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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고?”
믿기지 않는 현실에 소현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혹시 이게 꿈은 아닐까 싶어서 손으로 볼을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그러자 마치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기라도 하듯이 꼬집은 볼에서 알싸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니, 이 뿐만이 아니었다.
볼을 꼬집고 있는 손끝에 전해지는 감촉이 이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피부는 밤이 새도록 게임을 하느라고 망가져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손끝에 매달린 피부의 감촉은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더듬더듬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소현이는 곧 책상 위에 올려있는 거울을 집어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
유리창이 아닌 거울 속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도 뚜렷하게,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푸석푸석하기 그지없던 머리카락은 굽이굽이 물결치며 윤기가 흐르고 있었고, 다크 서클이 짙게 내리깔려있어야 될 눈가는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멍하니,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정말로 이 거울 속에 비추어진 여성이 자신이라는 말일까? 소현이는 덜덜 손을 떨면서 이곳저곳 비추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마물 사냥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마물 사냥꾼……. 그리고 신체 개조.’
분명 그것 때문일 게 틀림없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그녀는 자신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살점 덩어리와 진액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전부 다 내 몸 속에 있었던 거야?’
조금 소름이 돋았다.
소현이는 물컹거리는 살점 덩어리들을 한 곳에 모은 뒤에 비닐봉지에 쓸어 담았다. 하지만 한두 개로는 어림도 없는 양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쓰레기봉투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쓰레기봉투 안에 살점 덩어리를 전부 다 밀어 넣은 소현이는 다음으로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는 진액을 쳐다보았다.
“으음…….”
마른 걸레로 닦아내기에는 그 양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았다. 집 안에 있는 수건이란 수건은 전부 다 꺼내야 겨우 닦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양이었다. 이에 끙끙 앓으며 고민하던 소현이는 곧 옷장 안에 들어있는 자신의 옷을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이럴 땐, 옷이 커서 참 좋네.”
씩, 웃음을 터트린 소현이는 현재 자신의 몸보다 두세 배는 족히 더 큰 옷가지들로 진액들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세 방바닥이 말끔히 닦아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몸속에 있던 진액이라서 그런지 냄새가 고약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씻어야겠네.”
짧게 숨을 내뱉은 소현이는 창문을 활짝 연 뒤에 화장실로 향했다.
그 후, 화장실 거울 속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비로소 자신의 살이 모두 빠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
쿵쿵, 뛰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힌 소현이는 진액으로 끈적끈적해져있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기름이라도 칠한 것처럼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자신의 몸매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소현이의 몸매는 잡지 속 모델에 버금갈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일단 살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가슴은 여전했으니 말이다.
‘보통은 살이 빠지면 가슴이 먼저 빠지는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소현이는 자신의 얼굴보다 더 큰 가슴을 손을 주무르며 얼굴을 붉혔다.
‘……내가 살이 빠졌구나.’
그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한 소현이는 저도 모르게 바보처럼 푸흐흐! 하고 웃고 말았다. 사실 마음 같아서 크게 웃고 싶었지만, 그렇기에는 그녀의 간담이 너무나도 약했다. 혹시라도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가 꿈에서 깨질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꿈이라면 최대한 오래갔으면 좋겠다.’
헤실헤실 웃음을 터트린 소현이는 곧 가슴에서 손을 떼어낸 뒤에 샤워기로 자신의 몸을 꼼꼼하게 닦았다. 그리고 몸에 묻어있는 진액을 닦아내는 중에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몸이 의외로 근육질로 변해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락부락하게 변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딱히 표시가 나지 않지만, 팔이라던가 배를 만진 순간 돌처럼 딱딱한 근육이 만져졌기 때문이었다.
‘……이게 정말로 내 몸이라고?’
누가 보면 운동선수인 줄 알 정도였다. 아니, 마물 사냥꾼으로 선택되었다고 했으니, 분명 그에 걸맞은 신체로 변한 것이 틀림없었다.
“마물 사냥꾼이면 역시……. 괴물이랑 싸우는 거겠지?”
게임 속에서나 보던 괴물과 싸울 생각을 하니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마물 사냥꾼이라고 했지만, 아직까지 마물이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싸우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면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던 소현이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깨끗이 몸을 다 씻은 소현이는 진액으로 끈적거리는 옷과 속옷을 집어 들고서 방으로 돌아갔다.
그 후, 그녀는 가방 안에 더러워진 옷가지를 집어넣은 뒤에 새 옷을 꺼내 입었다. 다만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조금 괴상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분명 자신의 옷인데, 지금은 몸에 맞지 않은 어른의 옷을 입은 어린 애 같은 처지가 되어버렸다.
‘속옷을 입을 엄두도 안 나네.’
그나마 브래지어가 맞아서 다행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소현이는 쓰레기봉투와 가방을 집어 들고서 집 밖으로 나갔다.
그 후, 아파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계단을 이용해서 1층으로 내려간 그녀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봉투를 집어넣고, 옷수거함에 가방을 밀어 넣었다.
옷이 조금 아깝긴 했지만, 더 이상 사이즈가 맞지 않은 옷이었기에 어차피 입을 수도 없었다.
애써 아쉬움을 떨쳐낸 소현이는 다음으로 근처 옷가게로 향했다.
이 때, 거리의 사람이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간간히 홀린 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남성들의 시선도 느껴졌다.
“와, 개쩐다.”
“너 방금 봤어?”
“저 여자 뭐야?”
다들 저마다 감탄성을 터트리며 소현이를 훔쳐보고 있었다. 특히나 원피스처럼 그녀의 종아리까지 내려온 윗옷이 바람에 흩날릴 때면 모두가 꼴깍꼴깍 군침을 삼키며 두 눈에 불을 켰다.
‘뭐, 뭔가 부끄럽네.’
이런 종류의 시선은 난생처음이었기에 그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 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있어서 타인의 시선이란 혐오와 한심함 그리고 질책어린 시선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게으르면 저렇게 뒤룩뒤룩 살이 찔까?
살이나 좀 빼지.
저래서 일상생활이나 가능하겠어?
온갖 부정적인 시선만 받아왔던 소현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동정어린 시선도 많이 받아보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그 시선도 결국 부정적인 시선이었다. 그녀는 단지 평범하게,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으로서 대해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선을 보내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특히나 그녀가 성인이 되고나서부터는 더 심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살을 뺀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180도 바뀌었다.
다들 그녀를 보고 감탄하고, 놀라고 부러워하고 있었다.
“…….”
이렇듯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소현이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고 말았다. 여기에 덩달아 발걸음도 빨라졌다.
때문에 소현이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자, 거리의 사람들은 저마다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다시금 제 갈 길을 갔다.
‘살이 빠진다는 게, 이런 거였나?’
쿵쿵 거세게 뛰는 가슴의 요동을 느끼며 히죽히죽 웃은 소현이는 곧 자신이 너무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서둘러 웃음기를 싹 지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하튼 이처럼 소현이가 옷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무료한 표정으로 가게를 보던 점원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녀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점원은 더없이 환한 목소리로 소현이를 맞이해주었다. 그 살가운 태도에 소현이는 저도 모르게 조금 감동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옷가게에 들어서면 다들 하나 같이 눈살을 찌푸리며 ‘손님, 저희 가게에는 손님 체형에 맞는 옷이 없습니다.’하면서 내쫓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난생 처음으로 옷가게 점원에게 환대를 받은 것이었다.
새삼 감격한 소현이는 옷가게 점원이 ‘이거 손님한테 완전 잘 어울리세요!’라며 건네주는 옷을 한 번씩 입어보고는 될 수 있는 한 전부 샀다. 솔직히 바가지를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었지만, 난생처음 겪어본 환대는 충분히 소현이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런 게 쇼핑하는 재미구나.’
이렇듯 새 옷을 입은 소현이는 허리를 쭉 펴고서 당당하게 옷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거리의 사람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소현이의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심지어 이번에는 여자들까지도 소현이는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질투를 할 법도 했는데, 지금 소현이의 모습은 그런 질투조차도 엄두내지 못 하도록 만드는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너무나도 높은 벽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일개 사람으로서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질투는커녕 경외를 하게 되어버린다.
동경하게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지금이 딱 그 상황이었다. 남녀 불문하고, 모두가 소현이의 모습에 반해버린 것이었다.
소현이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이번에는 속옷점에 들어섰다.
그 후, 그 곳에서 새로운 속옷을 구입한 소현이는 처음 계단을 통해 집 밖으로 나갔을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당당하게 올라갔다.
“누……. 누구세요?”
소현이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던 엄마가 돌아와 있었다. 소현이의 엄마는 집 안으로 들어온 낯선 여성의 모습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고, 그 모습에 그녀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누구긴 누구야! 엄마 딸이지!”
이리 소리쳐 말한 소현이는 그대로 자기 엄마를 꽉 끌어안았다. 반면에 소현이 엄마는 자기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의 행동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낯선 여자에게서 내 딸의 냄새가 난다!
참고로 마물 사냥꾼으로 선택된 여성 모두가 소현이처럼 뚱뚱했던 건 아닙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마물 사냥꾼 중에 한 명인 한 채원의 경우에는 병약 미소녀입니다.
병원 침대 위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죠! 하지만 마물 사냥꾼으로 선택받게 되면서,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활달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채원이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대가로 마물 사냥꾼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죠.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