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바다] -->
∴ ∵ ∴ ∵ ∴
고기를 굽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자, 저 멀리 바다 위로 붉은색 노을이 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해안선을 따라 파도치는 검푸른 바다를 보고 있자니, 절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만큼 초저녁 여름 바다의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예쁘지?”
서연이 누나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누나의 머리를 살살 어루만져주었다. 그러자 기쁜 듯이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며 내 허리를 꼬옥 끌어안는 서연이 누나다.
‘이런 게 행복일까.’
만약에 이런 게, 행복이라면 영원히 깨지지 않았으면 싶었다.
나는 노을이 완전히 질 때까지 누나와 함께 지평선을 바라보다가 이내 냉장고에서 꺼내온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어차피 두 명이서 먹을 것이었기에 그다지 많이 굽지도 않았다. 나는 나 한 입, 누나 한 입 이런 식으로 서로 주고받으며 넉넉하게 저녁 식사를 끝마쳤다.
그 후, 우리는 밤바다를 걷기 위해서 별장을 나섰다.
‘이런데도 있구나.’
별장 아래엔 전용 해수욕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덕분에 우리가 전세라도 낸 것처럼 여유롭게 백사장을 거닐 수 있었다.
“기분 좋다, 그치?”
철썩철썩, 파도치는 바다 소리에 기분이 들뜨는 모양인지 누나가 모처럼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내게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나 또한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네.”
“유현이, 너랑 이렇게 걸으니까 더 좋은 거 같아.”
이리 말하며 내 팔을 꼬옥 끌어안는 서연이 누나다. 덕분에 누나의 가슴이 내 팔을 압박하며 기분 좋은 감촉을 전해주었다. 더불어 바다 냄새가 더해진 누나의 샴푸 냄새가 내 후각을 감미롭게 자극했다.
“저도요.”
그 말과 동시에 고개를 숙여, 누나의 입술에 입을 맞춰주려는데 갑자기 펑!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누나가 토끼눈을 뜨고서 물었다. 물론 나 또한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내 눈에 저 멀리, 바다 한 가운데에서 꿈틀꿈틀 거리고 있는 검은색 형체가 들어왔다.
‘저게 뭐야?’
꽤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엄청나게 크게 보였다. 아무리 작게 잡아도 10미터는 되는 듯이 싶었다.
“저, 저거 보여?”
그 때, 누나가 내 팔을 잡아당기며 검은색 형체를 가리켰다.
“네, 네……. 누나도 보이는 거예요?”
“으, 응…….”
퍼엉!
누나가 내 물음에 대답하는 순간 또다시 폭발음과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저 멀리 물기둥이 치솟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저 정체를 알 수 있는 형체가 해수면을 내려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왜?’
어째서라는 생각을 하는데, 저 멀리 엄청난 높이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누나!”
“어, 어? 아!”
그걸 본 나는 재빨리 누나의 손을 붙잡고서 뒤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내 행동에 잠시 당황해하던 서연이 누나는 곧 저 멀리서 몰려오고 있는 파도를 발견하고는 크게 탄성을 터트렸다.
애애애애앵!!
그리고 뒤이어서 위험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체 이게 뭐지? 뭐야? 혹시 매니저 어플을 영향……?’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스마트폰을 꺼내서 확인해보고 싶단 생각이 물씬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는 서연이 누나가 있었다. 이 와중에 스마트폰을 꺼내서 확인한다는 것을 지극히 위험한 일이었다.
쏴아아아!!
그 때, 가까이에서 파도가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아!”
누나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 외침에 나는 재빨리 누나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읍……!!”
파도가 우리의 몸을 휩쓰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제길! 제길! 제길!’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게, 당장이라고 헛구역질을 하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파도에 휩쓸린 돌멩이 같은 것들이 쉼 없이 내 머리와 몸을 때리는 바람에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아니, 이대로라면 죽을 게 분명했다.
‘……망할!’
결국 버티다 못 한 나는 누나를 꼭 끌어안은 상태로 ‘보호의 반지’를 소환했다. 물론 물속에서 말한 것이었기에 이게 제대로 소환될 지는 의문이었지만, 다행히도 내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지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보호막!’
입을 뻐끔뻐끔 벌려 시동어를 말한 순간 말소리보다는 물거품이 먼저 피어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내 의지대로 보호막이 걸렸다. 그러자 내 몸을 휩쓸고 있던 바닷물이 보호막 밖으로 빠져나가며 일순 내 몸 주위로 물방울이 처진 것처럼 변했다.
“후아!”
그제야 숨을 들이켠 나는 내 품에 안겨있는 서연이 누나를 살펴보았다.
“누나? 누나!”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서연이 누나의 몸을 흔들며 불러보지만, 누나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덜컥 걱정이 몰려왔다. 혹시라도 어딜 다친 건 아닐까? 어쩌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나는 서둘러 누나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대었다. 그러자 미약하지만 확실하게,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히 기절한 건가?’
천만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일단 여기서 도망치자.”
숨을 가쁘게 몰아쉰 나는 서연이 누나를 품에 안은 뒤에 지면을 밟으며 서둘러 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보호막의 지속시간이 1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보호막이 쳐져 있는 동안에는 물살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모양인지, 1분 남짓한 시간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가능했다.
‘미쳤군.’
이렇듯 물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누나를 바닥에 눕힌 뒤에 사방을 돌아보았다.
‘……이런 게, 말이 돼?’
온통 물바다였다.
특히나 경포 해수욕장 쪽은 상황이 심각해보였다. 사람들의 비명소리, 그리고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온갖 물건과 사람……. 그나마 다행이라면 재해를 입지 않는 몇몇 사람들이 구명 로브나 튜브를 던져주면서 인명 구조에 나서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쿵쿵 뛰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힌 나는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 후, 매니저 어플을 실행시키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현계 퀘스트 ‘크라켄의 습격’이 발생했습니다!]
[크라켄이 사용자의 정기를 노리고 있습니다.]
-크라켄을 처치하거나, 크라켄을 피해서 달아나세요. (보상 : 마물 사냥꾼 업데이트)]
“……이게 무슨…….”
난데없이 발생한 퀘스트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퍼엉!
그 때, 또다시 폭발음이 들려왔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서둘러 정신을 차린 나는 바닥에 누워있는 서연이 누나를 품에 안은 뒤에 숲 속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최소한 파도가 닿지 않는 곳까지 도망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파도가 닿지 않는 곳까지 도착한 순간 스마트폰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현계 퀘스트 ‘크라켄의 습격’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마물 사냥꾼이 업데이트 됩니다!]
[현재 사용자의 레벨이 부족해서 마물 사냥꾼을 사용 할 수 없습니다.]
[사용자의 레벨을 7까지 올린 뒤에 이용해주세요.]
이렇듯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알림문구가 떠오르는 동시에 무시무시한 파도를 일으키던 크라켄이란 녀석이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장면을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스마트폰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은 뒤에 산을 내려갔다. 그러자 저 멀리 파도에 휩쓸린 사람들이 구조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 ∵ ∴ ∵ ∴
경포 해수욕장에서 일어난 지진 해일로 인해서 대한민국이 충격에 휩싸였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지진해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속보]경포해주욕장에서 진도 7.8의 지진 해일이 발생, 사망자는 47명.
-이번에도 정부의 조기 대처가 부진.
-민간인의 조기 대처가 빛을 내어서 피해가 이 정도에서 끝난 것.
심지어 정부의 대처는 미비했고, 오히려 민간인 쪽에서 구조 작업을 활발히 벌였다. 그러나 워낙에 갑작스레 일어난 것인데다가 한참 해수욕장에 사람이 몰리는 성수기였기 때문에 사망자가 생기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경포해수욕장에서 일어난 지진은 정체불명의 괴수 탓?
-SNS에 정체불명의 괴수를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이 속속들이 나타나서 논란!
지진 해일이 일어나기 진적에 정체불명의 괴수를 본 것은 유현이나 서연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해수욕장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폭음 뒤에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괴수를 목격했고, 스마트폰을 찍기까지 했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것을 합성 혹은 빛의 굴절이라며 일절 부정했다. 오히려 북한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면서 북한을 매도하기까지 했다.
-정말로 이 사진과 동영상에 촬영된 대로 정체 괴물의 짓일까요?
-그럴 가능성이 지극히 낮습니다. 오히려 북한이 동해에 미사일을 날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많이 이들이 폭음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았을 때, 북한에서 날린 미사일이 고의 혹은 실수로 동해에 떨어졌고…….
인터넷에서 온갖 추측들이 나돌았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뒤로 하더라도 여론 자체는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높았다. 일단 누가 뭐라고 해도 정부의 대처가 늦어서 사망자가 더 늘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은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현이 오빠가 친구들과 함께 해수욕장에 놀라간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은하는 재빨리 유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곧 ‘은하야, 무슨 일이야?’라고 묻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은하는 안도하는 한편 자신이 너무 부산을 떤 건 아닐까 싶어서 얼굴을 붉혔다.
“오빠, 지금 뉴스 보셨어요?”
[뉴스?]
“네, 지금 경포해수욕장에서 난리 났는데……. 거긴 괜찮죠?”
[…….]
이런 은하의 물음에 유현은 한참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응, 괜찮아. 걱정 마.]
유현은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괜히 은하에게 걱정 끼치기 싫었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런 유현의 말에 은하는 그제야 완전히 마음을 놓으며 그에게 재밌게 놀라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래, 오빠가 경포에 있었을 리가 없지.’
이렇듯 은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유현은 그 나름대로 심각해져 있는 상태였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구나.’
혹시라도 서연이에게 무슨 문제가 일어났을까 싶어서 일부러 병원에 들른 유현은 그녀의 진찰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지진 해일에 휘말려서 크게 작게 다친 사람들이 병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전부 다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정신없이 바쁜 병원 안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내가. 내가 그 때…….’
하지만 그 때, 유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유현은 최소한의 피해로 그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만약에 그 때, 객기로 크라켄과 맞붙었다면 계속해서 피해가 늘어났었을 테니 말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유현은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