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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보이는 오크가 바로 오크 족장, 올가입니다.”
왕자 베네딕트가 사뭇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이에 왕자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져보니, 그곳에는 오크 장군 급으로 보이는 오크들에게 호위를 받고 있는 오크 족장을 볼 수 있었다.
더불어 내 눈에 비추어 보인 오크 족장, 올가는 이제까지 본 오크 장군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날렵한 체형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왕자 베네딕트처럼 호리호리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오크 장군들과 비교했을 때, 날렵하다는 것이었다.
‘저게 반 마족이 된 오크 족장, 올가인가.’
꿀꺽, 마른침을 삼킨 나는 에나를 쳐다보았다.
‘……이길 수 있을까?’
마정석 파편의 힘을 흡수한 만큼 에나와 비등 혹은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내가 가진 밑천을 다 까발려야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푼 뒤에 입을 열었다.
“갑시다.”
이러한 내 말에 왕자 베네딕트도 이번 싸움은 결코 만만치 않을 거라 생각한 모양인지, 살짝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에나를 비롯한 기사들도 걸음을 옮겼다.
물론 우리 앞을 오크들이 가로막긴 했지만, 그 때마다 에나가 검을 휘두르며 손쉽게 길을 뚫었다. 그리고 이윽고 오크 족장, 올가 앞에 서자 녀석이 사납게 으르렁대며 입을 열었다.
“네 녀석들이구나! 나의 군대를 혼란에 빠트린 것이……!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다!”
크게 소리쳐 말한 올가가 손짓하자, 양 옆에 서있던 대여섯 마리의 오크 장군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에나 또한 앞으로 나섰다. 물론 중년 기사를 비롯한 다른 기사들도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에나의 발이 워낙에 빨라서 맞추질 못했다.
“신성 폭발.”
에나의 입에서 주문이 외워지자, 일순 그녀를 중심으로 환한 빛이 폭사했다.
“……!”
한 순간 눈이 머는 것만 같은 환한 빛에 와락 눈살을 찌푸린 나는 시력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시력이 회복되자 에나의 발치 아래에 갈기갈기 찢긴 채로 죽어있는 오크 장군들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오크 장군 뿐만이 아니었다.
에나의 주면에 있던 일반 오크들 또한 잘게 다진 고기처럼 짓이겨져 있었다.
“이, 이게 무슨……!”
그 광경에 올가는 두 눈을 부릅 뜨고서 말을 더듬었다.
그러나 에나는 자기 알 바가 아니란 듯이 그대로 올가를 향해 달려들었다.
“……히익!”
덩치는 산만한 것이 계집애처럼 새된 비명성을 내뱉으며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 우습지도 않은 광경에 헛웃음을 터트린 에나는 그대로 일말 자비 없이 올가의 목을 베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자, 잠깐!”
올가가 다급히 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쳐보지만, 에나가 휘두른 검은 그대로 올가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
올가의 머리통이 땅바닥에 떨어지자, 일순 사방이 정적에 휩싸였다.
왕자 베네딕트는 지금 자기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두 눈을 연신 껌뻑껌뻑 거렸다.
물론 이 일대에 흩어져 있는 오크들도 마찬가지였다.
“크워어어! 도망쳐! 크워어!”
“취이익! 족장이 죽었다! 췻!”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오크들이 이리저리 날뛰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치 에나에게서 멀리 떨어지려는 듯이 말이다. 실제로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오크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하하…….”
베네딕트 왕자는 허허 웃음을 터트리며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슬쩍 왕자의 안색을 살펴보니, 굉장히 허탈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하긴 자기들을 그토록 괴롭혀대었던 오크 족장, 올가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렸으니 왕자의 입장에선 다소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에나 쪽으로 걸음을 옮긴 뒤에 죽은 오크 족장 올가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남근에 마정석 파편이 박혀있다고 했지?’
남근에 박혀있을 마정석 파편을 생각하니,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나 보고 꺼내달라고 하기에도 뭣 했다.
일단 에나는 내 여자였으니 말이다.
내 여자가 다른 수컷의 남근을 만지는 건, 절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끙…….”
작게 앓는 소리를 낸 나는 발로 올가의 몸의 땅바닥에 눕힌 뒤에 남근을 발로 밟았다. 그러자 단단하면서도 물컹한 남근의 감촉이 느껴졌다. 분명히 신발을 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전해져오는 감각에 마정석 파편이고 뭐고, 그냥 포기하고 싶어졌다.
‘이게 더 힘드네.’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꾹 참으며 오크 족장의 남근을 발로 잘근잘근 밟자, 곧 그 속에 박혀있는 마정석 파편의 일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윽……. 진짜로 박아 넣었네? 이거 미친 놈 아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정신 상태였다. 아니, 이해하고도 싶지 않았다.
세상에 그 누가 자기 남근에 돌멩이를 박아 넣는다는 말인가? 고개를 절래절래 가로저은 나는 칠흑의 지팡이 끝부분으로 남근을 짓이기며 마정석 파편을 꺼냈다.
“어?”
이처럼 마정석 파편을 빼내자, 파편이란 말이 무색하도록 커다란 검은색 돌이 내 눈에 들어왔다. 거의 손가락 세 개를 합친 수준이었다. 이제까지 본 마정석 파편 중에 가장 커다란 크기였다.
“……에나 씨, 이 옷 좀 잘라서 손수건 모양으로 만들어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이러한 내 부탁에 에나는 곧바로 검을 휘둘러, 오크 족장 올가가 입고 있던 옷을 사각형으로 잘라내었다. 그리고 이처럼 임시 손수건이 만들어지자, 나는 그것을 이용해서 마정석 파편을 집어 들었다.
그 후, 스마트폰을 들어서 화면을 들여다보니,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라있는 게 보였다.
[축하합니다!]
[여러 개의 마정석 파편이 합쳐진 마정석의 일부분을 획득하셨습니다!]
[마정석의 일부분은 던전 코어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던전을 개설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던전?”
어쩐지 마정석 파편이 평소보다 더 크다 했더니, 여러 개의 마정석 파편을 합쳐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던전이라니……. 나는 잠시 화면에 떠올라있는 알림문구를 쳐다보다가 이내 아니요를 눌렀다.
그러자 뒤이어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마정석의 일부분을 획득하셨습니다!]
[주의. 마정석의 일부분은 마정석 파편 1개로 취급됩니다.]
[이계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종료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아니, 이게 무슨…….”
주의 문구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정석의 일부분은 마정석 파편 여러 개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여러 개의 마정석 파편으로 취급해주어야 되는 게 옳았다. 그러나 매니저 어플은 그런 거 없이, 딱 1개로만 취급하겠다고 박아놓은 것이었다.
“결국 던전을 만들라는 거잖아?”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나는 마정석 파편을 옷조각으로 잘 감싼 뒤에 베네딕트 왕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 유현 님, 그건……?”
“오크 족장이 특이한 것을 가지고 있더군요. 조금 흥미가 생겼습니다.”
“설마 그게 오크를 강하게 만들어준 겁니까?”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좀 더 연구를 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렇듯 내가 대답하자, 베네딕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일단 그에게 있어서 나는 진리를 쫓는 이방인 마법사였으니 말이다.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오크들의 위협도 사라졌으니, 슬슬 헤어져도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러한 내 말에 베네딕트의 얼굴에 아쉬움이 서렸다. 그는 한동안 내 눈치를 살펴보다가 이내 무언가 떠올린 듯이 품속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김 유현 님, 이것을 받아주시겠습니까?”
왕자가 꺼낸 것은 하나의 명패였다.
금으로 만들어진 걸로 보이는 명패는 섬세하게 음각이 되어 있었는데, 한 눈에 딱 보아도 비싼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것은……?”
“제가 왕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신분증입니다.”
“네? 하지만 이건…….”
“사양하지 말고 받아주세요. 김 유현 님은 제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아니, 하폰을 구하신 겁니다! 충분히 받으실 자격이 됩니다.”
“하지만 이건 왕자님의 신분증이 아닙니까? 이러면 왕자님께서 곤란해지시는 건 아닌지…….”
“곤란이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더욱이 제 곁에는 마틴 경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 신분 걱정은 따로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리 말하며 한사코 내게 명패를 건네주려 하는 베네딕트 왕자의 행동에 나는 어쩔 수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명패를 건네받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왕자의 얼굴이 활짝 개이며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혹여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그 명패를 보여주시면 됩니다. 더불어 제가 각 귀족들에게 일러둘 테니, 그 명패만 보이신다면 충분히 귀빈 대접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왕자님의 친절에 감사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할 일이지요.”
왕자 베네딕트는 깊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남자였다.
나는 왕자와 마찬가지로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그대로 우리는 각자 갈 길을 떠났다.
그리고 이처럼 왕자가 저 멀리,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던전 개설 알림문구를 불러왔다.
========== 작품 후기 ==========
던전!
여러분이 지금 상상하시고 계신 것들이 전부 다 나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