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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물었다.
이번에 저들이 내 권유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실제로 나는 이들 고블린 가족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상태였다. 일단 가족애라는 것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다면 틀림없이 자기 집처럼 던전을 꾸며줄 것이 틀림없었다.
“케르르…….”
이번에도 거절한다면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안 된다면 끝까지 해볼 생각이었다.
물론 이러한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거절한다면, 그 땐 깔끔하게 포기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도 천년만년 붙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나는 아쉬울 게 조금도 없는 입장이었다.
어떻게 보면 저들이 갑이 아닌 내가 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나는 저들에게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풍요로운 삶을 제공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안전한 주거지도 말이다.
‘이것도 다 저들 운명이지.’
굴러온 복을 뻥 하고 걷어차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피식, 웃은 나는 고블린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고블린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케르륵, 우리의 안전이 보장되는 건가?”
“물론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던전의 일원……. 즉, 가족으로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이리 말하며 양 손을 쫙 펴자, 고블린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보이면서도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다, 케륵. 인간의 부하가 되겠다. 케르르…….”
고블린이 내 제안을 수락하는 것과 동시에 스마트폰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고블린 7마리를 던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현재 던전 인원 (9/50)]
[축하합니다!]
[던전 퀘스트 ‘고블린을 포섭하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곡괭이 5자루가 주어집니다.]
[곡괭이 5자루를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이처럼 고블린 일곱 마리를 던전의 일꾼으로 받아들이자, 던전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이에 나는 곧바로 곡괭이를 수령하고는 소환했다. 그러자 곧 내 앞에 잘 만들어진 곡괭이 5자루가 나타났다.
“케르륵! 배, 배가 고프지 않아!”
“케륵케륵! 기운이 넘친다! 케륵!”
“케켓! 케켓!”
그 때, 일곱 마리의 고블린들이 이전과는 명확하게 다르게, 무척이나 기운찬 목소리로 저마다 감탄성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며칠은 굶은 것처럼 골골대고 있었는데 말이다.
실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케르르륵! 인간! 케륵! 우리와 한 약속을 지켰다! 케륵! 이젠 안 배고프다! 케륵! 그러니 나도 지키겠다! 케륵! 약속!”
불현듯 고블린이 자기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뭐든지 시키란 듯한 태도를 보였다.
상당히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무척이나 단순한 성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살짝 손짓하고는 다음 던전 퀘스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일단 튜토리얼인 이상, 일꾼들을 어떻게 다뤄야하는 지를 알려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예상대로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던전 퀘스트 ‘무너진 지반을 파헤쳐라!’가 발생했습니다.]
[던전 곳곳이 무너져 있습니다. 이곳을 파헤쳐서 통로를 뚫고, 방을 넓히셔야 합니다. 일단 가장 급선무는 무너진 지반을 파헤쳐서 통로를 뚫어야만 합니다. 던전 내부 지도를 살펴보시면 지반이 무너져 버린 탓에 통로가 막힌 곳이 보일 겁니다. 일꾼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통로를 개척하세요!]
-고블린들에게 일을 주어서 세 군대의 통로를 개척하세요. (0/3) (보상 : 톱 5자루)
“과연…….”
던전 내부 지도를 살펴보니, 정말로 통로 곳곳이 막혀있었다. 이에 나는 고블린들에게 곡괭이 5자루를 나누어 준 뒤에 막힌 통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을 파헤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케르륵! 맡겨만 줘라! 우린 힘이 넘친다! 케륵!”
이러한 내 부탁에 고블린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그대로 힘차게 곡괭이로 무너진 지반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바스러진 흙덩이는 어린 고블린들이 손으로 긁어모아 한쪽 구석에 잘 옮겼다.
“오…….”
따로 내가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블린들을 손발을 척척 맞추며 통로를 개척했다. 덕분에 오 분도 채 되지 않아서 무너진 지반을 완전히 파헤쳐, 깔끔한 통로를 만들어내었다.
그 모습에 내가 손뼉을 치며 감탄하자, 고블린 가족은 으레 어깨를 으쓱이며 뭐 더 시킬 게 없냐고 물어보았다.
‘보기 좋군.’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다른 통로도 개척하기 위해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렇게 첫 번째, 두 번째 통로에 이어서 세 번째 통로도 개척하자, 저 멀리서 몸체를 한껏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거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
그 모습에 나를 비롯한 고블린 가족이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반면에 엘레노아와 마틸다 그리고 내가 소환한 48마리의 고블린들은 나를 보호 듯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저 거미는 도대체…….’
와락 눈살을 찌푸린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축하합니다!]
[던전 퀘스트 ‘무너진 지반을 파헤쳐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톱 5자루가 주어집니다.]
[톱 5자루를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이에 나는 수령을 누른 뒤에 새로운 퀘스트가 뜨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곧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퀘스트가 화면에 떠올랐다.
[던전 퀘스트 ‘굶주린 아라크네’가 발생했습니다.]
[통로를 개척하자, 굶주린 아라크네가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아라크네는 동굴이 던전으로 변모하기 이전부터 살고 있었는데, 지반이 무너져 버린 탓에 그만 동굴 안에 갇혀버린 아라크네입니다. 몇 달 동안 굶주린 탓에 체력이 무척이나 떨어진 상태입니다. 아라크네를 생포해서 던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거나 죽이세요!]
-아라크네 생포 혹은 처치
‘따로 보상은 없는 건가.’
아니, 달리 생각해보면 아라크네 자체가 보상일 수도 있었다.
“아라크네라…….”
확실히 매력적인 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유명인사이기도 했고 말이다.
아라크네는 소아시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소문난 베짜기 명인 소녀인데, 하루는 여신 아테나와 승부를 겨뤄도 지지 않는다고 오만방자한 발언을 했다. 그리고 이것을 들은 아테나가 화를 내면서 베짜기 승부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런데 아라크네가 짠 천이 여신의 것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답자, 여신 아테나는 한층 더 노여워하며 아라크네를 거미로 만들어 영원히 거미집을 짓도록 만든 것이다.
이 때, 다른 한 편으로는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아테나가 아라크네의 옷감을 조각조각 찢고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베틀의 북으로 아라크네를 구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아라크네는 치욕감을 이기지 못 해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것이다.
여하튼 오만방자한 발언 때문에 결국 아라크네는 거미로 변했고, 그것이 점점 변화되어 아라크네라는 거미 인간 종족이 나온 것이다.
‘저기 웅크리고 있는 게, 아라크네의 상체인가.’
흠, 하고 숨을 들이켠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포위합시다.”
이러한 내 말에 따라 마흔 여덟 마리의 고블린들이 아라크네를 슬금슬금 포위하기 시작했다. 다만 통로 바닥이 온통 거미줄 투성이였기 때문에 움직임이 약간 제한되었다. 하지만 거미줄을 짠지 꽤 오래된 모양인지, 점성과 윤기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아……. 먹이다.”
그 때, 아라크네가 입을 열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곧 칠흑처럼 어두운 검은색 머리카락을 바닥에까지 축 늘어트리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꽤 오랫동안 굶주린 모양인지, 무척이나 말라보였다.
한 마디로 콕 집어 말하자면, 병약 미소녀라고 할 수 있었다.
단, 하반신의 거미 몸통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어, 인간……? 고블린과 인간이 왜 같이 있어? 끙……. 나 지금 배가 너무 고파서 죽을 것만 같은데, 체액 좀 빨게 해주면 안 될까?”
이리 말한 아라크네는 따각따각 소리를 내며 여덟 개의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재빨리 고블린들과 함께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이에 아라크네는 안타까움에 가득찬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도망치지 말고……. 체액을 딱 한 모금만 마시게 해줘.”
“저도 마음 같아서는 한 모금 마시게 해드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제 몸에 남아있는 체액이란 체액이 모두 빨릴 것만 같아서 사양하고 싶네요.”
“아니야, 나 정말로 한 모금……. 따악 한 모금만 마실게.”
“죄송합니다.”
“너무해……. 진짜 너무해. 갈 땐 가더라도 한 모금은 정도는 괜찮잖아?”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나를 애절하게 쳐다보는 아라크네다. 이에 나는 쓰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대신 제가 더 좋은 것을 제안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거미 인간으로 할 수 있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