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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들이 여자 아이들을 어깨에 들쳐 메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자 아이들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세요! 잡아먹지 말아주세요!”
“엉엉, 안 막을게요! 용서해주세요!”
“죄송해요! 흐어엉! 어엉!”
방금 전까지 보였던 태도와는 아주 상반된 태도였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대로 선두에 서서 마차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저 멀리서 병장기끼리 부닥치는 금속음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도시의 경비병들과 고블린 무리가 서로 맞부딪친 모양이었다.
이를 짐작한 나는 영애를 꽉 끌어안은 채로 거리로 빠져나갔다.
“노예가 탈출했다!”
“붙잡아!”
그 때, 노예 상인의 부하로 보이는 자들이 크게 소리치며 이쪽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얼추 그 수를 세어보니, 십여 명이 넘어갔다.
‘도망친 게 아니라 동료를 부르기 위해서 잠시 자리를 비웠던 건가.’
와락, 눈살을 찌푸린 나는 에나에게 말했다.
“에나 씨, 제압하세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러한 내 명령에 에나는 곧장 노예 상인의 부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도끼를 든 사내가 호기롭게 앞으로 나서며 에나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에나에게 상처를 입히기에는 그 공격이 너무나도 느렸다.
그녀는 마치 귀찮은 날파리를 쳐내듯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도끼를 맞받아 쳤다. 그러자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도끼를 든 사내의 몸이 휘청였다.
그리고 그 틈에 에나는 주먹을 휘둘러 사내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컥!”
에나의 주먹이 관자놀이에 적중한 순간 퍽!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몸이 땅바닥에 내꽂혔다. 어찌나 세게 쳤는지, 사내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부들부들 팔다리를 경련하게 게거품을 물었다.
“괴, 괴물……!”
“펠슨이 한방에 기절이라니……. 이건 오크보다 더 하잖아!”
그 광경에 남은 사내들이 경악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반면에 에나는 별대수롭지 않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사방을 훑어보더니, 곧 남은 노예 상인의 부하들을 향해 다가섰다. 그러자 남은 사내들이 서로 힘을 합칠 생각인 모양인지, 서로 눈짓을 하며 각자 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오…….”
열 명 남짓한 사내들이 에나를 포위하듯이 둘러싸자, 금세 견고한 포진이 완성되었다. 누가 보아도 흠잡을 데가 없는 진형이었다. 괜히 영애가 우리를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들은 상대를 잘 못 잡았다.
“흥.”
우습단 듯이 콧방귀를 뀐 에나는 그대로 발을 들어 방패를 앞세운 사내를 방패 째 걷어차 밀어낸 후, 검을 휘둘러 그 뒤에 서있던 사내의 오른팔을 베었다.
“으아아아아!!”
오른팔이 잘려나가자, 사내는 고통에 찬 비명성을 터트리며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 틈에 노예 상인의 부하들은 조금 냉정하긴 하지만 아군을 걱정하기보다는 에나를 공격했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에나는 적들의 공격을 허용할 생각이 없단 듯이 그대로 몸을 반회전 시키며 적들의 검과 창을 쳐낸 뒤에 발로 적의 복부를 걷어차거나, 무기를 잃고 벙찐 표정을 짓고 있는 적들의 면상을 주먹으로 때려서 기절시켰다.
몇몇 사내들이 이를 악물고서 에나에게 공격을 시도해보았지만, 그 때마다 그녀는 물 흐르듯이 적들의 공격을 간단히 피하며 반격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어른과 어린 아이들의 싸움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심했다.
이건 프로 격투 선수와 5살짜리 어린 아이들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됐습니다.”
에나는 방패를 잃고 바닥에 나동그라진 사내의 종아리를 발로 짓밟는 것으로 전투를 마무리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납시다. 노예 상인의 부하들이 또 올지도 모르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골목길로 들어섰다. 다행히도 거리는 텅 비어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방해는 들어오지 않았다.
방금 전, 맞부딪쳤던 노예 상인의 부하들이 전부였던 모양이었다.
한숨 돌린 나는 내 품에 안겨있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소녀는 아주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상황이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는 모양인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사람이 몬스터를 이끈다는 건……. 들어본 적 없어……. 뭐야, 이게……. 내가 꿈을? 꿈을 꾸고 있는 건가……?’라는 등의 말을 중얼 중얼거리고 있었다.
만약에 이대로 놔둔다면 끝까지 혼잣말을 중얼 중얼 거릴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소녀를 근처 나무상자 위에 앉힌 뒤에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우린 이 도시를 벗어날 겁니다.”
“하, 하하……. 벗어나? 그래, 꿈이라면 가능하겠지. 나도 참 헛된 꿈을 꾸고 있군. 머저리 같은 년. 이딴 말도 안 되는 꿈이나 꾸다니……. 나도 갈 때까지 간 모양이야.”
이제는 현실까지 부정하는 소녀다.
하긴 이해가 안 될 것도 아니다. 누가 이 상황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인다는 말인가? 나라도 막상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부정부터 하고 볼 것이 틀림없었다. 더욱이 소녀는 지금 정신력이 극한까지 몰려있는 상황이었다.
가문이 타 귀족의 모함을 받아 멸문하고 노예로 팔렸다. 그리고 성 노리개로 팔리기 바로 직전의 상황. 그것만 생각해도 끔찍할 정도로 진절머리 쳐지는 상황이인데, 그 상황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된다면……?
제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칭찬해줄 일이었다.
‘어쩔 수 없지.’
쓰게 혀를 찬 나는 가볍게 소녀의 뺨을 때렸다.
“정신 차리세요! 이건 꿈이 아닙니다. 현실이란 말입니다! 자, 절 보세요. 제가 허구의 인물처럼 보입니까?”
“그, 그건…….”
“변명은 필요 없습니다. 대답만 하세요.”
이러한 내 말에 소녀는 한동안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그대는 확실히 실재한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는 당신과 함께 이 도시를 벗어날 겁니다. 동의하십니까?”
“저, 정말로 벗어날 수 있는 건가?”
“벗어날 수 있으니까 말하는 겁니다. 자, 대답하세요. 저와 함께 이 도시를 벗어나시겠습니까?”
“벗어나겠다. 나를 여기서 벗어나게 해다오!”
소녀의 목소리에 강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처음 들었던 그 생기 없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제 노……. 아니, 던전의 일원이 되시겠습니까?”
노예가 되겠냐고 물으려던 나는 이내 던전의 일원으로 바꾸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녀는 지금 노예 신세였다. 그런데 여기서 내 노예가 되겠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거절할 것이 틀림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노예가 되나, 다시 돌아가 노예가 되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되도록 노예보다는 던전의 일원이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대로 소녀는 별다른 불쾌감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불안감과 더불어 의아해하는 표정을 얼굴에 띄웠다.
“던전의 일원이라니……? 던전의 일원이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던전의 일원이 되면 당신은 자유를 얻게 될 겁니다.”
“자, 자유……. 그 말은 정말인가? 내가 다시 자유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물론입니다.”
이러한 내 대답에 소녀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되겠다. 여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던전의 일원이 되겠다.”
“좋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서 확인해보았다. 그러자 곧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인간 1명을 던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현재 던전 인원 (30/50)]
‘됐군.’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이번에는 오크들의 어깨에 들쳐 메어져 있는 어린 아이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리 물은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오크에게 잡아먹히시겠습니까? 아니면 던전의 일원이 되시겠습니까?”
사실 이대로 여자 아이들을 풀어주는 수도 있었다. 이미 내 목적은 달성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선택지를 부여한 것은 여기서 여자 아이들을 풀어줬을 때, 이후 이 여자 아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성적 학대를 받다가 죽겠지.’
틀림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설령 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성적 학대를 받게 될 거라는 것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실제로 영애와 함께 짐마차에 갇혀있는 동안 수많은 남자들에게 강간당한 여자아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차라리 이렇게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는 선택지를 주어서 데려가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이런 내 의도대로 여자 아이들은 잠시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던전의 일원이 될게요!”
“저도요!”
“저도 될게요! 던전의 일원이 되겠습니다!”
이처럼 다섯 명의 여자 아이들이 던전의 일원이 되겠다고 말하자, 곧 스마트폰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인간 5명을 던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현재 던전 인원 (35/50)]
“좋습니다. 던전의 일원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리 말하며 살짝 고개를 숙인 나는 던전 항목에 들어가서 귀환 기능을 사용했다. 그러자 곧 여섯 명의 소녀들이 앞선 엘레노아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자, 그럼 우리도 가볼까요?”
이리 말한 나는 오크와 고블린을 역소환한 뒤에 던전으로 귀환했다.
========== 작품 후기 ==========
던전이 쑥쑥 성장하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