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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지아가 휘두른 단검이 오크의 팔뚝을 베자, 붉은색 피가 치솟았다. 하지만 얕았다.
‘무슨 팔뚝이…….’
지아는 눈살을 와락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번 기습 공격으로 오크의 팔뚝을 잘라버리려고 했는데, 오크의 팔뚝은 생각 이상으로 단단했다. 마치 단단한 바위처럼 말이다. 이건 은유가 아니었다.
정말로 바위 같았다.
“크워어어!”
오크는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한 지아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당장에라도 그녀를 찢어죽일 것처럼 성난 기세를 뿜어낸 오크는 수증기와도 같은 증기를 뿜어내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 공격에 아차 싶어진 지아는 서둘러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간발의 차이로 오크의 주먹이 빗나가며 애꿎은 땅을 내리쳤다.
쿵!
바닥에 아스팔트가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구덩이가 생겼다. 그 광경에 지아는 온 몸에 피가 빠르게 도는 것을 느꼈다. 특히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껴졌다. 오크의 시선을 받을 때마다 피부가 따끔따끔 거려왔다.
‘이거 굉장한데?’
몸만 된다면 오크와 정면으로 치고 박고 싸우고 싶었다. 아니, 가능할 지도 몰랐다. 지아는 손에 쥐어져 있는 단검을 꽈악 쥐며 오크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단검이 은빛 궤적을 만들며 오크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크아아아!”
오크가 흘린 새빨간 피가 그녀의 뺨에 뿌려지자, 온 몸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지아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웃음을 삼키며 다시금 단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오크 또한 그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인파이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서로의 공격 범위 안에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었다. 여기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동체 시력과 훈련으로 다져진 단단한 육체의 내구뿐이었다.
‘내구는 내가 밀리지만 동체 시력이라면!’
오크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지아가 휘두른 단검은 정확히 오크의 가슴께를 갈랐다.
“크아아아아!!”
오크가 비명성을 터트리자, 지아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자신의 생각대로 오크의 반사 신경은 느려졌다. 물론 그 만큼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지아에겐 딱 좋은 샌드백에 불과했다.
“덤벼!”
지아가 크게 소리치며 오크를 도발하자, 녀석은 마치 그녀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크게 포효성을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이길 수 있어!’
지아는 오크의 주먹을 연달아 피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끊임없이 상대방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집중력과 테크닉 그리고 뛰어난 동체 시력이 만들어낸 하나의 예술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소현이는 물론이고 멀리서 지아와 오크의 구경하고 있던 군인들도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괴, 굉장해.”
소현은 정말로 순수하게 감탄성을 내뱉었다. 동시에 어쩌면 지아, 혼자서 오크를 쓰러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취이이익!”
그 때, 오크가 양 팔을 크게 벌리며 지아를 덮치듯이 달려들었다. 그 기세가 마치 성난 멧돼지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지아의 눈에는 수준 이하의 멍청한 돼지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큰 동작에는 반드시 큰 허점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오크의 양 팔을 피해낸 뒤에 가슴 안쪽으로 단숨에 파고들었다.
‘심장에 꽂아주지!’
지아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단검으로 녀석의 왼쪽 가슴을 찔렀다.
“죽어!”
단검의 날이 녀석의 가슴에 박힌 순간 지아는 자신의 체중을 실어 깊숙이 찔러 넣었다. 이 정도 깊이라면 단검이 녀석의 심장을 찔렀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이었다.
“크아아아!!”
오크는 자기 가슴에 단검이 찔렸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 도리어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자신의 품에 파고들어와 있는 지아의 몸을 양 팔로 꽉 끌어안았다.
“아아악!”
양 팔의 뼈가 으스러지는 충격에 지아는 크게 비명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장면에 깜짝 놀란 소현이가 재빨리 방패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방패 강타!”
주문을 외운 순간, 왼손에 우웅하고 묵직함이 실렸다. 그것을 느낀 소현이는 재빨리 오크의 안면에 방패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오크의 고개를 위로 젖혀졌다. 동시에 지아의 몸이 녀석의 품에서 벗어났다.
“지아 씨!”
크게 소리친 소현은 재빨리 지아의 몸을 받은 뒤에 멀찍이 물러났다.
‘오크는 스턴 상태인건가?’
소현은 재빨리 오크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방패 강타에는 대상에게 기절과 같은 상태 이상을 부여하는 모양인지, 오크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지아 씨는?’
이를 악문 소현은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지아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양 팔을 축 늘어트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예나에게 치료를 받기 전에는 전투를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이에 소현은 재빨리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는 세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지 씨, 여기에요!”
소현이가 크게 소리쳐 말하자, 허겁지겁 달려온 예지가 눈치껏 상황을 파악한 듯이 재빨리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상처 회복과 체력 회복을 사용해주었다. 그러자 곧 고통에 숨을 꺽꺽 거리고 있던 지아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오, 오크는?”
지아는 숨을 크게 내뱉으며 물었다. 이에 소현이는 그녀를 놓아주며 입을 열었다.
“살아있어요.”
“…….”
그 말에 지아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분명히 그녀의 손끝을 타고 녀석의 가슴께에 박아 넣은 단검의 감촉이 느껴졌다. 지방과 근육으로 이루어진 녀석의 살이 갈라지는 것이 말이다.
‘그렇다면 역시 심장의 위치가 다르다는 건가.’
자신의 안일했던 생각을 반성한 지아는 녀석의 가슴께에 박혀있는 단검을 응시했다.
‘……어떻게든 회수해야 될 텐데.’
그녀는 한 차례 호되게 오크에게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의를 꺾지 않았다. 도리어 더욱 더 흥분된다는 듯이 입가를 이죽이며 어떻게든 오크의 숨통을 끊을 생각만 했다. 그 모습에 소현이는 조금 질렸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 오크의 모습에 검과 방패를 꽉 쥐었다.
그 후, 그녀는 어느덧 도착한 세 명의 여성과 지아를 향해 소리쳤다.
“제가 오크의 주의를 끌겠어요! 그러고 나서 제가 신호하면 공격해주세요!”
이리 소리쳐 말한 소현은 위협의 호루라기를 불어서 오크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게 만들었다.
삐이이이익!
“네 상대는 나다!”
호쾌히 소리친 소현은 검으로 방패를 두드렸다. 그러자 쿵쿵 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달려드는 오크다.
“크워어어어!”
녀석이 큰 원을 그리며 주먹을 휘두르자, 소현은 재빨리 방패로 녀석의 주먹을 막아내었다.
쿵!
오크의 주먹이 방패에 꽂힌 순간, 팔을 타고 가슴까지 묵직한 충격이 전해져왔다. 하지만 방패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한 모양인지, 견고하게 적의 공격을 막아내어 주었다. 더욱이 충격의 여파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굉장해!’
내심 감탄한 소현은 다시금 이어지는 오크의 공격을 방패로 막아내었다. 그러자 마치 묵직한 철퇴처럼 휘둘러진 주먹이 방패에 꽂혔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이전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했다.
‘……할 수 있어!’
꿀꺽, 침을 삼킨 소현은 다시금 묵직하게 날아오는 오크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그리고 그 장면에 다른 네 명은 물론이고 군인들 또한 넋을 빼고 말았다. 처음 지아가 선보였던 움직임이 예술에 가까웠다면, 지금 소현이 보이고 있는 움직임은 마치 거대한 벽과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저 괴물, 정말로 우리가 상대했던 그 괴물이 맞아?”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몇몇 군인들은 볼을 꼬집어보기까지 하고 있었다.
반면에 소현은 침착하게 오크의 공격을 막아내며 녀석을 착실하게 도발했다.
“솜방망이잖아! 좀 더 세게 휘둘러봐!”
“크워어어어!”
소현의 도발에 오크는 크게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역시 이 오크는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소현은 더더욱 크게 소리치며 오크를 도발했다.
‘어그로를 최대한 끌어야해.’
위협수치를 최대한 올려놔야 다른 사람들이 공격했을 때, 오크의 공격 대상이 소현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게 게임처럼 진행될 거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위협의 호루라기를 생각해봤을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버텨! 버텨! 버텨야해!’
부웅부웅 소리를 내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르는 오크의 주먹을 방패로 막아내며 소현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러다 문득 오크의 두 눈이 붉게 충혈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눈만이 아니었다. 이전에 지아에게 베인 부분이 붉게 변해있었다.
‘지금이다!’
소현은 방패로 녀석의 주먹을 막아내며 소리쳤다.
“공격하세요!”
이렇듯 소현의 말이 떨어지자, 채원이 소리쳤다.
“화염구!”
채원이 쏘아 보낸 거대한 불덩이가 오크의 머리통에 작렬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폭발에 움찔 몸을 떨었던 소현은 곧 불길이 뜨겁지 않다는 사실에 깜작 놀랐다.
‘아군이라서 피해를 안 받는 건가?’
상당히 편리한 시스템이 아닐 수 없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불길에 휩싸인 오크를 쳐다보는데, 돌연 오크의 우악스런 손이 소현을 향해 쭉 뻗어왔다. 이에 아차 싶은 그녀가 재빨리 방패를 들어보지만 녀석의 손은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아!’
여기서 오크의 손에 머리가 붙잡히면 치료고 뭐고, 머리통이 으깨어져서 죽을 게 분명했다.
“비켜!”
그 때, 지아가 소현이의 뒷덜미를 붙잡아 뒤로 와락 잡아당겼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소현이의 무게 중심이 뒤로 넘어가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지아가 오크의 품에 파고들며 소현이에게 말했다.
“이걸로 비긴거야.”
이리 말한 그녀는 오크의 가슴에 박혀있는 단검의 손잡이를 꽉 붙잡은 뒤에 발로 녀석의 가슴을 걷어찼다. 그러자 퍽! 소리와 함께 오크의 몸이 우스꽝스럽게 뒤로 넘어갔다.
“나무 넝쿨!”
그걸 본 혜진이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아스팔트를 뚫고 나무 넝쿨이 자라나더니, 곧 오크의 팔다리를 속박했다.
“시발, 너도 목이 잘리면 별 수 없겠지?”
그 모습에 입가를 이죽인 지아는 오크의 가슴께를 발로 짓밟은 뒤에 녀석의 목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크르르륵!”
일순 녀석의 입에서 피거품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상태로 몇 번 꺽꺽대던 녀석은 곧 죽은 모양인지, 축 늘어졌다.
[축하합니다!]
[현계 퀘스트 ‘오크의 습격’을 완료했습니다!]
[공헌도를 확인합니다.]
[마물 사냥꾼 ‘한 채원’, 14% 공헌했습니다.]
[마물 사냥꾼 ‘유 지아’, 35% 공헌했습니다.]
[마물 사냥꾼 ‘김 예지’, 11% 공헌했습니다.]
[마물 사냥꾼 ‘이 소현’, 29% 공헌했습니다.]
[마물 사냥꾼 ‘신 혜진’, 10% 공헌했습니다.]
[공헌도 29%, 보상이 주어집니다.]
[잔여 능력치 포인트 ‘3’ 주어집니다.]
“아…….”
오크를 죽인 순간, 그녀의 눈앞에 주르륵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잔여 능력치 포인트가 주어졌다는 말이 나타났다. 이게 대체 뭔가 싶어서 손을 뻗어보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추가 설명 없이 사라졌다.
“어?”
그런데 그 때, 지아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이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지아의 손에 들려있는 작은 녹색 구슬이 소현의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오크 시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 ∵ ∴ ∵ ∴
[축하합니다!]
[현계 퀘스트 ‘오크의 습격’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아이템 상자가 주어집니다.]
[랜덤 아이템 상자를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휴…….”
현계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알림문구에 나는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어떻게든 됐네.’
혹시라도 다섯 명 중에 한 명이 죽거나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누군가 인터넷 방송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에서는 다섯 명 중에 어느 한 명도 다치지 않고 멀쩡했다.
물론 지아가 오크에게 잡힌 순간, 어떻게 되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와중에 인터넷 방송을 하는 인간도 대단하네.’
강남 시내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 한 사람 중에 몇몇이 건물 안에서 오크와 전투를 벌이는 마물 사냥꾼의 모습을 찍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순식간에 일파만파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덕분에 지금 인터넷 방송은 난리도 아니었다.
아마도 빠른 시일 내로 동영상 전문 커뮤니티에 퍼져나갈 것이 틀림없었다.
========== 작품 후기 ==========
마물 사냥꾼 파트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편에서 간략하게 이후 내용을 전개하고, 아이돌 프로젝트로 갑니다. 아, 그 전에 현주봐야겠내요.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