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129화 (129/599)

<-- [여름 바다] -->

“좀비?”

아무래도 이쪽 세계의 사람들 혹은 엘프들은 좀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모양인지,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되물었다. 이에 나는 재빨리 입을 열어 설명을 덧붙였다.

“아까 전에 우리를 습격한 것들이요.”

“아, 그 시체들……! 인간들은 그걸 좀비라고 부르는 모양이지?”

“뭐……. 저는 그렇게 부릅니다. 아무튼 이 숲에는 그런 좀비들이 많이 있습니까?”

“아니, 원래는 없었어. 그런데……. 며칠 전부터 하나씩 나타나더니, 그 수가 갑자기 급격하게 불어났어. 게다가 분명히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화살에 맞으면 죽었는데, 지금은 죽지도 않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미간을 찌푸리는 리샤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건가.’

아니, 어쩌면 마정석 파편에 가까워질수록 좀비들이 강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 예로 내가 가진 칠흑의 지팡이가 있었다.

‘……칠흑의 지팡이도 범위 내에 있는 소환물을 강화시켜주니까.’

왠지 모르게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유현, 너는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야?”

“어떻게 들어오다니요?”

이런 내 되물음에 리샤는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뭐지? 혹시 결계가 망가진 걸까……. 확실히 이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데…….”

보아하니 이 숲 전체에 결계가 쳐져 있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그런 이유에서라면 인간인 내가 이 숲에 들어온 게, 리샤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추어 보일 것이 틀림없었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내가 무어라 입을 열어 말하는 것보다는 리샤, 혼자서 이런 식으로 오해하는 편이 훨씬 더 좋았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가만히 두고 보니, 리샤도 꽤 미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괜히 엘프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분홍빛 혈색이 도는 통통한 뺨과 하얀 피부가 굉장히 사랑스러웠다. 게다가 가지런히 정돈 되어 하나로 땋은 갈색 머리카락은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듯했다.

“왜?”

문득 리샤가 긴 속눈썹을 치켜들고서 옅은 갈색 빛이 도는 커다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새침한 목소리긴 했지만, 처음보다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아니, 지금은 내게 호의를 품고 있는 듯했다.

역시 조금 귀찮더라도 꾸준히 대화를 나누길 잘한 모양이었다.

“조금 신기해서요.”

“신기해?”

“엘프는 처음 보거든요.”

“아아, 하긴……. 나도 인간은 처음 보니까. 솔직히 말해서 인간이라면 전부 다 악의로 똘똘 뭉친 종족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혹시 너만 특별한 거야?”

그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닙니다. 저처럼 친절을 베푸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리샤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악의로 똘똘 뭉친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조심하세요. 인간의 혀에는 독이 품어져 있으니까요.”

“너도?”

“저는 좋은 독이죠.”

“결국 독이라는 거네.”

“그렇긴 하네요.”

이렇듯 가볍게 농담을 나누고 있는데, 정면 쪽에서 그어어 거리는 좀비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나는 칠흑의 지팡이를 치켜든 뒤에 어둠의 화살을 쏘았다. 그러자 빠르게 쏘아져 나간 검은색 구체가 마치 미끄러지듯이 쭉 뻗어 나가며 좀비의 머리통을 터트렸다.

펑!

머리통을 잃은 좀비는 그대로 힘없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다른 좀비들이 몰려오기 전에 어서 가죠.”

“으응.”

리샤는 조금 깜짝 놀란 모양인지, 벙찐 표정을 지어보이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조금 위태로워 보이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미니 맵을 확인하며 마정석 파편이 있는 곳까지 걸음을 옮겼다.

‘저기인가?’

그렇게 한참을 내달리자, 마침내 마정석 파편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윽……!”

밑동이가 뿌리째 뽑혀나간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시체 덩어리가 꿈틀꿈틀 거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쿵쿵 뛰면서 우직우직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반면에 리샤는 썩은내를 풍기며 꿈틀거리고 있는 시체 덩어리에 비위가 상한 모양인지, 허리를 꺾고서 토악질을 해대고 있었다.

‘위험해 보이는데.’

혹시나 싶은 생각에서 퀘스트 정보를 열람해보았지만, 이전과 똑같은 내용만 적혀있었다.

‘……이길 수 있을까?’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이내 결심을 굳혔다.

“고블린 소환, 오크 소환, 슬라임 소환.”

스킬을 사용하자, 순식간에 내 주위로 고블린과 오크, 그리고 슬라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이건…….”

리샤는 적잖게 당황한 모양인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안심하세요, 아군입니다.”

이리 말한 나는 칠흑의 지팡이로 적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스켈레톤 소환.”

혹시나 싶은 생각에서 스켈레톤 소환을 해보았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적들의 시체를 이용해서 스켈레톤을 소환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았다.

아쉬움에 혀를 찬 나는 고블린과 오크, 그리고 꿈틀꿈틀 대고 있는 무채색의 슬라임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공격하세요.”

“케르르륵!!”

“크워어!!”

내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블린과 오크 그리고 슬라임이 시체 덩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시체 덩어리가 쿵쿵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폭발하려는 건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리샤와 함께 나무 뒤로 몸을 숨기는데, 꿀럭꿀럭 소리와 함께 시체 덩어리가 다수의 좀비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어어어!!”

“그어억!”

마치 여왕개미가 알을 낳듯이 시체 덩어리에서 끝없이 좀비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 광경에 나는 물론이고 리샤까지도 경악어린 표정을 짓고 말았다.

“저게 원흉……!”

리샤는 으득 이를 갈면서 시체 덩어리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하지만 시체 덩어리는 그런 건,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듯이 거듭 좀비들을 낳으며 고블린과 오크 그리고 슬라임의 접근을 막았다.

“그억!”

그 때, 좀비가 양 팔을 휘저어서 슬라임을 공격하자, 퍼석 소리와 함께 슬라임의 몸체가 사라졌다. 이에 스마트폰을 들어보니,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스킬 ‘슬라임 소환’으로 소환된 모든 슬라임이 재기 불가능의 피해를 입어 강제로 역소환되었습니다.]

[10분 뒤에 재소환이 가능합니다.]

생김새만큼이나 허약한 슬라임이었다.

혀를 내두른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어어!!”

“케르륵!”

전황은 호각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추측했던 대로 마정석 파편에 가까워질수록 좀비들의 힘이 비약적으로 강해지는 모양이었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시체 덩어리를 향해 칠흑의 지팡이를 겨누었다.

“어둠의 화살!”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빠르게 쏘아져 나간 검은색 구체가 시체 덩어리에 맞으며 폭발했다.

“끼에에엑!!”

순간 시체 덩어리를 중심으로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야, 저거?’

설마 살아있는 생명체인걸까? 이리 생각하며 시체 덩어리를 살펴보는데, 일순 시체 덩어리의 일부분이 뚝 하고 떨어지더니 그대로 날 향해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날아왔다.

“위험해!”

동시에 리샤가 크게 소리치며 내 몸을 밀쳐 넘어트렸다.

콰직!

리샤가 내 몸을 밀쳐서 넘어트려준 덕분에 시체 덩어리가 쏜 것은 내 뒤에 자라있던 나무와 부닥치며 짓뭉개졌다. 물론 그 덩어리와 부딪친 나무 역시 몸통이 반으로 쪼개져서는 그대로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미친…….’

그걸 본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만약에 리샤가 날 밀쳐주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내가 저 나무처럼 반으로 쪼개지던가, 머리통이 터져버렸었을 것이다.

‘……위험해. 이건 위험해.’

잘 못 판단했다. 이건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무리 마정석 파편이 중요하다고 해도 내 목숨까지 받쳐가면서 마정석 파편을 얻을 이유는 없었다.

“괜찮아?”

그 때, 리샤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물었다.

“아…….”

일순 정신이 번뜩 들었다.

만약에 내가 여기서 도망쳐버리면 리샤는 어떻게 되는 걸까? 최악의 경우, 리샤가 저 시체 덩어리에게 살해당할지도 몰랐다. 물론 내가 리샤를 안전하게 엘프마을까지 데려다 준다면 그녀의 안전이 보장될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제길.’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쓸 필요 없어. 신경 써줄 의리가 없잖아. 신경 쓰지 마.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을 계속 되뇌어보지만, 나를 걱정스런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는 리샤를 마주보고 있자니 일순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저 시체 덩어리에게 살해당할 리샤를 생각하니, 미안함이 울컥 밀려왔다.

‘……해보자.’

천천히 숨을 토해낸 나는 몸을 일으킨 뒤에 좀비들과 싸우고 있는 고블린과 오크들을 살펴보았다.

“보호의 반지 소환.”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나는 으득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렉스 소환.”

일순 2미터가 훌쩍 넘어가는 거구가 내 앞에 나타나며 양 손을 거칠게 휘둘렀다.

“으악! 좀비다! 모두 박살내자!”

“아니, 뭉개버려!”

크게 소리친 트윈 헤드 오우거는 그대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좀비들을 뭉개버리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주인공에게 플래그 꽂는 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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