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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성이 가까워질수록 다들 말이 없어졌다. 앞장서서 걷고 있는 지아의 발걸음도 눈에 띌 정도로 느려졌다. 소현이는 지아를 포함한 다른 여성들을 훑어보았다.
“…….”
다들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물론 처음 시작 때부터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어두운 얼굴이었다. 마치 사지로 기어들어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소현이는 방패와 검을 단단히 붙잡았다.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돼!’
이를 악물은 소현이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오크를 경계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 때, 저 멀리서 신음하고 있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
“아악! 사, 살려줘! 아아!”
남성의 신음 소리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고통에 찬 신음성이 들려왔다.
어린 아이부터 시작해서 어른까지, 남녀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진 채로 신음하고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에 잠시 몸을 굳혔던 소현이는 곧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서 지팡이를 들고 있는 예지에게 다가가 말했다.
“예지 씨, 광역 상처 회복을 사용할 수 있죠?”
“네? 아, 네…….”
“그걸로 치료해주세요.”
“치, 치료를요?”
“그럼 죽게 놔둘 순 없잖아요.”
이러한 소현이의 말에 예지는 곧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광역 상처 회복 마법을 사용하려는데, 지아가 소현이와 예지 사이에 끼어들며 크게 소리쳤다.
“쓰지 마!”
그 외침에 이제 막 주문을 외려던 예지가 딸꾹질을 하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면에 소현이는 조금 눈살을 찌푸리며 지아에게 물었다.
“쓰지 말라니요?”
그 물음에 지아 또한 눈살을 와락 찌푸리며 대답했다.
“언제 오크가 습격해올지 모르는데, 여기서 광역 상처 회복을 사용하겠다고? 그건 안 돼. 우리가 위험해져.”
“하지만 저 사람들을 이대로 놓고 갈 순 없잖아요!”
“우린 저 사람들을 구해주러 온 게 아니야.”
딱 잘라 말한 지아는 소현이를 밀치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오크야. 그 빌어먹을 오크를 처리하는 거라고!”
“하지만…….”
“저 사람들은 포기해야해. 나중에 정부에서 구해줄거야.”
이리 말하며 소현이를 쏘아본 지아는 다시금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에 소현이는 무어라 반박하려다가도 입술을 도로 꾹 다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아가 한 말 중에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은 사람들을 구하러 온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오크를 처치하기 위해서 온 마물 사냥꾼이었다.
더욱이 광역 상처 회복은 재사용 대기 시간이 10분이나 되는 마법이었다.
일종의 생존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생존기를 이 시점에서 낭비한다는 건, 심각한 손해라고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 하나 때문에 자신들의 생존 여부가 갈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특히나 바닥에 쓰러진 채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한층 더 거세게 뛰었다.
이건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대로 놔두고 갈 순 없어요.”
“…….”
소현이가 지아의 뒷모습을 쏘아보며 말하자, 우뚝 그녀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곧 그녀는 빙글 뒤돌아 입을 열었다.
“……나라고 해서 이러는 게 아니야.”
“그렇다면 더더욱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소현이의 말에 주위에 있던 다른 세 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성자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예지도 결심을 굳힌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렇듯 예지까지 나서서 말하자, 지아는 짐짓 골치 아프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이리 물으며 지아가 남은 두 사람을 쳐다보자, 그 두 사람도 같은 뜻이라는 듯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아무리 자신들의 생존 문제가 걸린 일이라고는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놔두고 갈 만큼 마음이 모질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사람들을 모으자. 서둘러.”
“네!”
이처럼 의견이 모아지자, 지아를 비롯한 다른 네 명의 여성들이 열심히 다친 사람들을 한 자리로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신체가 건장한 남성도 있었지만, 그 때는 힘이 센 지아가 나서서 옮겼다.
그리고 이윽고 스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한 자리로 모은 지아는 예지를 향해 눈짓했다.
“광역 상처 회복!”
신호를 받은 예지가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며 주문을 외자, 바닥에 새하얀 문양이 생겼다. 그리고는 곧 새하얀 빛이 범위 내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몸에 깃들더니, 곧 찢어지고 뭉개진 상처 부위를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와아…….”
그 광경에 다들 감탄성을 터트렸다. 특히나 한 남성의 복부를 꿰뚫었던 철골이 알아서 뽑혀져 나가는 광경은 치료라기보다는 마법에 가까웠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다들 한시도 눈을 떼지 못 하고 있는데,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고서 자신의 몸에 생긴 변화에 놀라워하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세상에!”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곧 자신의 몸에 스며들었던 빛이 사그라지더니, 다시금 예지 곁으로 모이자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을 구해준 사람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새하얀 지팡이를 들고 있는 여성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여자가 우릴 구해준 거야?’
‘누구지? 천사?’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특히나 예지를 비롯한 나머지 여성들의 외모가 빼어나도록 아름다웠기에 다들 놀라움을 넘어서 경외심마저도 느꼈다. 이처럼 다들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쾅! 하고 폭발음이 들려왔다.
“얼른 가자.”
그 소리를 들은 지아가 이리 말하자, 나머지 네 명도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치료해준 사람들을 놔두고서 폭발음이 들려온 쪽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M18A1 클레이모어를 터트린 김 소위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죽었나?’
크레이모아를 격발한 순간, 그 괴생명체는 분명히 사정권 내에 들어와 있었다.
정상적인 생물이라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폭발이었다. 김 소위는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크워어어어!!”
그러나 이런 김 소위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괴생명체는 살아있었다. 아니, 오히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상태였다. 그 광경에 김 소위를 비롯한 3소대원들이 경악 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으아아아!!”
급기야 분대원 중에 한 명이 비명성을 내지르며 총알을 난사했다.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 다른 분대들도 일제히 괴생명체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러자 두두두! 소리와 함께 수십 발의 탄환이 괴생명체의 몸에 박혔다.
“죽어어어!!”
저 괴물에게 죽어나간 사람이 대체 몇 명이던가? 더욱이 3소대 2분대는 저 괴물에게 찢겼다. 8명 전원 남김없이 말이다! 김 소위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눈물을 꾹 삼키며 격발했다.
“크우어어어!!”
하지만 총으로 몇 번을 쏴도 괴생명체는 쓰러지지 않았다. 도리어 좀 더 쏴보라는 듯이 거칠게 포효성을 내뱉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 광경에 다들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질려버렸다.
앞서 죽은 2분대 인원들처럼 모두가 저 괴생명체의 손에 찢겨 죽을 게 틀림없었다.
‘시발…….’
김 소위는 매캐한 화약 냄새를 맡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부모님의 모습에 고개를 번뜩 치켜들었다.
“전원 수류탄 투척!”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김 소위는 탄띠에 매달려있는 수류탄을 꺼낸 뒤에 안전핀을 제거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다른 소대원들도 수류탄을 꺼내 안전핀을 제거했다. 그리고는 다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일제히 괴생명체를 향해 던졌다.
“지아 씨, 잠깐 기다려요!”
그런데 그 때, 저 멀리서 괴생명체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한 명이 아니었다. 무려 두 명이나 되었다. 그 광경에 김 소위는 재빨리 수류탄을 회수해보려고 했지만, 수류탄은 이미 그의 손을 떠난 지 오래였다.
“소대장 님!”
전혀 예상지도 못 한 상황에 김 소위가 넋을 빼고 있는데, 옆에 있던 전령이 소위의 몸을 잡아끌며 고개를 숙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1초 뒤, 쾅! 쾅! 쾅! 소리가 연거푸 터졌다. 족히 여섯 일곱 발은 터진 것 같았다.
‘주, 죽었겠지?’
김 소위는 양 손을 덜덜 떨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괴생명체는 둘째치더라도 갑자기 나타난 여성 두 명 다 수류탄 파편에 고깃덩어리처럼 짓이겨졌을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런 김 소위의 생각과는 다르게, 두 여성은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까, 깜짝이야…….”
소현이는 방금 전 일어난 폭발에 두 눈을 껌뻑껌뻑 거렸다. 반면에 지아는 벌써부터 오크와 한바탕을 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유 지아 (미드) : 이니시 내가 열음.
이 소현 (탑) : 아,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