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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몇 시지?”
현실로 돌아온 직후 시간을 확인해 보니, 스마트폰 화면에 오후 2시 16분이라고 적혀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직 여유가 있네.”
점심이라도 먹을까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공복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억지로 먹는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먹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욱이 입맛도 없고 말이다.
“흠……. 그냥 이렇게 된 거, 이계 퀘스트나 더 깰까?”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곧바로 이계 퀘스트를 열람했다.
[이계 퀘스트]
[몰락한 귀족가의 영애 그리고 노예]
이건 아주 흔하디흔한 이야기입니다.
타 귀족의 모함으로 몰락하게 된 백작 가의 영애가 값비싼 성 노리개가 되어서 다른 나라에 팔리게 된다는 그런 흔하디흔한 이야기요. 물론 당사자에겐 결코 흔하지 않은 이야기겠지만 말이죠.
-몰락한 귀족가의 영애가 가지고 있는 마정석 파편을 손에 넣으세요. (보상 : 랜덤 아이템 상자)
[오염된 호수의 요정]
마정석 파편에 의해서 호수가 오염되고 있습니다.
호수의 요정들이 힘을 합쳐서 호수가 오염되는 것을 막아보려 하지만 마정석 파편의 앞에서는 그저 무기력할 따름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오염의 근원인 마정석 파편을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정들이 마정석 파편을 제거하기 전에 마정석 파편을 찾아내세요.
-요정들보다 더 먼저 마정석 파편을 찾아내십시오. (보상 : 랜덤 스킬 상자)
‘뭘 할까?’
두 가지 퀘스트를 두고서 고민하던 나는 이내 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사람 먼저 구하는 게 좋겠지.’
이리 결정을 내린 나는 이계 퀘스트 ‘몰락한 귀족가의 영애 그리고 노예’을 선택했다. 그러자 곧 뒤이어서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이계 퀘스트 [몰락한 귀족가의 영애 그리고 노예]를 수행하기 위해서 던전의 병력을 소환하시겠습니까? (소환 시, 24시간 이내에 재사용이 불가능합니다.)]
[네 / 아니요]
“오…….”
새로운 알림문구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설마하니 던전이 이런 식으로 이계 퀘스트와 연계될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이거 엄청 든든한데?’
든든하다 못 해, 이계 퀘스트가 너무 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다음에 한번 불러봐야지.’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아니요를 눌렀다.
일단 지금 이 퀘스트는 전투가 아닌 설득 혹은 은밀하게 빼내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상 구태여 재사용 대기시간을 돌려가면서까지 던전의 병력을 소환할 필요가 없었다.
더욱이 지금 던전 안에서는 한창 고블린 주거지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방해하면 안 되지.’
고개를 작게 끄덕인 나는 눈앞의 풍경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끼며 잠시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자, 탁 트인 시야와 함께 환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는 들판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오…….”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나는 잠시 그 바람을 맞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에나 소환.”
에나를 소환하자, 일순 내 앞에 한없이 가녀린 여기사가 나타났다.
“유현 님.”
내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는 에나의 행동에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대로 양 팔을 좌우로 벌렸다. 어서 빨리 내 품에 안기라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런 내 행동에 양 볼을 새빨갛게 물들인 에나는 잠시 주변을 한번 훑어보더니, 곧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레 내 품에 안겨들었다.
“……하아.”
내 품에 안긴 순간, 에나는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가슴팍에 제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여기 참 좋죠?”
“네……. 좋습니다.”
이리 대답한 에나는 내 목덜미에 제 고개를 묻었다. 더불어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보아하니, 에나는 지금 이 장소가 좋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내 품에 안겨있는 게 좋다는 말인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볼까?’
짓궂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에나의 몸을 가볍게 끌어안으며 재차 물었다.
“뭐가 가장 좋습니까?”
“유현 님의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서……. 하아, 두근두근 거려서 너무 좋습니다.”
내 예상대로 에나는 지금 우리가 서있는 장소가 아닌 내 품에 안긴 걸로 기뻐하고 있었다. 이에 어쩔 수 없단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에나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어주며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는 곧 산들바람이 그치자, 나는 에나를 놓아주며 입을 열었다.
“슬슬 가볼까요?”
“네.”
이러한 내 말에 에나는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품에서 벗어났다.
그 모습에 쿡쿡,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에나의 입술에 입을 맞춰주었다.
“……하음, 응.”
에나의 입술에 입을 맞춰준 순간, 다홍색의 빛을 머금은 요염한 입술로부터 뜨거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요염한 숨결에 조금 흥분한 나는 오른손을 쭉 뻗어, 에나의 등허리를 슬슬 어루만졌다.
“흐읏, 아……. 하아, 유현 님.”
이런 내 손길에 흥분한 모양인지, 달콤하게 녹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전신을 가늘게 떠는 에나다. 이에 확 그녀를 자빠트려서 섹스를 할까도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곳은 너무 사방이 탁 트인 들판이었다.
당장 사람이 없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아쉬움에 혀를 찬 나는 에나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나머지는 다음에 하죠.”
“흐읏, 네…….”
자그맣게 탄성을 내뱉으며 조신하게 대답하는 에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더니, 그냥 주위 시선이고 뭐고 덮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충동을 애써 가라앉히며 에나의 몸에서 손을 떼어내었다.
그 후, 스마트폰을 꺼낸 나는 미니 맵을 열람해보았다. 그러자 곧 화면에 내 위치와 더불어 이번에 목표인 마정석 파편의 위치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네.’
이렇듯 방향을 확인한 나는 스마트폰에 표시되어 있는 장소와의 거리를 가늠하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때, 에나가 어느 장소를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큰 시장이 열린 모양이로군요.”
“시장이요?”
그 말에 에나가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저 멀리 줄을 지어서 가고 있는 짐마차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에나의 말을 듣고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만큼 간신히 보이는 짐마차 행렬이었다.
물론 여기서 좀 더 걸어갔다면 뚜렷하게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였다.
역시 기사라서 그런지 눈이 좋다.
내심 감탄하며 짐마차 행렬을 바라보는데, 에나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모든 짐마차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 보니, 저 앞에 도시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럼 저 짐마차들을 따라 가면 우리가 목적한 도시에 갈 수 있겠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한 나는 곧바로 엘레노아를 소환했다.
혹시라도 던전 수호자가 되어버린 탓에 소환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엘레노아는 무사히 소환되었다.
“앗! 주인님!”
조금 놀란 듯이 새된 비명성을 터트리던 엘레노아는 곧 나를 발견하고는 대뜸 내 품에 안겨들었다. 덕분에 내 몸이 살짝 휘청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무게 중심을 바로 잡은 나는 엘레노아의 머리와 등을 토닥여주며 입을 열었다.
“부탁할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부탁할 거요? 뭔가요? 뭘 해드릴까요? 혹시 여기서…….”
“아니요, 그게 아닙니다.”
이리 말한 나는 엘레노아의 몸을 살짝 놓아주며 입을 열었다.
“로브 좀 주시겠습니까?”
“치……. 그것 때문이었나요?”
삐죽 입술을 내민 엘레노아는 내 가슴팍에 자기 가슴을 문대며 말을 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저 잠깐 역소환해주세요. 금방 가져올게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바로 엘레노아를 역소환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엘레노아를 다시금 이 자리로 소환하자 검은색 로브를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내 눈에 나타났다.
“자요.”
“감사합니다.”
이렇듯 로브를 건네받은 나는 재빨리 몸에 둘렀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내가 입고 있는 옷이 가려졌다. 이걸로 남들이 내 옷을 보고서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탐낼 일은 없을 것이다.
슬쩍 웃은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엘레노아를 던전으로 돌려보낼 방법을 찾아보았다.
‘여기 있네.’
던전 항목에 들어가자, 수호자 귀환이라는 항목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에 나는 엘레노아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해주며 ‘그럼 계속 수고해주세요.’라고 말한 뒤에 그녀를 던전으로 귀환시켰다.
그러자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소리 소문 없이 쨘 하고 사라지는 엘레노아다.
“자, 그럼 가볼까요?”
이처럼 엘레노아를 던전으로 귀환시킨 나는 에나와 함께 짐마차가 있는 쪽으로 꾸준히 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특명! 영애의 몸이 더럽혀지기 전에 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