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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죽여줘…….”
“크아, 아……. 아아!!”
마을 중심부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좀비로 변한 엘프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한 편의 공포 영화를 연상시켰지만, 나는 애써 침착하게 고블린들로 하여금 공격하도록 했다.
“케르륵!!”
“크악!”
스물네 마리의 고블린들이 달려들자, 엘프 좀비들 또한 저마다 양 팔을 휘두르며 공격했다. 이에 고블린들은 몽둥이를 높이 치켜든 뒤에 가장 앞에 서있는 엘프 좀비를 후려 패고는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크아아악!”
물 밀 듯이 밀어붙이는 고블린들의 공격에 엘프 좀비들은 저마다 비명성을 터트리며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졌다. 일반적인 엘프였다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약간의 이성만 남아있는 엘프 좀비들에겐 무리였다.
더욱이 내가 소환한 고블린들이 일반적인 고블린들이던가?
무려 칠흑의 지팡이의 버프를 받고 있는 고블린들이었다.
“크악!”
열 마리가 넘어가던 엘프 좀비는 스물네 마리의 고블린들에게 짓밟혀 본래의 시체로 돌아갔다.
“우욱!”
그 때, 리샤가 허리를 꺾으며 토악질을 해댔다. 동시에 그녀의 얼굴에 죄악감이 서려있는 게 들어왔다. 이에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입을 열었다.
“힘들면 들어가 있어도 됩니다.”
이런 내 말에 리샤의 눈동자에 갈등의 기색이 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팔을 꽉 붙잡았다.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이리 말한 그녀는 곧장 몸을 일으킨 뒤에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위태로워보였지만, 나는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키킥. 킥……. 킥.”
이렇듯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저 멀리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나는 리샤와 함께 걸음을 멈춘 뒤에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아, 아아…….”
순간 리샤의 입술 사이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양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로막았다.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미친…….’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시체 덩어리였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엘프들을 뭉친 시체 덩어리였다.
남녀 구분 없이 뒤엉킨 엘프들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저마다 낄낄 거리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간간히 ‘키킥, 기분 좋아. 너도 이리와.’라던가 ‘아아, 최고야. 여긴 최고야.’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목소리는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치밀어오를 정도였다.
‘……저게 운피레아인가?’
눈살을 와락 찌푸린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렉스 소환!”
렉스를 소환하자, 일순 내 눈 앞에 3미터에 이르는 트윈 헤드 오우거가 나타났다.
“또 시체 덩어리야?”
“저번처럼 터지지 않게, 철저하게 뭉개버리자!”
“아니, 찢어버려!”
“그래, 뭉개버려!”
크게 소리친 렉스는 내 명령을 기다리지도 않고, 쿵쿵 소리를 내며 시체 덩어리를 향해 달려갔다.
“키에에엑!!”
그걸 본 시체 덩어리가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비명성을 터트리며 썩은내가 진동하는 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조심하세요!”
그 모습에 나는 재빠르게 소리치며 치료술사의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혹시라도 저것에 렉스가 피해를 입을 경우, 곧바로 회복시켜주기 위해서였다.
“괜찮아! 괜찮아!”
“조심하자! 멈춰!”
“안 돼! 멈출 수가 없어!”
“멍청아, 조심하라고 하잖아! 멈추라고!”
“한번 달리기 시작한 오우거는 결코 멈추지 않아!”
이리 소리친 트윈 헤드 오우거는 그대로 시체 덩어리를 발로 짓밟았다. 그러자 푸직! 소리와 함께 시체 덩어리의 몸체가 뭉개졌다.
말 그대로 짓뭉개진 것이었다.
“으악! 더러워!”
“기분이 이상해!”
렉스가 발을 떼자, 검붉은 피가 진득하게 달라붙으며 늘어졌다.
‘뭐야, 죽은 거야?’
한 방이었다.
렉스가 그저 발로 밟았을 뿐인데, 시체 덩어리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 하고 그대로 죽고 말았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나는 유심히 시체 덩어리를 쳐다보다가 이내 보호의 반지를 소환했다.
그 후, 렉스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뒤로 물러나세요.”
이러한 내 말에 렉스는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발바닥에 눌어붙었던 시체 덩어리를 철퍼덕!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떨어졌다.
“……어둠의 화살!”
주문을 외자, 검은색 화살이 곧바로 시체 덩어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곧 펑!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나더니 시체 덩어리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뭐야?’
그 광경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뭐가 이렇게 약해?’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나는 혹시나 싶은 생각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 후 미니맵을 확인해 보니, 현재 내가 있는 위치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장소에 표시되어 있는 목표물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시체 덩어리가 이젠 잡몹이란 거야?”
난이도가 상승해도 너무 많이 상승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물론 시체 덩어리의 힘이 다소 약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체 덩어리였다.
“주인아, 잡몹이 무슨 뜻이야?”
“바보야! 넌 그것도 모르냐?”
“넌 알아?”
“아니, 몰라!”
“낄낄낄.”
“히히히.”
이렇듯 내가 고심하고 있는 사이, 렉스는 저희들끼리 낄낄대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포기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이내 운피레아를 상대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맞붙은 뒤에 도망쳐도 늦지 않았다. 이리 결정을 내린 나는 멍하니, 시체 덩어리를 쳐다보고 있는 리샤를 붙잡아 흔들었다.
“리샤 씨, 정신 차리세요.”
“아아……. 유현. 유현, 저거…….”
“일단 들어가 계세요. 이 뒤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자, 잠깐! 나 괜찮아! 괜찮으니까……. 계속 안내하게 해줘! 부탁이야.”
“이 이상으로 봐보았자, 좋을 것 하나 없습니다.”
나는 단호히 말하며 리샤를 역소환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그녀는 필사적으로 나를 붙잡으며 호소했다.
“아니야! 이건……. 이건 내 의무야. 내가 그 때, 아이린 님을 잘 설득해야 했는데……. 설득하지 못 해서…….”
“그건 리샤 씨, 당신의 잘 못이 아닙니다. 결국 결정을 내린 건, 아이린. 그녀입니다.”
“틀려……. 난……. 나는 충분히 유현, 널 밀어줄 수 있었어. 하다못해 네게 몰래 검은색 돌을 전해줄 수도 있었어. 그런데……. 나는 은연중에 널 믿지 않았어. 아이린 님의 말씀대로 네가 날 속이려 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이건 전부 다…….”
“리샤.”
“내 탓이야. 그러니까 내가 안내할 수 있게 해줘. 최소한…….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거잖아.”
그 말에 나는 잠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죄책감을 가지는 걸까? 결국 결정자는 아이린이었다. 리샤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직급이 낮은 일개 병사에 불과했다. 그런 그녀가 이 일에 대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굳이 이런 괴로운 일을 하셔야 하겠습니까?”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기에 이리 물었다. 이 이상으로 데리고 다녔다간 리샤의 정신이 버티지 못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구태여 동족의 시체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마을에서 함께 지내던 엘프들의 시체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리샤는 잠시 주변의 시체를 돌아보다가 이내 나를 똑바로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안내하게 해줘.”
그 단호한 목소리에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렇듯 리샤에게 계속해서 길안내를 맡긴 나는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에 우리는 시체 덩어리가 잔뜩 모여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이건…….’
여러 개의 시체 덩어리들은 마치 여왕개미처럼 엘프 좀비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니, 엘프 좀비뿐만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좀비들도 꾸역꾸역 쏟아내고 있었다. 그 소름끼치는 장면에 와락 눈살을 찌푸린 나는 렉스와 고블린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전부 없애버리세요.”
내가 명령을 내리자, 렉스를 선두로 고블린들이 시체 덩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키에에에엑!”
“키킥! 킥!”
렉스가 쿵쿵 발소리를 내며 달려들자, 시체 덩어리들이 저마다 기괴한 소리를 내뱉으며 좀비들을 쏟아내었다.
마치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듯이 말이다. 실제로도 좀비들이 렉스의 앞을 가로막으며 시체 덩어리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콰직!
“크아악!”
마치 애벌레를 발로 짓밟듯이,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좀비들이 렉스의 발에 짓밟히며 터져버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고블린들이 앞으로 나아가 시체 덩어리를 몽둥이로 때리며 터트렸다.
그리고 이런 정신없는 와중에 몇몇 좀비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차!’
아차 싶어진 나는 재빨리 칠흑의 지팡이를 치켜들어 좀비를 향해 겨누었다. 그런데 그 때, 리샤가 힘찬 시합성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캬악!”
리샤가 휘두른 검이 좀비의 목을 베자, 녀석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머리를 잃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좀비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어둠의 화살!”
나는 재빨리 지팡이를 돌려서 또 한 마리의 좀비를 어둠의 화살로 박살내어버렸다. 그리고 이 사이에 렉스는 모든 시체 덩어리를 짓뭉개버린 모양인지, ‘푹푹 터지는 게 재밌다! 더 없어?’라고 소리쳐대고 있었다.
“오크 소환, 남은 좀비를 없애세요.”
“취이익! 주인님의 명대로!”
이런 내 명령에 오크들은 망설임 없이 좀비들을 향해 달려들어 고블린과 함께 남은 좀비를 모조리 소탕했다.
“후우…….”
이렇듯 주변을 정리한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시에 주위가 유난히 조용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여기가 좀비를 생산하던 시설이었던 건 아닐까?’
확실히 그럴 듯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주변에선 더 이상 그 어떠한 좀비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고요함과 피비린내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일단은 희소식이네.’
고개를 치켜든 나는 전열을 가다듬도록 했다.
그런데 그 때였다.
“감히 내 아이들을 죽이다니!”
화난 여성의 목소리가 공터 안을 가득 메웠다.
그 갑작스런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는데, 돌연 내 옆에 서있던 리샤가 경악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운피레아 님!”
리샤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여성이 자리해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험상궂게 찌푸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미색이 조금도 줄어들어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험상궂은 표정조차도 사이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워 보였다.
만약에 경국지색이 있다면, 바로 저 여성을 지칭하는 말일게 틀림없었다.
‘저 사람이 하이엘프 운피레아…….’
과연, 아이린의 어머니라고 불릴 만 했다.
나는 긴장하며 양 손에 들려있는 지팡이를 꽉 쥐었다.
“넌 누군데 내 이름을 알고 있지?”
“운피레아 님, 저입니다! 리샤르요!”
“리샤르? 틀렸어! 넌 리샤르가 아니야! 아니, 넌 리샤르가 맞아. 그래, 기억나. 내 무릎 위에 앉아서 까르르 웃던 작은 아이……. 근데 너는 너무 컸는데? 리샤르는 어린 아이야. 그러니까 넌 리샤르가 아니야.”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인지, 운피레아는 한데 묶여있는 황금색 머리카락을 좌우로 흔들며 소리쳤다.
“운피레아 님!”
“닥쳐!”
리샤가 애타는 목소리로 운피레아를 다시 불러보지만, 돌아오는 건 매서운 질타였다. 운피레아는 성난 표정으로 리샤를 쏘아보더니, 곧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 기세가 우리를 단박에 찢어죽일 듯한 기세였다.
“고블린, 공격해!”
나는 당장에 크게 소리쳤다.
“케르르륵!!”
이런 내 명령에 고블린들은 용감하게 운피레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흥!”
그러나 운피레아는 가당치도 않는다는 듯이 비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고블린을 걷어차서 턱을 짓이겨 버렸다.
“켁!”
그대로 짓밟힌 고블린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걸 본 다른 고블린들이 크게 분노하며 운피레아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천한 것들이 어디를 감히!”
운피레아는 크게 소리치며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몽둥이를 손등으로 쳐내더니, 손을 쭉 뻗어 고블린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그 후,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블린을 다른 고블린들을 향해 집어던졌다.
“케엑!”
“케켁!”
콰직!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고블린 서너 마리가 순식간에 소멸했다.
‘뭐가 저렇게 강해?’
압도적인 전투에 나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반면에 리샤는 여전히 애타게 운피레아의 이름을 울부짖고 있었다.
“운피레아 님, 이제 그만하세요! 운피레아 님, 제발!”
하지만 이런 리샤의 애타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운피레아는 남은 고블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렉스가 몸이 근질근질 댄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주인아, 나도 싸워도 돼?”
“너 미쳤어? 저 괴물을 어떻게 이기려고 그래?”
“뭉개버리면 돼!”
“어? 그러네! 뭉개자!”
쿵쿵, 발돋움을 하며 내 허락을 기다리는 렉스의 태도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렉스, 오크! 고블린을 도와서 운피레아를 공격하세요!”
이렇듯 내 명령이 떨어지자, 렉스와 오크는 곧바로 앞으로 뛰어나가며 운피레아를 공격했다.
========== 작품 후기 ==========
해처리 터진 거 보고 분노한 캐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