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바다] -->
“끼에에엑!!”
렉스의 등장으로 전황이 크게 기울자, 시체 덩어리가 또다시 울음소리를 토해내었다.
또다시 무언가를 준비하려는 모양이었다. 이를 짐작한 나는 재빨리 리샤 쪽으로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리샤 씨, 이쪽으로 오세요!”
“뭐? 아, 응! 앗!”
이런 내 말에 리샤가 다급히 내 손을 붙잡자, 나는 곧바로 그녀를 내 쪽으로 잡아당기며 보호의 반지를 사용했다.
“보호막!”
보호막을 사용한 순간 비눗방울과도 같은 투명한 막이 내 몸을 감쌌다. 물론 내 품에 안겨있는 리샤 또한 그 범위 안에 있었다.
이렇듯 내가 보호막을 사용하는 것과 동시에 좀비들의 몸이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펑! 펑!
그리고 잠시 뒤, 모든 좀비들이 살아있는 폭탄으로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저마다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꺄악!”
“으윽!”
좀비가 폭발을 일으킬 때마다 일어나는 풍압 탓에 몸이 휘청거렸지만, 나는 꿋꿋이 두 다리로 버티며 섰다.
“우와, 깜짝 놀랐다!”
“전부 다 죽었잖아!”
이렇듯 폭발이 모두 그치자, 렉스가 탄성을 터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말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마치 커다란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여기저기 시체 파편이 눌어붙어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고블린과 오크는……?’
스마트폰을 들어 확인해보니,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라있었다.
[스킬 ‘고블린 소환’으로 소환된 모든 고블린이 재기 불가능의 피해를 입어 강제로 역소환되었습니다.]
[1시간 뒤에 재소환이 가능합니다.]
[스킬 ‘오크 소환’으로 소환된 모든 오크가 재기 불가능의 피해를 입어 강제로 역소환되었습니다.]
[2시간 뒤에 재소환이 가능합니다.]
“전멸인가…….”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체 덩어리를 지키고 있던 좀비들 역시 모두 전멸한 상태였기에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나는 확인을 누른 뒤에 왼손을 들었다.
“치료술사의 지팡이 소환.”
치료술사의 지팡이를 소환한 나는 렉스를 가리키며 재차 입을 열었다.
“……체력 회복, 상처 회복.”
이렇듯 두 가지의 회복을 사용하자, 새하얀 아지랑이가 트윈 헤드 오우거의 전신을 감싸며 폭발로 입은 상처를 회복시켜주었다.
“이제 안 아파! 우와, 신기하다! 이거 뭐야? 신기하다!”
“바보야, 마법이잖아! 히히, 주인이 마법을 사용하니까 편하다!”
회복 마법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인지, 두 개의 머리가 서로 낄낄대며 춤이라도 추듯이 덩실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렉스는 시체 덩어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주인아, 주인아. 저거 어떻게 할까?”
“그걸 왜 물어! 당연히 뭉개버려야지!”
“아하, 그렇구나! 그럼 얼른 뭉개자!”
“아니, 박살내자!”
이리 소리친 렉스는 쿵쿵 발소리를 내며 시체 덩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마치 쏘아져 나간 포탄처럼 어깨로 시체 덩어리의 몸통을 강타하자, 시체 덩어리의 몸이 그대로 허공에 붕 떠오르며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끼에에에엑!!”
이처럼 렉스의 공격을 받은 시체 덩어리는 땅바닥을 구르는 와중에도 빽빽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 소리에 렉스는 깜짝 놀란 듯이 주춤했지만, 공격의 고삐를 늦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너 시끄러워!”
“맞아, 시끄러워!”
렉스는 양 손으로 시체 덩어리를 붙잡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 후, 발로 시체 덩어리를 짓밟자 푸직! 하는 소리와 함께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윽…….’
그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벌레를 터트리는 것만 같아서 절로 눈살이 찌푸렸다. 하지만 렉스는 이 상황이 그저 재밌는지, 아니. 하나의 장난감의 가지고 놀듯이 양 손으로 시체 덩어리를 찢고 뭉개고, 다시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퍽! 퍼벅!
렉스의 무자비한 공격에 시체 덩어리는 변변찮은 저항도 하지 못 하고 축 늘어지고 말았다.
드디어 죽은 모양이었다.
“주인아, 보여? 우리가 죽였어!”
“이제 이거 먹을까?”
축 늘어진 시체 덩어리를 들어 올리며 묻는 렉스의 태도에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으며 수풀 밖으로 한걸음 내딛었다.
그런데 그 때, 죽은 줄 알았던 시체 덩어리가 꿈틀대더니 곧 트윈 헤드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끼에에엑!!”
퍼엉!
렉스의 몸을 감싼 시체 덩어리는 그대로 폭발을 일으켰다.
아까 전에 본 좀비와 같은 형식의 자폭이었다.
“렉스!”
그 폭발에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치고 말았다.
‘설마 죽은 건가?’
쿵쿵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킨 나는 흙먼지가 걷히길 기다렸다. 그리고 곧 흙먼지가 완전히 걷히자,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는 렉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렉스는 무사한 모양인지 고개를 까닥이며 입을 열었다.
“끄응, 아프다.”
“이건 아픈 수준이 아니야. 아무래도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다쳤나봐.”
“바보야! 우린 한 몸이잖아.”
“아하, 그랬지.”
헛소리를 하는 걸 보아하니, 멀쩡한 모양이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치료술사의 지팡이를 렉스 쪽으로 내밀었다. 그런데 그 때, 리샤가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유현! 저게 도망치고 있어!”
“뭐?”
그 외침에 리샤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로 시체 덩어리가 열심히 몸을 꿈틀거리며 도망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에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재빨리 칠흑의 지팡이를 시체 덩어리 쪽으로 겨누었다
“끼에에엑!!”
그런데 그 때, 화살 하나가 날아와서 시체 덩어리의 몸에 박혔다. 그리고 그 화살에 녀석은 아주 죽어버린 모양인지,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그대로 몸체를 축 늘어트리고 말았다.
‘누구지?’
나는 세차게 뛰는 심장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그러자 일순 내 눈에 열댓 명의 엘프들이 들어왔다.
물론 그들은 하나 같이 날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아이린 님!”
그 때, 리샤가 크게 소리치며 내 앞에 섰다.
보아하니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아니, 애당초 퀘스트의 설명대로라면 마정석 파편은 엘프들도 찾고 있었다.
그러니 리샤가 알고 있는 것도 당연했다.
“큰 폭발음이 들리기에 무슨 일이가 싶어서 달려왔더니……. 리샤르. 어째서 그대가 인간과 함께 있는 것이지? 그대와 함께 행동하던 동료들은 어디 있는 거지? 혹시 사로잡힌 것이냐?”
아이린이라고 추정되는 엘프 여성이 연거푸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그 아이린이란 엘프 여성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아니, 외향뿐만이 아니었다. 목소리도, 눈빛도, 숨결도 하나같이 매력적이었다.
한순간 숨이 턱 하고 막힐 정도로 말이다.
‘같은 엘프 맞아?’
정말로 같은 엘프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괴리감이 컸다. 분명히 아이린의 주변에 서있는 엘프들 또한 매력적인 미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쿵쿵 거세게 뛰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며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행동하던 동료들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죽은 자들의 소행인가?”
“그렇습니다. 이 근처에 왔을 무렵 화살이 통하지 않아서……. 그만 고전하고 말았습니다.”
“이해한다. 나 또한 당황했으니.”
아이린은 속눈썹을 내리깔며 슬픈 기색을 내비쳐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죽은 시체 덩어리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이것이 원흉인가?”
“그렇습니다. 그것이 죽은 자들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작은 것이…….”
“아닙니다. 본래는 그보다 훨씬 컸습니다.”
“더 컸다고?”
이러한 리샤의 말에 아이린이 재차 물음을 던지자, 이제까지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렉스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그래, 맞아! 그건 훨씬 컸어!”
“야, 이 엘프 계집아! 그건 내 꺼니까 탐내지마!”
이러한 렉스의 외침에 날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던 엘프들이 다급히 트윈 헤드 오우거 쪽으로 화살을 돌렸다. 아무래도 이제까지 트윈 헤드 오우거가 죽어있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긴 그 만큼 렉스가 입은 상처는 위중했었다.
물론 당사자인 렉스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지만 말이다.
“살아있었나, 오우거.”
아이린이 차게 쏘아붙이자, 렉스의 왼쪽 머리가 발끈한 듯이 크게 소리쳤다.
“난 오우거 아니야!”
“바보야, 우리 오우거 맞아!”
“어? 진짜?”
“어, 진짜로.”
“헐. 대박.”
왼쪽 머리의 감탄사에 오른쪽 머리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죽여라.”
이렇듯 렉스가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아이린이 차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그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렉스 역소환.”
비록 작은 목소리이긴 했지만 분명히 말소리를 내어 말한 것이었기에 렉스의 몸은 여지없이 사라졌다.
“헉! 이게 무슨…….”
“오우거가……!”
이 상황에 리샤를 제외한 모든 엘프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렉스를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물론 아이린 또한 적잖게 당황한 모양인지, 얼음장 같았던 표정을 깨트리고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찾아라!”
“네!”
아이린이 크게 소리치자, 엘프 두 명이 크게 소리치며 곧장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엘프들은 반반씩 나누어, 한 무리는 사방을 경계하고 또 한 무리는 날 향해 화살을 겨누었다.
‘마정석 파편을 회수해야하는데…….’
이 상황에 나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시체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저걸 놔두고 가준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이런 내 기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린은 죽은 시체 덩어리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마대자루 같은 것을 가져오게 시킨 뒤에 그 안에 시체 덩어리를 집어넣었다.
‘제길.’
그 모습에 나는 이를 악 물었다. 보아하니, 시체 덩어리를 회수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마음이 다급해져선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건 위험한 겁니다.”
이러한 내 말에 아이린이 차디찬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이것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나보구나, 인간.”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에 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그것에 대해서 잘 아는 척 하며 술술 말을 쏟아내었다.
“네 녀석이 만든 것인가?”
그리고 이런 내 태도에 아이린은 한껏 사납게 으르렁대며 쏘아붙였다.
“아닙니다. 그건 제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지? 누가 만든 것이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매우 위험하단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찾아 회수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순순한 뜻에서…….”
“거짓말하지 마라, 인간! 네 녀석의 동족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차게 쏘아붙인 아이린은 내게 무시무시한 적대감을 표출했다.
그 태도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설득하기에는 글러보였다. 이에 나는 도움을 구하고자, 리샤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리샤가 재빨리 내 옆에 서며 입을 열었다.
“아이린 님, 이 인간이라면 충분히 믿을만합니다. 실제로 그는 제 목숨도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리샤가 나를 옹호해주자, 순간 아이린의 표정이 안타까운 것으로 변했다.
“어리석은 아이야. 내가 항상 네게 가르치지 않았더냐? 인간은 간악한 존재다. 그들을 믿어서도, 따라서도 안 된다. 하물며 그들은 감싸는 건,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다.”
“하지만 그는 절 구해주었습니다.”
“그것 또한 저 인간의 흉계다.”
“하지만……!”
“그만 하거라, 리샤.”
“…….”
리샤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이린은 결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생각이 지고의 진리라는 듯이 관철시키며 나를 차게 쏘아붙였다.
“인간, 네 녀석이 언제까지 그런 위선적인 가면을 쓸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고문이라도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필요하다면.”
“…….”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여자, 정말로 말이 안 통하는 상대다.
‘어쩌지.’
힘으로라도 강탈하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 현재 소환이 가능한 소환물이 없었다.
그나마 엘레노아와 마틸다 그리고 에나가 남아있긴 했지만, 그녀들의 레벨은 너무나도 낮았다. 반면에 렉스는 부상 상태였기에 쉽사리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포기해야하나.’
게다가 무엇보다도 아이린과 싸우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리샤와도 싸우게 될 게 틀림없었다.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나는 스마트폰을 꺼낸 뒤에 이계 퀘스트를 눌렀다.
[이계 퀘스트 ‘곤란에 처한 엘프’를 포기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나는 네를 누르기 전에 아이린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이린 씨,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뭐지?”
“제게 그것을 넘겨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이러한 내 물음에 아이린은 표정을 굳히며 곧바로 대답했다.
“거절하겠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쓰게 혀를 찬 나는 엄지로 네를 누르며 말을 이었다.
“……서로 간에 후회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본의 아니게 삼류 악당과도 같은 대사를 내뱉게 되었지만, 이 말은 진심이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리샤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으면 하니 말이다.
“잡아, 인간이……!”
그리고 점차 일그러지는 시야 속에서 아이린이 크게 소리치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나는 현실로 돌아가고 있었고, 엘프들이 뒤늦게 뻗은 손은 내 몸을 결코 붙잡지 못 했다.
========== 작품 후기 ==========
이것은 조교각!
여름 바다 파트가 끝나면 해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