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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정복이란 말에 몇몇은 할 말을 잃었고, 또 몇몇은 무척이나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소현이는 할 말을 잃은 쪽이었다. 요즘 세상에 지구 정복이라니? 이 얼마나 구시대적인 발상이란 말인가? 소현이는 그만 자기도 모르게 어처구니가 없단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런데 그 때, 가면을 쓴 남자가 작게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물론 지구 정복이라고 해도 인간을 노예로 삼는다거나, 어느 국가를 자신의 휘하 아래에 두려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오로지 순수하게 생명체를 죽이러 온 것입니다.”
이어진 남자의 설명에 다들 흠칫 얼굴을 굳히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의 설명을 가만 들어보니, 이것은 지구 정복이라기보다는 학살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우리가 지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 오크라는 것한테서요.”
그 때, 또 다른 한 여성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남자는 그녀와 잠깐 시선을 마주치더니 곧 입을 열어 대답했다.
“살해당할 겁니다.”
이러한 그의 말에 여성은 쓰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좀 권투를 하나 싶었더니……. 이젠 죽을 위기?”
“그만 두고 싶다면, 지금 밖에 없습니다.”
“그만 두면 원래대로 돌아간다면서요?”
“그렇습니다.”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은 여성은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발로 찼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갈까 보냐!’
그녀는……. 유 지아는 국내 복싱계의 유망주였다. 동양인답지 않게 긴 팔과 다리, 그리고 뛰어난 동체 시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매 경기에서 상대 선수를 압살했다. 더욱이 외모까지 아름다워서, 스타성도 충분했다.
침체되어 있는 여자 복싱계의 부흥을 가져올 인재라는 소리도 들었다.
‘……교통사고만 아니었어도!’
새벽에 자전거를 탔던 것이 화근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타고 체육관으로 향하던 지아는 졸음운전을 하던 운전자의 차에 치이고 말았다. 서둘러 병원에 실려 갔지만, 그녀의 발목은 완전히 박살나 버린 뒤였다.
두 번 다신 뛰지 못 할 거란 판정에 지아는 사고 당시에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관장님도 이럴 순 없다며 의사선생님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발목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10년 동안 복싱에 매달렸건만 지아에게 남은 건, 병신이 되어버린 발목뿐이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지아를 바보처럼 울기만 했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다시 회복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필사적으로 재활에 매달렸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녀의 발목은 힘없이 꺾이며 그녀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아무리 열심히 양 팔을 허우적거려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구렁텅이였다.
결국 지아는 재활도 포기하도 나락에 빠졌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했지만, 자신을 위로해주는 관장님과 부모님이 눈앞에 자꾸만 아른거려서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목적의식을 잃은 채로 병원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마물 사냥꾼으로 선택받은 것이었다.
‘난 다시 링 위로 올라갈 거야.’
으득, 이를 간 지아는 성난 눈길로 남자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 오크만 사냥하면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사냥하겠어요. 죽일 테니까……. 그 빌어먹을 새끼가 있는 곳으로 보내줘요.”
그 말에 가면을 쓴 남자는 지아를 비롯한 나머지 여성을 돌아보았다.
“다른 분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이러한 남자의 물음에 나머지 네 여성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선뜻 나서기가 무서워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 한 명도 싫다고는 하지 않았다. 다들 그 만큼 나름의 절박한 사정을 가지고 있었다.
소현이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이내 가면을 쓴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도 하겠어요. 마물 사냥꾼.”
이렇듯 소현이 입을 열어 말하자, 다른 여성들도 용기를 얻은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요!”
“저도…….”
“저도 할게요.”
이처럼 다섯 명 모두 하겠다고 하자, 가면을 쓴 남자는 무척이나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이리 말한 그는 품속에서 스마트폰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곧 엄지로 화면을 누르며 무언가를 살펴보더니, 곧 입을 열어 말을 쏟아내었다.
“……단풍 활 소환, 현자의 부츠 소환, 봉인된 마도서 소환, 강철 손목 보호대 소환, 날렵한 단검 소환, 위협의 호루라기 소환, 성자의 지팡이 소환, 은빛 장검 소환, 수호의 방패 소환.”
그가 소환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때마다 마술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손에 물건이 하나씩 잡혔다. 그 광경에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 하는데, 가면을 쓴 남자는 별반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라는 듯이 바닥에 자신이 꺼낸 무기들을 내려놓았다.
그 후, 그는 소현이를 비롯한 다른 네 명의 여성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각자 마음에 드는 무기를 골라주세요.”
“…….”
이러한 그의 말에 다들 바닥에 나열되어 있는 무기들을 쳐다보았다.
‘뭘 골라야하지?’
활부터 시작해서 지팡이, 마도서, 검까지……. 각각의 직업을 대표하는 무기들을 바닥에 깔려있었다. 소현이는 정신없이 머리를 굴렸다. 게임을 하면서 익혔던 지식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꿀꺽, 군침을 삼킨 소현이는 장검과 방패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탱커를 할까?’
게임을 할 때, 그녀가 고르는 직업은 대부분 전사 계열의 탱커였다.
적을 직접적으로 쓰러트리기보다는 앞장서서 아군의 든든한 벽이 되어주는 것이 더욱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우리 딜러가 적을 쓰러트리고 난 뒤에 그녀를 칭찬해줄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선봉에 서서 적들의 진형을 무너트리고 아군의 방패가 되어주는 역할, 이 얼마나 멋진 역할이라는 말인가?
‘하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야. 적에게 맞으면 아플 거야.’
차라리 활이나 지팡이를 잡는 편이 안전할지도 몰랐다. 이러한 생각에서 활이나 지팡이 쪽으로 손을 뻗던 소현이는 문득 자신의 옆에 서있는 여성들을 쳐다보았다.
자신과 지아를 제외한 다른 세 명은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욱이 나이도 자기보다도 어려 보였다. 특히나 소현이 다음으로 이 방으로 불려온 여성은 이 중에서도 몸집이 유독 작았다.
만약에 소현이, 그녀가 활이나 지팡이를 잡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분명 남은 네 명 중에 한 명이 탱커 역할을 맡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 때 가서 그 여성이 제대로 탱커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안 될 거야.’
이를 악 물은 소현이는 지아를 쳐다보았다. 그나마 여기서 소현이와 마찬가지로 겁을 안 먹고 있는 여성은 지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소현이는 속으로 그녀가 검과 방패를 집어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이런 그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지아는 다른 걸 골랐다.
“난 이걸로 하겠어.”
지아가 고른 것은 날렵한 단검이었다.
‘건틀렛 같은 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 지아가 고르고 싶었던 것은 건틀렛 계열이었다. 복싱 선수인만큼 주먹으로 싸우는데, 이골이 나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면을 쓴 남자가 늘여놓은 무기들 중에는 건틀렛이 없었다.
그 때문에 지아는 어쩔 수 없이 검신이 짧은 단검을 골랐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소현이는 실망한 기색을 잔뜩 내비쳐 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 후, 소현이는 곧바로 검과 방패를 집어 들었다.
“전 이걸로 고를게요.”
이렇듯 소현이가 검과 방패를 고르자, 가면을 쓴 남자는 조금 놀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검과 방패를 든다는 것은 오크와 직접적으로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알고 있어요.”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요.”
거듭 묻는 남자의 태도에 소현이는 결연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방패를 왼손에 차고, 검을 오른손에 쥐었다.
‘생각보다 가벼워.’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안도의 숨을 내뱉은 소현이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남자가 입을 열어 그녀를 불렀다.
“이 소현 씨.”
“네? 아……. 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태도에 소현이는 조금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상대방이 자신을 마물 사냥꾼으로 고른 남자라는 사실을 재차 상기시켰다.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하겠지.’
꿀꺽, 마른침을 삼킨 소현이는 남자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러한 소현이의 경직된 표정에 남자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허리를 숙여 강철로 만들어져 있는 손목 보호대와 호루라기를 집어 들었다.
“이것도 가져가세요. 사용법은 장비 분배가 끝난 뒤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네!”
그 말에 소현이는 힘차게 대답했다. 장비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생존 확률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해낼 수 있어.’
쿵쿵, 뛰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힌 소현이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후, 여전히 고민어린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는 남은 세 명의 여성을 쳐다보았다.
========== 작품 후기 ==========
이 소현 : 1픽 님, 탑 좀 가주시면 안 될까요?
유 지아 : ㅁㄷ
이 소현 : 여기서 탑 갈만한 사람이 님 밖에 없는데요?
유 지아 : ㅁㄷ
이 소현 : ...탑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