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벨] -->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로군요.”
나는 점잖게 대답하며 엘프들이 건네는 감사의 인사를 하나하나 받아주었다.
그 후, 여전히 감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리샤 씨, 남은 엘프들을 데리고 여기서 도망치세요.”
“도망치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당혹감에 가득 찬 표정을 지어보이며 물음을 던지는 리샤의 태도에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제가 검은색 돌을 회수하지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아……. 그, 그럼 오필리아 님은 어떻게 되는 거야?”
입술을 벌벌 떨며 다시금 물음을 던지는 리샤의 태도에 나는 잠시 침음성을 삼켰다.
“포기해야겠지요.”
“…….”
이러한 내 말에 침묵하던 리샤는 곧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을 이었다.
“……내가 뭔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을까?”
그 물음에 나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려다가 이내 그 말을 꿀꺽 삼켰다.
‘뭐라도 부탁해야 될 것 같은 분위기네.’
만약에 여기서 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간 끝까지 나를 붙잡고 늘어지며 뭐라도 부탁하게 만들 기세였다. 이에 나는 무언가 부탁할만한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검은색 돌의 위치를 묻는 간단한 질문을 떠올렸다.
“검은색 돌이 있는 위치만 가르쳐주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거라면 내가 안내해줄게! 오필리아 님이라면 아직 마을에 계실테니까…….”
“아뇨, 그건 위험합니다. 위치만 가르쳐주세요.”
나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내가 부릴 수 있는 소환물의 개체가 많다고는 하지만 마을 안에 얼마나 많은 좀비가 있을 지는 아무도 몰랐다.
설혹 만에 하나, 리샤가 좀비들에게 당하기라도 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나 혼자서 몸을 빼는 것이 훨씬 더 수월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복잡해. 그러니까 내가…….”
“다시 말하지만 위험합니다.”
“하지만…….”
“리샤 씨는 남은 엘프들과 함께 이곳을 벗어나주세요.”
이리 말하며 리샤를 내게서 떨어트려놓는데, 돌연 뒤에서 낯익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안내하겠다.”
그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덧 정신을 차린 아이린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이린 님!”
이렇듯 아이린이 정신을 차리자, 다른 엘프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 하며 그녀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런 엘프들의 태도에 아이린은 여태까지 내게 보여주었던 냉랭한 표정과는 다른 자애로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엘프들을 다독여주었다.
“폐를 끼쳤구나.”
“아닙니다. 아이린 님만 무사하시다면 저희는…….”
이리 말하며 다들 흐느껴 울었다.
그 모습에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아이린은 곧 완전히 몸을 일으킨 뒤에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 모든 건, 내가 자초한 업보다. 유현이라고 했던가? 그대의 말대로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그 때, 그 검은색 돌을 그대에게 고분이 넘겨주었다면, 이러한 끔찍한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이 모든 게, 내 탓이다. 그러니 날 안내자로 삼아다오. 어머니가 계신 곳까지 안내하겠다.”
아이린은 단호한 목소리로 소리쳐 말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주위에 서있던 엘프들이 경악어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소리쳤다.
“안됩니다, 아이린 님! 차라리 제가 가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린 님을 위험에 빠트릴 순 없습니다!”
다들 필사적으로 아이린을 막았다. 그러나 아이린은 이미 결심을 굳힌 듯이 자신을 말리는 엘프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이에 마음이 다급해진 엘프들이 내게 매달리며 자신이 안내자의 역할을 맡겠다며 이야기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잠시 엘프들을 돌아보던 나는 이내 아이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당신을 안내자로 삼을 순 없겠군요.”
“하지만…….”
“그쯤 합시다. 서로 피곤해질 따름입니다.”
“…….”
딱 잘라 말한 나는 리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런 내 시선을 받은 리샤는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리샤, 당신을 안내자로 삼겠습니다.”
“아! 고마워, 유현!”
크게 기뻐해하는 리샤의 태도에 실소를 머금은 나는 이내 입을 열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어떤?”
“제 노예가 되세요.”
“노, 노예가 되라니……?”
리샤는 사뭇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에 나는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저는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개체를 소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 저번에 본 그 트윈 헤드 오우거처럼?”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 제 노예입니다. 한 마디로 리샤 씨가 제 노예가 되면, 그들처럼 소환과 역소환이 자유롭게 된다는 겁니다.”
“아……!”
이러한 내 설명에 리샤가 감탄성을 터트렸다.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리샤 씨가 제 노예가 된다면 여차 할 때, 몸을 빼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해집니다.”
“…….”
“제 조건은 이겁니다. 리샤 씨가 이걸 수락한다면 기꺼이 안내자로 삼겠습니다.”
나는 리샤를 똑바로 마주보며 말을 끝마쳤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리샤는 잠시 주변을 한번 돌아보더니 곧 결심을 굳힌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할게.”
“좋습니다. 그럼 묻겠습니다. 리샤 씨, 제 노예가 되시겠습니까?”
“응.”
이렇듯 리샤가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스마트폰 화면에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대상이 사용자의 노예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대상을 노예로 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예로 삼으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이 물음에 나는 곧바로 네를 눌러서 리샤를 노예로 삼았다.
[축하합니다!]
[대상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노예의 정보를 열람해보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이렇듯 리샤를 노예로 삼은 나는 스마트폰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좋습니다, 그럼 가죠.”
“응.”
내 말에 리샤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에 섰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아이린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함께 가겠다!”
“안 됩니다.”
“하지만…….”
아이린은 반드시 나를 따라고 싶은 모양인지, 끝까지 고집을 피웠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당신은 엘프들을 데리고 여기서 도망치세요.”
“내 어머니에 관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자초한 일이고…….”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죠. 후회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요.”
“그건…….”
“저는 분명히 경고했고, 당신은 그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그만 고집 피우고 돌아가세요. 갑시다, 리샤 씨.”
딱 잘라 말한 나는 아이린을 지나쳐 리샤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린은 무척이나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 보이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이번 퀘스트를 선택한 이유는 리샤 때문이었고, 리샤를 구한 이상 아이린에게까지 신경을 써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화풀이였을지도.’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리샤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가던 리샤가 문득 걸음을 멈춰서더니 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유현.”
“응?”
“아이린 님을 말려줘서…….”
이리 말하며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리샤다. 이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후, 우리는 다시금 걸음을 옮겨 엘프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앞쪽에서 자박자박 풀잎을 밟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좀비인가도 싶었지만, 그 특유의 가래끓는 소리가 조금도 들려오지 않았다.
‘설마……. 살아남은 엘프인가?’
나는 혹시나 싶은 생각에서 고블린들로 하여금 잠시 뒤로 물러나게 했다. 반면에 리샤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확실히 살아남은 동족이라고 생각한다면 기뻐할 법도 했다.
하지만 이 발자국 소리가 반드시 살아남은 엘프란 보장은 없었기에 나는 재빨리 리샤의 손목을 붙잡아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유현?”
“리샤 씨, 진정하세요.”
“하지만…….”
“그렇게 다가가지 않더라도 알아서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실제로도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잠시 뒤, 자박 하고 풀잎을 밟는 소리가 크게 들려오더니 눈이 붉게 빛나는 엘프……. 아니, 죽은 엘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힉!”
그 광경에 리샤는 저도 모르게 새된 비명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엘프를 좀비로 만든 건가.’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칠흑의 지팡이를 똑바로 세웠다.
“도……. 도망……. 쳐…….”
“말했어?”
이성이 남아있는 걸까? 이리 생각하는데, 돌연 엘프 좀비가 끼아아악!! 하고 비명성을 터트리더니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둠의 화살!”
“크악!”
주문을 외자, 검은색 화살이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가선 엘프 좀비의 몸통을 터트렸다. 그러나 녀석은 일반 좀비보다 내구가 더 좋은 모양인지, 몸통의 3분지 1이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케르르륵!”
그걸 본 고블린들이 앞으로 나가서 엘프 좀비를 덮쳤다.
“크아아악!”
대여섯 마리의 고블린이 휘두른 몽둥이에 얻어맞은 엘프 좀비는 곧 숨통이 완전히 끊어진 듯이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성이 남아있는 엘프 좀비라…….’
조금 안타깝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죽은 엘프를 내려다보고 있는 리샤를 다독여주고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사실 이건 방치 플레이 & 수치 플레이입니다.
일부러 아이린에게 수치심을 주고, 방치함으로 조교의 민감도를... 크흠. 역시 사전 교육이 중요한 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