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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 사냥꾼에 대한 반응이 대체로 호의적이라서 다행이네.’
내심 안도의 숨을 내뱉은 나는 현주를 조교의 방으로 부르기 위해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가만.’
그러다가 문득 나는 녹색 보석의 처분을 현주가 아닌 마물 사냥꾼들에게 먼저 이야기해야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일단 마물 사냥꾼이 알아야지, 내 말에 따라서 현주에게 녹색 보석을 넘겨줄 것이 아닌가?
다짜고짜 현주가 마물 사냥꾼들에게 녹색 보석을 달라고 한다고 마물 사냥꾼들이 그걸 또 순순히 넘겨줄 리가 없었다. 오히려 현주가 자신들에게 보였던 호의가 모두 이것을 위한 것이었다고 오해하고서 적대할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그 전에 현주가 잘 이야기하겠지만……. 일의 순서를 생각해본다면 마물 사냥꾼에게 먼저 통보하는 것이 옳았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조교 목록을 불러온 뒤에 마물 사냥꾼들을 찾아보았다.
“응?”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마물 사냥꾼인 이 소현을 비롯한 다른 네 명의 이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지? 설마 못 부르는 건가?”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혹시나 무언가 잘 못 된 건 아닌가 싶어서 새로 고침 해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이 소현을 비롯한 다른 마물 사냥꾼의 이름이 표시되지 않았다. 이에 나는 이전처럼 마물 사냥꾼을 호출하기 위해서 마물 사냥꾼 항목에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이전에 마물이 나타났을 때처럼 마물 사냥꾼들을 단체로 호출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물이 출현했을 때만 마물 사냥꾼을 호출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다음 마물 출현까지 기다려야 되는 건가?’
혀를 내두른 나는 일단 현주와 마물 사냥꾼에 관한 일을 미루기로 했다.
“…….”
이처럼 예정했던 일이 무산되자, 할 일이 없었다.
현주를 부를 일도, 마물 사냥꾼을 부를 일도 없어졌다. 더욱이 평소처럼 은하네들과 함께 춤과 노래를 연습하며 시간을 보낼 일도 없었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의자를 편히 기대고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매니저 어플을 얻기 이전과 이후의 생활을 비교해보았다.
‘……매니저 어플을 얻기 이전에는 공부하고 알바하고 은하랑 가끔씩 저녁 사먹고……. 진짜 평범했지.’
평범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매니저 어플을 얻고 나니, 알게 모르게 조금씩 생활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역시 서연이 누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민서라고 할 수 있었다.
배구에 전혀 흥미가 없던 내가 일부러 시간을 할애해가면서까지 민서의 경기를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보다보니 배구도 재밌고.’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한동안 빈둥거리면서 이제까지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문득 이대로 빈둥대기보다는 이계 퀘스트를 해결해서 마정석 파편을 조금이라도 더 비축해두는 편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처럼 여유로울 때, 조금씩 마정석 파편을 얻어놔야지.”
그도 그럴 것이 앞으로 아이돌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되면 정신없이 바빠질 테니 말이다.
더욱이 현계 퀘스트도 있었다.
그러니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마정석 파편을 비축해둘 필요가 있었다.
“……좋아, 한 건 해결해볼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계 퀘스트 항목을 불러왔다.
어차피 내게는 에나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계 퀘스트]
[마족이 된 오크 족장]
오크 족장, 올가는 마정석 파편을 이용해서 자신의 힘을 키워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올가는 자신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올가의 신체가 오크가 아닌 마족의 것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만 아직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오크와 마족의 중간 형상을 띄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올가의 힘은 몇 배나 강해졌습니다. 더욱이 올가는 대륙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마정석 파편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올가는 자신의 강력한 힘을 이용해서 일천에 달하는 오크들을 규합한 뒤에 마정석 파편을 모으기 위해서 인간의 터전을 침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지금 대륙은 오크들의 공격으로 혼란에 휩싸인 상태입니다.
현재 오크 족장, 올가는 라페스라 불리는 도시에 존재하는 마정석 파편을 손에 넣기 위해서 공격 중입니다. 올가가 마정석 파편을 손에 넣기 전에 먼저 획득하세요.
-올가보다 먼저 마정석 파편을 손에 넣으세요.
[위기에 빠진 도시, 라페스]
도시 라페스를 향해 일천에 가까운 오크들이 침공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라페스의 영주는 하폰의 국왕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하폰의 국왕은 당장 오크들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인 베네딕트와 함께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그리고 곧 왕자 베네딕트가 이끄는 군대와 오크 족장 올가가 이끄는 군대가 맞부딪쳤습니다.
하지만 마정석 파편과 동화하여 반 마족이 된 올가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때문에 왕자 베네딕트가 이끄는 군대는 오크의 발아래에 무참히 짓밟혔고, 현재 베네딕트는 근위대와 함께 전장에서 필사적으로 항쟁하고 있습니다.
오크 족장, 올가가 이끄는 오크들이 왕자 베네딕트에게 신경 쓰고 있을 때, 오크 족장 올가를 쓰러트려 마정석 파편을 손에 넣으세요!
-오크 족장, 올가를 쓰러트려 마정석 파편을 손에 넣으세요.
“흠…….”
보아하니 어느 한쪽 편에 들어서 싸워야하는 퀘스트인 모양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혼란을 틈타서 마정석 파편을 확보하는 임무였다.
“……팔은 안쪽으로 굽는다고, 이왕이면 같은 인간을 돕는 편이 좋겠지?”
이렇듯 결정을 내린 나는 곧바로 이계 퀘스트 ‘위기에 빠진 도시, 라페스’를 선택했다.
[이계 퀘스트 [위기에 빠진 도시, 라페스]을 수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이 물음에 나는 서둘러 현관 쪽으로 걸어간 뒤에 신발을 신었다.
그 후, 네를 누르자 눈앞의 풍경이 차츰 퇴색하는 것처럼 어두워졌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올 때쯤에는 자취방의 풍경이 아닌 어느 이름 알 수 없는 숲 속의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
숲 안을 둘러보던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죽은 사람의 시체가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둔기 같은 것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보이는 머리에서는 새빨간 피와 뭉개진 뇌를 끈적끈적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윽.”
구역질이 왈칵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꾹 참으며 꼴사납게 토악질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몇 번 숨을 들이켰다 내쉬는 것으로 최대한 현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차츰 피 냄새에 익숙해지자 나는 보호의 반지와 칠흑의 지팡이를 소환했다.
“후…….”
칠흑의 지팡이가 손에 잡히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이것만 있으면 절대로 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칠흑의 지팡이 덕분에 몇 번이고 위험했던 상황을 극복했었으니 말이다.
‘일단 엘레노아한테서 망토를 받자.’
천천히 숨을 들이켠 나는 엘레노아를 소환하기 위해서 입을 벌렸다. 그런데 그 때, 바스락!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눈 앞에 다수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마법사?”
마법사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 것은 어느 젊은 청년이었다. 금발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사내였는데, 꽤나 선해보였다. 더욱이 얼굴 또한 동화 속 왕자님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무척이나 잘 생겼다.
백마만 타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동화 속 왕자님이었다.
‘설마 베네딕트라는 왕자인가?’
이러한 생각에서 미청년을 쳐다보는데, 돌연 기사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미청년의 몸을 보호하듯이 앞에 서며 입을 열었다.
“뒤로 물러나십시오, 왕자님! 저 오크들을 조종하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일지도 모릅니다!”
크게 소리쳐 말하며 날 향해 검을 겨누는 중년 기사다.
아무래도 나를 적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실제로 그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뒤에서 취이이익! 하고 오크의 거친 콧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중년 기사를 비롯한 다수의 사내들이 움찔 몸을 떨며 으득 이를 갈았다.
“……왕자님을 지켜라! 왕자님만큼은 반드시 지켜야한다! 이 목숨을 하폰에 바쳐라!”
“이 목숨을 하폰에……!”
기사들은 아무래도 앞뒤로 포위당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둥글게 서고서 왕자 베네딕트를 지켰다.
“취이익! 인간, 찾았다!”
“창자를 모두 꺼내서 잘근잘근 씹어 먹어 주마! 취이익!”
이처럼 기사들이 왕자를 보호하듯이 둥글게 서자, 곧 이어서 흉측한 모습의 오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었다. 대충 숫자를 훑어봐도 족히 열댓은 되어보였다. 이에 나는 잠시 양 진형을 살펴보다가 이내 내가 낄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내가 몇 발자국을 옮기기도 전에 뒤늦게 나타난 오크 두 마리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거칠게 콧김을 뿜어대었다.
“취이익! 야들야들한 인간이다!”
“엉덩이 살은 내 꺼다, 취익!”
그 모습에 코웃음을 친 나는 칠흑의 지팡이로 땅을 내리치며 입을 열었다.
“어둠의 화살.”
내가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검은색 구체가 눈앞에 생성되더니, 곧 그것은 내가 지정한 오크의 머리통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펑!
어둠의 화살이 오크의 머리를 꿰뚫는 순간 녀석은 비명 한번 내뱉지 못 한 채 머리통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그 광경에 일순 오크와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너무 소리가 컸던 모양이었다.
“취이익!”
그 때, 남은 오크가 날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에 나는 재빨리 보호막을 사용하는 동시에 에나를 소환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에 여기사 한 명이 나타났다.
에나는 별다른 동요 없이 그대로 검을 휘둘러, 오크가 휘두른 몽둥이와 함께 녀석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
그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광경에 숲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 작품 후기 ==========
초보자 사냥터에 강림한 82렙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