른 아이들 좀 씻겨주세요.”
“네, 맡겨주세요!”
이러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엘레노아는 곧장 소피아와 여자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때 문득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나와 고블린들을 번갈아보고 있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방금 전에 내가 한 이야기를 듣고서 겁에 질린 모양이었다.
‘너무 심했나?’
이리 생각하며 손바닥을 툭툭 터는데, 돌연 소피아가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
“마왕이여, 앞으로 여기에 계속 머물러도 괜찮은 건가?”
그 물음에 나는 잠시 소피아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소피아 씨가 원하는 만큼 여기에 머물도록 하세요.”
“고맙다. 그대의 친절에 반드시 성의를 보이겠다.”
이처럼 내가 허락해주자, 소피아는 더없이 환하게 미소 지어보이며 대답하고는 곧바로 엘레노아를 따라서 방을 빠져나갔다.
========== 작품 후기 ==========
로리의 눈물은 만병통치약이란 말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